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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20 "바라나시의 뒷골목을 말한다" (인도 2)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3. 08:08

 

 

인도 여행기 2

 —"바라나시"의 뒷골목을 말한다—

 

 

<인도의 "바라나시">

 

 

바라나시의 뒷골목이라!  그곳 골목에 관한 지도를 만들어보고자 어떤 야심 찬 젊은이가 바라나시에 왔다. 그는 2년 동안 밤이고 낮이고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은 "에이, 죽으면 죽어도 이 곳 골목의 지도는 못 만든다"라고 결론 내리고, 보따리 싸서 집으로 떠났다고 했다.

 

 

사실 나는 "바라나시"의 뒷골목을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3박 4일간 바라나시에 있었지만, 그 기간 내내 골목만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지도가 없으니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길을 잃어 집을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레 겁을 먹어서, 개미 쳇바퀴 돌 듯, 내가 묵은 "망라 게스트하우스" 주위만을 좀 돌아다니었을 뿐이다. 이 글은 바로 망라 게스트 하우스 주변의 골목에 관한 글이다.

 

 

<곡식집 아저씨>

 

 

게스트 하우스 문을 나오면 약 10미터 떨어져서 곡식을 판매하는 한 아저씨가 나를 볼 때마다 "Good morning"이라고 말했다. 나도 같은 말로 응답하고 가게를 지나쳤다. 어느 날 내가 다가가자 그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 어디서 왔느니, 인도의 어느 곳에 가보았느니 등 질문을 했다.  

 

 

아야,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가 나와 이야기하는 중에, 조그만 쥐가 아저씨 뒤에 있는 쌀자루에 들어갔다가 저 쌀자루로 가고, 그러다가 다른 선반으로 갔다. 그 쥐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쥐 한 두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들락거리며 분주히 돌아다녔다. 먹을 것도 없는 나의 호텔 방에 쥐가 돌아다니니, 먹을 것이 풍부한 이곳에 쥐가 들락거리는 것은 결코 놀랄만한 일이 못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진을 찍으라고 나에게 말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자기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내가 그의 이메일 주소를 물으니, 그는 컴퓨터가 없어 그런 것이 없으니, 우편을 통해 집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그의 주소를 적어 달라고 했더니, 그는 영어를 말할 수는 있지만 쓸 수 없으니 나보고 자기가 말하는대로 적으라고 했다. 그 뒤 5분 동안 주소를 적다가 결국은 적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떴다.

 

 

 

 

대체로 바라나시의 골목은 성인 두 사람이 다니기에 약간 비좁고, 그 보다 좀 넓은 곳도 있다. 바라나시의 뒷골목의 가장 큰 특징은 2-3층 되는 집들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구 창신동의 뒷골목은 가끔 가다 단층집이 있고 담 너머로 그 집의 마당도 보이지만, 여기는 좁은 골목에 높은 담벼락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완전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고, 한 번 잘 못 골목에 접어들면 여지없이 개털 신세가 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이은상: "오륙도">

 

 

이 골목이 저 골목, 저 골목이 이 골목
그 골목이 그 골목, 그 골목이 또 그 골목 
지는 해 부는 바람에 갈 곳 몰라 하노라.
<위 시의 패러디>

 

 

바라나시의 뒷골목에는 수 많은 가게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음식점, 수리점, 세탁소, 각종 소형 가게, 여관, 학원 등 있어야 하는 것은 모두 있다. 밖은 허름하며 내부는 컴컴하여 실제로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 가게 앞을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들어가서 장을 보고, 이야기하고, 쉬다가 가던 길을 다시 재촉해 간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어떤 골목을 가도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의 놀이에 푹 빠져 뛰어 논다. 아이들은 싸우고 울고 웃고 장난치며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다. 카메라에 포즈를 취해주고 무엇인가 먹을 것이 있는지 나에게 묻는다.

 

 

국민은행에서 무료로 주는 볼펜 다발을 가지고 갔었다. 볼펜 하나씩 받아든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르겠다. "인도도 이제는 살만큼 살아서, 선물로 볼펜을 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아이들은 내가 준 볼펜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아이는 볼펜을 하나만 더 달라고 50미터를 따라오며 졸라, 기어이 하나 더 받아 갔다. 내가 왜 그리 볼펜을 원하는지 그 아이에게 물었다. 여자 친구에게 줄 것이라고 말하는 그 꼬마에게서 중세 유럽의 기사의 위풍이 보였다. 그는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부는 휘파람 소리가 벽을 타고 하늘로 솟더니 메아리되어 다시 내 귀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더러움과 깨끗함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아니, 여기 바라나시 사람들 자체가 청결에 그저 무덤덤한 것 같다. 우리가 동물을 보면 평생 목욕을 하지 않든지, 그저 가끔 가다 몸을 씻는 것을 본다. 어렸을 때 소를 키워 본 적이 있는데, 몇 년 동안 목욕을 안 시켜도 소는 별 문제 없이 잘 자랐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깨끗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한국인 중에는 너무 자주 씻어서 피부병이 나는 사람도 있다. 서양에도 "Cleanliness is next to godliness"(깨끗함은 신앙심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 되는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좀 더러운 것은(내가 보기에는 엄청나게 더럽지만) 그들에게는 말할 건덕지조차도 되지 않는 듯 했다. 누가 더럽다고 말을 하면  말한 사람만 창피를 당할 일이다. 어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 마늘 많이 먹어 마늘 냄새 나 죽겠다. 좀 제발 먹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미친 놈 지랄하네. 네가 싫으면 떠나 이놈아."라고 말할 지도 모르듯이.  

 

 

 

 

 

골목길은 별의별 사람이 다 지나다닌다. 나는 한 곳에 신문지를 깔고 한 동안 그들을 관찰했다. 혼자 중얼대며 걷는 사람, 큰 수염에 장대를 들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걷는 사람, 릭셔에 끼여 낑낑 거리며 가는 사람들이 있다. 손님을 싣고 달리는 릭셔꾼의 모습에서 성전에 출전하는 전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무엇인지 모를 이상한 음식을 종이에 싸서 먹기도 하고, 축축한 바닥에 맨발을 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 나무 가지를 잘라다 파는 사람이 있었다. 저 나무 가지를 도대체 어디에 쓸까 궁금했다. 이런 궁금증은 쉽게 해결되었는데, 그 바로 옆에 있는 식당 종업원들이 그 나무 가지로 이빨을 닦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다시 말하면 인도 전통식 칫솔과 치약이었던 것이다. 혹시 다른 목적이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무 토막으로 이를 닦는다.>

 

 

골목에는 내가 전에 다른 곳에서 보았던 과일도 있었고 처음 보는 과일도 있었다. 이런 과일들은 열대지방에서 자라서 그런지 색이 더 선명하고 뚜렷해서 훨씬 더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리어커 위에 이상한 과일도 있었으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역시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과일을 잘 못 먹어도 배탈이 날 수 있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사서 먹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듣던 바 대로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은 소의 천국이다. 소의 색깔은 다양한데, 흰색의 소가 더 신성시 된다고 한다. 골목에 소가 서 있기도 하고 걸어 다니기도한다. 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사람들은 소를 피해 다닌다. 사람도 소를 원망하지 않고, 소도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죽던 말던 내 버려 둔다.

 

 

문제는 소가 아무 데서나 똥을 싼다는 사실이다. 보통 걸어가면서 실례를 하기 때문에 길바닥에 쫙쫙 뿌려져 있기도 하고, 벽에 튀긴 자국이 발견되기도 한다. 소똥을 잘 살펴보면, 한국의 소처럼 풀을 먹고 자라는 소똥과는 전혀 다르다. 어렸을 때 기억을 되살리면, 한국의 소는 풀을 먹어서 인지 약간 누런 색에 섬유소가 들어 있어서 쇠똥벌레가 동그랗게 돌돌 말아 뒷다리로 굴리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된똥이다. 하지만 여기 소들은 노상 쓰레기만 뒤져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바라나시 소의 똥은 파란색의 물똥이다. 소들은 이 녹두죽 같은 똥을 아무데서나 질질 싸며 돌아다닌다.

 

 

나는 이 소들이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너무 궁금하여 한 떼의 소를 따라 가 보았다. 이 소들은 한 참을 가다가 그냥 한 곳에 서 있다. 그러다가 다시 또 아까 온 곳으로 다시 갔다. 한 참을 서 있더니 또 어디로 간다. 아마 하루 종일 서성거리다가 날이 밝고 해가 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왜 그들은 골목에서 나가지 않을까? 잘은 모르지만 골목을 빠져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보다 훨씬 더 머리가 좋은 내가 골목을 빠져 나가지 못하는 판국에, 그들이 무슨 수로 이 미로를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거리에는 개들도 많다. 개들은 사람이 던져주는 음식을 먹든지, 쓰레기 통의 음식이건 뭐 건, 눈에 띄는 대로 먹어 삼킨다. 그리고 졸리든지 힘이 없으면, 아무 데서나 그냥 누워 잔다. 아무리 거리에 개가 많아도 사람들은 개를 피해 다닐 뿐, 누구 하나 개를 건들거나 욕하는 사람이 없다. 개가 굶던 말든,병에 걸리건 말건 그냥 내 버려 둔다. 철저한 자 방임주의라고나 할까?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아무도 간섭받지 않고, 제 뜻대로 사는 세상, 이것이 바로 바라나시의 개판 세상이다!

 

 

기왕에 바라나시 이야기가 나온김에 내 친구가 술만 먹으면 하는 "바라" 농담 하나.
한 스님이 어느 시골 마을 집에 들어가 보니 젊은 여자가 속살이 훤히 보이는 속옷을 입고 자고 있었다. 스님과 여자의 대화
"봤으니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봤다고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안주면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서 있다고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이때 옆에 서 있던 남편이
"느끼리 잘해바라 잘 해바라 잘 해바라 잘 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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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개가 갑자기 길 옆의 물을 마시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당나귀에 모래를 싣고 건설 현장으로 간다.>

 

 

 

 

큰 길 한 가운데 앉아서 구걸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난다.  발이 없는 사람, 손이 없는 사람 별 사람이 다 있다. 그런데 보통은 이런 사람들은 길 한쪽에서 앉아 구걸을 하는데, 여기서는 길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들은 길 양쪽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훨씬 머리가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그날 만난 사람 중 두 여인에게서 알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 한 여인은 농산물을 싣고 리어커를 타고 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가 타고 가던 리어커가 사라질 때까지 한 동안 그녀는 나를 쳐다 보았다.  농산물 더미 위에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그 여인의 눈동자에서,  나는 한 없는 삶의 무게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로 인해 가슴이 아려왔다.

 

 

 

 

한 여인은 한적한 골목길을 맨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손 안에 쥐어진 어떤 물건을 보면서 울었고,  또 울면서 다시 바라보며 걸었다. 나는 그녀의 일신상 또는 가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른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울고 가야할 저 가난한 여인에게 어떤 일이 있음만을 짐작하고 있다.  

 

 

 

 

어느 골목에서 사람들이 나무 토막을 싣고 가고 있었다. 나는 리어커에 실려있는 장작이 무엇인지 물었다. 시체를 화장(火葬)할 때 사용할 나무라고 했다. 오늘도 각지에서 죽으려는 사람들이 갠지스 강가로 모여들고, 며칠을 기다려 죽게 되면 바로 강가 화장장에서 저 장작에 의해 불에 태워져 한줌의 재로 돌아간다. 나는 가슴에 서늘함과 섬뜩함을 느끼면서 멀리 골목으로 사라져가는 저승사자의 일면을 보며 인생의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나 바라나시가 음산함과 더러움과 무서움만을 간직한 도시는 아니다. 길가에 놓여진 수돗가에서 어른이나 아이들이 몸을 닦고 마음을 씻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몸을 닦다보면 세상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근 듯 사라질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닦아주는 저 목욕이, 괴로운 현세에서  영원한 행복으로 이끄는 다음 세대로의 무지개 다리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바라나시 골목보다 더 편안한 곳이 어디 있으랴. 길옆에서 자고 있는 개에게서 나는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잔다는 것은 저 개를 보고 이름이리라.  조금 걸어가니, 뜨거운 길바닥에서, 엄마 젖을 빨고 있는 강아지가 보인다. 엄마 젖을 찾아 주둥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강아지는, 마침내 찾아낸 엄마 젖꼭지를 힘차게 빨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무슨 짓을 하든, 사람이 지나가든, 바람이 불든, 그저 네 다리  쭉 뻣고 잠자는 엄마 개로부터 측은함과 불쌍함 그리고 성스러움을 느낀다.   

 

 

 

 

바라나시의 뒷골목은 어디 동물들만의 쉼터이더냐?  지친 인간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집이 없는 사람에게 묵을 수 있는 휴식처를 제공한다. 한 줄기 햇빛이 벽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피곤하여 잠에 푹 빠진 한 노인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다. 잠에서 깬 후 그는 분명히 신의 축복을 받았음을 느낄 것이고 내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바라나시, 그곳은 바람과 구름이 머물며 울다 가는 곳이다. 바라나시, 그곳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고, 죽고, 쉬고, 생활하는 곳이다.  바라나시, 그곳은 모든 이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곳이다. 바라나시, 그곳은 현세의 종착지요 내세의 시작점이다.

 

 

(2012년 2월 2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