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Today

실패한 검봉산 등산기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4. 5. 5. 22:31

 

 

 

 

(실패한) (간단) 검봉산 등산기

 

 

 

 

 

 

 

2014년 5월 4일. 본래 의도했던 것은 강촌역에서 하차 → 강선봉 → 검봉산 →문배마을 → 구곡폭포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처음에 길을 잘 못 들었지만 무조건 올라가면 정상이 나올 것은 뻔한 일, 무조건 위쪽으로 걸었다. 그러나 경사가 얼마나 심한지 약 40분간은 앞 사람의 뒷꿈치만 보고 올라가야 할 만큼 엄청난 경사로였다.

 

 

거기에서 또 길을 잘 못 들어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코스였기에 발자국만 희미하게 나 있었다. 길을 제대로 찾아서 큰 길에 들어섰는데, 또 삼거리가 나왔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저 앞에 한 여자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인기척이 없는 이 산 속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혼자 뛰어내려가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혹시 여우가 변장하여 여자로 변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사실은 이 불여우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갔어야 했다.

 

 

우리가 택한 약간 오르막길 은 잠시 후 계속 아래로 내빼는 길이었다. 어느 정도 내려와 길을 잘못 택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아래로 내려가보니 거기가 바로 구곡폭포로 접어드는 강촌입구와 구곡폭포 중간 정도의 지점이었다.  아까 그 귀신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후회가 구곡폭포의 물처럼 찔끔찔끔 적셔왔다. 

 

 

 

 

 

 

구곡폭포 매표소에서 어떤 사람은 표를 사고, 어떤 사람은 그냥 들어갔다. 여기서 표를 사지 않았다가 나중에 다시 내려와서 살 것이라 생각하여 3200원을 주고 두 사람 표를 샀다. 그러나 아무리 올라가도 표를 조사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표를 산놈만 바보천치였다. 내 생각에 표를 산 사람이 20%, 사지 않은 사람이 80% 정도되었다. 무슨 대한민국에 이렇게 허술한 데가 있나 싶었다. 이꼴 저꼴 안 보려면 집에서 있든지, 빨리 나이를 먹어 65세가 되어 면제를 받든지 해야지, 하여튼 기분이 엉망이었다. 사람이 화를 낸다든지, 살인을 하는 것이 큰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소한 일이라도 공평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구곡폭포는 오래 전에 얼음으로 뒤덮여 있을 때 한번 와본 적이 있는데, 녹음으로 우거진 구곡폭포는 난생 처음이다. 비가 오지 않아, 늙은 개 길가에 소변 보듯이 찔끔찔금 떨어지는 물이 그저 딱하기만 하다.

 

 

거기에서 문배 마을을 가려면 또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한번 산을 올라갔다 와서 그런지 힘이 더욱 드는 것 같았다. 천만 다행인 것은 나 혼자만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헉헉 대며 올라간다.

 

 

 

 

 

 

 

 

난생 처음 보는 문배 마을은 대단한 평원이었다. 울릉도의 나리분지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 몇 가구가 있었는데, 모두 음식을 파는 집이었다. 식당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대지가 높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워서 사람살기 힘든 곳이라고 했다. 6.25 때는 인민군이 거기에 사람이 사는 줄을 몰라 안전했다고 한다. 6.25 때의 난리는 정말 여기서는 난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막걸리 두 병에 두부 그리고 비빔밥을 시켰다. 등산을 두 번이나 해서 그런지, 술이 술술 넘어갔다. 두부 안주에 김치가 그 뒤를 따라 꺼역꺼역 넘어갔다. 적당히 취해서 산경치를 다시 보고, 호수를 다시 보고,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거기가 바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의 마을이었다.  

 

 

강촌역으로 다시 와서 정자 밑에서 변변치 않은 땅콩을 안주 삼아 깡소주를 마셨다. 어떻든 술을 마시니 세상은 다시 내 세상이나 된 듯 했다. 인생이 즐겁다는 말, 이런 곳에 와보는 사람이 어디 그리 많겠냐는 말, 나쁜 일을 다 잊자는 말, 등등 좋은 말은 다 하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 15분 뒤에 상봉역에 내렸다. 근처에 있는 동태탕집으로 갔다. 아니 가서 앉아보니 동태탕집이었다. 또 소주를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서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면서 이런 것이 진짜 인생이라고 흥얼거렸다. 옆에 앉은 사람이 "별 새끼 다 본다"는 표정을 하며 나를 째려 봤다. 나는 그래도 즐거웠다. 어떻든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술에 취하건, 안 취하건, 그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원리원칙을 따지거나, 현세상을 직시한다는 명목으로 세상을 삐딱하게 봐봤자 저만 손해다.

 

 

해는 이미 저물고 갑자기 낮아진 온도, 찬 바람에 술이 깬 듯 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진 꽃잎이 길바닥에 여기저기 깔려있었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 아래 개수작 부리고, 흘러가는 물결 그늘 아래 키스방 간판을 봅니다. 오늘은 어디 가서 술 한잔 먹고 내일은 어디 가서 술 주정하나" 옛날 불렀던 곤조가를 개작해 개글개글 개소리 내지르며 개념없이 집으로 향했다. 

 

 

 

 

 

 

 

 

(2014년 5월 5일 작성)

'To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스턴의 어떤 밤  (0) 2016.03.04
Video Editing "Winter goes" 습작 비디오 1 "겨울이 간다"  (0) 2016.02.29
최상의 삶이란?  (0) 2013.12.20
Paying Homage to the Ancestors  (0) 2013.11.28
腌泡菜  (0) 201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