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원 여행기 8 서안(西安: 시안) (최종회)
2025년 4월 5일 아침, 화산에서 서안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였다. 기차 창문을 통해 보이는 화산은 위풍당당하고 장엄하였다. 꼬리에 고리를 무는 화산은 한참 동안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낮도깨비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안의 볼거리 중 으뜸이라면 병마용일 것이다. 나는 전에 두 번 병마용을 본 적이 있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서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서안의 교통 중심은 종루(鐘樓)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서안의 모든 관광지는 종루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고루(鼓樓)가 그 안에 북이 들어있는 건물이듯이, 종루(鐘樓)는 그 안에 종이 들어있는 건물이다. 서울에 있는 종로(鍾路)는 종이 있었던 거리의 이름이다. 서울의 종루(鐘樓)는 종각 또는 보신각이다. 종각(鐘閣)과 보신각(普信閣)은 같은 건물이다.
서안의 성은 가로가 4,190m, 세로가 2,770m 직사각형이다. 서울의 동대문에서 광화문까지가 약 2800m이니, 그 크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성의 긴 면이 동대문에서 연세대까지의 거리쯤 될 것이다. 이 성의 높이는 12m, 성의 폭도 12m이다. 성 위에 올라가면 무슨 운동장처럼 넓어 보인다. 성 위에 올라가서 걸어서 한 바퀴 돈다는 것은 무리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야 한다. 나는 남문으로 올라갔다.
성 위에 올라 걷다보면, 시 한수를 만나게 된다.
人生得意須盡歡 (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인생에서 뜻을 이루었으면 진탕 즐겨라.
금잔이 빈 채로 달을 바라보게 하지 마라.
이 말을 내 식대로 말하면 이렇다. 달빛 아래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야, 살다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얀마,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가 잘 산 것 아니냐? 우리 부모들 못 해본 것 다 해본 것 아니냐? 뭘 더 바라냐?
야, 저 달좀 봐라. 오늘따라 왜 이리 달이 밝냐? 술맛 죽여준다야. 야, 빈 술잔에 달빛이 고여있잖아. 너 뭐하냐? 빨리 술 따르라구! 너 꼭 한대 맞아야 술 따르겠냐?”
성에서 내려와 조금 걸으면 비림 박물관에 도착한다. 위의 현판에 있는 글자 “비림” 중, “비”자에서 위에 삐침(丿)이 없다. 비(碑)라고 써야 맞다. 일설에 의하면 임칙서가 좌천되면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삐침(丿)을 사전에 찾아보면 “붓으로 글씨를 쓸 때, 삐침 획을 긋다”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삐침이라는 말은 “丿”의 이름이다. 보통 우리가 “그 아이는 삐쳐서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한다”라고 할 때의 “삐치다”는 “마음이 비틀어져 토라지다”의 뜻이다. 따라서 “삐침 획”과 “사람이 삐침”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丿은 똑바르지 못 하고 옆으로 뒤틀려있다. 그래서 “글자가 비틀어져 토라지고 삐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국 글자나 사람이나 똑 바르지 못 하면 삐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한번도 박물관을 가보지 못 하여, 서안 시내에 있는 섬서성 역사 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장료가 무료이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중국인에게는 무료, 외국인에게는 1인당 5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나는 지금까지 중국을 다니면서, 입장료를 낼 때, 중국인과 외국인을 구별해서 받는 곳은 처음 본다. 입장료도 어마어마하게 큰 액수다. 앞으로 중국에서 이런 정책을 계속 펼쳐 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박물관에서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래 몇 장 올린다.
光盘行动(광반행동)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도대체 광반행동이 무엇인가? 광반은 중국어로 CD를 말한다. 즉, USB가 나오기 전에 mp3를 듣던 CD다. CD 행동이라! 중국어를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광반행동/절약은 복이다.
모든 식량 한알 한알은 구하기 어려운 것이니, 다른 사람의 노동의 성과를 귀중히 여기는 것이 일종의 미덕이다.
따라서 “光盘行动”에서 “光”은 “남김 없이 비운다”는 뜻이고 “盘”은 접시라는 뜻으로 보인다. 즉 “음식을 남김 없이 먹자”는 뜻이다. 그러나 윗 그림으로 보아, 처음 이 아이디어를 고안해 낸 사람은, 광반 행동을, “CD”와 “접시" "깨끗이 비우자” 뜻을 모두 포함한 이중 삼중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는 불야성이다. 대당불야성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어느 장소에서 밤에 불빛이 밝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불야성이라고 하는데, 그 출처가 여기일 것이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 '장안의 화제'도 서안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안의 옛 이름이 장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장안이라는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지를 동반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며, 웃으며, 장난치며 쌀쌀한 밤거리를 걷는다. 어느 곳에서는 아이들이 집단으로 괴성을 지른다. 그러면 분수가 치솟아 오르며, 오색 불빛이 사방으로 퍼진다. 또 어느 곳에 가면 중국의 유명한 시인들의 조각상이 위엄있게 나를 내려다 본다. 그 주위로 검고 푸른 물이 흘러 파도를 친다. 또 어느 곳에서는 음식을 파는 상인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주위를 맴돌다가 검고 푸른 하늘로 사라진다.
어디서 쓸쓸한, 아니 처절한, 아니 괴로운 한 남자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그는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말로, 자기 식당에 손님이 오도록 유객행위를 하고 있는 젊은이다. 그의 말은 한탄으로 들리고, 그의 노래는 절규로 들린다. 흰옷 입은 젊은이는 캄캄하고 찬 바람부는 거리를 향해 소리를 질러서 손님을 끌어들여야 자기 손에 일당이 떨어진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세상은 넓고 하는 일도 가지각색이다. 저 청년이 퇴근 후 집에 돌아갈 때, 그와 백주 한잔 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밤 늦게까지 듣고 싶다.
<사족 1>
이번 여행 중 감기에 걸려, 기침, 콧물로 힘들었다. 귀국하여 병원에 가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약국에 갔다. 간단한 나의 증세를 듣고, 약사는 더 이상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위에 있는 “感冒灵颗粒”(간마오링컬리)라는 약을 휙 던져주었다. 한약재로 구성된 이 약을 먹는 즉시 감기 증세가 사라졌다. 물론 몇 시간 지나면 감기 증세는 또 나타났다. 왜냐하면, 이 약은 감기 증세 완화제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감기를 치료하는 약은 없다. 감기 증세만 없어도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중국에서 감기 걸렸을 때, 약국에 가서 "간마오 링컬리"라고 외치기 바란다!
사족 2
시안 시내를 관광하기 위해 지도를 샀다. 그러나 이 지도를 보고 어디가 어디인지를 안다는 것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비슷했다. 그게 그것이고,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거기였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젊은이에게, “나는 한국인인데, 청진사로 가려면 어떻게 가면 좋은지요?” 서툰 중국어로 물었다.” 내 말을 듣던 그 젊은이는, 자기가 영어를 할 수 있으니, 영어로 대화하자고 말했다. “좋다” 라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인지, 당연하게인지, 영어가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하철이라는 단어 subway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요?” 라는 뜻의 Really?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是吗?(그래요?)”, 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나는 얼른 두 손으로 나의 두 입술을 오므려 닫았다. 그리고 내 뺨을 한대 치고 내 자신에게 말했다. “어르신, 장하구먼유! 본래 인생이 그런거구먼유? 그런 줄이나 아슈!”
<여행기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