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의 한 가운데 보이는 산이 천계산이다. 멀쩡한 천계산의 중턱을 깎아서 길을 내어 이 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을 내 놓았다. 이 길은 넓어서 자동차와 사람이 모두 다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있는 북한산 중턱을 깎아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낸다면, 한국 사람들은 미쳐도 어지간히 미쳐라,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가파른 절벽 산 중턱에 자동차 길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 중국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천계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자동차 길이 필요한가 보다. 가파른 산 비탈에 자동차 길을 내려면 수 많은 갈지자(之) 길을 만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보기에도 아찔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비탈길을 미니 버스가 생생거리며 달린다. 목적지인 산 중턱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 기기묘묘한 터널을 통과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다(多)드림 유기농 산채 비빔밥”이라는 한글 광고판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한국 관광객이 오면, 이런 비빔밥 집이 생겼을까? 내가 생각해도 한국 사람들 세계 방방곡곡을 쑤시고 다니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산 중턱에 나 있는 널직한 길 위로 버스가 달린다. 물론 걸어갈 사람은 도보를 따라 걸으면 된다. 또한 이 버스는 중간중간 구경할만한 곳에 관광객을 내려주고 그들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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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천계산 여행은, 산 중턱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거나 차를 타고 가면서, 멀리 보이는 산과 계곡을 감상하는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때로는 비단같고 때로는 태산같은 웅장한 산을 구경한다. 하늘과 경계를 이루니 천계산(天界山)이라고 불린다.
차에서 내려 걸을 때는, 수많은 잔도(棧道: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절벽에 만들어진 다리 또는 좁은 길)를 따라 걷는다. 그 길은 바닥이 돌로 된 곳도 있고, 유리로 된 곳도 있다. 사실 이 잔도를 걸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지, 걷는 사람은 별로 무섭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앞을 보고 걸을 때의 일이다. 발 아래 유리를 바라본다면 기절초풍할 정도로 공포스럽다. 기절초풍이라고 하니, 비풍초 고스톱이 생각난다. 도대체 언제 해본 고스톱이냐?
절벽은 절벽으로 이어지고, 멀리 보이는 산은 헐떡거리며 또 산으로 이어진다. 어디를 보아도 산과 계곡이요, 계곡을 흐르는 물은 끊임과 이음을 반복한다. 한참을 걷다 보면, 내가 살아서 이승을 걷는 것인지, 죽어서 저승을 걷는 것인지 몽롱하고 아련하기만 하다.
그때 어디선가 “저기 와불(臥佛: 누워있는 형태의 불상)이 있다”고 수근대는 소리가 들린다. 과연 누워있는 불상이 틀림없구나! 그 뒤로 또 하나의 와불이 있으니 쌍와불인 셈이다. 앞에 있는 것은 남자가 누워있는 것이고, 그 너머에 보이는 것은 여자가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하니, 자연의 조화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한 바퀴를 다 돌아 다시 원위치로 올 지점에 분홍 안내판이 보인다.
人和山在一起才是仙( 신선이라고 할 때, 선이라는 글자는, 사람이 산에 있다는 뜻이다. 즉 사람이 산에 있어야 비로소 신선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바닷가나 들판에 신선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请乱拍照(함부로 사진을 찍으시오: 사진을 찍지 마시오,는 들어봤어도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라, 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幸会(만나서 반갑다)
腿先别抖 上面更逗
(미리 다리를 떨지마라, 위쪽은 훨씬 더 가파르다: 抖와 逗는 중국어로 발음이 같다. )
*파란 색은 주의 깊게 볼 글자들이다.
<위의 사진에 있는 산 꼭대기에 노야정이 있다.>
천계산 중턱을 한 바퀴 돌았다. 천계산 주차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한참을 걸으면 노야정(老爺顶) 이 나온다고 한다. 이곳은 노자가 42년간 도를 닦은 곳이라고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노야정에 가지 못 했다.
노자, 그는 누구인가? 노자의 도덕경에 첫 페이지에 다음과같이 적혀있다.
道可道非常道(도가도 비상도)
名可名非常名(명가명 비상명)
도올 김용옥, 심상원, 이상기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으로 해석을 해 놓았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라면 영원한 도가 아니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른다. “어떤 것을 말로 설명하거나, 어떠하다고 묘사하면, 그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말로써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말로 설명하면 틀린 것이요,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아예 모르는 것이므로, 결론은 “도통 모르겠다” 하고 넘어가는 도리밖에 없다.
옛날 학교 다닐 때, 김소월의 시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가 있었다. 수 많은 사람이 이것이 무슨 뜻인지 나름으로 해석을 내 놓았지만, 그 답은 어차피 모르는 것이요, 안다고 한들 하늘의 별을 딴 것처럼 경천동지할 일도 아니다. 수학 능력 시험이 아닌 이상, 정답이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별로 없는 듯 하다. 결국 저 나름으로 이해하는 척 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상책인 듯 싶다.
왕망령
왕망령은 천계산에서 버스로 약 1시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왕망령은 글자에서 나타나듯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왕망은 사람 이름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왕의 이름이다. 그는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어 나라 이름을 “신”이라고 했다. 그는 폭군으로, 중국의 유명한 역적 사인방(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 중의 한 명이다.
왕망은 어느 날,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역적의 무리인 유수 일행이 험준한 고개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왕망은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현장에 출동한다. 한참 잔치를 벌이고 있던 왕망의 반대자들인 “유수” 일행은, 허겁지겁 산산히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한다. “유수를 잡아 죽여라,” 왕망은 추격하느라 제 정신이 아니었고, 유수는 도망치느라 제 정신이 아니었다. 왕망과 유수는 백주(白晝)에 백주(白酒)를 마시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드디어 왕망이 유수를 바짝 쫓아 유수의 목덜미를 잡아채려고 하는 순간, 깊은 계곡이 나타났다. 유수는 그 계곡을 팔짝 뛰어 건너 반대쪽으로 도망쳤고, 왕망은 계곡을 뛰어 넘을 수가 없었다. 바로 한 발 앞에서 유수를 놓치게 된 왕망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송충이 씹은 듯 인상을 썼다. “아야, 한 발 자국만 따라 잡았어도…..”를 연발하던 왕망은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계곡이 바로 유수도(刘秀跳)이다.
몇 년 후 도망쳤던 유수는 군대를 모아 반격하여 왕망을 멸망시키고, 후한을 건국하였다. 훗날, 사람들이 말하였다. “한 발자국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니, 한 발자국의 중요성을 명심하라.” <이 이야기는 저 뒤에 나오는 현지 안내판을 참고하여 필자의 상상력으로 쓴 것이다. 기왕에 말 나온 김에, 내 생각에는 왕망이 망한 것은 그 이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왜 하필이면 왕망일까? 이름 때문에 폭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왕흥(王興)으로 지었으면, 잘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산이 산을 부르고 계곡이 계곡을 부른다. 층층이 쌓아 놓은 바위 위에 시커먼 나무들이 그 바위를 둘러싸고 있다.
산 아래 쪽에는, 이름을 알 수 없지만, 말로만 듣던 “비나리 길”로 보이는 길이 실처럼 이어져 있다. 길은 벽에 구멍이 뚫린 터널로 이어지고, 그 길이 터널을 뚫고 나오면 가는 흰 길로 이어져, 눈이 머무는 먼 곳에서 자취를 감춘다.
드디어 왕망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겹겹이 포개진 산이 나타난다. 계곡 사이로, 그리고 산의 봉우리 사이로 아련히 길이 나 있다. 길은 이어지고 끊어지며 다시 이어져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이제 막 피기 시작한 하얀 꽃이 산을 목화 송이처럼 수놓고 있다. 저 길을 걸어가 보고 싶다. 길을 가면서 풀 한 포기, 나무 하나, 이끼 한 줌 만져보고 싶다. 저 산 너머에는 어떤 기묘한 산과 계곡이 또 있을까?
2004년 4월, 중국의 진조덕(陈祖德:천쭈더) 선생과 한국의 조훈현 선생이 바둑을 두었다는 조그만 정자가 보인다. 이름은 방지정(方知亭),진조덕 선생은 “왕망령에 와 봐야만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고 썼다. 그렇다면 조훈현 선생은 왕망령에 와서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알 수 없지만, “왕망령에 와서 신선의 기를 받아가노라!”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나도 무슨 말 하나는 남겨야겠다. “왕망령에 와서 망령된 생각에 사로잡히니 노망인가 하노라.”
오후 4시경, 왕망령에서 버스를 타고 소림사가 있는 덩펑시로 향한다. 버스 속에서 생각한다. 중국은 왜 이리 볼 것이 쟁여져 있을까? 산이면 산, 강이면 강, 사막이면 사막, 고원이면 고원, 뭐든지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 경관이 도처에 뿌려져 있다. 문화 유적은 왜 이리도 많냐? 이런 볼 것이 많은 중국이 한국에 가깝게 있다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아무 때나 비행기표 사서 떠나면 바로 거기가 바로 별유천지 비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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