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원 여행기 3 "태항산 팔리구 풍경구와 구련산 서련촌"
6인용 검은 (자가용 영업?) 택시로 정주에 도착한 것은 3월 30일 오후 4시경이었다. 정주는 근처에 위치한 개봉, 송산, 낙양, 태항산을 가기 위한 교통의 중심지이지, 그 자체로는 별 볼 것이 없는 도시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정주는 회색의 칙칙한 아파트만 보이는, 밀물이 빠져나가 썰렁한 검은 갯벌처럼 보였다.
2025년 3월 31일 태항산에 있는 팔리구(八里沟: 빨리꺼우)와 구련산(九连山:지우리엔샨) 트레킹에 나섰다.
정주에서 태항산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여서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야했다. 정주에서 태항산에 가는 길 어느 지점에서 우리 버스가 황하강을 건넌다는 것을 백도 지도(百度地图: 바이두 띠투)에서 확인하고, 휴대폰 카메라를 버스 유리 창에 바짝 대고, 찍을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우리 버스는 황하강을 건너고 있었다. 황하강은 일반적으로 강폭이 약 300 미터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눈 짐작으로는 강폭이 약 1 키로는 되는 듯 했다. 가뭄이 들어서인지 강물이 있는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버스는 시속 100키로로 달렸고 유리창을 통해보는 황하강은 순식간에 지나고 말았다. 황하강을 보면서 그리고 또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스스로 감격스러워 했다. “아, 저것이 중국의 황하강이구나! 황하문명의 발상지가 여기구나! 강물은 많지 않지만 누렇기는 누렇구나! 어떻든 죽기 전에 황하강을 보기는 보는구나!”
태항산 지명에 대한 개념 정리
1. 이번 여행에서, 3월 31일은 팔리구와 구련산을 찾아 갔고, 4월 1일은 천계산과 왕망령에 올라갔다.
2. 팔리구, 구련산, 천계산은 하남성 “팔리구 풍경구”에 속해 있다. “팔리구”는 “팔리구 풍경구”의 일 부분이다. 팔리구는 계곡이다. 여기서 “구”는 沟라고 쓴다. 沟는 溝의 간체자이며, 옥편에 “도랑 구”라구 되어 있다. 뜻은 “도랑, 개천, 골짜기”란 뜻인데, 여기서는 골짜기란 뜻이다. 구가 들어간 지명 중에 유명한 구채구(九寨沟)가 있다. 팔리구, 구련산, 천계산은 서로 가까이 있고 모두 하남성에 속한다. 그리고 왕망령은 섬서성에 속해 있다. “팔리구”와 “팔리구 풍경구”의 개념이 잡히지 않아, 한 동안 혼란스러웠다.
3. 바이두(百度)에 따르면, 팔리구 풍경구(八里沟风景区)는 2006년 AAAA급 풍경구가 되었으며, 2019년 12월 31일 AAAAA급(최고 등급) 풍경구로 승격되었다.
팔리구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나타난 것은 거대한 운대산이었다. 산 중턱에서 갑자기 산이 튀어 올랐는지, 아니면 갑자기 아래 쪽이 내려 앉았는지 모르지만, 거대한 절벽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 했다. 아마 버스를 타고 가는 10분 동안 내내 이런 절벽이 이어 졌고, 끊어졌다가 또 이어졌다.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는 이런 지형이 없는 듯 하다. 만약 있다고 하면 청송에 있는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절벽이 이와 비슷할텐데, 서로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저 운대산으로 들어가면 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궁금했고, 내가 미래 언젠가 운대산에 가볼 날이 있을까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혹시 모르겠다, 운대가 좋으면 운대산에 가볼지도 말이다.
팔리구 버스 정거장에 도착한 것은 9시 30분경이었다. 팔리구 입구에 세워진 화려하고 거대한 입구 조형물이 떡 버티고 서 있다. 그 뒤에 펼쳐진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다. 과연 말로만 듣던 태항산의 위엄이 직접 몸으로 느껴진다. 입구에는 没有安全就没有诗和远方(안전이 없으면 시도 없고 먼 곳도 없다)라고 붉은 글씨가 나타나면서 사라졌다. 무슨 말인지 헷갈렸지만 그러려니 하고 눈을 오른 쪽으로 돌렸다. 太行魂(태항산의 혼)이라고 쓰여있었다. 이것도 그러려니 했다.
고목 나무에 매미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으나, 고목 나무에 이렇게 화려한 꽃이 어찌 매달려 있을까? 나는 생화인지 조화인지 손으로 만져보았다. 조화로 보였다. 이후로 이런 꽃은 계속 나타났는데, 어떤 것은 조화, 어떤 것은 생화, 또 어떤 것은 조화와 생화가 섞여 있었다.
멀리 우뚝 솟은 태항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비단 같은 산자락이 선녀의 치마 자락처럼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치마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계곡을 따라 흐르다가 멈춘 물이 초록의 호수를 이룬다. 호수는 삼면의 산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바람이 불때마다 물속에 들어 있는 산자락은,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호수물은 일필휘지 초서체 글을 남기기도 하고, 장엄하게 부서져 화산처럼 폭발하기도 한다. 이 장면을 보니, “소리 없이 이 밤은 내 가슴도 울어야 하나”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라는 노래 가사가 내 머리 속을 스친다.
분홍 꽃 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 아래 앉아 있는 두 마리 원숭이가 나를 살피고, 나는 그들을 살핀다. 나는 원숭이와 눈이 마주치기 싫어 애써 그들을 외면한다. 그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공격하거나 나의 안경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을 되뇌이며 살금살금 원숭이 옆을 통과한다.
거대한 바위 군락지가 나타났다. 지도상으로 보아 장군바위라고 생각되었다. 무슨 조화로 어떤 힘에 의해서 저런 산봉우리가 만들어졌는지, 넋을 놓고 바라본다. 도끼로 잘라낸 바위가, 눈비에 젖고 바람 맞고 풍화되어 저런 모습을 갖추었으리라. 자연의 조화와 이치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피곤하시죠. 그것이 바로 인생이에요.” 위의 중국어를 직역하면, “피곤하시죠, 생활이 본래 그런거예요”이다. 그러나 번역자는 “그것이 바로 인생이에요”라고 번역했다. 정말 훌륭한 번역이다. 단지 몇 글자 바꾸는 것이 글의 맛을 이렇게 바꾸어 놓는다.
사실 산다는 것은 어렵고 피곤하고 힘들다. 인생이 즐겁고, 희망차고, 행복한 것이라고 외치는 사람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괴로움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도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이야기하지 않았겠는가? 길에 한번 나가봐라. 폐휴지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비바람 맞아가며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걸어가는 노인들을 우리는 자주 본다. 새벽부터 밤까지 헐떡거리며 물건을 나르는 택배 노동자도 많이 본다. 사실은 이 글을 쓰는 나도 힘들다. 왜? 이것이 바로 인생이니까!
드디어 목적지인 천하폭포에 도착하였다. 약 4 키로를 2 시간 반 걸린 듯 하다. 멀리서 보이는 천하폭포는, 가물어서인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양이 너무 적었다. 떨어지는 물은 송아지가 오줌을 누는 듯, 가늘고 길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천당폭포가 되지 못 하고, 천하 폭포라고 이름을 지은 것인가?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막상 바짝 다가가서 보니, 폭포의 수량이 적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면서 수많은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또 더욱 놀라운 것은 폭포 아래에 옥색의 호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옥색 호수 위에는 여러 대의 뗏목이 있었고, 그 뗏목 위에는 많은 의자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한 여름 비가 많이 와서, 쏟아지는 폭포 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질 때, 이 물은 짙은 물 안개 되어 하늘로 피어올라 계곡을 덮을 것이다. 이 물 안개 속에서 뗏목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여기가 천하인지 천당인지, 내가 사람인지 신선인지 구분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막걸리라도 한잔 들어가면, 누구나 이백(李白)이 되어 시를 한 수 읊을 것이다. 그 시는 아마도 자신의 팔자 타령이나 신세 타령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고, 급기야 죽네 사네 소란을 피우며 고래고래 통곡할 것이다. 쓰다보니, 나는 지금 소설을 쓰는 중인가 보다! 중이 되려면 염불하는 중이 되어야지, 태항산 팔리구에서 무슨 소설이냐?
오후에 간 곳은 구련산 서련촌이라는 곳이었다. 표를 구입하고 입장하면 작은 버스가 여행객을 기다린다. 작은 버스를 타고 약 20분 좁은 계곡의 길을 따라 올라간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길 양쪽으로 놓여있는 끝 없는 바위 절벽을 보면서 약 800미터를 또 걸어 올라간다. 거기에는 수직 엘리베이터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엘리베이터는 관광객을 태우고 한참 동안 수직의 절벽을 올라간다. 160미터 정도 되는 절벽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면서, 살다 살다 이런 곳을 내가 가보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곡 아래를 보니 절벽 아래 계곡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였다. 공포증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현기증이 나는 듯 했다.
서련촌으로 가는 길은 노란 개나리와 흰 복숭아 꽃이 뿌려진 꽃의 향연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라는 동요를 흥얼거렸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윤동주의 시 일부 인용)
그러다가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손을 흔들며 떠나간 사람”이라는 콧 노래도 불러봤다.
돌로 쌓은 대 위에 벌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벌통 뒤의 높디높은 흰 바위 산이 직각으로 뻗어 하늘로 흰 구름 되어 뻗어 올랐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른 골목으로 내려갔다. 주둥이를 꼬리에 묻고 낮잠을 퍼자던 똥개가, 이방인이 갑자기 나타났음을 알고 벌떡 일어났다. 그 개는 내가 무서운지 감히 나를 바라보지도 못 하고 시선을 피해 먼 하늘을 향해 공중에 헛 방귀를 뀌고 있었다.
구련산 아래에 자리잡은 서련촌에는 민가 몇 채와 사찰 건물 몇 채가 전부였다. 사찰은 중국의 서부 신장이나 서강에 있는 절과 느낌이 비슷했다. 어느 사찰 안에는 검은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는 부처 상이 있었다.
어느 한 사찰 건물에서 염불인지 노래인지 구별하기 힘든 함성이 멀리까지 들렸다. 나는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문앞에 구경꾼이 몰려있어서 안쪽을 볼 수가 없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 건물 안쪽을 보니, 그 안에 여자들이 빽빽하게 서서 무슨 노래인지 염불인지 모르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좁은 개울 사이로 한 남자가 서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그 물 속에 물고기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낭만을 즐기는 강태공은 아닌 듯했다. 어떻든 그런 곳에서 낚싯대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참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참 대단한 사람이네, 라고 내 생각을 바꿨다.
한참을 걸어오니, 술로 보이는 병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马尿라고 쓰여진 술이었다. 글자대로라면 말의 오줌이란 뜻인데, 어째서 “말의 오줌”이란 술이 다 있을까?
옛날 촉나라에 농사가 안 되어서 식량이 없게 되자, 유비는 곡식으로 술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유비의 명령은 심한 반발을 가져왔다. 더러는 밖에 나갔던 군인들이 몰래 술을 가지고 들어오기도 했다. 한 병사가 자기 집에서 주조한 술을 군영으로 가지고 왔다. 그 술은 玛卡(마카: 식물의 일종)와、枸杞(구기자) 성분이 들어있어서 노란 색이었다. 그날 그 병사는 자기가 가져온 술을 상관에게 들켰다. 이 병에 든 노란 것이 무엇이냐고, 상관이 물었다. 상관의 묻는 말에 그 병사는 “이것은 말의 오줌입니다. 심장병 치료제입니다.”라고 속여 넘겼다. 후에 누가 그 병사를 밀고하였다. 그 병사는 야밤도주하여 위나라로 갔다. 그는 거기에서 술공장을 차려 삶을 도모했고, 그 술을 “马尿(말 오줌 술)”라고 이름지었다.
<바이두에 나와있는 중국어 내용을 대충 번역하여 올린 것임>
말 오줌 술을 마셔 봐야지, 마셔 봐야지 하면서도 결국 마셔보지 못 하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내 말 오줌 술을 마시러 언젠가 다시 중국에 갈 것이다. 내가 말 오줌 술을 먹으러 갈 때 쯤에는 아마도 중국에서는 말똥 술이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똥 술을 마실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 넓은 앞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이제 피기 시작한 꽃이 석양빛을 받아 붉그레한 빛을 내보내고 있었다. 호텔 뒤에는 큰칼을 옆에 차고 위압적으로 앞을 보려다보는 장군과도 같은 태항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사실 여행기를 쓰면서, 이게 여행기인지, 넋두리 인지, 낙서인지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른다. 그저 컴퓨터 자판에 손을 올려 놓으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알아서 키보드를 누를 뿐이다. 껍데기는 가라,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따라 돼지 껍데기 안주에 소주 한잔 때리고 싶다! 오늘따라 말 오줌 술이 왜 이리 그립단 말이냐? 향단아, 정신 차려라! 그리고 술상 차려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