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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21 "맥크로드 간지" (인도 2)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18. 21:34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여행기 21 (인도 2)

"맥크리오드 간지"

 

 

 

 

 

 

2012년 8월 12일, 암리차르의 황금 사원을 출발, 매크리오드 간지가 있는 다람살라로 향했다. 시내를 빠져 나가는데, 당나귀며 말이며, 리어커, 오토바이 등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시퍼런 바나나를 실은 마차 뒤로, 검은 동상이 역광을 받아 검게 보였다.

 

 

출근하는 사람과 등교하는 학생이 자주 눈에 띈다. 가끔 가다 차의 흐름이 막힐 때가 있다. 두건을 쓴 사람들이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수에게 먹을 것, 특히 마실 물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시크 교도들은 이렇게 거리에 나와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시크교도 들이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수와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한다. >

 

 

 

 

<중간에 잠깐 쉰 곳에서 병아리들이 쟁여져 있다.>

 

 

 

 

 

 

꾸불꾸불한 길을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자동차는 굉음을 내며 산 위로 치솟고 있었다. 바로 그 지점이 다람살라이며, 여기에서 더 올라가면 산 중턱에 맥크로이드 간지라는 도시가 있다. 꾸불꾸불한 급경사를 올라가면서 아래로 다람살라가 내려다 보였다.

 

 

중간에 검문소가 있었는데, 우리 차가 검문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 오토바이를 탄 남녀가 운전 면허증이 없는지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 남녀는 오토바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훈계를 하던 경찰관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랄까? 역시 36계는 최고의 전술임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Annex hotel: 우리가 묵은 호텔의 창문에 햇빛이 스며든다.>

 

 

우리가 묵은 어넥스 호텔은  언덕 위에 있는 바깥 풍경이 대단히 좋은 호텔이었다. 문을 열면 찬 바람이 쉬익~ 불어와서 몸을 식혀주고 먼 산은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혼잡한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어서 조용했고, 자동차가 지나 다니지 않아 매연이 없었다.

 

 

 

 

<Annex Hotel에서 바라 본 풍경>

 

 

 

 

 

 

맥크로이드 간지에는 동물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선 쓰레기통 근처에서 어슬렁대며 쓰레기를 주워먹는 검은 소가 있었다. 흰두교의 나라니까 그러려니 했다. 골목에는 짐을 실을 말이 졸고 있었고, 공사장에는 말의 등에 모래를 싣느라 바빴다. 그런데 이런 동물들은 겉 모습만 보아서는 말인지 당나귀인지 노새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기도 하였다.

 

 

 

 

 

 

 

<당나귀인지 소인지를 끌며 밀고 간다. 처음에는 남자가 끌고 여자가 밀었으나, 동물이 말을 듣지 않자, 여자가 끌고 남자가 미는 자세로 바뀌었다. >

 

 

 

 

 

 

우리 호텔 근처의 높은 나무에 원숭이가 여러 마리 살고 있었다. 나무에서 뛰어 내려 건물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는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어미에 찰삭 붙어 나를 바라보는 새끼 원숭이의 눈마울이 강아지보다도 더 귀여웠다.

 

 

그런데 원숭이의 비극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아침 산길을 가는데, 원숭이가 화를 내면서 나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근처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원숭이 한 마리가 죽어서 다른 원숭이들이 화가 났다고 한다. 가게 주인의 말에 따르면, 원숭이 한 마리가 전깃줄 양쪽을 잡고 길을 건너다가 감전사 했다고 한다. 동료가 죽은 것이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 원숭이는 사람만 보면 신경질적으로 달려들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에 질세라 주먹덩어리 만한 돌로 인정사정 없이 원숭이를 공격하였다. 불운한 원숭이가 돌멩이에 맞았는지, 계곡은 자지러지는 원숭이의 울음 계곡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로운리 플래니트에 따르면 매크리오드 간지는 1850년대에 이곳을 주거지로 만든 David McLeod를 따라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은 1960년 달라이 라마가 이곳에 온 이후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해발 1770미터에 위치해 있어서 서늘한 이곳은, 불교나 티벳 문화를 배우러 오는 사람과 단지 피서를 위해서 오는 사람, 그리고 관광객 등으로 붐빈다. 중심가 양쪽으로는 각종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이 즐비하며, 요가, 명상 및 트레킹을 안내하는 여행사가 여러 곳 있다.

 

 

달라이 라마가 사는 곳 근처에 사찰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주로 중국이 티벳을 침략한 것에 대한 부당성 내지 이에 항거하다 죽은 영상물이 방영되고 있었다. 1950년 10월 모택동은 봉건사회의 억압에서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티벳을 침략한다. 1951년 10월 티벳의 라사가 함락당한다. 1959년 폭동이 일어나, 중국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달라이라마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라사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피신하게 된다. 로운리 플래니트에 따르면, 중국이 침략한 이후 티벳 사람 120만명이 사망했으며, 수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년에 약 2500명의 티베트인들이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넘어 오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중의 상당 수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된다. 현재 다람살라에는 약 8만명의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다.

 

 

 

 

<저 멀리 흰색 지붕 너머에 있는 초록색 지붕의 집이 현재 달라이 라마가 사는 집이다.>

 

 

 

 

<Tsuglagkhang Complex: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곳에 있는 사찰>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곳을 한 바퀴 도는 길이 있다. 구걸을 하던 노인이 더위에 지쳐, 구걸이고 나발이고 잠이나 자자, 라고 생각했는지 늘어져 잠을 자고 있다. >

 

 

 

 

<티벳 글자로 새겨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옴마니 반매홈일 것이다.>

 

 

 

 

<코라를 돌다보면 나오는 칼라차크라 사원>

 

 

 

 

 

 

티벳 피난민이 사는 동네로 보이는 마을이 있었다. 허름한 판자집들이 산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쓰러져 가는 집 앞에서 이를 닦는 어머니와 아들 앞에 차마 카메라를 들이밀을 수가 없어서 멀리서 망원 렌즈로 찍었다.

 

 

 

 

 

 

 

 

 

한편 맞은 편, 번듯한 아파트에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깔끔한 주거환경에 번듯한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숲, 이곳이 바로 부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어디든 살 만한 곳은 돈 많은 사람이 차지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흔히 있는 일이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지도 모른다.

 

 

 

 

<우리 호텔 옥상>

 

 

여기서는 특별히 구경할 곳도 없고, 어디 어슬렁거릴 만한 곳도 없어서, 참으로 심심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해외까지 여행을 와서 심심하다니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본래 여기에서 라다크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여러 번 회의를 하여, 라다크 대신 맥크로드 간지에서 푹 쉬기로 생각을 바꿨다. 그 이유는, 거의 30일 정도를 여행한 후, 고산 지대인 라다크를 가면 고도 적응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다크를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미련은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라다크 지방도 가보고자 한다.

 

 

 

 

<호텔에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앉아 있다.>

 

 

 

 

 

 

이곳에 오니 서양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도 만났고, 경상도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들도 만났다. 이곳은 웬만하면 한번씩 들르는 휴양지라는 생각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 이곳에 거쳐간 사람들은 대부분 암리차르의 황금 사원도 거쳐갔는데, 라다크의 레이-맥크로이드 간지-암리차르가 한 코스 여행상품으로 나와 있다고 했다.

 

 

이곳에 한국 식당이 두 군데가 있었는데, 김밥이나 탕조류와 김치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여튼 얼마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인지 맥주와 함께 함포고복을 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하루는 복만이와 함께 어떤 식당에 가서 술을 마셨다. 10시가 되었는데도 저녁을 먹으러 기다리는 사람이 식당에 가득 찼다. 하여튼 그날 밤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옆에 있는 인도 사람과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중국말로 이야기하다가 혀가 꼬여서 대화가 중단되고 반쯤 졸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맥크로이드 간지 중심 상가>

 

 

 

 

<광고문: 탄트라 요가 안내문이다.>

 

 

 

<명상, 불교 등을 배우는 안내문이 전봇대에 붙어있다.>

 

 

 

 

<전통 문화 공연장>

 

 

 

 

 

 

 

<여자 티베트 승려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라사에서 보았던 남자 승려들이 이상한 동작을 하며 배우는 것과 비슷했다.>

 

 

 

 

 

 

택시를 한 대 빌려 다람살라의 관광 명소를 안내해 달라고 운전수에게 부탁했다. 관광객이 묵기도 하고 불교 문화를 전수하는 어떤 곳으로 안내했다. 나무 줄기에 매달려 있는 은행을 닮은 과일이 매달려 있었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인형 박물관이 눈길을 끌었다. 구내에 상점이 있었으나 너무 비싸서 모두 구경만했지 구매하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절에 갔었는데, 한국 스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방을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한 후, 갑자기 DSLR 카메라로 법당 안을 사진 찍기 시작했다. 우리도 덩달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또 갑자기 앞에 있는 불상을 바라보며 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덩달아 절을 하려다가 우리는 불교 신자가 아니지, 하면서  멍하니 서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멀리 중국의 위엔양이나 필리핀의 바나우이에서나 볼 수 있는 계단식 논이 나타났다. 꾸불꾸불한 논둑이 등고선처럼 곡선을 이루어 연결되어 있었다. 가끔 가다 논둑으로 걸어가는 농부가 보이고, 그 뒤를 따라 지나가는 소도 보인다. 척박한 저 논에서 자라는 농작물로 생계를 이어갈 다람살라 농부들의 고달픈 삶이 연상되었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면서 그들이 흘렸을 땀이 논에 넘실거리는 듯 했다. 한 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다음 목적지로!"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차를 탔다.

 

 

 

 

<다람살라 크리켓 경기장.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 크리켓 경기장이라고 한다.>

 

 

 

 

 

 

다시 맥크로이드 간지로 올라오면서 작은 박물관에 들어갔다. 대단한 물건들은 아니었으나, 사소한 물건들이 정성들여 전시되어 있었다.  목걸이로 보이는 물건을 촬영하는데 그 목걸이 너머에 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리에 비치는 내가 너무 낯설게 보였다. 무슨 영화를 위해서 먼 이국 땅에 와서 이런 허접한 곳까지 찾아 다니나, 그대? 그대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 와서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그대의 삶이 향상되는가? 부질없는 질문이 유리 상자와 나 사이에 오가고 있었다.  

 

 

* 이 여행기는 다음 번 글(22회)로 끝을 맺습니다.

 

(2012년 8월 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