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그림 참조>
화산에는 케이블카 노선이 두개가 있다. 하나는 낮은 북봉 근처에 있고, 하나는 높은 서봉 근처에 있다. 따라서 1)북봉에서 힘들게 올라가 서봉, 남봉, 동봉을 보고, 서봉 케이블카로 내려오는 방법이 있고, 2)처음부터 높은 서봉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서봉, 남봉, 동봉을 보고, 북봉으로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오는 방법이 있다.
따라서, 북봉에서 걸어 올라가면 수많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힘들어 죽을 각오를 해야하고, 서봉에서 북봉으로 내려올 때는 역시 수많은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와야 해서 무릅 연골 망칠 각오를 해야한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팔자이니, 신세 생각해서 각자 알아서 기어야한다.

노인이라 힘도 없고, 무릎의 연골도 얼마 남지 않은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무릎을 망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즉 북봉까지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서, 서봉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북봉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아래를 보니 옛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갔던 계단이 끊임없이 이어진 잔도가 보인다. 1600미터를 걸어서 올라가려면 13시간이 걸린다. 맨몸으로 올라가면 그럭저럭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거운 짐이라도 지고 올라가면, 고무 신짝 땅바닥에 내치며 팔자타령을 하지 않고는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올라가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을, 인간은 자기가 선택해서 올라가면서, 신세 타령, 팔자 타령을 한다.

북봉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거기에서 100여 미터를 걸어서 올라가야 비로소 북봉이 나온다. 북봉에 오르니, 수 많은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헐떡이며 사방을 훑어보고, 어떤 사람들은 땅 바닥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화산논검이라는 사람 키보다도 조금 큰 표지석이 있었다. “화산에서 칼을 논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논한다고 하면, 의견, 이론, 생각 따위를 논하는 것이지, 하늘을 논하거나, 땅을 논하거나 칼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협 소설의 작가 김용은 화산논검(華山論檢)이라는 말로, 이미 보통 사람을 제압하고 있다. 김용이라는 작가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등 수 많은 무협 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김용의 소설에서 검객들은 구음진경이라는 무술서를 탐내 천하오절이 바로 이 화산에서 “칼을 논하여” 화산논검을 펼친다.


북봉에서 위쪽을 올려다 보면, 산 자체가 예리한 칼날처럼 뾰죽하게 솟아 있다. 봉우리가 솟아 있는 것이 아니라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산등성이가 칼날처럼 날카롭다. 와, 세상에 이런 산이 있다니, 참 기가막힌 일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산이 내 눈앞에 펼쳐지다니!

중국 무술 영화를 보면, 하늘을 날고, 봉우리에서 다른 산 봉우리로 건너 뛰고,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등, 인간의 상상력 범위를 벗어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나는 화산을 보기 전까지는 이런 영화 장면을 해괴망칙하고, 말도 안되는 영화라고 웃어 넘겼다. 그러나 막상 화산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난 후에는, “실제와는 관계 없이, 이런 칼처럼 날카로운 산에서는 사람이 칼을 들고 하늘을 날고 구름 속에 숨고, 바람을 몰고 와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 화산(華山)! 화산(火山)보다도 무섭고 소름끼치며, 화산(花山)보다도 아름답고 경이롭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신의 조화인가? 저 멀리 바위 능선에 만들어 놓은 좁은 2차선 바윗길로 등산객들이 개미처럼 기어가고 있다. “개미처럼”이 아니라, 그냥 개미다. 사람이 저렇게 오를 리가 없다. 오를 때는 뒤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오금이 절려 주저 앉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나저나 올라가는 사람은 어떻게 올라간다 쳐도, 내려오는 사람이 발을 헛디디면 어떻게 될까? 물으나 마나, 상상하나 마나, 윗 사람이 아래 사람을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또 아래 사람을 넘어 뜨려 순식간에 화산은 인간 도미노장이 될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아찔아찔하다.


화산의 거의 8부 능선에 도착할 때쯤, 나는 이미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잠시 쉬고 있을 때, 어떤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서봉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서,서봉, 남봉, 동봉을 오른 후 내려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새벽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한참을 올라가야 산봉우리에 도착한다고 말한다. 현재 시간과 연세를 생각해서 더 이상 올라가지 말고, 서봉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나도 거의 탈진 상태에 도달했으므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옆에 있는 중국 청년에게 서봉 케이블카를 타려면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핸드폰을 검색하던 중국인은 2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목적지인 서봉, 남봉, 동봉을 오르지 않는 결정을 내린 내 자신에게, 참 잘 했다, 고 스스로 칭찬해 주었다. 무리라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황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걸은 이 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으냐? 누가 알겠는가? 다시 언젠가 화산 서봉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서봉, 남봉, 동봉을 다시 구경할 날이 있을 줄을!




서봉 바로 아래, 서봉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었다. 케이블카 표를 구입하고 입구에 들어가니 그곳은 터널이었다. 터널에 기다리는 대기 줄은 길고도 길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참 하산객이 많을 때는, 케이블카 대기 시간이 3시간이 된다고 한다.

서봉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보니, 케이블카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가 기기 묘묘하였다. 칼날 절벽에 이런 케이블카를 설치하다니! 중국인들은 절벽에 잔도를 만들거나, 산 비탈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거나, 공중에 수직 통로 만드는 것이 취미인지, 고집인지,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케이블 카에서 내려 매표소 입구까지 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 생각 저 생각,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곳에 오지 않아도 사는 것인데, 나는 여기 와서 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를 타고 갈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사는 것이요,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사는 것도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있는 삶인가? 보람이 있으면 어떻고 보람이 없으면 어쩔 것이냐? 뭐가 더 나은 삶인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어제와 오늘이 똑 같은 삶을 살지는 말자! 같은 길을 가더라도 오늘은 길 가운데로, 내일은 가장자리로, 모레는 길가의 풀을 밟으면서 가자! 왜 그렇게 매일 다른 삶을 살아? 나에게 묻지 말라. 그것이 내 팔자다!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중원 여행기 8 서안(西安: 시안) (최종회) (3) | 2025.06.13 |
---|---|
중국 중원 여행기 6 "낙양(洛阳: 루어양) (6) | 2025.06.10 |
13일간 중국 중원 여행기 5 "숭산-소림사" (4) | 2025.06.03 |
중국 중원 여행 4 "태항 산맥의 '천계산과 왕망령'" (5) | 2025.06.01 |
중국 중원 여행기 3 "태항산 팔리구 풍경구와 구련산 서련촌" (3) | 2025.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