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여행기 13 (파키스탄 8)
"라왈핀디와 이슬람아바드"
2012년 5월 31일 오수 4시에 페리메도우 출발점에서 탄 이슬람아바드 행 버스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달린다. 이제 북 파키스탄의 위압적인 고지대를 벗어나 평평한 저지대인 파키스탄 남부를 여행하게 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드넓은 인더스 강이 흘러간다. 옛날 학교 다닐 때, 인도의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 유역이 4대 문명의 발생지였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는데, 왜 인더스 강이 인도에 있지 않고 파키스탄에 있을까? 파키스탄과 인도가 본래는 한 나라였었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두 나라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더스 강은 옛날에는 인도에 있었지만, 지금은 파키스탄에 있다. 위키 백과 사전에는 인더스 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국 남서쪽 티벳 고원의 눈 녹은 물에서 발원하는 인더스 강은 히말라야 산맥을 가로질러 흐른다. 상류는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잠무와 카슈미르 지방의 카라코람 산맥과 자스카르 산맥 사이의 넓은 단층지대에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북서쪽 방향으로 흐른다. 이후 남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파키스탄 영토를 따라 흐른다. 힌두쿠시 산맥의 남쪽 히말라야를 가로지르는 구간은 험준한 산지 사이로 깊은 협곡이 형성되는데 강과 협곡 주변 산의 고도 차이는 3,600m 이상이다. 페샤와르와 이슬라마바드 사이 구간에서 인더스 강은 카불 강과 합류한다. 인더스 강 유역은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황하와 함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다. 4,000년 전 이곳에 도시가 세워졌고, 구운 벽돌로 지은 집, 포장된 도로, 하수구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인터넷 사전 인용>
<"다수"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수퍼마켓>
출발한지 두 시간이 지나서 "다수"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는데, 현지인들이 외계인 바라보듯 놀람과 신기함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수 많은 파리가 식당에서 무전 취식을 하고 있었고, 때가 꾀죄죄하게 묻은 옷을 입은 소년 종업원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음식 나르기에 바쁘다. 식탁에 둥근 통이 놓여있고 꼭지를 틀면 그 통에서 물이 나왔다. 물은 본인이 따라 마시는 것인가보다 생각을 하는데, 웬걸, 옆에 있는 현지인이 그 물로 손을 씻는다. 그런 다음 음식을 손으로 먹기 시작한다. 불결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가 상추쌈을 먹을 때, 서양인이 옆에서 지켜본다면 마찬가지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이나 우리나 뭐 도찐개찐이라는 생각을 했다.
장거리 버스이어서 그런지 이 차의 운전수는 3 명이었다. 3 명이 번갈아 가며 밤을 새워 운전하였다. 이 길을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우리 버스는 자가용을 뒤로 제치고 시속 100키로 이상으로 달렸다. 본래 이슬람아바드까지 18시간 걸린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이슬람아바드에 도착한 것은 16시간 30분이 지난 오전 6시 반이었다. 길기트에서 이슬람아바드까지 요금은 2100루피(33,000원)이었다.
호텔 바로 앞에는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나와 쉬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공원에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돌아다녀 보면, 내가 상대방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기분이 더 좋다. 이런 것은 남녀간에도 그럴 것인데,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내가 좀 잘난 것 같기도 해서 좀 뻐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으려면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옛날에 상담부장을 할 때, 젊은 선생님들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저를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합니까?" 뭐, 그분들이 해답을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하겠는가? 답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서로가 좋아하는 사람끼리 결혼하라." 하지만 차선책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나는 평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라왈핀디의 어느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한 남자가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더듬거리며 하는 말투로 보아 어디서 한국 말을 좀 배운 듯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북한에서 몇 년 살다 왔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파키스탄은 북한과 남한 동시 수교국이라는 사실이 떠 올랐다. 내가 북한에 대해 물어보자,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못산다는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내가 묻는 모든 말에, "No comment"라고 말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마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듯 했다.
좀 부유한 동네인 듯한 곳이 있었다. 들어가도 좋은지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 아줌마 몇 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건장한 남자 몇 명이 다가와 왜 여기에 왔으며, 어디로 들어 왔으며, 무엇하는 사람인지 따져 물었다. 나는 한국관광객이며,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들은 여기가 제한구역이며 허가받은 사람만 올 수 있다고 나에게 겁박을 주는 어투로 말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나는 꽁무니를 슬슬 빼서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왔다. 이 사람들이 괜히 겁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파키스탄을 활개치고 다니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로 호텔을 향해 걸었다.
한 여자 아이가 나무 꼬챙이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냄새는 고약하게 나오는데, 무슨 쓰레기를 고르는가 가만히 보았더니, 휴지를 골라내고 있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것을 골라낸 후 말려서 폐휴지로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냄새 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젖은 휴지를 골라내는 소녀를 보면서, 가난이 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 나를 부르더니 짜파티를 한 잔 주었다.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자기 형도 부르고, 어머니도 불러서 나를 소개했다. 그는 자꾸 내 카메라를 보면서 얼마짜리며, 어디에서 만들어 졌는지, 중고 카메라는 얼마면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카메라 가격이 그가 살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지를 알았는지, 그는 계란을 깨서 후라이 팬에 넣으면서 한숨을 지었다. 자기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달라면서 폼을 잡는 그의 사진을 몇 장 찍고, 식당문을 나섰다. 그는 내일 아침에도 여기를 올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올 수 있다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나는 그 다음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에 대한 나의 정성은 그리 크지 않아, 결국 그 집을 다시 찾지는 못했다. 나보다 잘 되거나 잘 사는 사람과의 약속보다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되새기면서, 다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에 food savour(음식의 맛)이라는 식당가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한국식으로 방바닥에 앉아서 먹는 집이었다. 갖가지 음식이 너무 많이 나온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술도 없이 고기만 먹으려니 목이 막혀 잘 들어가지 않았다. 물과 고기를 먹자니 목이 맹숭거려서 또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대로 술 먹을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 좋은 나라다. 나중에 신체가 망가지건 말건 먹을 때는 쌔려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음식이란, 음~ 하면서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가야 비로소 음식이 되는 것이다.
<food savour 라는 식당>
파키스탄의 수도는 1959년까지는 카라아치였다. 1959-1970년까지는 라왈핀디이었고, 이후는 이슬람아바드가 수도이다. 사실 라왈핀디와 이슬람아바드는 붙어 있다. 육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의 강남과 강북처럼, 부자 동네인 이슬람아바드와 가난한 동네인 라왈핀디로 나누어진다. 복닥거리는 라왈핀디를 벗어나면, 갑자기 넓은 초록색 공간이 많고 시원스런 이슬람아바드가 나타난다. 단 몇초 사이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생활환경이 바뀐다. 지옥과 천당이라고 할 정도로 두 도시의 대비는 뚜렸하다.
<간판을 주목하라>
이슬람아바드의 가장 큰 명소는 Shah Faisal Mosque이다. 마갈라 언덕에 자리잡은 이 모스크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로 10만명이 한꺼번에 기도할 수 있다고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Faisal 왕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네 곳에 88미터의 뾰죽탑이 하늘을 찌르고, 교회 안의 천장의 높이가 40미터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건물의 옥상까지는 올라갔지만, 본관은 문이 닫혀서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기에서도 성가실 정도로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이 많은데, 관광객이 얼마나 없으면 이렇게 우리에게 구름처럼 몰려드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 한 마디로 파키스탄 사람들 참 안 됐다. 이 시리즈를 쓰면서 몇 번 말하지만, 누군가 빨리 나서서 관광객이 마음놓고 다닐 수 있는 파키스탄을 만들어야 한다.
모스크 뒤에 있는 마갈라 언덕에 오르면 이슬람아바드가 훤히 보인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마침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파키스탄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길에서는 원숭이가 쑈를 하고 있었고, 이상한 악기를 불면서 관광객을 유인하는 사람도 보였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서양 관광객을 여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다. 그런데 그들조차도 동양계 캐나다인이었다.
다음 날 다시 찾은 라왈핀디 시장. 개, 원숭이, 염소를 몰고 가는 세 사람을 본다. 분명 어딘가에 가서 동물 쇼를 할 것이다. 사람은 똑 바로 걸어갔으나 동물들이 궁뎅이를 씰룩거리며 걷는 것이 흥미롭다. 돈을 좀 지불하고 그 쇼를 구경했었어야 했다. 기회가 지난 뒤에 오는 것이 후회라는 것인가? 다시는 이런 후회를 하지 않기로 결심해 본다.
파키스탄에는 당나귀가 많다. 파키스탄의 경제는 당나귀 경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나귀가 수송량의 일정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조그만 당나귀가 당당 거리며 거리를 달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K형은 노새도 있지만 버새라는 것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새는 처음 들어본다.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아이패드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씌여 있었다.
*노새: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의 잡종
암소와 수퇘지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매기라고 했다. 인간, 참 너무 잔인하다. 소와 돼지가 저절로 교배를 하겠는가? 얼마나 잔인하게 굴어야 그들이 교배를 하겠는가? 그것도 어디 한두 번으로 매기가 태어나겠는가? 인간들, "밥 지랄"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그렇지만 수탕나귀, 암탕나귀, 수퇘지, 수말 ~~~우리말 참 어렵다.
농산물 시장에 들어갔다. 서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날리다. 여기 파키스탄 여자들은 절대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 남자들은 아무나 찍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가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니 일단은 허락을 맡고 찍는 것이 좋다. 특히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람은 반드시 찍기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들에게 수염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 하다.
그날 밤 우리는 콘티넨탈 호텔에서 비프 스테이크를 먹었다. 사실 나 자신도 이런 고급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 여러 개의 칼이 나오면 어떤 칼을 어디에 쓰는지조차도 잘 모른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비프 스테이크인가? 아마 먹어본지 10년은 넘을 것이다. 연애할 때 괜히 잘난 척하고 먹어 본 비프 스테이크가 아니던가? 같은 값이면 생선회를 먹는 것이 나의 습관이다. 이런 고급 호텔에서 비프 스테이크를 먹는 것이 무슨 배낭여행이냐고 누가 한 마디 했다. 이것은 배낭 여행이 아니라, 배신 여행이며 낭비 여행이 아니냐고 누가 받아쳤다. 이것은 낭만 여행이라는 말도 들렸다. 때로는 파격이 필요한 것이라고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밖에 나오니 "Pearl-Continental" 호텔 위에 보름 달이 둥그렇게 떠 있었다. 달을 보니 문득 노래 하나가 떠 올랐다. 나는 속으로 노래 부르며 이국땅 파키스탄의 밤 길을 터벅 터벅 걸었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 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2012년 8월 13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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