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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 찾은 제주도: 올레 10 코스(Jeju Olleh course 10)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30. 08:35

 

 

 

 

 

 

 

<제 10 코스>

 

 

다시 제주 올레길을 찾다-제 10코스-

 

 

임어당은 말했다. "참된 여행자에게는 항상 방랑하는 즐거움, 모험심과 탐험에 대한 유혹이 있게 마련이다. 여행한다는 것은 방랑한다는 뜻이고, 방랑이 아닌 것은 여행이라고 할 수가 없다." 2009년 6월 17일, 벌써 이틀 째 여행이다. 여름이라 그런지 7시 인데도 해가 중천에 떴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고깃배와 흰구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0코스를 걷기 위해 화순 해수욕장을 출발한 것은 아침 7시 반이다. 화순 해수욕장의 바닥은 모래가 아니라 잘게 부서진 갈색의 조개 껍질이다. 손으로 만져보고 부드러움을 느껴본다.

몇 명의 낚시꾼이 눈에 띄었다. 한 낚시꾼은 쥐치를 잡았는데, 이 쥐치가 낚시를 완전히 배 속까지 집어 삼킨지라, 결국은 쥐치를 면도칼로 해부를 한 후에 비로소 낚시 바늘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손은 살인자의 손처럼 피로 범벅이 되었다.오늘따라 내 일진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퇴적암지구를 지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이렇게 멋있는 곳이 있다니! 기기 묘묘한 바위가 바닥에 쫙 깔려 있었다. 정말 제주도는 볼 것이 많은 곳이다. 이 해안가의 바위와 모래만 육지에 갖다 놓아도 최고의 명승지로 사람들이 들끓을 것이다. 해를 등지고 있으니 내 그림자가 사진 프레임 속으로 들어왔다. 저 멀리 산방산이 산뜻하게 보이고 바닷가를 따라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있는 모래 사장>

 

 

또한 기암괴석 사이로 모래밭이 산뜻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마음도 푸근하다. 내 발자국이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아기 공룡 발자국이 햇빛의 그림자로 검은 흔적을 남기듯 그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여기에 또 낚시꾼이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낚시꾼들은 참 팔자 좋은 사람이다. 나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거리며 돌아다닐 필요가 있나, 그렇다고 연속으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있나, 하여튼 강태공은 직업이건 취미건 최상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된다. 잡히면 다행이고 안 잡혀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지금은 아직 힘이 남아 있으니까 내가 여행을 하지만, 앞으로 힘이 좀 부치면 낚시로 취미를 돌려야겠다.

 

 

 

산방산 밑 자동차 도로와 해안 모래 언덕 사이에 난 숲속 길로 걸어가면 하멜 기념비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용머리 관광지다. 하멜 표류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조선에는 문자를 쓰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것은 주로 쓰는 방식인데 중국이나 일본의 글자와 같다. 조정과 관계된 공식적인 국가 문서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이런 식으로 인쇄된다. 두 번째 것은 네덜란드의 필기체처럼 매우 빨리 쓰는 문자가 있는데 이 문자는 고관이나 지방관들이 포고령을 쓰거나 청원서에 대한 권고를 덧붙일 때 쓰여 서로 편지를 쓸 때에도 사용한다. 일반 백성들은 이 문자를 잘 읽을 수가 없다. 세 번째 것은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배우기가 매우 쉽고, 어떤 사물이든지 쓸 수 있다. 전에 결코 들어 보지 못한 것도 표기할 수 있는, 더 쉽고 더 나은 문자 표기 방법이다. 그들은 이 글씨들을 붓으로 매우 능숙하게 빨리 쓴다.

 

 

 

 

 

 

<용머리 해안의 염소>

 

 

용머리 해안은 내가 신혼 여행으로 왔던 곳이다. 그때에는 보지 못했던 염소가 높은 바위 위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가파른 곳에 있는 염소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추락해 죽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을 보면, 그들의 균형감각은 대단한가 보다. 그리고 해안에는 그때와 사람은 바뀌었겠지만 생선회를 파는 아줌마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하멜 동상과 나>

 

 

처음으로 하멜 동상 옆에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하멜은 네델란드로 돌아갈 걱정인 듯 초췌한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보니 나는 참 짐도 많이도 가지고 다닌다. 아무리 인생이라는 것이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존재라고 하지만, 고생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억지로 웃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래도 어색하기만하다. 옷 보따리, 카메라 보따리, 작은 배낭 또 하나, 심지어는 지팡이까지 없는게 없이 가지고 다닌다. 그중에 사용하는 것은 1/10도 안된다. 이것을 우리는 "쓰잘데기 없는 버릇, 뒈져야 버리는 버릇"이라고 한다.

 

  

 

 

 

<길 옆의 야생화>

 

 

 

 

<길 옆의 선인장 꽃과 열매>

 

 

 

 

<송악산 분화구>

 

 

점심을 먹고 송악산에 올랐다. 본래 제주도의 산이라는 것이 나지막한 것이 특징이어서 조금만 힘을 쓰면 금방 올라간다.  송악산 정상에는 분화구가 있었다. 몇 미터인지 모르지만 깊은 분화구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었다. 정상은 올라간 곳과는 반대편에 있었는데, 짐승의 분비물로 덮혀진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송악산 정상에서 본 형제바위. 내려가는 것은 외국인 두 명과 택시 운전사>

 

  

 

 

<털을 벗는 말>

 

 

여기서 내려갈 때는 떡 버티고 있는 말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말이 피하지 않으면 눈치를 봐가며 돌아 내려가야 한다. 약 10마리의 말이 길에서 어슬렁 거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털을 가는 것 같았다. 몸 여기 저기서 털이 한 뭉큼씩 뭉쳐져 있었다. 말은 항상 서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 때도 서서 자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마리가 팔자 좋게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잠을 자는 말: 혹시 죽은 말일까?>

 

 

 

 

<내가 나를 찍었다>

 

 

송악산을 다 내려오니 오후 한 시 쯤 되었다. 날이 왜 이리 더운지 모르겠다. 큰 나무 아래 잡목이 우거진 곳에 판초 우의를 펴고 누웠다. 서울에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쉬는 시간에 읽으려고 가져온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꺼내 읽었다. 그러나 서울이건 제주도건 아무리 읽어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었다. 두 페이지 읽다가 내동이쳤다. "다른 사람은 알고 읽나? 이해하는 체를 하는 것인가? 아니 니체는 말년에 정말 미쳤다고 하는데, 미친 상태에서 쓴 책인가? 우리 나라 작가 이상은 너무 이상한 인간이요, 독일의 니체는 미친체 하는 인간인가?

 

 

 

중간에 길을 걷다가 갑자기 따발총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마침 길 옆에 사격장이 있었는데, 오늘이 경찰들 사격연습하는 날이었다. 우연히 만난 천안의 치과의사 부부와 함께 나는 걸음아 날살려라하고 몸을 피해, 올레길을 버리고, 큰길로 들어섰다.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인 해모 해수욕장이 보인다.

 

 

이 치과 의사는 캐논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그는 대학원 사진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그는 나보고 사진을 찍은 지 오래되냐고 했다. 나는 약 2년 된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인 보통의 말로 물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나를 얏잡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계속 아무 것도 모르며 그저 쥐나 개나 아무 것이나  되는대로 찍는 몹쓸 놈이라고 나를 흠잡아 말했다. 그는 내가 전시회를 연 적이 있냐고 말했다. 그런 적도 없다고 내가 말하자, 그는 말없이 걸어갔다. 나는, 그러나 달력은 만든 적이 있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아까 나무 아래서 누워 있은 이후 뭔가가 내몸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지를 벗을 수는 없고, 바지 가랭이를 들어 올려 보아도 가시가 있거나 덤불이 몸으로 들어 간 것은 아니었다. 몸의 사방에서 이런 감각은 도를 더해 갔다. 그러다가 다리 하나가 좀 마비가 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일단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로 했다. 눈을 들어보니 멜켈 로그빌 비치 캐슬이라는 펜션이 눈에 띄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40,000원이라고했다. 생각보다는 값이 비싸지 않았다. 나는 바람처럼 내 방으로 들어가 바지를 내렸다.

 

 

 

 

<숙박지 멜케 로그빌 비치캐슬>

 

 

방 바닥에 약 10센티 되는 지네가 뚝 떨어졌다. 나도 놀랐을 것이고 지네도 놀랐을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나는 발까지 내려진 바지를 끌고 사진부터 찍었다. 이런 것을 보면 나도 프로처럼 잘 찍지는 못해도, 프로정신은 살이 있는 듯하다. 사진을 찍자마자 나는 신문지를 돌돌말아 서너 대 패줬다. 지네는 버기적 거렸다. 괘씸한 놈, 감히 어디를 들어와. 내 풀밭에 누워자면 뱀에 물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지네에 물린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나도 어지간히 한심하다. 두 시간 동안 지네가 내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도 모르고, 뭔가가 찌르는 듯한 느낌을 갖고 참고만 다니다니. 나는 신경질이 또 나서 다시 한 번 패줬다. 지네는 다시 꿈틀거렸다. 나는 지네에게 말했다.

 

 

 

 

 

 

"그대, 지네군. 내가 그대에게 밥을 달라고 했나, 떡을 달라고 했나? 왜 멀쩡하게 가만히 있는 사람 몸을 무단으로 점령하여 그대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나? 그대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지 모르나? 지금 그대에게 거열형(車裂刑: 사람의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목을 줄로 묶어 말에 매고 매질을 하여, 사람을 찢어 죽이는 형벌)을 내려야하나 지금 그대의 다리가 너무 많아 이를 감당할 말(馬)이 없어 거열형에 처하지 못함을 내 심히 통탄스러워 하노라.  

 

 

그대 지네군. 내가 과거에 학교에 있을 때는 cent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대의 이름을 학생들에게 영어로 가르쳤노라.  그대는 영어로 centipede다. centi(=100), pede(=다리)라고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아마 지금도 그대를 영어로 다 알고 있을 것이야. 그대, 지네군. 다리가 100개인줄 알았는데 100개도 안되는구나. 어디 한 번 세어보자. 겨우 다리가 36개이구나. 고약한지고. 사람들에게 100개라고 착각도 하게 만들었어.

 

 

그대 죄를 그대가 알 것이야. 능지처참 하여도 내 분이 안풀리겠네. 하지만 내 최근 몇 달 동안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니 살생이 가장 큰 죄악이라 하여, 목숨만은 살려둘 것이야. 석 달 전에만 이런 짓을 했어도 이미 내 구두 바닥에서 일그러지는 형벌을 받았을 것이야. 운 좋은 줄 알아야 해. 고이한지고."

 

 

나는 샤워를 하고 분을 삭힌 후,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고등어 회를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고등어 회는 김에 밥을 조금 넣고, 양파 양념에 고등어를 찍어 먹는다. 고등어는 최근들어 양식이 된다고 했다. 한라산물 소주 덕분에 지네에 대한 생각을 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얼마나 큰 고등어를 잡았는지 소주와 맥주를 먹고도 고등어가 남았다.

 

 

 

 

<고등어 회>

 

 

그날 밤 새벽 3시에 잠에서 깼다. 어제 쥐치에서 낚시를 꺼내는 낚시꾼의 손에 묻은 피를 본 것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손에 묻은 붉은 피와 지네 생각이 또 났다. 그리고 지네가 나를 공격하는 꿈을 꾸었다. 지네가 붉은 피를 뿜어대며 나에게 공격해왔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 후, 창 너머로 철석이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지네를 죽였어야 하는데, 이거, 지네의 공격을 받는 것이 아닌가? 옛날 뱀을 죽이듯이 그렇게 죽였어야 하는데. 지네에 대한 공포가 전설의 고향 프로그램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으나, 철석이는 파도만이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2009년 6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