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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 여행기 11
"비슈케크에서 오쉬로 (키르키스스탄)
<2016년 10월 5~6일 여행 경로>
<오쉬로 가는 길에 보이는 호박>
2016년 10월 5일, 오랫동안 머물렀던 비슈켁을 떠나 남쪽에 위치한, 키르키스스탄의 제 2의 도시 오시로 간다. 서쪽으로 얼마 동안 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높디 높은 몇 개의 산 고개(mountain pass)를 넘어야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민가와 들판을 지나자, 농작물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보이고, 길에서는 우리 차를 가로 막는 양떼가 "양들의 침묵"을 웅변적으로 증명하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버스는 점점 가쁜 숨소리를 내며 헐떡이기 시작하고, 끝 없는 Z자의 흔적을 남기며 정상을 향해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다. 산은 모두 눈으로 덮여있고 길만 빼꼼히 눈이 치워져 있어, 실수로 버스가 길을 벗어나 뒹굴기라도 한다면, 수십바퀴를 굴러 뼛조각 하나라도 건지는 것이 다행인 곳이다. 해발 3586미터에 위치한 뜨류-아슈 터널 직전에 차를 잠깐 멈출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다른 차가 계속 밀려오고 있으므로 우리 차의 운전수 "이거리"는 "이 거리를 잊지 마세요."라는 말만을 남기는 듯, 그냥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산 정상에 있는 뜨류 아슈 터널>
터널을 지나면 저 아래 거대한 분지가 보이는데, 해발 3,000미터의 수사미르 분지다. 이제는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심을 하며, 잠깐 자동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우리 버스의 운전수 "이거리"는 심심해서 인지, 아니면 장거리 여행이면 흔히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자기 아내를 운전수 옆 좌석에 앉히고 느긋하게 운전하며 왔다. 우리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는 그는, 평소에 수줍어 말도 하지 않더니, 아내가 있어서 그런지 아내와 포옹을 하며, 평소 그 답지 않은 자세와 표정을 취한다. 남자가 여자를 볼 때는 우선 "예쁘냐?"를 먼저 본 다고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아내는 예쁘다기 보다는 좀 무서운 인상인 듯 했다. 저런 인상이 웃으니까 천만 다행이지, 성질 한 번 내면 남자의 야코가 팍 죽을 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 보인다. 남의 아내 가지고, 내가 별 쓸 데 없는 생각을 다 한다.
<우리 운전수 "이 거리"와 그의 아내>
<수사미르 분지>
조금 내려가다가 외로운 집 한 채가 있었는데, 식당이라고 했다. 무엇을 먹을까, 아무리 메뉴를 봐도 뭐가 뭔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는데, 옆 사람이 고기와 각종 채소가 섞여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보인다. 검은 쇠그릇에 쇠고기와 채소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고 구수한 냄새와 김이 몇 바퀴 공중을 돌아 식당을 가득 채운다.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시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배가 고프다가 이젠 배도 더 이상 무감각한 상태가 된 듯한 그 때, 주문 음식이 도착했다. 그러나 "아뿔사", 고기는 쇠가죽을 겹겹이 붙여놓은 듯이 질기고, 음식은 소금을 한 사발은 퍼 부은 듯이 짰다. 참,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아무리 눈을 감고 먹으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채소라도 몇 조각 먹으려고 했다. 맛이 없으면 그냥 먹으면 되고, 이상한 냄새가 나면 코를 막고 먹으면 되지만, 소태처럼 짠 음식은 아무런 해결책이 없었다. 전체 음식의 10분의 1도 먹지 못하고 그 음식점을 떠나야 했다.
<먹음직스럽지만 먹을 수 없는 음식, 너무 짜다.>
그 뒤 양쪽으로 펼쳐진 설산을 보면서 자동차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잠깐 쉰 어떤 곳에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두 채가 있었는데, 그 주위에 무시무시한 개 한 마리와 순해 보이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고지대에서 자기들끼리 살고 있는 이 개들은 추위와 먹이와 사투를 벌이며 목숨을 연명하는 듯 했다. 분위기나 개의 표정, 태도로 보아, 그들에게 다가가기도 겁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가 던져준 빵을 덥석 입에 물고 꼬리를 팍 내리고 적개심을 갖고 한 입에 삼켜 버렸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 개가 언제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개가 꼬리를 내리듯이, 사람들도 꼬리를 내리고, 개의 눈치를 보면서 버스에 올랐다.
<좀 순한 듯이 보이는 개를 멀리서 망원 렌즈로 찍음. 무서운 개는 찍지 못함>
<이 사진을 찍을 때는 햇볕으로 일부 눈이 녹아 빗살무늬를 형성해, 사진이 멋 있게 나오리라는 예측으로 촬영>
<톡토굴 저수지 위성 사진. 키르키스스탄 화폐에 나와 있는 시인 "톡토굴">
톡토굴에 도착한 것은 태양이 거의 산 너머로 질 무렵이었다. 처음에 "톡토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곳이 무슨 "토끼 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도시의 이름 때문에, 이 도시가 굴처럼 음습한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인구 16,000의 톡토굴이라는 지명은 이 나라의 유명한 시인 톡토굴 사틸가노프(Toktogul Satilganov, 1884-1933)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톡토굴은 현재 키르키스스탄 화폐와 우표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톡토굴 저수지에 도착할 무렵, 해는 서산에 기울기 시작한다. 호수 건너편에는 그야말로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기막힌 장면이 나타난다. 사막인지 산인지 알 수 없는 이 넓은 대지가, 지는 태양을 한 몸에 받고, 울퉁불퉁한 수 많은 산과 골이, 굽이 돌아 둘러싸며, 울퉁불퉁, 넘실넘심, 그림자를 만들고 퍼지고 갈라진다. 저곳이 동화책에나 존재하는, 꿈에나 볼 수 있는 유령의 도시인가? 다른 행성이나 달에서나 볼 수 있는 마법의 대지가 왜 저기에 있나? 그런가 하면 어떤 곳은 코끼리 발이 호숫물에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거대한 조개가 몸을 비틀며 육지로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멀리 호숫가의 산이 코끼리 발 같기도 하고, 조개 같기도 하다.>
<넘실거리는 희미한 산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도로를 가로막은 듯 하다.>
어떤 산은 석양을 받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여인의 몸처럼 누워있기도 하고, 지는 석양의 한쪽을 떼어내 자신의 모습을 희고 얇은 천으로 감싸며 수줍어 하기도 한다. 가끔 가다 여기서도 양떼가 길을 막아 지나가는 자동차를 막기도 하고, 그 위를 자유로운 영혼의 새가 날아가기도 한다.
드디어 호숫가에 있는 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지는 해와 호수의 풍경을 담으려 다시 밖으로 나온다. 오수변은 S자를 그리며 감아 돌고, 물 속에 비치는 노을 속의 먼 산의 정상은 눈 모자를 쓴 채 차분하게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톡토굴의 밤은 깊어 가고,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별의 수는 점점 많아져 마침내 시골 하늘을 가득 채워 오랜만에 보는 소곤대는 별 소리에 내 눈과 내 귀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 멀리 호수 너머에 있는 몇 가구의 불빛이 호숫가에 자신의 일부를 물에 묻으며, 출렁거리는 호숫물의 출렁거림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조용했던 호수와 밤하늘은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따라 춤추기 시작한다. 아, 베토벤 교향곡 "운명"이 가슴을 박차고 뛰쳐나온다. 호숫물은 출렁이고, 밤하늘은 환희와 감격으로 충만하다. 웅장한 음악은 은하라는 희미한 흔적을 남기며 저 먼 하늘로 사라진다.
<그날 저녁 식사: 톡토굴 호수에 잡았다는 물고기를 튀긴 것>
다음 날, 여전히 태양은 떠 오르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이 된다. 호수 주위에 놓여있는 몇몇 집의 양철 지붕 위로 붉은 태양이 자신을 불사를 때, 어디선가 새떼가 날아와 몇 바퀴 돌고 서쪽 하늘로 사라진다. 전깃줄에 맺혀있는 작은 이슬방울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기 시작하고 이른 아침 붉은 빛을 받아 반사하면, 세상은 또다른 몽롱한 세계가 된다.
<호텔의 아침 식사>
<호텔에 있는 조류>
아침 식사 후 다시 시작된 버스 여행은, 이제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강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진행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호수가 모습을 감추고 나타난다. 코발트 빛인지 쪽빛인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강이 깊은 계곡을 타고 조용히 흘러간다.
<아래쪽에는 또 댐이 있다.>
그러나 잠시 후 길 전체를 가로막고 천천히 움직이는 양떼, 내 평생 본 양떼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맨 앞은 말을 몰고 가고 있고, 그 뒤에 양떼가 간다. 중간에는 당나귀도 있어서 양치기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등 뒤에 지고 가기도 한다. 지나가는 차들은 갈피를 못 잡고 어쩔 줄 몰라한다. 한쪽으로 비켜보기도 하고, 경적을 울려보기도 하고, 잠깐 길 옆으로 빠졌다가 다시 안 쪽으로 오기도 한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는 듯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동차가 단 한 마리의 양도 다치지 않게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오랫동안 지내온 우리가 알 수 없는 통행 관습 또는 규칙을, 운전수도 알고 있고, 양치기도 알고, 양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점심을 먹기 위해 멈춘 어떤 곳, 역시 양꼬치가 먹음직스럽게 연기와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고 있다. 한국에서 살아 본 적이 있다는 한 노인이 음식에 대한 안내를 한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빛나는 효과를 발휘하는 지 모른다. 역시 여행은 언어가 되지 않으면, 그 즐거움과 보람은 몇분의 일로 감소하고 만다. 결국은 여행지의 환경에 녹아들지 못하고, 비빔밥에서 보리알 이리돌고 저리 돌듯이, 외톨이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말을 잘 알아듣고, 말을 잘 못 해도 좋지만, 최소한의 기본 언어을 배운다는 것은, 아무리 많은 장비와 음식과 옷을 가져가는 것보다 훨씬 큰 이득과 기쁨을 준다. 결국 해외 여행의 보람은 그 나라 사람과의 의사소통이라는 싸움에서 결판난다.
드디어 10월 6일 오후에 입성한 오쉬라는 키르키스스탄 제 2의 도시. 비슈케크에서 이틀에 걸쳐서 600키로를 버스 타고 달려온 길.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작지만 아담한 도시가 내 눈앞에 수줍게 놓여있다.여기 시민들은 이 도시가 로마보다도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친절하다. 여기에서 이틀 밤을 지내면 키스키스스탄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게 된다. 이제 여행도 삼분의 2를 넘기게 된다. 그 동안 우리를 위해 버스를 운전해 주었던 현지인 "이거리"를 드디어 이 거리에서 악수로 작별한다. 그와의 아쉬움을 남기며 나는 버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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