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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행기 4 "쉬라즈의 페리세폴리스"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3. 11. 4. 10:34

<페르세폴리스 유적>

 

 

이란 여행기 4

 

" 쉬라즈 가는 길: 파사르가다에, 나크쉐로스탐, 페르세폴리스"

 

 

 

 

야즈드에서 쉬라즈까지는 약 450키로. 쉬라즈는 페르시아의 심장으로 불린다.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 때 인도에서 유럽과 북 아프리카 북부까지 차지하였다. 중국을 제외한 모든 문명권을 차지한 국가였다. 그곳을 오늘 찾아가는 것이다.

 

 

 

 

2013년 9월 28일 야즈드에서 아침 일찍 쉬라즈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운전수는 맨 앞 좌석, 즉 운전수 옆 좌석에 아무도 앉지 못하게 했다. 앞에 앉아서 풍경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놈 참 고약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운전을 하던 운전수는 얼마 가서 차를 멈추더니, 길에서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운전수와 교대했다. 그러더니 새로 탄 운전수는 운전석 옆 조수석에 웬 여자를 앉혔다.

 

 

나는 이 여자를 쉬라즈까지 태워주고 여분의 돈을 받아 운전수가 챙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눈짓이나 말하는 것으로 보아, 예사로운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운전수가 애인을 데려가는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오늘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어차피 오늘 내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므로 오늘 밤을 둘이 지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잠시 뒤 운전수와 이야기에서 밝혀진 것은, 여자는 바로 운전수의 아내이며, 20일 후면 아기를 낳을 임산부였다. 겉으로 보아 30이 훨씬 넘을 것 같은 이 여자는, 이제 겨우 24세였고,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애처로워 바람이나 쏘이자고 생각하여 남편이 아내를 차에 태워 데리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경우, 한국 같으면 같이 가자고 하는 남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남편이 가자고 한다고 해서 따라 나서는 아내도 없을 것이다. 이란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운전수는 자신의 운전 면허증을 보여주었다. 아라비아 숫자가 없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차 안에서 찍은 풍경>

 

 

<차창 밖 풍경>

 

 

<파사르가다에 안내문: 유네스코 문화재다.>

 

 

우리의 처음 목적지인 파사르가다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반. 얼마나 햇볕이 강한지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안내판을 보면 이곳이 유네스코 문화 유산임을 당장 알 수 있다. 이날 이후 우리는 페르시아를 세우고 굳건하게 지켰었던 왕들 즉 "키루스 2세 - 캄비세스 2세 - 다아리우스 1세 - 크세르크세스" 등의 왕 이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된다. 특히 다리우스 1세는 옛날 학교 다닐 때 무슨 일을 했던 왕인 줄도 모르고 암기했던 생각이 났다. 막상 현장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위대한 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 파사르가대는 페르시아 왕국의 초대 수도였으며 그 후 다리우스 1세는 잠시 후 방문하게 될 페리스폴리스를 건설하게 된다. 세계사를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고, 혼자 연구한 적도 없으니 이상한 왕들의 이름만 나오면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왜그 런지 내 머리 속에서 또한 내 입에서 그 이름이 떠나지를 않았다. "다리 위에서 스마일을 해서"  다리우스, 아니면 "다리미 질을 하다가 우스워서"  다리우스, 아니면 어떤 미친 놈이 "달을 바라보고 우스워서" 다리우스,  하여튼 쓸 데 없는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파사르가다에 드넓은 대지에 놓여진 유물 중, 제대로 된 돌탑이 하나 있었는데, 솔로몬의 어머니의 무덤이라고 안내자는 말했다. 솔로몬의 어머니의 무덤이 왜 여기 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처음에는 솔로몬의 어머니의 무덤으로 알고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이 무덤이 키루스의 무덤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 유적은 돌 부스러기와, 부서지고 남은 돌 기둥 몇 개만이 뜨거운 태양아래 벌서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농사짓기도 힘든 이런 곳을 빼앗아 어디에 쓸려고 그랬는지, 또는 수 많은 세월 속에 기후가 변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 땅은 거의 불모의 땅이다.   

 

 

이것이 건설된 때가 기원전 6세기다. 동양에서는 공자와 석가모니가 태어난 시기다. 예수가 태어나려면 아직도 5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물론 공자 시대도 춘추 전국 시대이니 무수한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을 얻기 위해 쟁취를 벌였지, 황야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솔로몬의 어머니의 무덤으로 알려졌었던 키루스 대왕의 무덤>

 

 

 

<파사르가다에 유적>

 

 

<한 아이가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크쉐 로스탐 가는 길>

 

 

<나크쉐 로스탐>

 

 

두 번째로 찾아 간 곳은 Naqsh-e Rostamm이라는 바위로 된 무덤이다. 무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돌산이라고 해야겠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에 있는 무덤은  다리우스 2세, 아르타세르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그리고 크세르세스 1세의 무덤이라고 한다. 날은 덥지, 배는 고프지, 아무도 입장료를 내고 현장에 접근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입장권 없이 빈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니, 경비원이 눈치채고 사진 촬영을 막았다. 차라리 잘 됐다 싶어 곧장 차를 타고 오늘의 마지막 유적지 페르세폴리스로 떠났다.

 

 

 

 

 

 

 



 

<페르세폴리스 입구>

 

 

페르세폴리스 이야기는 이란에 가기 전에 너무 많이 들었었다. 오늘의 탐방 주 목적은 바로 이 페리스볼리스를 보는 것이었다.  먼데서 보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 아래를 깎아 만든 이 궁전터는 16미리 카메라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넓었다. 작렬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뚜벅뚜벅 입구로 향했다. 아, 그러나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입구에 있는 부서지고 남은 거대한 돌벽과, 날개를 단 소의 석상,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돌 기둥의 무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돌부스러기의 광장에 지나지 않았다. 아파다나 궁전, 아파다나 계단, 100개 기둥의 궁전, 32 기둥의 궁전, 만국의 대문 등이 있었다는 안내판만이 더운 바람 부는 사막을 외롭게 지켜주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의 웅장한 유적지는 현재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650㎞ 가량 떨어진 마르브다슈트(Marv Dasht) 평야의 쿠이라마트(Kuh-i-Rahmat, 자비의 산) 산기슭에 있다. 기원전 518년에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였다. 기단의 남쪽 면에 새겨진 비문을 보면 다리우스 대제가 페르세폴리스의 창건자임을 알 수 있다.

 

 


‘왕 중의 왕’이 거대한 반 인공, 반 천연 기단 위에 메소포타미아 양식의 영향을 받은 웅장한 왕궁 복합 단지를 창건한 것이다. 불규칙하고 바위투성이인 산의 사면을 잘라내어 거대한 기단을 만들고, 잡석으로 갈라진 틈과 팬 곳을 메우는 작업이 주가 되었다. 건물을 세우기까지의 작업은 상당히 힘들고 방대했다. 이중 현관 계단, 조각한 장식 띠로 덮인 여러 층의 벽, 대규모의 입구, 날개 달린 거대한 소들, 대형 홀 유적이 있는 페르세폴리스의 기단은 장엄한 건축 조형물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건축가들은 탁 트인 공간에 지붕의 채광을 세심하게 조치하며, 놀랄 만큼 가는 기둥(지름 1.6m, 높이 20m)을 최소한으로 사용했고, 문과 창문을 가로지르는 가로대는 나무로 만들었다.

 

 


다리우스 1세는 이 웅장한 복합 왕궁을 통치의 중심지로서만이 아니라 주로 아케메네스 왕가와 제국의 알현식과 연회를 위한 연회장, 연극 무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다리우스 1세는 생전에 자신의 계획 일부만을 실현하였다. 웅장한 진입로, 기념비적 계단, 공식 알현실(Apadana), 접견실, 부속 건물들의 앙상블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학적 유적으로,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대 문명의 독특한 자질을 보여 주는 증거로 평가된다.

<위 파란색 부분: 인터넷에서 인용>

 

 

위의 내용은 인터넷에 떠도는 페리스폴리스의 묘사이다. 그러나 당신이 한번 이곳에 가보라. 그저 돌 덩어리뿐이다. 병사들의 방, 궁전터, 극장터 등의 안내판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 초인의 상상력이 아닌한 그저 보이는 것은 부서진 돌 돌 돌뿐이다. 눈을 감고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마치 사극 작가가 된듯한 내적 뜨거움이 있을 때야만 비로소 궁전이 보이고 그 속에서 살았었던 실존인물이 보일 것이다.  하루 종일 부서진 돌만을 본 P님은 "아이구, 오늘 하루 종일 돌만 보았더니 돌아 버리겠네. 내 머리가 완전히 돌이 되었어. 누가 돌로 내 머리좀 쳐봐. 어느 것이 부서지나 보게."라고 말했다. 

 

 

 

 

 

 

페르시아인들은 결국 알렉산더 대왕과 싸움을 벌려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된다. 이 전투의 승자인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와 싸움을 벌린 페르시아인들에 대한 앙갚음으로 펠리세폴리스를 불태우고 다 때려부수라고 명령했다. 그리스인들은 20,000마리의 노새와 5,000마리의 낙타에 페르세폴리스의 보물을 실어 갔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라!  대왕! 페르시아인들도 그를 대왕이라고 생각할까? 누구의 입장인가가 중요하다. 그리스의 입장이라면 대왕이겠지만, 페르시아인들의 입장이라면 모든 것을 말살해간 파괴자 알렉산더, 천천지 원수 알렉산더일 것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우리가 전쟁광으로 여기듯, 페르시아인들에게 알렉산더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모든 보물을 빼앗아간 악랄한 침략자에 불과할 것이다.  

 

 

징기스칸 또한 마찬가지다. 징기스칸이 다른 나라에 침입했을 때, 만약 침략을 당한 국가가 순순히 항복을 하면 적당히 보아주지만,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정복되는 날에는, 어른이나 아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싹쓸어 죽여 버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인간 청소를 한 셈이다. 이런 소문을 들은 다른 나라들은, 징기스칸이 온다는 말만 들어도  무서워서 감히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세계를 거의 정복하게 되었고, 우리는 세계 위인전에서 징기스칸을 읽고, 그에게서 용맹함을 배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수천, 수만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도 감히 왕을 넘보는 사람이 있으면, 3족을 멸하기도 하고, 9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씨를 말리는 것이지 무엇이겠는가? 본때를 보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대왕, 칸, 왕" 등의 말을 듣나 보다.

 

 

<저 멀리 앉아 있는 여인 중 한 사람은 기둥 그늘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할 때 우리는 페르세폴리스를 떠났다. 떠나기 직전 우연히 한 여인이 기둥 그늘에 앉아 아기에게 자신의 젖을 먹이고 있었다. 홍수가 휩쓸고 지난 들판에도 더러는 곡식 알이 남아있듯, 조상이 대패한 옛땅에서, 자식을 잘 키워보려고 애쓰는 한 어머니의 애처러움이 전사들의 함성만큼이나 큰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밖으로 나왔을 때, 두 여인이 손가락으로 V를 가리키며 사진기 앞에 포즈를 취해주었고, 한 꼬마는 군인처럼 무뚝뚝한 다부짐으로 상대방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차를 타려고 했을 때, 한 무더기의 멋쟁이 이란 젊은 여성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때는 빼앗겨 무참히 짓밟혔던 땅, 이제는 그 후손이 되찾아 미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빼앗겼던 땅에 다시 봄이 돌아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마지막으로 누가 페르세폴리스가 어떻더냐라고 묻는다면,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유적지 중, 가장 크고 넓고 웅장한, 한 마디로 어마어마한 주춧돌의 향연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11월 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