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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행기 7 "이스파한 2"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3. 11. 6. 12:21

<카주 다리>

 

 

이란 여행기 7

 

"이스파한 2"

 

 

 

 

 

 

 다음 날은 이스파한을 떠나기로 되어 있어서, Lonely Planet에서 추천하는 몇 군데를 더 가보기로 했다. 새벽 5:30분에  밖에 나오니 3명이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이 없는 강가로 나와, 운동하는 사람들을 피해 강 아래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추비 다리>

 

 처음 만난 것이 추비 다리다. 1665년에 건설된 이 다리는 평범한 교량으로,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자동차는 턱이 높아서 진입할 수 없다. 궁중에 물을 대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 이 다리는, 다리라는 이름만으로 존재할 뿐 미적 가치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추비 다리>

 

 

 

 

 이 다리를 건너 카주교를 향해 갈 때, 해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붉은 태양의 힘찬 빛 줄기가 쩍쩍 갈라진 틈으로 솟구쳐 오르는 잡풀 위로 신선한 햇빛을 쏟아붓고 있었다. 저런 식물은 어떻게 저리 생명력이 강할까? 길가의 아스팔트 사이로 씨앗이 들어가 싹이 돋기도 하고, 돌담벽에 터를 잡고 일년에 한 두 번 빗물을 몸에 품었다가 일년을 버티는 식물도 있다. 사람으로 치면 한번 들어온 돈은 절대 헛되이 쓰지 않는 노랭이라고 해야할까? 물 대신 풀이 나 있는 강바닥을 보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식물에게 박수를 보낸다. 

 

   

 

 

 

 

 카주 다리 주위에 이란 사람들이 모여 단체로 구보를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good morning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체조를 시작했다. 잘 살건 못 살건, 요즈음은 세계 어디를 가도 비만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여기 이란도 예외가 아니다. 배가 봉긋하게 나온 것은 기본이고, 혁띠가 모자랄 정도로 배가 남산만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비만이라면 여자들이 남자보다 훨씬 더 심하다. 근본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는 이란 여인들은 그저 집안에만 머물기 때문에, 그리고 검은 도포 속에서 살기 때문에, 비만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년 이상 여자치고 날씬한 사람은 거의 찾기 힘들다. 온몸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뒤퉁뒤퉁 걷는 것이 일반적인 이란 여성의 모습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당뇨병으로 많이 죽는다고 한다.

 

 

<카주 다리: 상층부>

 

 

<카주 다리>

 

 

 카주 다리는 상층부보다는 하층부로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하층부는 사람들이 하도 많이 다녀서 기름 때가 묻은 것처럼 번들거렸다. 느낌으로 보아 물이 흐르지  않은 것이 한두 해가 아닌 것 같았다. 복만씨가 5년 전에 왔을 때 물이 있었다고 했으니, 강에 물이 흐르지 않은 것은 4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카주 다리>

 

 

<카주 다리>

 

 

<카주 다리>

 

 

<카주 다리>

 

 

<카주 다리>

 

 어느 나라를 가든 거지는 다 있는 것 같다. 이란에도 돈을 달라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지금 이 다리에도 차가운 돌 위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사람이 있다. 저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다리 위에서 잠을 자려고 오르고 내리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돌에 검은 때가 층을 이루고 닳아서 번들거렸다.

 

 

 

 

 좀 특이한 것은 다리 근처에 널빤지로 사람 모형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복장으로 보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인데, 보통 사람들보다 좀더 특이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로 보였다. 하마단에 갔을 때, 아쉬칸이라는 젊은이의 말에 따르면, 이란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을 저렇게 몽타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거리의 이름도 이런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길에 구비된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아침 식사 후 자메모스크로 가기로 했다. 앞에 있는 시오세 다리는 차가 다니지 않으니 다리를 도보로 건서서 택시로 갔다. 택시를 내린 지점부터 자메 모스크까지 여러 개의 모스크가 있고, 또 사이사이에 끝없는 상점이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상점 안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스카프에 닿으면서 내는 신비스런 광경이다.  또한 창백한 쇠 그릇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번쩍이는 것이었다. 저런 그릇들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몇 번 사용하면 금방 쭈그러들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여자들의 화려한 드레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어차피 밖에서는 입지도 못할 저런 옷을 왜 사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해보니 우리 나라에서도 사극을 보면, 밖에 나갈 때 여자들이 면사포를 쓰거나 가마를 타고 다녀서 자신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바깥 세상에 알리지 않은 때가 있었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속옷을 아무 것이나 마구 입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속옷도 남이 보지 않지만 기능성을 따지고 유행을 따르는 것을 보면, 사실은 그네나 우리나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지금 이란 어디를 가도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주몽, 주몽" 한다. 나는 처음에 주몽이, 이란말로 "안녕하세요." 또는 "반갑습니다"인 줄 알았다. 지금 이란에서는 얼마전에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연속극 주몽이 히트를 치고 있다. 텔레비전을 틀면 거의 대부분 '주몽'을 방송하고 있다. 작년에 이라크에서는 드라마 "허준"이 방송되어 80%의 시청률을 올렸다고 한다. 너무 인기가 있어서 주연인 전광렬씨가 이라크에 초대 받았고, 대통령 부인이 그를 만나서 일반 사람들은 한 마디로 놀라자빠질 뻔 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극 자체의 흥미로움도 있었지만,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를 가리는 신비로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 남자가 결혼식에 입을 것으로 보이는 양복을 입어보면서 우리에게 사진을 찍으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자메 모스크>

 

 

 자메 모스크는 규모가 너무 크고 사방에 방이 많아서 한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힘들어 다닐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그늘 아래서 쉬면서 가져온 음식을 먹는 것을 누구의 제안도 없이 스스로 하고 있었다.  기도하기 전에 몸을 씻기 위해 광장 한 가운데 목욕탕이 있는 것이 특이했다.

 

 

잠시 안내자가 우리를 따라 다녔는데, 부서진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여기는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가 폭격을 해서 손상을 입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으로 보아 이라크인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한 듯 했다. 이란, 이라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이란-이라크가 이름도 비슷하고 바로 옆 나라이니까 모든 것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슬람교라는 종교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국가임을 알게 되었다. 이란인들이 페르시아인으로 페르시아 말을 하고 백인에 가까운 반면, 이라크인들은 아랍인이고 아랍어를 하고 큰 코에 검은 색 피부를 가졌다.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싫어 했으면 1980년부터 1987년까지 8년간 전생을 했겠는가? 가까운 나라와 잘 지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침략은 가까운 나라가 하는 것이고, 그러고 보면 가까운 나라는 친구이자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한국, 일본, 중국의 관계를 보아도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 관계가 아닌가?

 

 

 

 

<조그만 조각은 코란을 읽을 때, 책장이 넘어가지 않도록 종이 위에 놓는다>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동네를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가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초대하는 집이 있었다. 집안에 여러 방이 있었는데, 방마다 특이한 수공업을 하고 있었다. 큰 헌겁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고, 쇠를 깎아 열쇠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동으로 각종 장식품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를 조각하여 새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웃으면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고 음료수를 대접했다. 이란인들은 우리에게 마치 외국 사절들이 옷 것처럼 친절하고 다정했다.

 

 

 

 

 

 

 

 

 

 

<가게에서 일하는 이란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구경이 끝나고  밖에 나오니 산신령님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도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산신령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몇 사람은 헤어진 곳에 남고, 나머지는 이골목 저골목을 가보았으나 산신령님의 행방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어떤 사람은 산신령이니 산으로 갔을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우리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산신령 자리를 내려 놓을 때가 되었다고도 했다. 하여튼 신령스럽게 사라진 산신령은 결국 찾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산신령은 순식간에 우리를 잃고 사방으로 헤매다가, 결국은 그 먼길을 걸어서 호텔로 갔다고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이 사건을 "산신령 행방불명 사건" "산신령 산으로의 귀환 사건" 등으로 불렀다.

 

 

<점심 식사>

 

 

 점심을 먹기 위해 눈에 띄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영어 메뉴판도 없고, 종업원은 영어를 못했지만, 흉내와 시늉 그리고 눈치코치로 그럴듯한 음식을 시켰다. 사람이 많다보니 서로가 협동하여 우리가 원하는 정확한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주인 아줌마의 놀랍도록 빠르고 정확한 눈치였다. 간단한 우리의 시늉만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면 정확하게 우리가 원하는 음식을 갖고 나왔다. 결국 좀 실패한 것이라면 너무 많이 음식을 시킨 것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음식값이 일인당 약 2000원 정도 들었다는 것이었다.

 

 

 

 

<저녁식사>

 

 

 택시를 타고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한 방에 모여 지금까지 찍어 놓은 사진을 훑어 보았다.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가 어디서 아기를 안고 왔다. 곧 이어 아기 안아보기 경진대회가 열렸다. 누가 가장 사랑스럽게 아기를 안을 수 있느냐, 였다. 아기를 안아보는 사람과 구경꾼은 신이나서 박수치고 웃고 소리지르고 난리법석을 부렸지만, 정작 아기는 놀라서 여기저기 바라보느라 놀란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이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혼을 빼가는 환경속에서도 아기는 계속 엄마를 찾는 듯 했고, 결국 시야에 들어온 엄마를 계속 응시하는 본능적인 육감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밤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호텔방으로 돌아갔다. 호텔 방에 돌아와 가만히 있으려니, 오늘이 이스파한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이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시오세 다리 위를 걸었다. 바람이 찼다. 멀리 시내의 불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이번에는 다리 아래 강 바닥으로 걸어왔다. 멀리 몇 사람이 수근거리며 다리 아래로 걸어온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어디에선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호텔 쪽 다리 위에서 세 명의 젊은이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 소리가 피를 토하며 부르는 전설 속의 새 소리처럼 들렸다. 애절하기도 하고, 힘차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했다.  관중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그들의 노래는 메마른 강바닥을 치고 하늘로 솟고 있었다. 나는 밤바람을 맞으며 혼자서,  그들이 노래를 끝낼 때까지 똑바로 서서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들었다. 그들과 나와의 거리는 약 40미터, 노래가 끝난 후, 나는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나 혼자 친 박수 소리가 밤 하늘을 가르고 하늘로 사라졌다. 얼마 후, 그들이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들: Sir, where are you from?
나: Korea, South Korea.
그들: Today we are very happy. Because you.
나: Thank you for your nice song. The best song in my life.
그들: Thank you very much.

 

 

나는 서늘한 밤기운을 피부로 느끼면서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세상은 따뜻하고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저 젊은이들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젊음이 내뿜는 절규다. 아니 신이 보낸 선물이다. 하페즈 시에 나오듯, 모든 사람은 신이 보낸 것이니, 그들의 목소리는 바로 천상의 목소리임에 틀림없다. 무거웠던 나의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시오세 다리 위의 노란 빛도 신의 축복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이다. 강에 물이 없어도 어제 만난 여성이나 오늘 노래한 젊은이가 있어서 세상은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신은 차가운 하늘에 혼자 외롭게 인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있다. 사람이 바로 신이다!

 

 

 

 

<현장 녹음: 한밤을 가른 젊은이의 노래. 위의 작은 그림을 더블클릭할 것. 갤럭시 노트로 녹음하여 사운드포지로 증폭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