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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1 "길기트에서의 1박 2일" (파키스탄 6)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12. 09:11

 

 

<훈자에서 길기트 가는 길>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1 "길기트에서의 1박 2일"

 

파키스탄 6

 

 

2012년 5월 29일 아침 9시, 훈자의 힐탑 호텔을 출발하여, 길기트로 향했다. 우리에게 저녁을 제공했던 사람이 호텔까지 나와 작별을 고한다. 사실 이 사람은 파수까지 와서, 우리가 호수를 건널 때 도와준 사람이다. 며칠간 밤이면 함께 술도 마셨는데, 부인은 학교 교장선생님이고 본인은 "I'm just a shopkeeper.(저는 단지 가게 주인입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던 사람이다. 그 이외에도 자주 우리와 접촉을 했던 두 명이 더 있었는데, 짧은 만남이었지만, 헤어질 때 섭섭하기 그지 없었다.  

 

 

 

 

<라카포시 가는 길에 있는 Chulmet 라는 지점: 뒤에 라카포시 산이 보인다.>

 

 

<Chulmet에 있는 가게>

 

 

<길기트 가는 길에 있는 검문소>

 

 

중간에 두 번의 검문이 있었다. "길기트에서는 최근에 폭동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은 곳이므로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왔으므로, 몸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특히 함부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에, "아이구, 이제는 죽었다" 라고 생각하고, 사또 처분만을 기다리는 춘향이처럼, 그저 쥐 죽은 듯이 있기로 했다.

 

 

길은 비포장이거나 포장 중이어서 자동차의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어느 지점부터 완전히 아스팔트가 잘 깔려 있어서 자동차는 시속 100키로 이상으로 달렸다. 두 대의 차량으로 갔는데, 두 운전수가 간뎅이가 부었는지 서로 경쟁을 하는 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렸다. 혹시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내 간이 콩알 만해졌다가 다시 좁쌀 만해졌다가, 제 마음대로 놀고 있었다. 중간 마을을 지나는데, 담벼락에 "DOWN WITH USA(미국 망해라)"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가 심상치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보이는 감자밭>

 

 

 

 

<길기트에 있는 Jinnah 다리(아래 지도 참조): 현수교이다. 바닥이 판자인지 철판인지 모르지만, 조그만 판대기를 엮어 이어 놓아서,  차가 지나갈 때, 따발총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흐르는 강은 길기트 강이다. >

 

 

길기트란 어떤 곳인가?

"인더스강(江)의 원류인 길기트강(江)과 훈자강(江) 유역의 땅을 가리킨다. 북쪽은 타림분지, 서쪽은 아프가니스탄, 동쪽은 티베트, 남쪽은 인더스강 유역과 연결되어 고대부터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길기트 강가의 도시인 길기트는 마애불(磨崖佛)이 새겨진 암벽 등이 있는 곳으로, 불교의 중심지였는데, 오늘날은 파키스탄 변경지구의 군사상 거점이 되었으며, 부근의 소수민족에 대한 행정의 중심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밀·보리·옥수수·쌀·콩 등이 생산되며 모직물 제조도 활발하다. 1889년부터 영국의 특별통치를 받았으나, 1947년 이래 그 귀속을 둘러싸고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중국어를 사용한다."

<인터넷 사전 인용>

 

 

"유혈 종파분쟁으로 2012년 4월 3일부터 파키스탄 북부 길기트에서 발이 묶인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 약 120명이 현지 당국에 의해 무사히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길기트에서는 다수파인 수니파와 소수파인 시아파 간 두 차례 충돌 사태로 최소 14명이 숨져 무기한 통행 금지령이 내려진 바 있습니다. 길기트에서 긴급 대피한 외국 관광객은 한국과 일본, 중국과 독일, 태국 국적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서 파키스탄의 고위 경찰 간부는 길기트에서 외국 관광객을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수송하려고 C-130 군용기가 도착했다고 밝혔습니다."

<웰컴투파키스탄 홈페이지 인용>

 

 

<길기트 시내: 로운리 플래니트 인용>

 

 

 

 

 

 

파크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앞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공간이 협소하고 날이 더워, 먹는 음식에 대한 관심보다는 빨리 그 식당을 벗어나는 것에 관심이 더 컸다. 지금까지 웬만하면 식당의 음식도 사진을 찍어 왔으나, 여기서는 찍을 생각도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얼핏 보아, 한국의 군보다는 면적이 작고, 면보다는 큰 길기트는 칙칙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회색 빛 이었다. 길기트를 둘러싸고 있는 민둥 산에 오후 햇살이 듬성듬성 비치고 있었지만, 칙칙한 회색 거리를 밝게 해 주지는 못했다.

 

 

근처에 있는 "캐노피 넥서스"라는 호텔에 가서 차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기로 했다.  "지나 다리(Jinnah Bridge)" 있는 곳으로 가는데, 따발총을 장착한 군대 차량이 시내를 질주하고 하고 있었다. 겁을 먹은 한 사람이 "카메라 뺃기기 전에 빨리 가방에 집어 넣어라"라고, 식칼을 든 강도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아, 여기가 사람사는 곳인가, 아니면 사람 잡는 곳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내 돈 내고 뭐하는 짓인가?뭐 이런 공포에 휩싸이며 일초일초를 보내야만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하지만 훈자에서 이슬람 아바드로 가려면 교통의 요충지인 길기트를 지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길기트 강가의 캐노피 넥서스는 일층으로 된 호텔 겸 커피 숍이었다. 공포스러운 시내와는 달리, 길기트 강변에 위치한 이 호텔은, 아름다운 정원과 나즈막한 건물이 잘 어울리는 길기트 최고의 호텔인 듯 했다. 다른 곳이 그렇듯 이 호텔에는 손님이라고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호텔 지배인이 다가왔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그는 우리가 그의 말을 알아듣건 말건, 길기트의 위치와 현실을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가 하는 말 중, sectarian strife(종파 분쟁)이라는 말이 들렸다. 역시 수니파와 시아파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오기 한 달 전에 있었던, 피를 본 분쟁을 말하는 듯 했다.

 

 

우리가 호텔 내부를 구경하도록 우리를 안내했는데, 과연 넓은 호텔의 내부는 일류 호텔 못지 않게 잘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호텔이 좋으면 무엇하나? 따발총을 장착하고 도시를 수시로 순찰하는 군인들 속에서 잠이 제대로 오겠는가, 아니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는가? 파키스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강가를 따라 걷기로 했다.

 

 

 

 

 

<우리를 안내한 대학생: 왼쪽에서 세 번째 사람>

 

 

길을 걷다가, 마당에 닭이 놀고 있는 정원이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거기가 바로 무슨 대학이었는데, 학생들은 우리를 보자 대뜸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오랜만에 대학생을 만나 유쾌한 시간을 갖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강을 따라 걸었다. 한 학생이 우리에게 가이드 역할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는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유학왔다고 했다. 그가 이곳으로 유학온 이유는 단지 돈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적은 돈으로 졸업장을 따서, 다시 본국으로 가서 취직을 하겠다고 했다.

 

 

대학을 나온 후 우리는 모든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 넣고 폴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유감스럽게도 마침 그날은 폴로 경기가 없는 날이었다. 폴로 경기장에는 20-30 명이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길기트의 폴로 팀은 파키스탄에서 대단히 유명한 팀이라고 했다.

 

 

폴로 경기장을 중심으로 한 쪽에는 시아파 교회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수니파 교회라고 대학생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여기에서 종교니 뭐니, 시아파니 수니파니 했다가는 그 순간 몸이 찢겨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종파 교회의 건물은 색이 좀 달랐고 건물 위에 장식된 모습이 조금 달랐다. 다른 쪽에 눈을 돌려보니 수니파 교회와 시아파 교회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여름 벼논에 피 섞여 있듯, 도심 여기저기 혼재해 있었다. 저렇게 서로 섞여 으르릉 대니까 상대방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자주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과 작별을 한 후,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을 지나고 민가를 지났다. 사람들이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지만, 말을 걸거나 관심을 보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여행 중 사진 찍는 것이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인 나는, 할 일 없어 하염없이 길거리에 앉아 있는 노인처럼 뒷짐지고 천천히 걸을 뿐이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호텔에 도착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양초 불 아래서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했다. 훈자의 음식과 별 차이가 없었다. 모두들 별 말 없이 식사를 한 후, 각자의 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들어갔다.

 

 

 

 

 

 

 

<호텔에서 바라본 장면>

 

 

 

 

 

 

 

 

 

다음 날 호텔 근처를 산책했다. 주민 몇 사람이 포즈를 취해 주어서 다행히 사진 몇 장은 찍을 수 있었다.  길을 지나던 젊은이들이 뒤를 돌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떤 사람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트럭 아래에는 동네 개들이 모여 숙박업소를 차려 놓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울타리에 플라스틱 병을 줄줄이 매달아 놓고 있었다. 담 너머로 본 민가에는, 각종 농산물이 가득 든 자루가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다시 호텔에 돌아와 정원 의자에 잠깐 앉아 있었다. 이슬람 아바드 영문학 교수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결국은 그와 종파 분쟁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길기트 사람들 자기들끼리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지, 외부인은 친절히 대한다는 것이다. 자기도 이슬람 아바드에서 왔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환영을 받는 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좁은 면적에서 복닥거리며 살면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를 데리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개는 꼭 다른 개만 보면 으르릉 거리지 지나가는 소나 닭을 보고 으르릉 거리지 않는다. 마치 그런 격이다. 자기들끼리 너 죽고 나 죽자는 격이다. 누군가 현명한 사람이 나와 이 매듭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산다. 그래야 관광객도 오고 경제도 좋아진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그 무덤에 자신을 묻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도 생명체는 살아 있고, 또 다시 맑은 물은 흐르기 마련이다. 길기트 어느 하늘에 장미꽃이 보이고 그 너머 파란 하늘이 보였다. 들판에는 노란 보리가 넘실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길기트"가 "길조터"가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2012년 8월 1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