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 메밀꽃 축제 1 (Bongpyung buckwheat flowers' festival 1)
<한강의 구름>
봉평 이효석 축제
둥실둥실 떠 있는 흰 구름, 저 멀리 짙은 푸른 색으로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나즈막한 산, 머문 듯 서서히 흘러가는 한강, 그 위의 다리 위를 지나고 있는 성냥갑 같은 자동차 —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서울을 떠난 것이 9월 11일 오후 2시다. 이리도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내 인생에서 많지 않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즐겁지 않아도 즐거워해야할 인생이다. 즐겁지 않은 인생을 즐겁다고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 불행의 시초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저런 날씨에 즐겁지 않은 사람도 불행의 시초이리라.
아마 대한민국 사람치고 평창의 봉평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리라. 말할 것도 없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이라는 작품 하나로 유명해진 곳이 아닌가? 나도 전에 여러 번 이곳에 다녀 온 적이 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봉평 장을 돌아 다리를 건너면, 물레방앗간이 있고 그 주위에는 메밀밭이 펼쳐져 있다. 조금 올라가면 이효석 문학관이 있고, 음식 장사에 사용되는 이효석 생가가 그 위에 있다. 이렇게 낯익은 곳을 내가 다시 찾아가는 이유는 단지 이효석 문화제가 열린다하니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방 자치제가 된 이후에 각 지방마다 축제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렇다고 별로 특별한 것도 없어서, "그 축제가 그 축제"이고, "그 국에 그 밥"인 것이 대부분이다. 매번 밥상에 차려 나오는 밑반찬처럼, 한국의 축제는 "음식 판매, 각설이 공연, 각종 장사꾼들, 초상화 화가들, 국악 및 서양 음악회"가 기본이다. 그리고 그 축제 고유의 행사 한 두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금산에는 "인삼 캐기", 청도에는 "소 싸움"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마치 똑 같은 밑반찬에 특별 요리, 예를 들어 불고기나 더덕구이가 하나 따라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해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던가? 어제와 오늘이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러나 또 한 번 생각해보면, 어제와 오늘이 같기는 하지만, 판에 박은 듯이 같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몇 초라도 다르고, 오늘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조금 다르고, 같은 옷을 입어도 그 구겨짐이 다르고 날씨에 따라 색도 달라 보이지 않던가? 즉 오늘이 어제와 똑 같은 것 같지만 정말 똑 같지는 않은 그런 생활이 바로 인생일 것이다.
<장평 IC에서 나와 약 10분 가면 나타나는 어떤 펜션>
장평 IC에서 빠져나와 봉평으로 향하는 데, 꽃으로 둘러싸인 한 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차에서 내려보니 펜션이다. 손님을 끌기 위해 주인이 주위에 각종 꽃을 심고 잘 가꾸어 놓은 것이다. 자세히 보니 펜션 이름은 "쪽빛 하늘"이다. 쪽빛 하늘이 일년에 며칠이나 있으랴. "펜션, 꽃으로"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며 봉평으로 향했다.
행사 때문인지 요소요소에 경찰이 깔려 있었다. 넓은 메밀밭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는데, 경찰 두 명이 다가왔다. 설마 이런 시골의 길옆에 주차했다고 주차 위반 딱지를 떼려나 했더니, 차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메밀밭을 보면서, 아마 이효석이 살았던 당시에 이런 메밀밭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층층으로 되어진 메밀밭은 위에 있는 신작로에서 보면 전체가 하나의 밭으로 보이지만, 막상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여러 메밀밭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 메밀꽃이 한창인 이 밭에서 잠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를 생각했다.
<봉평에 조금 못 가서 길 옆에 있는 메밀밭>
장사꾼과 구경꾼과 술취한 사람들 사이로 차를 몰고 들어간 곳이 봉평 중학교 운동장이다. 이미 주차할 공간이 거의 없다. 몇 바퀴를 돌다가 한 곳에 주차할 수 있었다.
봉평 장에는 프로그램에 따라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연주회가 끝나고 새로운 풍악대가 등장하고 있었다. 많은 군인들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보아, 그 지방의 한 부대원들이 연습을 하여 이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많이 참석하지만, 풍악놀이 대원의 등치와 피부 색 등으로 미루어 보아 군인임에 틀림없다.
<풍악놀이>
구경꾼 중의 한 사람이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치마와 두루마기를 반씩 닮은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이상한 꽃으로 장식했으며 눈은 마스크로 가린 나이가 지긋한 노인인 것 같다. 손에 아코디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특이한 노인네다.
<특이한 복장의 구경꾼이 농악놀이를 지켜보고 있다. >
잠시 구경하고 공연장을 떠나 각종 장사꾼이 들끓고 있는 골목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으니 아름다운 여인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녀 앞으로 왔다. "어이구, 헉, 왝......" 각선미는 처녀요, 얼굴은 할머니도 아닌 할아버지였다. 위쪽이 진짜인지 아래쪽이 진짜인지 헷갈려 한참을 구경했다. 들썩거리는 치마 아래에 시커먼 빨래방망이가 눈에 보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았다. 그러자 군중 속에 있던 한 사람이 먹던 물병 뚜껑을 한쪽 눈 위에 얹어 놓더니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해괴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이 또 배꼽을 잡았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고 있었다.
<아래를 보면 젊은 여인네, 위를 보면, 억, 웬---->
<한 남자가 해괴한 춤을 춘다.>
아내와 나는 빨리 방을 잡아야 했다. 언젠가 강릉에 가서 방을 잡지 못하여 수십키로를 가서 민박을 겨우 얻어 잤던 기억이 머리에 맴돌았다. 봉평읍 시내에는 장급 여관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에 들어갔다. 지하는 다방이었고, 지상은 여관이었는데, 아마도 주인이 다방과 여관을 같이 운영하는 것 같았다. 혹시 티켓다방이 아닐까? 혼자라면 가서 차라도 한 잔 하겠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35000원을 내고 들어가면서 물었다. "방 좋아요?, 아줌마" "글쎄요. 이부자리는 깨끗해요."가 안내실에 있는 아가씨인지 아주머니인지 헷갈리는 주인의 대답이다.
<저녁이 되자, 다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방에서 나와 다시 어둠에 싸인 봉평길을 걸었다. 아까 갔었던 공연장에 다시 들렀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먹을 때이지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뭐가뭔지 잘 몰라, 평소에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을 시키기로 했다. 막걸리에 전병, 그리고 수수 경단을 시켰다. 막걸리를 마시니 시원하게 넘어갔으나 안주라고 생각했던 음식은 안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녁 식사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음식이었다. 아내는 한 점을 먹더니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나는 썰렁해진 경단과 전병을 몇 점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전병"은 "젬병"으로, "경단은 "경을 칠"이라는 단어로 머리 속에서 뒤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술은 다 마셔 버렸다. 아내는 무슨 술 욕심이 그리 많냐고 한 마디 했다. "이 세상에 술을 버리고 가는 것이 가장 큰 죄라네."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막걸리와 전병, 그리고 수수 경단>
밤바람이 차거운데도 초상화 작가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인을 그리는 작가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초상화 작가의 수염이 바람에 날렸다. 그는 수염을 만지작 거리며 능숙하게 인물을 완성해 갔다. 자신의 모습이 잘못 그려질 것을 두려워한 한 여인은 추위에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옆에 앉아 있는 화가들은 손님이 없어 하늘을 보거나 졸고 있었다. 김수희의 노래가 생각났다. "가로등도 졸고 있는 비오는 골목길에, 두 손을 마주 잡고,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애태우던 그 밤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자꾸만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진다"
<각설이 공연장 바로 앞에서 또 마신 막걸리>
각설이패 앞에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얼큰한 음식과 뜨거운 국, 그리고 막걸리를 또 시켰다. 아내는 뜨거운 국물을 먹더니 속이 훈훈해 진다고 했다. 둘이서 한 참을 마셨다. 몇 병인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에게 음식을 만들어준 아줌마가 각설이의 초청을 받아 갑자기 공연자가 되었다. 식당 아줌마의 노래솜씨도 춤솜씨도 가수를 뺨쳤다. 아마 내가 술에 취해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줌마는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 노래를 하는 것을 보면 꽤나 나이가 들은 것이 아닐까? 노래를 부르고 돌아온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옛날에 카수였었수?" "예, 저도 사연이 많답니다. 술이나 드셔요." 아주머니의 말이다.
<식당 집 아줌마가 특별 초대되어 각설이 패에 합류했다.>
곧 이어 등장한 춘자라는 각설이는 무지막지한 욕을 해대며 관중을 휘잡아 갔다. 춤을 추다가 노래를 했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다가, 미친년처럼 침을 흘리며 웃었다. 웃다가 울다가, 엿을 팔다가 가짜 진주 목걸리를 팔았다. 머리채를 나꿔채 목을 감듯 그의 말은 듣는이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 각설이가 내게로 와서 목걸이를 사라고 했다. 왜 사진은 그렇게 많이 찍으면서 목걸이는 사지 않느냐고 대들었다. 술에 취한 나는 너털웃음을 토해내며, 대드는 여자를 계속 사진 찍었다. 할 수 없었는지 춘자의 아내는 다른 곳으로 갔다.
<각설이에게 정신이 팔린 구경꾼>
모텔로 돌아오면서 아내는 내가 진주 목걸이 사지 않은 것은 정말 장한 일이라고 몇 번이나 나를 칭찬해 주었다. 내가 진주 목걸이를 사지 않을까 간이 오므락조므락 했다는 것이다.
걸어가는 길 양쪽으로 수 없는 가게가 불빛을 밝히고 있다. 터키인이 케밥을 팔고 있었다. 뚱뚱한 케냐 아줌마는 허접한 목걸이를 팔고 있었다. 인도에서 왔다는 세 젊은이는 전통 복장을 하고 얼굴에 이상한 페인트를 칠한 채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인도인들은 서툰 한국말로 "이거 좋아요. 사세요."라고 했다. 빨리 가자고 붙잡는 내 손을 뿌리치고 아내는 무슨 작은 조개껍질을 실로 꿰서 만든 팔찌를 샀다.
<인도, 터키, 케냐 등에서 온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고 목걸이, 케밥, 장난감 등의 물건을 판다.>
인도인들의 공연을 보고 걸어 오는데, 번쩍이는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뜨거운 솥에서 나오는 오뎅 국물의 하얀 김이 시골 다방의 미스 김의 미소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 집에 또 들어갔다. 전어 구이가 2만원, 동동주가 만원이었다. 가게 안 쪽에는 공연장이 있었는데 손님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텅빈 무대에서 사회자 혼자 "지랄발광"을 떨었다. 술먹은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그 유혹에 한 여자가 노래 한답시고 사회자 쪽으로 가다가 술에 취해 넘어졌다. 한 사람이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려했으나 그녀는 일어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녀는 갑자기 신발을 벗어 땅을 치며 통곡했다. 하지만 그 통곡은 쾅쾅거리는 스피커 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녀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오로지 나인 듯 했다.
봉평의 9월 밤바람이 겨울처럼 찼다. 아내의 손이 따뜻하다. 아내도 이제 취할만큼 취했다. 우리는 넘어질 듯 넘어질듯, 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걸었다. 모르겠다, 넘어졌을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노래가 나왔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취할만큼 취한 아내도 어느덧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2009년 9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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