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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24-25 "타지마할, 아그라포트-델리 그리고 귀국" (인도5- 6)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3. 09:06

            인도 여행기 5

 —'타지마할', '아그라포트' 그리고 델리로 이동—

 

 

아침 6시 40분, 아그라 역에 도착했다. 역전에는 많은 릭셔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해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좁고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릭셔를 타고 지나 간다. 거리에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으로 혼잡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샨티 로지'라는 여관이다. 오늘 일정은 타지 마할과 아그라 포트만을 구경하고, 저녁에 델리로 가는 것이다.

 

 

 

<처음 보는 얼룩 송아지인지 얼룩 염소인지....>

 

 

'샨티 로지'의 옥상은 타지 마할을 관람하기에 대단히 좋은 곳이었다. 옥상 식당에 앉아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머리털을 흔들고 지나갔고, 제공된 구운 빵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폐부로 빨려들었다. 반쯤 안개에 싸인 타지 마할을 멀리 바라보면서, '과연 저기가 말로만 듣던 타지마 할이군' 나도 모르게 T.S. Eliot의 말대로 '추억과 욕망이 뒤섞인'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 죽은 땅에서 라이락을 키워내니 4월은 참으로 잔인하다'고 했던 T.S. Eliot였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하지만 이내 나의 머리 속에는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밀물처럼 밀어닥쳤다. 그날이 마침 10월 24일, 10월의 마지막 밤을 일 주일 남긴 시점이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누군가가 말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슬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슬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의 멋이 흘러나온다'고. 그림보다도 아름다운 타지 마할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니 다시 한번 '추억과 욕망이 뒤섞이는 잔인함'이 뼛속에 사무치며 밀려왔다 밀려갔다.

 

<아그라의 두 명소: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

 

 

입장료는 외국인 약 18,000원(750루피), 인도인 약 500원(20루피)이다. 인도인에게 입장료를 18,000원을 받는다면 아마도 평생 타지 마할 들어가보지 않을 사람 수두룩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중국은 대조적이다. 중국에서는 어떤 경우든 중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 요금이 없다. 돈 있으면 보고, 없으면 보지 말라는 이야기다. 누구의 사고방식이 옳은지는 모르지만, 나는 적어도 인도나 네팔처럼 경제적 수준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는 내국인의 경우, 지금처럼 저렴한 입장료를 지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땅의 문화 유산이 단지 외국인을 위한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인도인은 자기 나라 문화재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직해야 하는 기구한 팔자인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랴.  

 

입장을 하려면 보안 검사를 해야 하는데, 검사원들은 가방과 몸을 샅샅이 조사한다. 남자는 남자 보안원이, 여자는 여자 보안원이 조사한다. 그날 따라 입장하려는 남자들이 서 있는 줄이 길고, 여자는 줄이 짧았다. 지난 밤에 기차에서 만났던 한 젊은이가 우리와 합세했었는데, 그는 머리가 길고 피부색이 허멀건했었다. 긴 남자 줄에서 서 있던 그는 고개를 우뚱하더니 생각을 바꾸어 여자 줄에 섰다.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한 그를, 여자 보안원이 이리저리 보더니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입장이 끝난 그 청년이 하는 말: "아, 씨, 나 오늘부터 진짜 여자다. 여자 줄로 통과했다. 앗싸! 여자 화장실도 가봐야지!"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원형 탑, 말로만 듣던 순 백색의 대리석 탑, 22년에 걸쳐서 수 많은 건축가에 의해 완성된 탑이다. '샤 자한', 바로 이 타지 마할을 만들라고 명령했던 인도 무굴 제국의 제 5대 황제다.

 

샤 자한이 왕위에 오른지 4년만에 왕비 '뭄 타즈'가 출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아내의 죽음은 왕의 마음에 큰 공허감을 남겼으며, 그는 아내에 대한 '추억과 욕망"으로 끝없는 공허감과 허영심에 빠지게 된다. 아내는 죽음에 앞서 세 가지 유언을 남겼다. "저를 영원히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저를 위해 영묘(靈廟: 죽은자의 혼을 모시는 집)를 만들어 주세요." 이 말을 듣고, 왕은 눈물로 약속을 받아들인다.

 

그는 건축가 '무스타드 아흐마드'에게 지시를 내린다. "슬픔의 탄식을 농익게 품은 건축물, 해 달 별이 눈물을 흘릴 만한 자태를 가진 건축물, 그리고 조물주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라'라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건물이 "해, 달, 별이 눈물을 흘릴 만한 자태를 가진 건축물인 것이다!"

 

 

<타지마할의 구조>

 

왕은 이 건축물에 이어 델리에 '레드 포트'라는 붉은 성을 짓도록 명령하고, 아그라에 또 하나의 성을 짓도록 명령하니 그것이 바로 '아그라 포트'이다. 결국 이런 건축에 대한 광적인 욕망으로 나라의 재산은 탕진되었고, 그는 바로 자기 자식에 의해  '사치스런 미친 황제'라는 누명을 쓰고 폐위당한다. 그는 아그라 포트에 감금되었다고 하는데, 아그라 포트에서 타지 마할은 바로 보이는 거리에 있다. 자신이 지은 타지 마할을 바라보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자식에 의해 감금된 생활을 하면서 그는 정말 T.S. Eliot 말대로 "꿈과 욕망을 뒤섞으며" 서서히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른다.

 

 

 

 

 

타지마할 바로 옆에는 '야무나 강'이 흐르는데, 과거에는 야무진 강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야만스러울 정도로 야속하게 더러운 강으로 변해 있었다.  강 왼쪽으로 희미하게 아그라 포트가 보이고, 강 건너에는 무성한 풀과 나무가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왕비가 이 여자 아이를 닮았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타지 마할 여기저기에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구경꾼이 무리를 지어 입장하고 있었다. 인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일반 관광객보다는 단체 관광객이 많아 보였으며, 특히 학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그들에게서, 한 왕의 허영심을 상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단지 조국에 대한 위대한 충성심만이 충만한 듯 했다.

 

 

 

 

 

 

 

 

 

<타지 마할 앞에서 폼을 잡는 젊은이들. 사진을 찍은 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약속대로 사진을 이메일로 보냈으나 모두 '존재하지 않는 주소'라는 말과 함께 되돌아오고 말았다.>

 


 

'아그라 포트'는 1565년 아크바르 황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뒤에 그의  손자 '샤 자난'신이 좋아하는 대리석으로 건물을 증축해 나갔다. 처음에는 군대용으로 만들었으나, 쟈 자난은 궁전으로 변형시켰으며, 나중에 아들에 의해 폐위 당하자 이 건물은  8년 동안 샤 자난 자신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아그라 포트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샤 자난은 바로 아그라 포트에서 갇혀지내면서 멀리 저 타지 마할을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보았을 것이다.>

 

<앞에 보이는 아그라 포트, 멀리 보이는 것이 타지 마할이다.>

 

<벽의 한 가운데 구멍 속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아그라 포트는 전체가 붉은 건축물이다. 벽에는 수 많은 무늬가 새겨져 있어서 무늬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이 내가 중국 사람인줄 알고 나에게 중국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한문을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나마 중국말이 배우기 쉬운 것인데, 한자(漢字) 하나하나가 마치 미로처럼 보이는 서양 사람들이 중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고 한다. 처음에 중국어를 배울 때 그들은 발음기호로 표시하고 그 문장 자체를 외워 버리는 방법으로 중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나도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그도 나만큼 중국어를 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의 의사는 대충 전달할 수 있었다. 서로가 모국어가 아닌 제 삼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그라 포트의 내부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아그라 포트의 외부>

 


 

 

아그라에서는 단지 하루만 머물면서 아그라의 중요한 관광지인 타지 마할과 아그라 포트를 구경했다. 사실 이번 여행의 핵심은 티벳이었으며, 네팔의 히말라야를 보는 것이 그 다음 목표였고, 인도는 그저 점이나 찍어 두자는 것이었다.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뒤, 아그라에서 아름다운 타지 마할과 아그라 포트를 보니 마음이 진정되고 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 델리로 향한다. 버스를 빌려서 타고 갔는데, 서울의 교통이 복잡하듯, 아그라 시내를 빠져 나가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교통 체증이 심했다. 사람들은 아무 데나 지나가지, 자동차는 아무 데나 장차해 놓지, 교통 질서는 지키지 않지, 하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차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시내를 빠져 나와 조금 달리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전봇대 위의 전깃줄에 붉은 해가 걸려있었다. 붉은 해는 더욱 붉어지더니 순식간에 어둠이 몰려왔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차가 멈춘 곳은 우리의 목적지 델리역 근처였다. 밀려드는 릭셔꾼들과 한 바탕 씨름을 한 뒤에 흥정이 맞지 않아, 무갈 제국의 전사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무아지경이 되어 무수한 인파와 먼지를 뚫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우리를 맞이한 곳은 "Yes, Please"라는 호텔, 거금 5만원짜리 호텔이었다.

 

*본 인도 여행기는 다음 회로 끝을 맺습니다.

            

 

 

 

 

 

 

 

 

인도 여행기 6(최종회)

 

 —"델리" 그리고 귀국—

 

 

 

 

<아그라에서 뉴델리로>

 

 

 

 

<숙소 주변>

 

 

10월 25일 아침 일찍 호텔 주변을 걷기로 했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에는 수 많은 새들이 새카맣게 날고 있었다. 까마귀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새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먼 데로 날아가지 않고 한 곳에서 날고 앉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숙소 주변: 아침 산책 중 찍은 사진들>

 

 

 

 

<손으로 크림 빵을 만들고 있다.>

 

 

길거리에 있는 가게는 대부분 문을 열고 장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리는 지난 밤 이후 청소가 되지 않아서 쓰레기가 사방에 흩어져 널부러져 있었다. 길 옆에서 얼굴만을 덮고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는 사람도 눈에 띄였고, 아침부터 구걸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잠자는 두 사람>

 

 

 

 

 

 

 

 

 

 

 

 

<농산물 시장>

 

 

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무, 고추 등이 보였는데, 특히 조그만 가지와 긴 가지가 아침 햇살을 받아 특이한 '가지색'을 뽐내고 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개조차도 길 위에서 자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거리>

 

 

 

 

<레드 포트>

 

 

낮잠을 자다가 택시를 타고 레드 포트에 들렀다. 좀 늦게 가서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며, 하늘은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보수 공사를 하는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많았으며, 건물도 낡아서 가보고 싶은 곳이 별로 없었다. 잔디 위에 놓여진 야외 공연장 벤치에서 한참 쉬다가 해가 저물어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아그라에 있는 아그라 포트와 비교가 되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기 레드 포트는 아그라 포트만 훨씬 못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드 포트에 해가 진다.>

  

 

 

 

 

 

<어두워지자 여기에서도 새들이 하늘을 수 놓았다.>

 

 

 

 

<레드 포트 앞에 있는 사찰>

 

 

레드 포트 앞에 현란한 불빛이 번쩍이며 밤하늘에 불빛을 뿌리고 있는 구조물이 있었다. 무엇하는 곳인가 가보았더니, 신발을 벗어라, 뒤로 돌아가라 뭐해라, 하도 절차가 복잡해서, 그곳에 온 것을 후회했다. 기왕에 온 김에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가 보니 불상을 모셔 놓고 사람들이 예배를 보거나 그 주위에서 어슬렁거렸다. 채 1분도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숙소 근처>

 

 

호텔 근처는 가장 복잡한 곳 중의 하나였다.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왜 그리 왔다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물건을 사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보다는 근처에 있는 역이나 전철역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근처의 조그만 가게에서는 불빛을 밝힌 채 소리쳐가며 허름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중에는 종소리와 싸우는 소리, 허름한 음반 가게에서 나오는 소리 등이 마치 지옥에 온 듯, 내 혼을 다 빼가고 있었다. 2만원에 CD 5장을 샀다. 그 중 '호흡'이라는 명상 음악은 <여기>를 클릭하면 50초 동안 들을 수 있다.

 

 

호텔로 돌아 오는데, 너무 자유로워 길을 잃은 소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길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찾는 이도 없고 속박하는 이도 없어, 차라리 속박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10월 26일 아침 산책 중>

 

 

10월 26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델리 역 쪽으로 걸어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가는 것인지 아니면 집으로 가는 것인지 힘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들 나를 바라보는 것 같고, 그러다가 나에게서 돈을 빼앗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슨 지옥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데모를 하고 난 후 어지러워진 공터를 배회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조금은 좀 무섭기도 하고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호텔 바로 앞 노상에서 숙식하는 사람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있다>

 

 

 

 

<코너트 플레이스로 가는 택시 기사>

 

 

오후에 근처의 코너트 플레이스라는 곳에 갔다. 택시기사는 내가 주는 요금을 받더니 돈을 받고 두 손으로 감사를 표하고(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시 돈을 이마에 댔다가 입에 대고, 또 이마에 댔다가 다시 입에 댄 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내가 첫 손님이어서 오늘 재수가 있길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상가가 모여있는 곳인데,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나타나서 지금은 가운데 있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니 자기 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 뒤에 다시 와서 잔디밭에 들어가 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앞 잔디밭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저기 사람들이 저렇게 잔디밭에 있는데 들어가지 못한다니 무슨 말이냐고 하자, 그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는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보니 아무나 갈 수 있는 잔디밭 공원이었다. 바로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그때, '본래 인도가 그런 나라'라는 말이 기억 났다. 그 순간 그들에 대한 한심함과 적개심에서 동정심과 이해심으로 내 생각이 바뀌었다. 

 

 

 

 

<코너트 플레이스>

 

 

 

 

<택시 기사: 70은 됨직한 노인의 두 눈이 백미러에 비친다.>

 

 

 

 

<호텔에서 바라본 풍경>

 

 

 

 

 

 

 

<한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옥상 식당에서>

 

 

밤이 되었다. 티벳, 네팔, 인도를 거치는 36일간의 긴 여정이었다. 구경도 구경이었지만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들이 친척보다도 더 친하게 다가왔다. 먼 옛날부터 함께 살아온 그런 사람들 같았다. '이 사람들과 헤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친척이나 친구가 있어도 왕래나 만남이 없다면 남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역시 사람은 이웃 사촌이 제일이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법인가 보다.

 

 

 

 

<디왈리 축제로 사방에서 불꽃놀이>

 

 

하늘에는 불꽃이 폭발하고 있었다. 디왈리 축제일이라고 한다. 먼 곳에서도 섬광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거리는 여기저기 폭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런 폭음 속에서도 오늘 아침 거리를 걷다가 목격한 한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 장면은 지금도 내 가슴에 조금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더러운 거리를 남루한 사람들이 무 표정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희망없는 삶에 지친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한편 또 어떻게 보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자신의 목적지로 가는 듯한 모습 같기도 했다. 어떻든 그들이 내일은 새로운 날이 될 수 있다는 의지와 꿈을 갖고 힘찬 발걸음을 떼어 놓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은 사진 하나>

 

(2012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