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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여행기 2 "뭄바이"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4. 2. 1. 21:09

 

 

 

 

남인도 여행기 2 "뭄바이"

 

 

2014년 1월 3일 아침 일찍 카메라를 메고 호텔을 나섰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빅토리아역 바로 옆에 위치한 여관, 또는 여인숙 정도의 허름한 숙박소였다. 뭄바이에서 우리가 묵는 시간은 단지 하루뿐이므로,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뭄바이 중심가는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인지, 빅토리아 역을 비롯해서 그 주위의 건물은 마치 내가 영국 런던의 중심가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은 육중한 건물이 거리 양쪽에 즐비하게 도열해 있었다. 이런 건물을 건설할 때 영국인들은 인도를 영원히 지배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이런 대형 건물을 지었으리라.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나? 시간 앞에 버틸자는 아무도 없으니, 우리는 이것을 인생무상을 넘어, 세상무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순간 바로 내 눈 앞에서 사람들이 트럭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트럭에는 큰 양푼, 또는 큰 바구니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는데, 양푼이나 바구니에는 꽁치 정도 크기의 물고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뭄바이가 해변가 도시이이니, 생선 도매시장이나 또는 어시장에서 물고기를 사와서 소매점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보였다. 화려한 색깔의 인도 정통 옷을 입은 여인들이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이 여인들이 가져온 생선을 운반하려고  사방에서 남자 짐꾼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자는 갑이요, 남자는 을의 관계였다.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는지, 아니면 안광이 지배를 철하는 투시력을 가졌는지, 짐을 운반하려는 사람들은 붉은 눈을 이리 번득 저리 번득이며 목표물을 잡아 나꿔채 자기가 운반자임을 만천하에 고하는 듯 하였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생선이 가득 든 양품을 머리에 이는 동안, 이런 일감마저도 따내지 못한 사람들은 원통하다는 듯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뒤로 물러서서 다음 트럭이 오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생선 국물이 광주리에서 흘러내려 이마를 타고 양쪽 얼굴로 내려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생선 국물이 눈으로 들어가 눈을 씰룩거리기면서 걷기도 하였다. 윗통을 벗은 사람은 윗통에 생선 국물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고, 웃옷을 걸친 사람은 생선국물이 쩔어 비린내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어떻든 생선을 머리에 인 사람들의 걸음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내 걸음으로는 따라가기 힘들었고, 혹시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다 들키면 꾸중을 들을까봐 내 마음이 오마조마 하였다.

 

 

그때 마침 길 옆 전깃줄에는 시커먼 까마귀가 밑을 바라보며 호심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혹시 광주리를 덮지 않고 가거나, 혹은 덮었어도 생선이 삐죽하게 빠져나왔으면, 여지 없이 내려와서 생선을 물고 다시 전깃줄로 돌아가서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하였다.  

 

 

전기줄의 까마귀에서 다시 생선을 이고 가는 사람들에 내 시선이 멈춘다. 이들을 뒤에서 바라보면 무거운 짐을 이고가서 그런지 몰라도 엉덩이가 야릇하게 좌우로 움직여서 마치 무도장에서 춤을 연습하는 사람의 엉덩이 같기도 하고, 어우동이 교태를 부리며 걸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어렸을 때 동네에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젊은 처녀의 엉덩이처럼 묘하게 박자가 맞아돌아가기도 한다.  

 

 

언젠가 TV에서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여기가 진정 삶의 현장이 아닌가 싶었다. 어떤 사람은 서로 다투다가 이마가 약간 찢겨 피가 나오기도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피 비린내 나는 삶의 현장"임이 틀림 없으리라. 이런 피 비리내 나는 삶의 현장에서 이겨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면,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내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는 어떤 사람이 아무렇게나 누워서 세상 모르게 잠을 자고 있으니, 뭐 세상 제 멋대로 사는게 멋이라지만, 이런 "내비둬 정신"은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의 생활 습관을 고치려고 수십년을 해도 고쳐지지 않자, 두손 바짝들고 "인도인들의 습관은 죽어도 못 바꾼다"라고 판단하고 포기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High Court와 Mumbai University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두 곳은 일반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두 명소는 Lonely Planet에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으로 나와 있으나 접근을 할 수 없으니 먼 곳에서 우뚝 솟은 건물을 촬영할 도리밖에 없었다.

 

 

바로 그 앞에 큰 공원이 있었는데, 이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크리켓 경기를 하고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인도나 파키스탄, 또는 스리랑카에 가면 빈 공터에서 사람들이 경기한다 싶으면 바로 크리켓 경기이다. 야구와 비슷한 경기인데, 방망이가 넓적하고 장갑을 끼지 않고 하는 경기이다. 말을 들어보면 이 경기가 아주 재미있다고 하는데, 왜 몇 개 나라에서만 행해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5명이  차 한 대를 빌려 시내 구경을 나섰다. 처음 찾아간 곳이 Mahalaxmi Dhobi Gat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뭄바이의 빨래터이다. 우리 5명중에는 사진에 깊은 조예를 지닌 두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 두분에게서 항상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그들을 모방하여 촬영을 하기도 한다. 사실 뭄바이에 오는 사진사들은 바로 이 도비 갓에서 빨래 사진을 찍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비 갓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다리 위에서 보니 허름한 지붕위로 빨래가 줄줄이 널려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있었다. 날이 얼마나 더운지 10분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땀을 팥죽같이 흘리던 한 분이 말했다. "지금이 인도에서 가장 춥다는 1월입니다. 이 겨울이 이렇게 더우니 여름에는 얼마나 덥겠어요. 어떤 한국 사람들은 말하기를, 인도인들은 땅은 넓은데 게을러서 가난하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 데려다가 한 여름에 한번 일하라고 해보세요. 채 5분도 못가서 '깨갱'하면서 뒤로 벌럭 자빠질 것입니다."

 

하여튼 이곳에 오기 전에 내가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빨래터에 일반인은 들어오지 못한다고 되어 있고, 모르게 들어갔다가는 돌팔매질을 당한다는 글도 있어서, 어떻게 현장 깊숙히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었다. 어떻든 우리는 다리 아래로 내려가 정찰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한 젊은이가 나타나 자기가 책임지고 데려갈 터이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적절히 타협을 보아, 약간의 금액을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입구에는 기네스북 기록을 광고하는 게시판이 걸려있었다. 읽어보면 496명이 한꺼번에 빨래했다고 되어 있다. 과연 대단하기는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돌려 대문 왼쪽에 전기 계량기가 무질서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꿈에 나타날까 무섭게 흩어져 있고, 이렇게 얼키설키 엉킨 전기줄에 화재가 나지 않은 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은지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젊은 안내자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니 수없이 많은 시멘트로 된 빨래터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뒤에, 그리고 위에 빨래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위에서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놀고 있었고, 빨래를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목욕을 하는 사람도 목격되었다. 비록 돈을 주고 떳떳하게 들어오기는 했지만, 왜 그런지 죄를 지은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뭔가 켕기는 듯한 마음이 들기도 하여,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가고 있었고, 먼저 우리에게 "헬로"라고 말을 걸기까지 하였다.

 

 

 

 

 

 

 

 

 

끝없이 시멘트 물통이 놓여있었는데, Lonely Planet에는 1026개의 물통이 이곳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안으로 좀더 들어가면 더러 전기 세탁기도 보이고, 전기 탈수기도 보인다. 또 어떤 곳에 가면 컴컴한 곳에 숯불이 붙여져 있고, 그 위에 물이 끓고 있기도 하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서 나온 옷은 세탁과 소독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끓는 물에 옷을 삶는다고 한다. 어떤 곳에 가면 이상한 냄새 때문에 오래 있을 수가 없고, 또 어떤 곳에 가면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비참하여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죄스러워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나와 다른 쪽으로 가니, 또 다른 젊은이가 돈을 요구하면서 다른 쪽을 보라고 요구한다. 아까 우리가 준 금액보다는 적었으나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공동 묘지나 행여가 있는 곳을 지나갈 때, 실제로는 아무런 무서울 것이 없지만, 뒷골이 땡기는 것과 마찬가지 심정으로 더 이상 걷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여튼 빨래터를 나오면서, 인도라는 곳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인도의 광고판에  Incredible India!(믿기 어려운 인도) 라고 되어 있는데 적절한 묘사라고 생각했다.  

 

 

 

 

 

 

 

 

 

 

 

 

 

 

 

 

 

 

빨래터에서의 더위와 긴장을 풀기 위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어떤 공원이다. 공원을 가는 중에 우리 차의 기사는 인도 경찰에 불법 영업을 한다고 걸려서 벌금을 물게 되었다. 기사는 벌금을 물고 와서 인도 경찰의 부패상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경찰에게 돈을 주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노란 제복에 볼록 나온 배를 앞세우고 거들먹거리며, 막대기로 신호를 보내는 인도 경찰은 내가 보기에도 개혁을 필요로 하는 듯이 보였다. 한 마디 덧붙이면, 공원에서 쉬다가 다음 목적지로 가는데, 바로 그 경찰이 우리 차를 또 정지시켰다. 우리 운전수가 아까 돈을 주지 않았냐고 따지니까, 그 경찰은 빙그레 웃으면서 통과시켜 주었다. 운전수는 씁쓸한 듯 창밖으로 침을 뱉고, 운전대를 두어 번 툭툭 쳤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덧붙이면, 한국에서 올 때 짐을 확인하려고 손수건을 묶어 놓았었다. 그런데 내려서 짐을 찾아 보니 손수건이 없어졌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짐꾼들이 순식간에 손수건을 빼고,  넣어둔 볼펜을 빼내간다고 한다. 혹시 인도에 갈 때는 배낭 깊숙히 물건을 넣고 단단히 묶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Gate of India라는 곳이다. 명물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뭐 특별한 것이 없는,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바닷가였다. 무슨 공연을 한다고 길을 막아 놓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곳을 통과하려고 하자 여러 명의 경찰이 그의 멱살과 두 팔을 잡고 개끌 듯이 끌고 가고 있었다. 바다에는 많은 배들이 석양을 몸으로 받으며 그림처럼 떠 있었다. 무덥고 바람없는 이 항구에 서 있는 나는 그저 답답하고 지치고 피곤하기만 하였다.  

 

 

 

 

 

 

 

 

 

 

 

 

 그날 밤 우리는 '고아'행 기차를 타게 되어 있었다. 밤 12시 20분 기차여서 역 근처의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야외 식당 옆에서는 아이들이 잠도 자지 않고,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잡고 있는 배드민턴 채는 나무 판자와 스치로폼을 뜯어 임시로 만든 것이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만들어 내는 천재란 말이 있듯이, 그런 것을 가지고서도 번잡한 도로에서 신나게 라켓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먹다 남은 물을 달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먹다 조금 남긴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절대 주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남은 것을 몽땅 거두어 애들에게 갖다 주었다.

 

 

우리 앞에 겉으로 보아 그래도 잘 살고, 학식도 있어 보이는 육중한 몸매의 사람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위풍당당함으로 보아, 여러모로 힘깨나 있는 사람 같았다. 아, 인도에서 돈좀 있고, 학식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 구나, 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의 유창한 언어는 내가 말할 기회를 박탈한 채 쏜살같이 내 귀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 그는 좋은 옷을 걸치고 얼굴이 부티가 나는 가족들과 함께, 껄껄 웃으며 내 앞에서 사라졌다.

 

 

 

 

 

 

 빅토리아 역에서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가 탑승할 시간이 가까워 왔지만, 전광판에는 우리가 어데서 타야할지 않내 표시가 없었다. 인도 사람들이 역 광장에서 자리를 펴고 하나 둘 눕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배가 불룩한 경찰이 오더니 막대기로 땅을 툭툭 치면서 뭐라고 큰 소리로 떠 들었다. 자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쪼그리고 앉았다. 일장 연설을 하던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사람들은 금방 또 자리를 깔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누워있던 사람들을 앉혔다"라는 것에 경찰은 만족해하는 것 같았고, "경찰이 보는 앞에서 듣는 척 했으니, 이제 자도 된다"는 생각이 잠자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있었던 것 같았다.

 

 

 

 

 

 

 

 

 

 12시가 넘어 사람들이 모이는 쪽으로 모두 짐을 옮겼다. 거기가 바로 플랫폼이었는데, 소변 냄새가 진동을 했다. 기차가 출발을 하면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여기서는 뭐 되는대로 소변을 보아서 그렇게 된 듯 했다. 멀리 불빛이 비취는 곳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검은 개들이 제 세상인양 여기저기 짖고 다녔다. 개들 세상에도 백설 공주가 있는지 모르지만 어떤 흰 개는 품위있게 짐 위에 올라가 사방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개에게 신경을 쓰거나 혼내는 인도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인 "내비둬"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12시 20분발 기차는 1시 5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인도에서는 조금이라도 방심을 했다가는 짐을 도난당한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짐을 통로에서 먼쪽에 두고, 돈이 들은 가방은 가슴에 품었다. 모두들 피곤한지 별 말이 없었다. 기차의 달가닥 거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며 오늘의 기억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눈앞에 펼쳐질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며 발밑의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어, 잠을 청했다.

 

 

(2014년 2월 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