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여행기 12 (파키스탄 7)
"페리 메도우(Fairy Meadow)"
2012년 5월 30일 아침 10시 길기트를 출발하여 페리 메도우(Fairy Meadow: "선녀의 목장"이라는 뜻)로 향했다. 포장 도로와 비 포장 도로가 번갈아 나타났고, 가끔 가다 주인도 없는 소떼가 거리를 따라 걷기도 했다.
얼마나 갔을까? 모든 차들이 멈추어 있었다. 산 위에서 굴러온 돌이 도로를 가로막고 있었고, 그 돌 위에 트럭이 반쯤 누워있었다. 차안에 있던 사람들이 내려 돌을 제거하는 작업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관심을 끈 것은 현란한 치장을 한 트럭이었다. 사실 트럭을 치장하는 것이라면 네팔의 트럭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 트럭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온갖 꽃단장을 하고 운행하고 있었다. 하기야 겉만 요란하지 여기 트럭들이 달리는 것은 아마 시속 10키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덜덜 거리면서 낮이고 밤이고 달리고 또 달린다. 보라, 저런 온갖 괴상한 방울이며, 빤짝이며, 막대기를 달고 다니니 운전수가 어디 앞을 볼 수나 있겠는가?
멀리 라이코트 다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쪽에 페리 메도우로 가는 지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가 오후 1시 20분이었다. 각자의 배낭에 있던 라면을 꺼내 큰 코펠에 넣어 삶았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먹을 수가 없어서, 세 번에 걸쳐서 끓였다. 본래가 라면이 맛있는 음식이지만, 타국에 가서 먹는 라면 국물 맛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끝내준다.
드디어 두 대의 지프차에 나누어 타고 우리는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은 완만한 길로 오르더니 점점 경사가 높은 길로 굉음을 내며 차는 달렸다. 우리는 차로 가지만, 더러는 도보로 가는 원주민도 보였는데, 이들은 하루 종일 걸어야 목적지인 마을에 도착한다고 한다.
두 대의 차가 서로 비켜 갈 수 없는 좁은 길이다. 길 아래로 수백 미터 길 위로 수백 미터인 이 좁은 길을, 지프는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달린다. 어떤 사람은 대담하게 길 아래를 보고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길 바닥이나 길 위에 있는 절벽을 보고 간다. 현기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손잡이를 너무 세게 잡아서 인지 어깨가 뻐근하고 팔뚝에 알통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 조이고 피를 말리며 달리기를 한 시간 반, 동네 아이들이 달려드는 한 마을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을까 싶어 달려드는 것 같았으나, 정신이 반쯤 나간 우리 일행은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갈 뿐,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을 앞 길은 너무 험하여 모두들 차에서 내렸고, 자동차는 사람 없이 홀로 올라갔다. 최근에 비가 왔는지 산에서 흙탕물이 폭포처럼 내리 쏟고 있었다. 돌밭인지 길인지 도저히 분간도 안되는 지뢰밭 같은 험난한 길을, 자동차는 뒤퉁거리며 전진해 갔다. 조금만 운전대를 잘못 돌리면 여지 없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겠지만, 경험 많은 운전수는 돌이 산재한 좁은 물길을 능수능란하게 빠져 나갔다.
이 지점부터 걸어 올라가는 사람과 말을 타고 가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나는 말을 타고 갔다.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사람을 태우고 갈 수 없는 곳은 내려서 걸었다. 마부는 감자 자루를 들고 가다가, 말을 탄 나보고 들고 가라고 했다. 비록 말을 타고는 가지만 배낭을 멘 상태로 감자자루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손으로 말의 안장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감자 자루를 잡고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든 길을 걸어 올라가는 마부에게 감자 자루까지 들고 가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이래저래 말은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감자를 품안에 안고 갔다. 내 다음부터는 다시는 감자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물론 그날 저녁 나온 감자 요리는 그새 모든 고통을 다 잊고 잘 먹고 말았지만 ......
드디어 "라이코트 사라이"라는 숙박소 겸 목장에 도착했다. 초원에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말이 풀을 뜯는 그 너머에 낭가파르바트 산이 눈으로 뒤덮힌 채, 새색시처럼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단정히 앉아 있던 산은, 갑자기 구름으로 덮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 어디선가 태양빛이 구름을 뚫고 들어와 산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이후 서서히 주위가 어두워지며 목장은 적막으로 둘러 싸였다. 하지만 낭가파르트의 흰 눈은 밤인줄도 모르고 밤이 새도록 희뿌연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던 우리는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데 또 한 참을 보내야 했다. 목장 한 구석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산에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누가 가져 왔는지 모르지만, 오디주를 잔에 퀄퀄 따랐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까, 모두들 머리가 헤까닥 도는 듯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친 사람처럼 노래하기 시작했다. 불렀다 하면 나오는 노래가 "청춘을 돌려다오"였다. 가는 세월이 아쉬워서일까? 아니면 아는 노래가 그것뿐이 없어서일까? 한 사람이 부르면 덩달아 따라 부르던 사람들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는지 이성을 잃었는지, 이제는 춤판을 벌리기 시작했다. 개다리 춤 아니면 날나리 춤이었다. 옆에 있던 파키스탄 사람들이 어디서 플라스틱 물통을 가져와서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고, 허벌레 춤이라고 불러도 좋을 희한하고 요상꾀꼬름하게 몸을 들썩댔다. 하여튼 그날 사람들이 노는 모습은, 고삐풀린 망아지 모습이랄까? 아니면 뒷골목을 휩쓸고 지나는 망나니 모습이랄까, 차마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진풍경이었으니,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다음 날 새벽 카메라를 메고 목장을 걸었다. 한 곳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설산이 물속에 들어와 색시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여기서 이런 사진만 찍어도 여기에 온 본전은 뽑는 셈이다" 라고 누군가가 탄성을 질렀다. 날이 점점 밝아오고 태양이 조금씩 올라오자 처연했던 새벽의 낭가파르트는 푸근한 엄마의 품으로 변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 안았다.
조금 먼 곳에 원주민의 오두막집에서 파릇한 연기가 한 줄기 하늘로 솟아 올랐다. 아낙네 몇 명이 나왔다가 들어가고, 아이들이 나왔다가 정탐을 하는지 한참 후에 다시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어디에서 돌멩이가 날아왔다. 자신들을 사진찍는다고 생각한 그들이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식당 벽에는 이곳을 방문했었던 사람들의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우리는 페리 메도우까지만 왔지만, 좀더 올라가면 베이스 캠프가 있고, 한참을 더 올라가면 진정한 프로만이 올라갈 수 있는 8125미터의 낭가파르바트 정상이 떡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해발 3306 미터, 이런 곳에서 마음 대로 움직여도 고산증이 없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목장의 다른 쪽에는 또 다른 연못이 있다. 이곳 연못에는 그 주위를 둘러싼 나무가 물속에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바람이 불면 자신의 모습이 흩어져 추상화가 되었고, 바람이 좀더 강하게 불면 물결이 세게 일어 어느 순간 곰보 유리 너머로 보이는 희뿌연 수채화가 되었다.
망원 렌즈로 보니 먼 언덕에 하나의 마을이 보였다. 그 아래 절벽이 있고 옆에는 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외부인이 철저히 차단된 자기들 나름의 삶을 이어가는 자급자족의 마을인 듯 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런 외진 곳에 태어나서 뼈를 묻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일까? 자신이 이런 처지에 놓인 것을 한탄할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이런 곳을 다니면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생활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가장 불공평한 것이 인간 세상이다.
다시 산길을 걸어 내려온다. 내려 오면서, 말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양떼를 만나고, 무리를 이루어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파키스탄 대학생을 만난다. 길 건너 희미하게 나 있는 작은 길 위로 염소 떼가 주인도 없이 뛰어 가고 있다. 좁은 계곡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물이 바위에 부딪쳐 흰 거품을 만들어 떠 내려간다.
다시 지프를 타고 내려간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불안하다. 여기다가 운전수는 운전에 전념해야할 텐데, 음악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운전하면서 오디오 튜너를 만지작 거리고, 머리를 긁적거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동작은 모두 다 한다. 운전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을 하고 싶어도 괜히 성질 내면 더욱 막무가내로 운전할 것 같아서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다. 순간 뒤를 보니 지프 뒤에서 매달려 오는 사람이 보인다. 정말 이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밑에 내려와 우리를 싣고 갈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와 함께 지난 밤을 보냈던 현지 안내인 한 사람이 자기가 사는 집에 잠깐 들렀다 가자고 했다. 그의 집이 바로 큰 길 옆에 있다고 했다. 몇 미터 걸어서 그를 따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공교롭게도 우리를 태우고 갈 이슬람아바드 행 버스가 저 멀리 오고 있었다. 그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섭섭함을 간직한 채,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2012년 8월 12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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