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사람들이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여행기 16 (파키스탄 11)
"페샤와르"에서 "머리(Murree)"로
2012년 6월 5일 아침, 미련과 아쉬움을 간직한 채, 아침 햇살 따갑게 비치는 페샤와르를 떠난다. 한적한 길거리에는 드문드문 다니는 트럭 이외에는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싸구려 목걸이를 파는 꼬마 행상이 유리창 너머로 보인다. 목걸이 몇 개 팔고서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인다.
카불 강가에 왔다. 멀리 고성(古城)이 보이고, 강가에는 몇 척의 배가 사람들을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복만씨의 친구를 만난다. 그가 한국에 노동자로 왔을 때, 복만씨와 만난 이후 계속 친구로 사귀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 동안 세월이 흘러 대머리가 되었고, 살도 찔 만큼 쪘다. 한국말을 하다가 파키스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말 많이 잊어 먹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말 잘 했죠."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와 지금은 파키스탄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다.
<복만씨와 복만씨 친구(오른쪽)>
중간에 시크 교도 성당을 들리려고 어떤 도시에 들어갔다. 어렵게 찾아갔으나, 외부인은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냥 발길을 돌렸다. 분수(噴水)가 동네 공동 수영장이 되었다. 남자아이들이 노는 곳에 여자 아이도 같이 논다. 날은 덥지, 비는 오지 않지, 더위를 피하는 현명한 방법이 바로 마을 수영장에 뛰어드는 것이리라.
라왈핀디에 도착한다. 라왈핀디는 머리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다. 지난 번에 먹다 남겨 놓은 맥주를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들른 곳이다. 본래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이므로 술을 먹을 수 없다. 하지만 훈자 사람들은 오디로 술을 담가서 마신다. 여기 이슬람아바드에서는 내국인은 술을 살 수 없지만, 외국인은 술을 살 수 있다. 담당 관청에 가서 허가증을 받아, 호텔에 가져가면 호텔에서 맥주를 판다.
며칠 전에 호텔에서 맥주를 사서 가지고 나오다가 길에서 경찰에게 걸렸다. 외국인이지만 허가증을 받지 않고 술을 샀기 때문이다. 결국은 복만씨와 경찰 간에 승강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많이 오갔는데, 결국은 잘 해결되어서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내가 허가증이 없으면 술을 팔지 말아야지, 허가증이 없는 사람에게 술을 판 것이 잘못이다. 나를 처벌하려면, 허가증이 없이도 술을 판 사람도 같이 처벌하라."라고 복만씨가 경찰에게 말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막상 술을 사려고 호텔에 들어갔더니, 복만씨를 빼고는, 술을 사는 사람은 모두 다 파키스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외국인게만 판다는 술을 어떻게 그들이 사는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겉으로는 술의 판매를 금지시키고, 권력이나 돈이 있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술을 사 먹고 있다는 방증(傍證)이 된다. 어디가나 돈 많고 빽있는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 이 세상이라는 놀이터다. 놀라운 것은, 이 맥주가 수입맥주가 아니라 파키스탄 맥주다. 술을 엄격하게 금지하면서도 맥주 공장이 있는 나라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지난번 우리를 경호했던 페샤와르의 경찰들도 "다음에 올 때는 술 좀 가져와라"라고 말했다는 복만이의 말이 생각난다.
파키스탄에 있을 때, 망고를 많이 사 먹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여기의 망고 값은 한국의 약 1/1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망고 속에는 굵은 뼈가 들어 있어서 먹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깎아서 칼로 조각 내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되면 손에 망고 물이 묻고, 나중에는 뼈에 붙은 과일은 반도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알게 된 망고 먹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망고 한 가운데를 뺑 돌아가며 칼로 돌린다. 2) 망고 양쪽을 두 손으로 잡고 뼈와 살이 분리되도록 살살 돌린다. 3) 약간 돌아갔을 때 양쪽을 잡고 분리시키면 뼈와 살이 깨끗하게 분리된다(물론 한쪽은 뼈가 들어 있다.) 4) 작은 숟갈로 속을 파내어 냠냠 거리면서 맛있게 먹는다. 우리는 이런 방법을 알고난 후에는 매일저녁 배가 터지도록 망고를 먹으면서 만고강산을 노래했다.
<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워 놓았다고 구박을 받던 세 명의 꼬마가, 웃음을 지으면서 멀리 사라졌다.>
<머리로 올라가는 길>
머리에 가까이 오자 버스는 굉음을 내면서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얼마를 올라갔는지 시원해 지기 시작하였고, 양탄자를 파는 사람에서부터 우산,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차만 멈추면 달려 들었다. 천연색 우산이 산 중턱에 걸려있는 것이 신기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툭하면 비가 내리는 곳이었다.
<우리가 묵은 이슬람아바드 뷰 호텔>
머리는 우리나라의 평창이나 대관령 또는 진부령처럼 지대가 높아 시원한 곳으로, 전국에서 특히 라왈핀디와 이슬람아바드에서 피서를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가운데 큰 길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길이 연결되어 있는데, 산 중턱과 꼭대기에 호텔을 지어 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수 많은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에 질세라 길가에 앉아 있는 사람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삶이 고달픈 어떤 소년: 쓰레기를 주우러 돌아 다닌다.>
어디에서 함성과 함께 북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슨 노동자 파업이라도 하는지 궁금했는데, 이들이 하는 것은 자연보호 캠페인이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다니면서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피켓을 휘둘렀다. 조용한 자연보호가 아니라 산천을 뒤흔드는 함성과 피켓 물결의 자연보호였다.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식당에서 만난 카라아치에서 온 신문기자. 그는 파키스탄의 지역적 다양성을 좋아한다고 했다.>
<낡아빠진 트럭을 타고 가던 운전수와 조수가 나를 바라본다. 어디서 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우리가 묵은 호텔 아래쪽에 있는 광경>
<호텔에서 바라본 머리의 일면>
다음 날 핀디 포인트라는 곳으로 향했다. 말을 타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걸어서, 다시 케이블 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볼 것이라고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케이블카를 타보는 것이 체험이라면 체험이었다. 권유에 못이겨 총을 쏴보았는데, 군대에서의 사격 솜씨가 아직도 살아있는지 여러 번 명중시켰다.
사격 요금을 낸 후, 가이드 복만씨가 사격장 주인과 무슨 말을 하더니, 내가 낸 금액의 반을 환불받았다. 환불받은 내막은 이러했다. 내가 돈을 낸 후, 주인이 파키스탄 사람에게 말하기를 "파키스탄 사람에게는 금액의 반만 받을테니 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복만이가 왜 우리한테는 두 배를 받는지 따졌더니, 환불해줬다는 것이다. 주인이 얼마나 황당해했겠는가? 파키스탄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자기네끼리 말한 것을, 복만씨가 알아듣고 할인을 요구했으니 참으로 민망했을 것이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나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아서, 함부로 한국말로 외국인 욕했다가는 낭패볼 수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파키스탄인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내가 휴대하고 있던 소니 녹음기(Sony recorder)를 꺼내 녹음하고 있다. 아래 화살표를 여기에서 녹음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같이 음악을 듣고 있던 한 소녀가 기도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이런 차를 프램(pram)이라고 했다. 실제로 물건을 나르는데 사용도 하지만, 쓸 데 없이 그냥 타보기도 한다.>
<새벽에 동네를 돌다가 찍은 머리 사진>
<동네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 모여든다.>
<염소를 잡아 파는 집 앞을 지나갔다.>
사실 머리에서는 구경할 것도 없고,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잠이 잘 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넋 놓고 쉬었다가 오는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구경하기 힘들고, 파키스탄 사람들이 전국에서 피서하러 모여드는 곳이다. 낮에는 낮잠이나 실컷 자다가, 해가 저물 때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그들을 보며, 밤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왜? 멀리 머리까지 와서 머리 굴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16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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