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샤와르 이슬람 대학>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여행기 15 (파키스탄 10)
"페샤와르"
페샤와르는?
"불교가 융성했던 이곳은 998년에 터키계 무슬림에 점령되면서 이슬람화되었고, 16세기에 무굴 제국의 악바르에 의해 '변경 도시'라는 뜻의 페샤와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 뒤 1838년 시크 왕국에 점령되었으며, 1849년에는 제2차 시크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이 도시는 아프간, 페르시아, 그리스, 마우리아, 스키타이, 아랍, 투르크, 몽골, 무굴, 시크와 영국등 많은 세력들에 의해 다스려져 왔다. 페샤와르는 옛부터 동서 교역로인 비단길의 주요 거점 도시 가운데 하나였고 다양한 문명의 교차점이었다. 간다라 왕국의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교통 요충지로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인터넷 인용>
<페샤와르의 위치: 파키스탄의 서부 국경 도시다>
2012년 6월 3일, 파키스탄의 국경도시 페샤와르에 도착하였다. 저녁에 로비에서 어슬렁거리는데, 경찰관과 복만씨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후에 물어보니, 이런 곳에 오면서 왜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안전 문제를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등을 물었다고 한다. 우리가 페샤와르에 온 것을 어떻게 알고 경찰관이 호텔에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아마 호텔에서 경찰에 연락을 했으리라고 추측을 하고 있었다. 다음 날 경찰에서 호위를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보니, 우리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페샤와르 시내: 우리가 묵은 그린 호텔에서 바라본 페샤와르>
<우리가 묵은 그린 호텔의 경비>
<아침에 거리를 돌아다녔다.>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복만씨의 말을 무시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다른 파키스탄 동네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사람들이 좀더 유심히 나를 쳐다보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틀림없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관광하기에 위험하다면, 적어도 일년에 몇 차례씩은 관광객이 살해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질 터인데, 그런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위험하다는 말은 과장된 경우가 많다고 스스로 판단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길가에는 음식을 파는 집이 많이 있었다. 새우젓 비슷한 음식을 파는 집이 있었고, 장아찌 같은 것을 파는 집도 눈에 띄었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빵을 구워 파는 집이었다. 약 40분간 동안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데, 붉은 수수밭을 연상시키는 장식용 갈대가 아침 햇빛을 받아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리 풍경>
<우리를 호위한 경찰: 모두 4명이었다.>
이슬람아바드에서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이 귀국을 한 상황이었으므로, 우리 일행은 현재 10명이 조금 넘었다. 이 사람들을 호위하려고 다음 날 경찰 차 한 대가 왔는데, 그 차에는 베레모를 쓴 경찰 네 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경찰 차가 앞서 가고 그 뒤를, 우리를 태운 버스가 따라갔다. 첫 목적지는 이슬람 대학이었다. 경찰들은 흔히 영화에서 보는 보디가드처럼 위압적이고 카리스마가 스며 나오는 표정으로, 우리 앞에서 알짱거린다든지 중간에 끼어드는 차들을 소총으로 비키라고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벌떡 일어나서 다른 차들을 향하여 인상을 쓰며 비키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마음이 심란했다.
<페샤와르 시내 방문 순서도>
<이슬람 대학>
처음에 간 곳이 이슬람 대학이다. 1913년에 설립된 이슬람 대학에 있는 빅토리아 건물과 시계 탑은 대단히 유명해서, 1000 루피 지폐에도 나오는 건물이라고 한다. 과연 지폐에 나올 만큼 건물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여기가 영국의 어떤 도시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 건물 앞에는 넓은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에는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의실과 연구실, 도서실, 식당, 정원, 운동장 등이 잘 갖춰진 훌륭한 학교였다. 캠퍼스를 한 바퀴 도는데, 흰옷을 입은 학생들이 웅성거리기도 하고 분주히 움직이기도 하면서 우리를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여학생들은 많지 않았고, 그들은 모두 온몸을 가리고 얼굴에는 히잡을 두르고 있었다. 학교 건물이 아름다워서, 외부 관광객이 오면 자주 들르는 관광명소인 듯 했다.
이슬람식 흰 옷을 입은 학생들이 달려들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하기도 하고, 먹을 것을 사서 우리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휘파람을 불어 우리를 환영하기도 했다. 가방을 든 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대부분이 책 한 두 권만을 갖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수 없이 많은 질문을 해댔고, 그 질문 중에는 여지없이 파키스탄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느냐도 들어 있었다. 어떤 학생이 하는 영어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어떤 학생의 영어는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툭하면 하는 말은, "Do you understand me?"였다.
<경찰,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자 중학생들이 연예인 따라 다니 듯, 대학생들이 우리를 따라 다니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괜히 우쭐대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놀랍게도 검은 옷을 입은 여자 대학생 두 명이 운동장을 건너와 말을 걸어 왔는데, 그들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이슬람 복장을 한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대학 도서관>
도서관에 갔다. 책들은 대체로 낡고 오래 되었었다. 컴퓨터도 있었으나 구식으로 보였고, 장서도 그리 많지 않은 듯 했다. 학생들은 책을 보면서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고, 웃기도 하고 책을 열심히 보는 척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우리를 보고 싶은 욕망이 그들의 얼굴에 잘 씌여져 있었다.
<식당>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학생들의 질문이 하도 많아서 제대로 밥도 먹을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손을 흔들며 괴성을 지르고, 식사하는 우리 주위로 몰려와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선 글라스를 낀 한 학생은 마이클 잭슨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가 연예인이라고 자랑하기도 하였다. 일부 학생은 싫다고 해도 초코렛을 사서 건네 주기도 하고, 자신의 이메일을 적어주며 나의 이메일 주소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하여튼 밥이 어디로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보내다가, 쌀 두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언덕을 오르는 머슴처럼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식당을 빠져 나왔다.
훈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니 여기서는 더 했는데, 여기에서 내가 느낀 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그들의 목마름이다. 파키스탄이 위험하다고 소문이 나서 외국인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를 보았으니 여러 모로 호기심이 발동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아마 우리 나라 어떤 대학에 외국인 몇 사람이 들어온다면, 소가 닭 바라보듯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우리를 태우고 갈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중학교, 고등학교, 또 여러 대학이 넓은 캠퍼스에 함께 있어서 실제 이곳에 있는 학생은 대단히 많다고 했다. 고등 학교 수학선생님이 나타나서 학교를 소개해 주더니, 우리 모드에게 음료수를 사 주셨다. 사실 그들의 입장으로, 아니 그들의 봉급으로 이런 대접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마움은 몇 배가 되었다.
다음으로 간 곳이 박물관이다. 부처의 삶을 묘사한 석상 또는 동상에서부터 큐피드나 헤라클레스의 영웅들을 묘사한 상까지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간다라 예술품이 바로 이 페샤와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입장료 이외에 조금만 돈을 더 내면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있어서 내가 찍고 싶은 전시품은 거의 다 사진을 찍어 왔다. 몇몇 작품 사진이 아래에 나열되어 있다.
<박물관>
문제는 박물관에서 나와서였다. 그날 온도가 40도는 되었을텐데, 주차장에 차양막이나 그늘이 없어서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완전히 태양에 노출되어 있었다. 자동차 안에 들어가니, 실내의 온도는 45도는 된 것 같았다. 자동차를 탄지 30초도 되지 않아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약간 어둑어둑한 실내에, 끝없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얼굴이 범벅이 되어 번득였고, 눈만 희미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적군을 무찌르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적진을 향해 떠나는 유격대원처럼, 이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이 각자의 눈망울에 심어져 있었다.
사실 파키스탄은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길기트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페샤와르는 정말로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파키스탄이 위험하다는 지금까지의 말은 모두 "뻥"이었고, 이곳에서의 위험은 진짜라고 느꼈던 것이다. 위험이 몸에 바짝 다가온 판국에 더위가 뭐 대수겠는가? 더울테면 더워봐라, 어디 까물어치기는 해도 죽기야 하겠는가, 라는 심정으로 혹독한 열기를 견디어 냈던 것이다.
<올드 타운 내의 사원>
올드 타운에 다 왔으니 내리라는 말을 듣고 내렸으나,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는 복잡한 시장 한 가운데였다. 뭇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흥분된 상태로 골목으로 들어갔다. 보석이며, 시계 등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좁은 길에서,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Hello, How are you?" "Where are you from?"등 한 마디씩 큰 소리로 해댔다.
어떤 사원에 들어갔는데, 넓은 홀 가운데에 큰 샘이 있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걸어다니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날은 덥고, 사람들은 바라보고, 어디서 우리를 납치해가지 않을지 걱정도 되고, 별별 생각이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비록 위험하다 해도, 우리는 여기에서 각자 흩어져 마음대로 구경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이 앞뒤로 지켜서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는 대통령에나 걸맞는 밀착 경호를 받아야 했다. 구름처럼 따라다니는 꼬마들을 뿌리치고, 우리의 선두를, 엄마 오리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처럼 쫓아 다녀야 했다.
<올드 타운 시내>
< 100살이 넘는다는 할아버지>
어느 집에 갔는데, 어둑컴컴한 곳에 100살이 넘는다는 노인이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노인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노인의 손을 만져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하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내가 얼핏 보기로는 노인은 산 송장이나 다름 없이 보였으며, 사람들이 이 노인을 잘 모시기보다는 죽게 내 버려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 노인의 발음이 또렷하고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고 한다.
<아이들이 졸졸 따라 다녔다>
호텔에 돌아오는 중, 동네에 있는 어떤 시장에 잠깐 들렀다. 여기서도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우리를 따라다녔다. 경찰들은 우리가 일찍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호텔로 돌아오면서, 정말로 이곳이 그렇게 위험한 곳인가? 아무리 위험해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가, 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여튼 단체 생활을 해야하니, 어쩔 수 없었지만, 남모르게 택시를 타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내를 활보하고 싶은 생각이 구름같았다.
<그린 호텔 내부>
<다음 날 아침 산책 중 찍은 사진>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더 멀리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두 사람이 말에 흙을 싣고 가고 있었다. 말인지, 당나귀인지, 노새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른 새벽에 흰 빵모자를 쓰고, 회초리를 들고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멀리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었고, 가방을 메고 어딘가를 가는 꼬마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로운리 플래니트에서 소개하는 두 곳, 밀수시장과 카이버 고개: 우리는 가보지 못했다.>
호텔에 돌아와 로운리 플래니트를 꺼내 보았다. 위험은 하겠지만 안내자와 함께라면 갈 수 있다는, 밀수 시장과 카이버 고개를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었다. 전자 제품에서부터 옷, 문방구, 심지어는 총이나 아편까지도 판매한다는 시장이 바로 이곳이다. 파키스탄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물건이 갔다가 다시 파키스탄으로 밀수되어 들어오는데, 세금을 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너무 많은 세금이 빠져나가서, 정부에서 한 번은 이곳을 불도저로 밀었는데, 다음날 그곳을 지키는 경찰이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카이버 패스까지는 허가서를 받고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가 볼 생각은 없다. 위험을 자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무엇하러 거기까지 가겠는가?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티벳이나 파키스탄 북부를 다녀온 나로서는 그곳의 볼거리가 그리 대단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지 말라는 곳은 더 가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언제 다시 그곳에 가볼 것을 기대해 본다.
*오늘 이 글에서 "위험"이란 단어가 17번 쓰였다!
(2012년 8월 16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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