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여행기 14 (파키스탄 9)
"탁실라"와 "페샤와르 가는 길"
*탁실라(Taxila)는?
"불교미술의 발상지인 간다라 지방의 중심지 탁실라는 라왈핀디 북서쪽 35km 지점에 있다. 고대 상업도시 유적으로서 1913년부터 10년에 걸쳐 영국의 고고학자 J.H. 마셜 등이 발굴하였다. BC 6세기∼BC 4세기에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Achaemenian)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BC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침입하여 헬레니즘 문명이 전파되었다. BC 3세기에는 마우리아 왕조가 들어와 불교문명을 전하였으며, BC 2세기 무렵에는 그리스문명, 1세기에는 쿠샨 왕조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번성하였다. 그러나, AD 455년경 White Huns에 의해서 침략당함으로서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Jaulian에서는 불에 타서 검게 된 나무 창유리를 볼 수 있다. " <인터넷에서 인용>
<탁실라 가는 길>
2012년 6월 2일 탁실라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탁실라 박물관 입구에는 파란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정원이 아름다운 박물관에는 간다라 미술품이 잘 전시되어 있었고,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었지만, 마음 착한 (아니 팁을 기대하는) 가이드는 몰래 몰래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 주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사진을 찍어서일까, 잠시 뒤에 나타난 책임자는 금지구역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노발대발 괴성을 질렀다. 하여튼 몇 장이나마 여기에 올리는 사진은 재수가 좋아서 촬영된 사진이다.
<탁실라 박물관>
<방문 온 학생들>
박물관을 나와 맨 처음 방문한 곳이 위 안내판에 나온 시르캅이라는 유적지다. 넓은 들판에 돌로 쌓은 기저만 남아 있을 뿐,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몇 사람은 나무 밑에서 쉬며 잡담을 했고, 몇 사람은 용감하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역사의 흔적을 탐구하였다.
이후에도 Bjir Mound, Dharma Rajika, Jandial, Mohra Moradu, Jaulian 등 유적지가 25평방키로에 걸쳐서 방대하게 널려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로 입구까지 가서 유적지에 들어가지 않고 쉰 사람이 반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은 모두 따라가서 구경은 했다. 그러나 나에게 유감스럽게도 언덕만 남았거나, 돌무더기만 남았거나,아니면 머리나 다리가 잘려나간 흙으로 된 사람의 모습이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 유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의미있는 방문지이었을 것이다. 그날따라 날이 더워서, 빨리 라왈핀디의 켄터키 치킨 집에 가자는 사람도 많이 있었는데, 어떻든 구경할 곳은 모두 구경하고 라왈핀디로 돌아왔다. 여기 저기서 찍은 아래 사진을 참고하길 바란다.
구글 지도의 위용: 위의 지도와 아래의 지도를 참조해 볼 것. 날이 더워서 위에 있는 큰 나무 밑에서 한참 쉬었다. 아래 구글 지도에서 이 나무가 선명하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돌로 된 건축 기반도 선명히 보인다.
<사람들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수로에서 수영을 한다.>
모라 모라두라는 곳에서 입장료를 내는 데, 거스름 돈이 없다고 했다. 종업원은 나올 때 주겠다고 우선 들어가라고 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나오면서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그 돈을 팁으로 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을 하면서 돈을 내 놓으라고 다그쳤다. 그는 웃으면서 실실 피했다. 나는 그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결국 나는 제풀에 깎여서 돈을 받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떴다. 일단 내 손에서 나간 돈은 내 돈이 아니다! 파키스탄이 이런 나라다!
날이 더워서 수박을 사 먹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달려들어서 수박장사가 좀 정신이 나갔는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수박을 사고 돈을 지불했다. 수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되돌려 받고, 다른 것을 골르려다가 다시 그 수박을 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수박장수는 분명히 돈을 받았다고 수박 값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우리는 받지 않았으니 줘야 한다고 우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참을 옥신각신 하다가 그래도 돈을 주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서, 받지 않으려는 수박장수에게 억척스럽게 돈을 건네주는 기쁨을 맛보았다. 수박장수는, "별 미친 놈들 다 보겠네. 돈을 두 번 씩이나 주다니! 어머 오늘 재수 좋은 거"라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휘파람을 불었을 지도 모른다.
*탁티바히
"대표적 간다라 불교유적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키스탄의 탁티바히(Takht-i-Bahi) 유적이 지난달 초 강타한 대규모 강진과 인근 채석장의 발파작업으로 붕괴위기에 처해있다. 일본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 10월8일 1만8000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파키스탄을 초토화시켰던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으로 탁티바히 불교유적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벽이 기우는 등 붕괴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구호 손길이 필요하다'고 지난 6일 보도했다.(2006년 11월 13일 불교신문)"
<탁티바히 가는 길>
<탁티 바히 입구>
탁티바히는 잉카 유적지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를 섞어 놓은 듯한 불교 유적지였다. 찌는듯한 더위를 무릅쓰고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절터에 들어갔다. 위압적인 돌 바닥과 돌 벽이 한때를 풍미했을 이 절의 위풍당당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로운리 플래니트에 따르면, 이 절은 1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번창했으며, 그 이후로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영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1907년부터 1913년에 발견, 복원되었다고 한다. 35개의 탑과 30개의 기도실을 갖추고 있던 절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유물은 페샤와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승방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신기했는데, 내부에는 식당, 기도실, 부엌, 물탱크의 흔적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안내원이 땀을 팥죽같이 흘리면서 따라 다니고, 또 경비원인지 뭔지 또 다른 사람이 총을 들고 따라 다닌다. 팁을 주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산 비탈 한 쪽을 거의 다 차지한 이 절터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 규모가 위압적이라는 것이다. 거의 허물어지고 남은 것이 이 정도라면, 온전히 남아있을 때의 이 절은 얼마나 많은 승려와 방문객이 있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절터가 있다고 하니, 이 일대가 거의 다 유적지가아닌가싶다. 로운리 플래니트에 의하면 이곳이 Mardan 이라는 도시에 속해 있는데, 이 도시를 중심으로, 아쇼카 왕의 포고문이 새겨진 바위가 있는 Shahbaz Garhi, 일출 일몰 때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Jamal Garhi, 카시미르 동굴이라는 뜻을 가진 Kashmir Smats 등 유적지가 즐비하다고 한다. 하여튼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는 왜 이리 볼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버스를 따라온다.>
얼마를 지나자 카불 다리가 나타난다. 개불이 아니라 카불이라. 아프간 내전에 관한 방송이 나올 때 많이 들어본 지명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에 거의 다 왔다는 뜻이고, 이는 페샤와르에 다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보이고, 먼지나는 길에서 크리켓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석양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오후 늦게 페샤와르에 도착했다. 호텔 주인이 반갑게 맞이하며, 우리 일행을 하나하나 찾아 다니면서 악수를 청한다. 외국 관광객이 없는 와중에 찾아 주어서 반갑다는 뜻이리라. 페르시아 어로 "고지대의 요새"라는 뜻을 가진 폐샤와르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첫 밤을 지내며 다음 날을 기다려 본다.
(2012년 8월 14일 작성) |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6 "페샤와르에서 머리로" (파키스탄 11) (0) | 2012.08.16 |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5 "페샤와르" (파키스탄 10) (0) | 2012.08.16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3 "라왈핀디와 이슬람아바드" (파키스탄 8) (0) | 2012.08.13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2 "페리 메도우" (파키스탄 7) (0) | 2012.08.12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1 "길기트에서의 1박 2일" (파키스탄 6) (0) | 2012.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