지리산 등산기 1(Jiri Mountain 1)
<지리산 산행도>
<장터목 대피소 앞에 있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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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등산기
Part I 10월 15일부터 2박 3일간 주전골과, 설악산 소공원에서 대청봉 그리고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온 나는, 이제 마지막 나의 등산 도전지로 지리산을 마음 속에 두고 있었다. 기왕에 가는 김에 지리산 한 봉우리만 갔다 올 것이 아니라, 어차피 갈 바에는 종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리산 등반 중 추락하여 죽은 고향 친구 생각이 났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이 지리산이라는 말도 머리 속에 맴돌았다. 고산 지대에서 급변하는 날씨와 길을 잃을 위험성 그리고 혼자 가야한다는 일 등이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어서, 며칠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작년에 설악산에 처음 갔을 때 생각한 것처럼, 나이와 체력을 고려해 볼 때, 지금 해보지 못하면 지리산 종주는 내 사전에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종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대신 무리하지 않고, 넉넉히 시간을 잡아 가기로 했다. 인터넷과 등산 지도를 참고하여 대충 다음과 같이 계획을 잡았다. 장터목은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워서 예약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수시로 인터넷을 체크하여 장터목 대피소 예약이 되는대로, 다른 대피소를 일정에 맞게 예약하기로 했다. 며칠을 체크하던 중 마침 10월 29일 장터목 대피소가 비어 있어서, 29일 장터목 대피소를 예약했고, 차례로 28일은 벽소령 대피소, 그리고 27일은 가볍게 등산하기 위해 성삼재에서 가까운 노고단 대피소를 예약했다.
38리터 용량인 내 배낭에 3일 동안 먹을 음식과 옷 그리고 비상약과 전등 카메라를 넣으니, 배낭이 찢어질 것 같았다. 아무리 순서를 바꾸고 요령을 피워본다 해도 38리터 배낭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48평 아파트에 들어가야할 짐은 32평 아파트에 아무리 머리를 써가며 정리를 해도, 다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60리터 배낭을 11만원 주고 다시 샀다.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하게 될 배낭이겠지만, 이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것 저것 다 넣고 배낭을 메고 거울 앞에 서 보니 내가 무슨 전문 산악인 것 같아 기분이 좀 우쭐했지만, 약 20키로나 되는 배낭을 지고 3일을 걸을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났다.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Dryden의 시에 나온 명언과,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번갈아 뇌리를 스쳤다.
2008년 10월 27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김에 맨밥을 싸서 조금 먹었다. 다른 것은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위험하면 중단하고 무조건 하산하라고, 아내와 아들은 나에게 신신 당부했다. 내가 그래도 대청봉에도 가 본 사람이고 웬만한 큰 산은 다 가보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6시 10분에 집을 나섰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였다. 구례 행 7시 반 버스가 매진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인터넷으로 예약하려고 했더니, 예약자가 아무도 없어서, 예약이 필요없을 줄 알았었는데, 내가 실수한 것이다. 다음 차는 2시간 뒤인 9시 반 차가 있었다. 머리 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이 맴돌았다. 지도도 없는 상황에서 대충 짐작하여 7시 30분 전주 행 버스 표를 샀다.
<성삼재에서 내려다 본 구례>
전주에서 내리자마자 마침 구례 화엄사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 버스는 임실을 거쳐 남원 시내를 이리 돌고 저리 돈 후, 남원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곡성 시내에 있는 터미널로 가서 사람을 태우고 다시 나와 기차 마을이라는 표지판 앞을 지났다. 그 뒤 한 동안은 버스는 아름다운 섬진강을 따라 구례로 향했다. 갈대밭길이 나타났다가 푸른 물이 나타났다. 단풍이 나타났다가 다시 갈대밭이 나타났다. "버스를 실컷 타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무려 5시간 반이 지난 오후 1시에 구례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에서 9시 반 구례 행 버스나 이 버스나 도착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였다. 나는 차창에 스치는 가을 산과 들, 그리고 강과 시골 사람들을 느긋한 마음으로 즐기는 행운을 가졌다. 이 가을에 이 햇빛을 받아가며 한가한 임실, 남원, 곡성, 구례 길을 달리는 행복이다. 전 같으면 이 어디 꿈에나 꿔보았던 행복이더냐?
<성삼재. 관광버스와 자가용으로 빈터가 없다>
점심을 먹고, 1시 40분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는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를 향해 굉음을 내며 솟구치고 있었다. 가파른 길과 급 커브 길을 돌아갈 때, 몸이 휘청거렸다. 멍멍거리는 귀청으로 미루어 보아, 내가 이미 상당한 높이에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시간 후인 2시 40분에 버스는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는 해발 약 1000 미터 지점에 있다. 쾅쾅 노래방처럼 귀청을 찢어대는 스피커 노래 속에 등산객으로 들끓는 성삼재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사진 몇 장 찍는 데도 손이 시리고 귀가 어는 듯 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랐다. 아래 쪽으로는 구례의 작은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고, 위쪽으로는 노고단으로 가는 길이 고래등처럼 훤히 펼쳐져 있었다. 나뭇잎 하나하나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아직도 만산홍엽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이다.
10분을 올라가니 도저히 배낭이 무거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잠시 길에서 쉬면서, 앞으로 있을 등산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순간적으로 후회도 되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별 생각을 다 했지만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엎질러진 물이다.
<노고단 대피소>
힘을 내서 한 시간 쯤 걸었을까 생각보다 허무하게, 4시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저 멀리 노고단 정상에 사람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인다.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70 센티 되는 나의 침상을 배정받았다. 눈을 조금 붙여보려고 했으나 눈이 말똥거렸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에 구름이 날려가는 것이, 전쟁 소식에 사람들 도망치는 것만큼이나 빠르다. 순간 나뭇잎이 하늘에 뿌려진다. 가을 바람에 나뭇잎이 날리는 것을, 쉘리는 마법사에게서 도망치는 유령들처럼 날린다고 했었다. 갑자기 쉘리의 시가 생각났다.
"O wild West Wind, thou breath of Autumn's being,
<밤중에 밖에 나와 촬영한 하늘: 검은 구름이 빨리 움직인다. 달도 보인다>
저녁이 되었다. 한 부부가 있었다. 남자는 숙맥처럼 멍청해 보이고 여자는 입에서 나오면 아무 말이나 하는 용감무쌍한 부인처럼 보였다. 앞에 술 먹은 경상도 사람과 어떻게 말을 걸고 어쩌고 하더니 두 사람이 술판이 벌어졌다. 술을 보자, 전라도 무안에서 왔다고 한 그 여인은 내가 무안하리만치 기고만장했다. 술을 한 잔을 떡 들이키더니 "이런 데 오면 잠 자는 것이 아니라, 노래 한번 해야되는 것 아녀요?"라고 말하면서, 박수를 치면 노래하겠다고 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송미나의 "웃고 살자"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해댔다. 특히 "소주 한 잔 앞에 놓고" 대목에서는 소주 잔을 침상에 부서지도록 치면서 분위기를 살렸다. 사람들의 박장대소가 이어졌다. 사람들의 박수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빈 소주잔을 머리 위에 올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한 바퀴 돌기까지 했다.
일 년 이년 십년세월 노래처럼 불러볼까
노래 소리가 너무 컸나, 박수 소리가 너무 컸나?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관리자가 나타나 노발대발했다. "아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여기는 대피소입니다. 위험 상황에서 대피한 사람들이 노래 소리가 나옵니까? 지금 불 끕니다. 빨리 주무세요. 여기에서는 오로지 쉬고 잠만 자는 곳입니다." 군대 유격 조교를 연상시키는 그는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저기서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관광 따라 온 것과는 다른가 봐요. 소주 한 잔 앞에 놓고 웃으며 살아보려고 했더니, 오늘 밤 완전 개털됐네." 모든 사람이 또 한 바탕 웃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옆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내일 닥칠 일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채, 그 날 밤은 잔잔한 바다 위에 타이타닉 호가 지나가듯, 그렇게 한가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 (2008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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