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황산 등산기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3. 09:37

 

 

 

 

 중국 황산 등산기

 

"황산(黃山)이 아니라, 백산(白山)이더라!"

 

 

<황산 트레킹 지도>

 

 

뼈를 깎고, 뼈를 무르고, 뼈를 씹으며 먼 길 돌아와 마침내 당도한 황산인데, 보이는 것이 안개요, 들리는 것이 안개 속의 침묵뿐이다. 여기 황산 풍경구에 오기 하루 전날, 황산시에서 KC가 맥주 한 잔 들고 일행을 하나하나 바라본 뒤, 한 말이 한참 동안 머리 속에 맴돌았다.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은데, 안개가 끼면 난리입니다. 안개가 쥐약이죠."   안개가 쥐약이라?  아니 그러면 쥐가 많은 집에 안개를 갖다 놓으면 쥐가 안개 먹고 죽나? 아니, 쥐약이니까 아픈 쥐가 쥐약 먹고 다시 살아나나?

 

 

왜 하필이면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안개란 말인가?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재수 없는 녀석은 두부를 먹다가도 이빨이 빠지고,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고 했거늘, 이거야, 원, 참, 개똥에 미끄러져 쇠똥에 입 맞춘 격이라. "내 팔자에 황산은 무슨 황산! 황산을 구경하려면 날 좋은 9-10월 가을에 왔어야지, 안개가 많은 계절을 골라왔구먼. 지가 지 무덤을 판기여! 에라 꼴 좋다!"

 

 

그나마 기분을 좀 풀어 주었던 것은 황산의 입장료를 지불할 때였다. 입장료는 230위엔(41,000원)인데 경로 우대를 받아 반값으로 표를 샀던 것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랄 만한 것은 그날이 산빠지에( 三八节: 삼팔절=여성의 날)이어서 모든 여자들의 입장료도 반으로 할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재수 없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경로우대를 받지 못하는 60세 이하의 남성뿐이었다. 같이 간 10 명 중에 경로 우대를 받지 못하는 남성 3 명은 할 말이 없는 듯, "미안해유" 하면서 뿌연 허공만 쳐다 볼 뿐이었다. "K형, 그러면 내가 돈을 다 내고 온표를 살테니, 나 하고 나이를 바꿉시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중국인들은 등산화 위에 고무로 된 덧신을 신고, 그 위에 아이젠을 착용했다.>

 

 

위핑 케이블카(玉屏索道:옥병삭도)를 타고 15분 동안 올라가는 동안에, 보이는 것은 한 두 차례 희미한 소나무의 실루엣뿐이었다. 앞에 앉은 T양은 밖을 보다가 회색 빛 안개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스마트폰을 꺼내 여기저기 누르면서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온통 바위뿐인 황산은 간밤에 비가 와서 바닥이 반쯤 얼어, 물 반 얼음 반이었다. 보리고개에 먹지 못해 배를 움켜 잡고 쓰러지는 불쌍한 농부처럼, 등산객들이 여기 저기 힘 없이 미끄러져 나가 떨어졌다. 한국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밑 바닥이 넓적한 아이젠이 허름한 가게에서, 호떡처럼 팔려나갔다. 중국인들의 등산화는 비가 오면 새는지, 중국 사람들은 등산화 위에 고무 덧신을 신고 그 위에 아이젠을 걸쳤다.

 

 

처음에 도착한 곳이 영객송(迎客松)이라는 소나무가 있는 곳이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듯" 어슴프레 보이는 영객송이 저만치 떨어져서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쌀쌀맞게 나에게 말했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애틋함도 섭섭함도 없이, 내 발이 먼저 알고 방향을 잡아 산길을 걷는다.  

 

 

우의를 걸친 수 많은 등산객을 만나고, 길 옆 바위에 낀 이끼를 보면서 조심조심 앞으로 전진한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오르막길을 올라갈 수 없는 뚱뚱한 여자가, 두 명의 짐꾼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들것에 실려 올라오고 있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숨을 헉헉 대며 올라오는 짐꾼과는 대조적으로, 뚱뚱하고 땅딸막한 여자는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붉은 눈을 상하좌우로 굴려대면서 연신 손으로 빵조각을 뜯어서 툭 튀어나온 입안으로 쑤셔 넣고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이 덧칠해진 빵이, 그녀의 목구멍에 넘어갈 때, 무질서 하게 나 있는 목에 난 주름이 일순간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산이 보인다!"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눈을 들어보니 안개가 일 순간에 걷히더니 또 다른 안개가 꼬리를 물고 올라오고 있었다. 바닷가의 파도가 주기적으로 몰려와 해변의 바위에 부딪혀 흰 이빨을 드러내듯, 뭉실뭉실한 안개는 자기들끼리 손에 손을 잡고 밀려왔다 밀려갔다. 성인 나이트에서 번쩍이는 불빛 아래 옷을 하나 둘 벗어가며 보여줄 듯 말 듯 사람을 감질나게 하는 나이트 걸(girl)처럼, 안개는 시시 각각으로 산을 휘몰아쳤다가 사라지고, 이내 다시 나타났다가 꼬리를 감췄다.

 

 

<연화봉이 멀리 보인다.>

 

 

 

 

 

안개가 걷힌 단 몇 초 사이에 앞 산에 올라가는 노란 우의를 걸친 한 줄의 등산객이 보인다. 나는 그들이 등산 길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그저 저승 사자의 뒤를 따라 가는 죽은 자의 행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 길을 가야하고,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도 저 길을 가야한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실연한  사람처럼 안개 속을 터덜터덜 걸어갈까? 운명일까, 아니면 고집일까?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목마와 숙녀>

 

 

 

 

 

저 멀리 어렴풋이 바이윈삔관(白云宾馆: 백운빈관)이 보인다. 그때가 3월 8일 오후 2시경이다. 오늘 밤 우리는 저 곳에서 하루 밤 머물 것이다. 여관 건물 주위를 둘러싼 나무는 눈이 녹다가 다시 얼어붙어 있었다. 호텔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녹다가 다시 언,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고드름이 겹겹이 매달려 있었다. 매서운 찬 바람이 불 때마다, 소나무에 매달려 있는 숏다리 고드름이 서로 부딪쳐 딩그렁거렸다.

 

 

호텔 매점에 가서 중국 컵 라면을 사서 마호병 속에 있는 미지근한 물을 부었다. 그리고 부르트기를 기다렸다. 같이 간 친구가 이리 뚝딱 저리 뚝딱, 라면 먹을 자리를 만들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가 들고 온 것은 56도짜리 이과두주, 그는 병 뚜껑을 홱 돌려 까더니, 잔에 퀄퀄 따랐다. "컵라면에 이과두주 한 잔 목구멍에 넘어가는 맛, 바로 이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여!" 갑자기 철학자가 된 그는, 캭 소리를 내며 입안에 덜컥 소주잔을 부었다. 나에게 잔을 내밀었다. 나도 덥석 마셨다.  나의 목을 넘어가는 이과두주는 독수리 발톱으로 내 목을 긁듯, 목구멍에 생채기를 내며 텅빈 위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독약처럼 온몸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그날 밤, 아래 칸에 5명, 윗 간에 5명이 잘 수 있는 2층 목제 침대가 있는 객잔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확실히 잘 모르겠다. 맥주와 소주와 백주가 섞여서 돌고 돌았던 기억이 조금은 있다. 술을 마다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기억도 조금은 있다. 황산에 와서 술을 먹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술 안 준다고 삐져서 벽을 쳐다보고 헛소리 했던 S형도 기억이 나기는 난다. 제발 말 좀 그만하라는 그 말을 듣고, 가마니나 쓰고 있으라는 모멸감을 준 사람도 있었다.  술이 너무 취해 아무리 말을 하려고 해도 입만 뻥긋거리고 말이 나오지 않자, 자기 입을 자기 주먹으로 때린 사람도 있다는 기억은 있다. 그러나 그 뒤의 일은 기억 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단지 한 밤 중에 목이 말라, 생수가 꿀꺽꿀꺽 목을 타고 흘러갈 때 내는 소리가 청진기를 통해 들려오는 심장의 벌떡거리는 소리와 같이 여기저기 들렸다는 것까지는 말할 수 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길 옆에 때를 잘 못 알고 나온 초록색 잎을 달고 있는 불쌍한 나무가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추워질 줄 모르고 잎을 세상에 내 보냈을 것이다. 갑작스런 눈과 서리를 맞아, 한 여름 축 쳐진 새 날개처럼, 잎이 모두 땅을 향하고 있었다. 얼마나 처참한 모습인가?

 

 

사람이나  식물이나,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갈 때인지 잠자코 있어야 할 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4. 11 국회의원 선거가 임박하여, 공천을 받느니 마느니, 무소속으로 나가야 하느니, 새로운 당을 만들어 나가야 하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나야 별 상관 없는 일이지만, 잘 보고 잘 판단해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시운을 모르고 방정맞게 깝죽대다가는 된똥같은 된장에 박힌 깻잎처럼, 된서리 맞아 된통 당할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갑자기 안개가 다 사라지고 없다. 두 눈을 비비고 봐도 안개는 없다. 산이 흰 눈으로 덮였고, 검은 바위만 듬성듬성 보인다. 황산이 황산(黄山)이 아니라 백산(白山)이다!  누런 바위로 뒤덮인 황산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 배웠던 "하늘 나라 선녀님들이 뿌려준 하얀 눈"으로 덮였다.

 

 

언제 다시 안개가 엄습할지 모른다. 눈을 크게 뜨고, 보고 보고 또 보자. 모든 경치를 내 눈에 담아 가자. 부푼 가슴에 넣어가자. 다시는 못 와볼 바로 백설기 가루로 덮인 황산이다.  저 멀리 바위 위에 외롭게 서해 대협곡을 바라보는 등산객이 한 없이 쓸쓸해 보인다.

 

 

 

 

은하수가 바람 타고 날아와 순식간에 계곡을 덮는다. 썰물처럼 은하수가 물러간 자리에 여기저기 솟아있는 바위들이 대나무 죽순처럼 하늘을 치고 올라간다. 눈이 시럽다. 눈물이 난다. 금강산이 이러할까? 안개 낀 설악산이 이러할까?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와, 와 소리를 연발한다. 흐느끼듯 쏟아지는 안개와 눈과 바위와 나무가, 바람에 일렁이고 출렁이다가 하늘로 소용돌이 쳐 사라진다.

 

 

 

<건설 자재를 운반하는 사람들>

 

 

 

 

<같이 등산 간 일행>

 

 

안개가 걷히더니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황산은 다시 쏟아지는 눈으로 가득 찬다. 눈 속을 총총 걷는 사람, 눈을 피해 나무 밑에서 서성이는 등산객, 내리는 눈을 무릅쓰고 제기차기를 하는 KC와 그 일당, 눈 내리는 계곡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비련의 두 연인, 천방지축 뛰어 놀 강아지만 없을 뿐, 눈 오는 날에 있어야 할 것은 모두 다 여기 눈내리는 황산에 있다.

 

 

 

 

 

<북해빈관>

 

<북해빈관 앞에 있는 등소평의 어록>

 

북해 빈관 앞에는 등소평의 어록이 있다. “这里是发展旅遊的好地方 ,要有点雄心壯志, 把黃山的牌子打出去!"( "여기는 여행으로 개발해야 할 좋은 곳이다. 웅대한 뜻을 갖고 황산을 명물로 만들어라!": 필자의 번역. 확실한지는 잘 모름). 중국인들이 모택동도 존경하지만 정말 마음 속으로 위대하다고 여기는 인물이 등소평이다.  그의 유명한 말 黑猫白猫能抓住耗子就是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로 대변되는 그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이 지금 정도로 잘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해빈관을 지나고 연리송을 지나서 시신봉부터는 그야말로 완전히 눈으로 뒤덮인 신천지다. 차라리 눈으로 된 동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눈으로 덮인 제주도의 풍경을 TV를 통해서 볼 때마다 내가 저기를 언제 가 볼까 했더니, 여기 중국에 와서 눈이 아플 정도로 흰 눈 덮인 장관을 본다. 사람들의 감탄과 탄식도 너무 많이 들어 이제 무덤덤 해졌다. 내 귀도, 내 눈도, 이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멍하니 흰 꽃 떨어지는 산길을 걷는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흰 눈과 노랑 빨강 물결이 내 눈으로 들어와 머리를 관통하고 저 멀리, 멀리 사라질 뿐이다.

 

 

 

 

 

 

 

 

 

어제 보았던 얼어 죽은 초록 잎이 생각났다. 여기에 또, 이제 막 새롭게 피려고 꽃망울을 내밀던 봄의 전령이, 봄이 오는 시기를 잘 못 판단하여, 그냥 얼음 속에 갇히고 말았다. 노란 꽃,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지도 못하고 황천길로 떠난 것이다. 꽃나무에게는 화가 될지 모르지만 보는 이의 입장이야 오히려 더 멋있게 보인다. 불쌍함은 불쌍함이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다. 집에 화재가 나서 불이 활활 타오르면 주인은 애가 탈 일이지만, 구경꾼에게는 좋은 불구경인 것이나 마찬가지렸다. 언제부터가 봄이라고 알려주는 것도 자연이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라고 말해주는 것도 자연의 법칙이다.

 

 

 

 

 

 

 

하산하려고 운곡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 안에서 밖을 보니 오뚝한 바위 위에 돌이 얹혀져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일부러 사람이 저런 돌을 세워 놓은 것은 아닐 것인데, 어떻게 저런 난간에 오뚝하게 서 있는지 절묘하기만 하다. 신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저런 걸작품을 이 황산에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그렇다고 신이 할 일이 없어서, 바위에 돌덩어리나 교묘하게 얹어 놓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말 없이 구경이나 하면서 내려가는 것이 제일이렸다. 옛날부터, 노상 입에다가 "신, 넋, 영혼, 망령, 귀신, 도깨비, 하느님"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인생살이는 도진개진이다.  

 

 

 

중국의 가장 감명 깊은 강은 "구채구"이듯, 중국의 가장 인상 깊은 산은 "황산"임에 틀림없다. 눈과 구름과 안개가 가렸다 보였다를 반복하는 황산, 눈에 덮이고 빗물에 얼어 흰 터널을 끝 없이 만들었던 황산의 수목, 노란 무리를 지어 산을 오르는 안개 속의 사람들의 물결, 가끔 하늘을 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 무리 — 이 모든 것이  충격과 감동 그리고 전율로 남아, 나는 한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2012년 3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