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산에는,
배가 봉긋하고, 털 색이 황색과 노란색으로 적절히 배합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월매나 무서운지, 근처에 고양이만 나오면, 이소룡 취권 비스무리한 동작으로, 두 발로 상대방 쌍판기를 휘몰아쳐 갈긴다. 그 다음, 이단 옆차기로 "일거에 제압"한 후, 입으로 물어 뜯어 상대방 고양이의 항복을 받아낸 후 사방을 훑어본다. 한 마디로 반쯤 죽여 놓는 것이 아니라, 99.95% 정도 죽여 놓는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늙어서 힘이 예전만 못 한지, 얼마 전, 검은 고양이와 싸우다가 왼쪽 귀에 있는 뾰족한 살점이 똑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위풍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며, "이놈의 섀키들이 어디를 넘봐!"라고 온 세상을 고양이 쥐잡듯이 호령한다.
나도 이 무시무시한 고양이를 볼 때마다 그의 눈을 피해 슬슬 도망간다. 얼마 전에는 그와 눈이 마주쳐서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쳤었다. 그런데 그날 밤 호랭이같은 그 고양이가 맑게 갠날 벼락이라도 치듯이 으르렁 거리며 꿈에 나타났다. 나는 파르르 떨며 "어매!" 소리치며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나의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비상 계엄"보다 이 고양이가 억만 이천 다섯 배는 더 무섭다.
이제 나도 배봉산을 떠날 때가 된 듯 하다. 어디로 갈까? 아무래도 배봉산 다음에는 점봉산이 아닐까 한다. 떠날 때를 아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했던가? 허나 떠날 땐 떠나더라고, 군자역 6번 출구에 있는 "그때 그집"에서 돼지 껍데기 안주로 쐬주 한 따까리 하고 떠날까 보다.
오늘따라 고양이 귓대기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더 찬 바람이 내 귓대기를 할퀴고 지나간다.
어이구, 할 일 없으면, 낮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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