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간 중국 중원 여행기 5 "숭산-소림사"
악산(岳山)은 일반적으로 바위가 많고 오르기 힘든 산을 말한다. 한국의 관악산과 설악산은 관악산(冠岳山), 설악산(雪嶽山)으로 한자 표기되어 있다. 두개의 “악”자 즉, 岳, 嶽은 모양은 다르나, 옥편을 보면 같은 글자다. 그러나 느낌상으로는 岳은 바위가 많을 것 같고, 嶽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울 것 같다.
중국의 5대 악산은 동쪽의 태산, 서쪽의 화산, 남쪽의 형산, 북쪽에 항산, 중앙에 숭산이 있다. 이 중에서 형산과 항산은 중국어로는 발음이 같다. 즉 “헝샨”이다. 오늘 여기에서 언급할 숭산(嵩山)은 한글 발음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쏭샨” 또는 “쑹샨”이다.
2025년 4월 2일, 소림사와 숭산이 있는 등봉시(登封市: 떵펑시)의 날이 밝았다. 눈을 뜨니 호텔 벽에 생전에 구경하지 못 했던 6 글자로 구성된 액자가 보였다. 이 한자가 도대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옴마니반메훔”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옴마니반메훔은 “연꽃 속의 보배”라는 의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모든 번뇌를 벗어나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 어떻든 모든 한자에 “입구(口)”가 들어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보니, "깨달음, 번뇌, 원초적 죄, 마음 공부" 뭐, 이런 것 필요없다. 오늘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면 그것이 최고다. 더 이상 생각하면 저만 손해다.
아침에 호텔에서 바라보는 숭산은 산 전체가 거의 돌로 된 것처럼 보였다. 아침 햇살을 받아 노란 색으로 빛나는 숭산과 그 아래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덩펑시의 모습이 마치 황금의 물에서 방금 건져낸 것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근처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체초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팔을 크게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소림사 입구에 도착하니, 거대한 돌로 장식한 정문이 관광객을 맞는다. 그 안으로 들어간다. 숭산은 일반 산과 별 차이가 없는 소박한 산으로 보인다. 평범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소림사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어디서 우렁찬 기압 소리와 칼과 칼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쇠소리가 내 귀 속으로 파고든다. 한쪽에서는 등치로 보아 고등학생으로 짐작되는 빨간 옷을 입은 청년들이 연습용 칼을 들고 무술을 연습하고 있다. 마치 군대에서 총검술을 연마하듯, 찌르고 방어하는 동작이 반복되고 있다.
또 길을 건너 반대쪽에서도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맨손으로 공격과 방어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떤 훈련생들은 앉아서 교관의 말을 듣고 있다. 누가 교관이고 누가 학생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들이 운동하는 그 너머에는 아름다운 숭산이 여기저기 봄꽃을 피우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저 많은 학생들이 저렇게 연습하여 그 무술을 어디에 사용할까? 저 무술이 상급학교 진학에 도움이 될까? 저 학생들의 장래 직업 선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설마 자신의 호신용으로 저렇게 열심히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중국은 땅덩어리가 크니 이런 무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취업할 곳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차, 인민 경찰, 사설 경호 업체, 개인 무술 학원, 영화 배우 등으로 취업할 수 있다고 한다.
소림사 안에는 무술을 보여주는 극장이 있다. 구경꾼이 많아서, 재빠르게 움직여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아 2층에서 무술을 관람했다. 장래 아나운서의 단원들 소개가 끝나자 무술 시범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관중에서 몇 사람을 나오게 하여, 그들에게 시범적으로 무술을 가르친다. 무대로 불려나온 일반인들 중에는 제법 프로다운 사람들도 있고, 완전 서툰 사람들도 있어서, 박수 소리와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공연은 30분간 계속된다.
그날 보았던 무술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바로 위의 사진이다. 어떤 무술 단원이 자기의 발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장면이었다. 상상해보라. 어떻게 하면 사람이 자기의 발을 머리에 베고 누워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장면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면, 거짓말 좀 작작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거짓이네, 참말이네, 하면서 말싸움하다가 결국은 이런 장면을 안 본 사람이 승리할 것이다.
공연장에서 밖으로 나오면 소림사가 나타난다.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면벽수련(동굴이나 방에서 벽을 마주하고 수련하는 것)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달마는 여기 소림사 뒷산에 있는 치우 동굴에서 9년 동안 수련했다고 한다. 달마대사의 면벽수련은, 일반 승려들이 보리수나 벽을 등지고 여러가지 흘러가는 관찰 대상 중 하나를 정해서 관찰하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소림사 절에서 나와 위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탑림(塔林: 탑이 많아서 마치 숲처럼 보이는 것)이 나온다. 위압감을 주는 탑이 마치 나무숲을 이루듯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탑이 많았을 때는 600 여개 있었으나 지금은 230여개가 있다고 한다.
탑림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어서 와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도록 목청을 돋구어 유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에 현혹되면 안 된다. 여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밋밋한 숭산을 볼 뿐이다. 진짜 숭산의 악산 모습을 보려면, 이들의 끈질긴 유혹을 뿌리치고, 계속 앞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또 케이블 카 승강장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야 숭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결국 숭산에는 케이블 카 승강장이 2개 있는데, 두 곳을 모두 타보고 싶은 사람은 상관이 없지만, 한 곳만 볼 사람은 두번째 케이블카를 타야한다.
숭산에 대해 좀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숭산은 길게 뻗은 능선을 중심으로 한쪽은 아주 평범하고 평화로운 산세를 나타내고 있다. 소림사가 있는 곳은 잔잔하고 평화롭고 완만한 산 비탈이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 소림사가 있는 쪽은 이제 나무에 새 잎이 나오고 새 풀이 자라고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꽃이 산 전체에 마치 보석처럼 박혀있다. 그러나 소림사가 있는 계곡의 반대쪽은 온통 가파른 바위와 절벽만 있다. 따라서 숭산이 악산이라는 것은 소림사의 반대쪽을 말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얼굴의 산, 그것이 바로 숭산이다. 내숭떠는 사람도 두 얼굴인 것은 마찬가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왼쪽으로 꺾어지는 잔도가 나온다. 이 잔도를 걸으면서, 공포감, 아찔함, 놀라움을 느껴보는 것이 숭산 트레킹의 묘미다.
일단 잔도에 접어들면 아래 쪽은 천길만길 낭떠러지이고, 위쪽은 하늘만 보이는 절벽 뿐이다. 이 절벽은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모두 바위이니 도대체 그 길이가 얼마인지 모르겠다. 아마 몇 백 미터 될 것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조심조심 앞, 아래, 위를 보며 걸어간다. 두려움과 경탄이 섞인 감탐사와 기도문이 절로 나온다. “주여, 우리를 구해 주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부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사, 이 난관을 헤쳐가게 하옵소서. 조상님들, 조상님들의 은덕인지 음덕인지 모르겠사오나, 오늘 하루만 더 살게 해 주옵소서.”
오늘의 목적지인 삼황채가 멀리 보였다. 바이두에는 삼황채를 이렇게 설명한다. 因人们为了纪念人祖三皇(天皇、地皇、人皇)在嵩山一带开天辟地之功而命名, 즉, “인간의 조상인 세 황제(하늘의 황제, 땅의 황제, 백성의 황제)가 숭산 일대에 ‘하늘을 열고 땅을 개척한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즉, 처음으로 이 세상을 시작한 곳이 바로 삼황채라는 것이다.
삼황채가 보인 것은, 케이블카에서 내려 약 1시간 반 정도 걸었을 때이다. 삼황채는 거대한 산 중턱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나는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었다. 3시까지 소림사 주차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체력적으로도 더 이상 걸어간다는 것이 무리였다. 삼황채까지 갔더라면, 숭산의 기기묘묘한 장관을 더 많이 구경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만족은 없다.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또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도 훌륭하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온 길을 되돌아 갔다.
소림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우리는 3시 20분, 다음 목적지인 낙양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멀리 눈을 들어보니 화려한 봄의 햇빛이 숭산을 뒤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