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8일 칭다오 중산공원, 팔대관 및 해변 여행도>
“알바트로스님, 1부터 10까지 중국어로 말해보세요!”
“이, 얼, 싼, 스 ------ 지어우, 스”
지금부터 약 15년전, 인천에서 칭다오로 가는 화물 겸 여객선에서, 갑자기 KC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군대 시절 빨간 모자를 쓴 거무잡잡한 유격 조교의 명령보다도 더 두려움을 느끼며,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쓰러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고 되는대로 소리질렀다.
배 위에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수십 명이 골고루 섞여 있었고, 모두의 얼굴에는 앞날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 근심과 기대가 반반씩 섞인 표정이 묻어 있었다. 그들이나 나나, 우리는 모두 청도 1개월 중국어 연수를 떠나는 동학(同学)이었다.
나는 선실에서 나와 검은 물결 출렁이는 바다가 보이는 갑판으로 갔다. 몇 사람이 담배를 입에 물고 멀리 보이는 고깃배의 깜빡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깃배를 바라보며 뿜어내는 흰 연기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답답함과 희망을 섞어 겨울 바람에 묻어 날렸다.
칭따오 1개월 어학 연수 후 대충 15년 만인 2025년 3월 28일, 나는 칭따오 중산 공원에 왔다. 한국이 그렇듯, 칭따오 중산 공원에도 아직은 낯설고 서글픈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은 차고, 들과 산의 색은 칙칙했다. 여기저기 붉은 꽃이 망울을 터뜨리고 있었고, 흰 꽃이 나뭇 가지에서 춤을 추며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동호회 회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들이 색스폰 연주를 하자, 얼마 떨어진 곳에서는 몇 사람이 모여,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목에 핏줄을 돋궈가며 목청에서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본래 불공평한 것이니, 식물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꽃 피우고 향기를 내뿜는 나무 옆에, 봄이 왔는지, 봄이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땅 바닥에 반쯤 누워 하늘만 쳐다보고 숨만 깔딱거리는 늙디 늙은 앉은뱅이 나무도 있었다. 저 나무에 무슨 희망이 있으랴. 봄이 되니, 살아있는 척이라도 해야, 사람의 손결이 가까이 오지 않을까?
매화 옛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하여라.
한 중국인이 외롭고 처량하게, 그러나 힘차게 마이크를 입에 바짝대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무리의 여인들이, “야, 우리 한번 놀아보자!” 소리치며 노래판을 춤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여인들은 팔과 손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더덩실 춤을 추며 흥얼거렸다. 마이크 잡이는 웬 호박이 굴러왔냐하면서, 신이 나서,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목청을 돋궜다. 찬 바람 불고 휑하던 중산 공원이 순식간에 한국 아줌마들의 흥겨운 닐니리 봄놀이 판으로 바뀌었다. 역시 어디가나 한국 아줌마들 있어야, 살맛이 나는 세상이 되나보다.
한참 가다보니, 아스팔트 위에 중국어가 보인다.
遍历山河, 人间值得。(편력산하, 인간치득)
“세상을 두루 돌아다녀라. 세상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 어디 한 곳에만 머물러 한번뿐인 인생을 허무하게 보낼소냐? 산과 들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대지의 다채로움, 그리고 생명의 끈기를 느껴보라. 흘러가는 강에서 시간의 고요함과 영원함, 그리고 세월의 무한함을 느껴보라.
칭따오 중산 공원에 있는 동물원 한 곳에, 원숭이같기도 하고, 판다처럼 보이기도 하는, 한 무리의 동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웅크려 서로 의지하며 마치 외부 세력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이 보였다. 나는 저 동물들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본래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팔레스타인같은 처지가 된 것이 아닌지 싶었다. 자유로운 자연에서의 생활을 강탈당하고, 유리 창살에 갇히어, 그저 잠을 자거나 인간들의 구경거리, 놀림거리로 전락해버린 동물들의 비참함이 내 가슴을 팠다.
동물원 출구 근처에 오징어 구이와 양 꼬치를 판매하는 조그만 식당이 있었다. 이 음식을 꼭 먹고 싶다기보다는, 찾는 손님 하나도 없는데 입에 거품을 품고 소리지르는 식당 주인이 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들어가 먹어 보기로 했다. 또한 양꼬치는 중국 땅에서 먹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오징어 구이를 중국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먹어보니 과연 두 음식은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 맛이 있어서, “오늘은 왜 이리 재수가 좋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값은 1만 2천원이 나왔다. 아마 한국이라면 2만원 이상 나왔을 것이다.
중산 공원 입구에 둥근 통나무를 잘라 놓은 듯한 구조물이 있었다. 그 아래에 한자가 적혀 있었는데, 모두 “같을 동”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이었다. 해석해 보면, “같은 나무 가지, 같은 나뭇잎, 같은 나무, 같은 뿌리”, “같은 시조, 같은 종족, 같은 핏줄, 같은 조상”이다. 중국인들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니, 함께 잘 살아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남이가?”이리라.
청도의 중산 공원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팔대관이 있다. 서양 열강들이 20세기 초에 중국을 침략하여 조성한 거리라고 한다.
전체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가본 몇 곳은 그저 평범한 정원을 갖춘 작은 박물관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살던 곳이어서, 피카소 작품의 복제품, 검투사, 투우 관련 제품 및 기타(guitar) 등의 악기 몇 점이 있었을 뿐이었다.
팔대관은 아름다운 그러나 바람 차고 쓸쓸한 칭다오 해변으로 이어졌다. 먼 수평선을 응시하는 사람들, 나름으로 멋을 부리며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흐린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 보며 회상에 잠기는 장년들이 보였다.
호텔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마침 택시가 길옆에 주차해 있었다. 택시 기사는 손님을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는 타라는 말만하고 계속 게임에 열중했다. 좀처럼 출발하지 않는 기사는, “马上(마상)”(잠깐만)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핸드폰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아마도, 핸드폰으로 돈내기 게임을 하는 듯 했다. 그러니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어디로 가냐,고 묻는 택시 기사 입에서 구정물과 담배 꽁초가 반반씩 섞인 들쩍지근한 냄새가 내 폐를 찔렀다. 택시 천장에 매달린 백 미러에 충혈된 기사의 두 눈이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운전을 하면서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나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묵시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에 나를 내려주고 떠나는 기사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마워했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나의 목적지 호텔과는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준 것이었다. 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 길을 좀더 걷게 해준 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뇌이며 터벅터벅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그 발걸음은 내가 여태껏 경험한 어떤 발걸음보다도 무거웠다.
*이 여행기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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