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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간 중미 여행기 27: 쿠바 7 "라스 테라사스, 나이트 쇼, 그리고 멕시코로 출국"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5. 6. 10. 06:47

 



 

 

 

47일간 중미 여행기 27: 쿠바 7

 

"라스 테라사스, 나이트 쇼, 그리고 다시 멕시코로 출국"

 

 

 

 

<2014년 12월 8일 멕시코의 칸쿤에서 쿠바로 가서, 2014년 12월 15일 다시
멕시코의 칸쿤으로 돌아왔다.>

 

 

 

 

<오늘 여행기에 나오는 지명(F) "라스 테라사스">

 

 

 

 

<라스 테라사스는 아바나에서 약 50키로 떨어져 있다.>

 

 

라스 테라사스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구역이다. 1968년에 시작된 산림 사업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이곳은 커피 농장이었던 곳을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호텔을 짓고 환경을 개발해 놀이와 휴식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아름다운 휴양지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약 1200명이 살고 있으며 이곳에는 많은 가게와 음식점이 있다. <로운리 플래닛 인용>

 

 

 

 

<라스 테라사스 마을의 Google 위성 사진>

 

 

 

 

 

 

2014년 12월 14일 오전, 우리는 두 대의 승합차를 빌려 라스 테라사스에 갔다. 가면서 운전수에게 몇 가지 물어보았다.

 

 

나: 쿠바에서는 집을 사고 팔 수 있느냐?
그: 작년부터 집을 사고 팔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반 사람은 돈이 없어서 구입할 수가 없다.

 

 

나: 대학 교육까지 공짜라는 데 맞는 말이냐?
그: 그렇다.

 

 

나: 의사 봉급이 3만원이라는 데, 당신들은 그 봉급으로 어떻게 사나?
그: 기초적인 것은 거의 모든 것이 무료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사려면 쿠바인도 국내용 화폐인 "모네다"가 아닌, 외국인이 사용하는 화폐 "쿡"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을 태워주고 팁을 받아 사용한다. 외국인을 태우는 운전수가 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하고 기타 다른 언어 하나를 해야 한다. 시험이 까다롭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을 하여 봉급 외의 수입이 있다. 한국의 운전수 봉급이 얼마냐?
나: 약 200만원된다.
그: 그런 말 들으면 미친다. 제발 내가 한국에 가서 운전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아바나에 와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냐?
그: 제한이 있어서 아무나 오지 못한다.  

 

 

나: 실제로 모든 기업이 국유화 되어있냐?
그: 형식상으로는 모든 것이 국가의 것이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공장이나 기업들이 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여기에 근무하는 직원이 마을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호숫가에 앉아 있는 여행객>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오자 나무에 등불을 매달았다.>

 

 

 

 

 

 

 

 

<강철선을 따라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장치>

 

 

 

 

 

 

자유 시간을 갖고 호수 주변과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초록의 나무와 풀 그리고 잔디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환경이다. 도처에 흐르는 개울, 아름다운 숲, 잘 정돈된 도로,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 닭, 낮은 기와집에서 아장 아장 걸어나와 나를 바라보는 어린 아이, 지붕위에 씨앗이 날아와 터를 잡고 커가는 붉은 화초, 옹기종기 모여있는 하얀 벽의 아담한 집, 헛간이나 원두막처럼 지어진 초막집, 이 모든 것이 마치 동화 속의 공주가 사는 마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곳은 적어도 하룻밤을 묵으면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어가며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어렸을 때를 회상하는 곳이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도시의 생활에서 오는 찌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자연 치유소이다.  도처에 존재하는 목공소에서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어보고, 도자기 공방에서 도자기를 구워보고, 야외 촬영장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또 찍혀보는 경험을 하는 곳이다. 가정집에 찾아가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곳이고, 카페에 들러 쿠바 음악에 빠져보는 곳이다.

 

 

 

 

 

 

 

 

 

 

 

 

 

 

여기 저기를 걷던 중, 이상한 동물을 만났다. 첫 번째는 검은 개였는데, 아랫니 두 개를 드러내며 끝까지 앙을대며 분을 이기지 못해 펄펄 뛰며 자기를 묶은 개줄을 물어뜯으려고 발버둥쳤다. 보통 개가 화가 나면 윗니를 드러내면서 야수의 속성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 개는 어째서 저렇게 뾰죽한 아랫 이빨 두 개를 악마처럼 드러내며 자기 화를 참지 못하고 오만방자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더 희한한 것은 털 빠진 닭이다. 보통 닭이 털이 빠지면 등이나 꼬리에 있는 털이 빠지는 것이 한국 닭의 일반적인 형태다. 그런데 여기 닭들은 다리를 중심으로 털이 다 빠져, 어떻게 보면 흉물스럽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섹시한 여자의 하체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닭이 날개를 위쪽으로 젖히기라도 하면, 이건 뭐, 반은 털달린 악마요, 반은 삼계탕에나 나올 것 같은 나체 닭이다. 사람이 닭의 털을 뽑아 버린 것인지, 아니면 날이 더워서 털이 스스로 빠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본래 닭의 종류가 그런 것인지, 또 그것도 아니면 자기가 성질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뽑아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을 할머니는 관광객들을 위해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자기들을 사진 찍어 달라는 아이들>

 

 

 

 

 

 

 

 

 

 

 

 

<Moka Hotel의 풀장: 풀장의 형태가 마치 여인의 몸을 연상시킨다. 로운리 플래닛에는 쿠바의 유일한  친환경 호텔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4성급 호텔로 1박에 11만원이라고 한다.>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고, 한가한 몇 사람은 낚싯줄을 개울 속에 드리우고 있었다. 낚싯봉이 떨어진 중앙에서 시작된 거미줄 같은 물결이 동심원을 이루며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때 한 송이 붉은 꽃이 떠 내려와 물 속에 비친 초록의 숲을 배경으로, 수줍고 청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뒤 한 바탕 바람이 불어와 애련한 처자를 닮은 그 붉디 붉은 꽃송이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물결따라 바람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이 구름처럼 주위에 모여들고, 그 축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고, 그것도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행복이라고 느끼나 보다. 저런 장면을 보면 가슴만 아픈 사람들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아, 옛날이여"를 되뇌일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여자들도 좀 숨길 것은 숨겨야지, 아무리 남자가 멋있어도 저렇게 입을 크게 벌려 기쁨을 표출하다간 입이 찢어지고 턱이 돌아갈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저렇게 당당한 여인이 불쌍해서 어쩌나? 명태 대가리에 밤과 대추를 넣어 푹 달여 먹고 한의원에 가서 대침을 수십 대는 맞아야 원상복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부에나비스타 식당 겸 커피 숍>

 

 

점심은 부에나비스타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이곳은 1801년에 지어진 쿠바의 커피 농장이다. 이 건물은 그 당시 주인이 거처로 사용한 곳이기도 하고 커피를 저장해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식당 밖으로 나오면 음침한 절벽 아래에 120명의 커피 농장 노예들이 살았던 돼지 사육장 같은 쪽방이 늘어서 있다. 그 안에서의 노예의 비참한 생활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 커피 껍질을 벗겼던 거대한 맷돌이 있고, 커피를 건조시켰던 거대한 시멘트로 만들어진 마당이 나온다. 그 맷돌을 지금은 장난 삼아 돌려보지만, 그것은 당시 노예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눈물을 흘리며 돌려야 했던 한이 서린 노동 착취 도구였다.   

 

 

 

 

<부에나비스타 식당 외부>

 

 

 

 

<식당 밖에 있는 종>

 

 

 

 

<붉은 나무에는 수많은 낙서의 흔적이 보인다.>

 

 

 

 

<커피 건조대>

 

 

 

 

<커피의 껍질을 벗기는 맷돌>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쿠바 사람들>

 

 



 

쿠바의 나이트 클럽

 

 

 

 

 

 

하루 저녁에는 나이트 클럽에 갔다. 젊었을 때라면 몰라도, 이미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이런 곳에 가서 구경하는 것이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로운리 플래닛에도 한번 가보라는 권고가 있어서 우리 일행 10명은 기쁜 마음으로 함께 그곳에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고, 무슨 일인지, 안내원이 이리 가라 해 놓고, 그곳에 가면 저쪽으로 가라고 해서, 작은 소동이 있은 후에야 예약된 자리에 앉게 되었다. 학교 교실 2-3개 정도 크기의 식당 겸 쇼장에는 앞에 무대가 있었고, 무대가 관중이 머무는 객석으로 뾰죽하게 뻗어나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서 그런지 빨간 산타 할아버지 모자를 쓴 여 종업원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하면서 제법 쇼장의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에서 쇼도 보고 식사도 하는 관중도 있었고, 돈을 아끼려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저 멀리 앉아서 쇼만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는 돈이야 들건 말건(나의 여행 메모에 기록되지 않아서 확실한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약 5-8만원으로 추측된다.) 식사도 하고 쇼도 구경했다.

 

 

 

 

 

 

놀라운 것은 출연진 중 춤추는 여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너무 뚱뚱해서 집에서 아기나 보아야 할 노인 같기도 하고, 지팡이나 짚고 따뜻한 햇볕이나 쪼여야 할 사람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한국으로 친다면 4-50대 가수 몇 명에다가 송해, 남철, 남성남, 남보원, 쟈니리, 위키리, 뭐 이런 연배의 가수처럼 보였다.    

 

 

 

 

 

 

그들은 무대에 올라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춤추는 듯 했다. 어떤 사람은 머리와 얼굴에 땀이 비오듯 했으며, 어떤 사람은 목청에서 피를 토하는 듯이 온몸을 비틀어가며 노래했다. 그 나이에 그렇게 빠른 박자에 맞추어 율동을 한다는 것이 기적일 것만 같이 몸이 유연했다. 하늘을 향하기도 하고 관중을 향하기도 하는 그들의 몸짓과 노래는 마치 신들린 무당과도 같았다. 그야말로 신명이 나 있었다. 관중들이 조용하면 박수를 치라는 제스쳐를 보내고, 관중들이 흥이 나면 무대 위로 불러서 같이 춤을 추었다. 한 할머니 가수는 그날이 마침 생일날이어서 생일 케익을 받고 눈물을 줄줄 쏟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어떨까? 한류니 뭐니 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가수가 노래를 잘 하건 못 하건, 나이를 먹게 되면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연예계는 거의 대부분 젊은이의 전용 놀이터로 변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 공연장은 말할 것도 없고, KBS, MBC, SBS 방송국의 연예 프로 중, 관중석에서조차 노인들이 앉아서 박수 치는 것을 거의 볼 수가 없다. 하나 예외가 있다면 KBS의 가요 무대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친구들과 술 한 잔하고 성인 디스코 같은 데 한번 들어가 보려고 하다가, 물 흐린다고 입구에서 제지 당하느니 차라리 냉수 먹고 속 차리자고 근처에서 생맥주 한 잔 하고 집으로 가는 경우가 습관화 되어 있다. 그렇다고 뭐 그리 서글퍼하지는 않는다. 맥주 한 잔에 땅콩 한 접시, 적당히 늙은 마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내 분수를 내가 안다. 그 마담이 내 옆에 앉아 주면 더욱 고마울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그러한 내가 알던 소녀는/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세월은 가고 오는 것/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박인환>

 

 

 

 

 

 

 

 

 

 

 

 

 

 

 

 

 

 

 




<현장 비디오>

 

 

 



공항으로

 

 

2014년 12월 15일, 우리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쿠바를 떠나야 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칸쿤에서 항공기를 빨리 예약하지 못해, 쿠바에 머문 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었다. 우리는 쿠바의 반쪽 즉 서부만 보았을 뿐이다.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쿠바의 동부에 갔었을 것이다. 동부의 수 많은 관광지와, 아름다운 해변, 숲속의 동물 관찰, 하이킹 등을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하기야 어디 그것만이 아쉬울까? 아바나 시내만 일주일을 돌아다녀도 어디 아바나를 보았다고 명함도 못내밀 형편이 아니던가?

 

 

 

 

 

 

 

 

 

 

그날 아침 우리는 쿠바에서 기억에 남을 마지막 이벤트 --- 옛날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핑크색 오픈 카를 타고, 한껏 기분을 내며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삐까번쩍하게 광을 낸 핑크빛 자동차를 탄 기분은 가마 타고 시집가는 촌색시의 기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수십년 묵은 차를 한번 타본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의 마음은 천하를 얻은 징기스칸의 기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꾀죄죄한 차를 타고 달리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참으로 없어 보이고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저렇게 살려면 뭐 하러 살어, 라는 야만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너희들 길 안비키면 다 죽는다, 라는 폭주족의 영웅주의에 휩싸이게 되었다. 나는 좋은 자동차 한 대가 이렇게도 한 인간을 바꿔놓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입술을 깨물며 침착하려 애썼다.  

 

 

 

 

<차를 타고 가다 보이는 길가의 공장: "사회주의 아니면 죽음"이라고 적혀있다. >

 

 



 

 


 

 

쿠바는 야구, 사탕수수, 시가, 관타나메라, 헤밍웨이, 체 게바라를 연상시키는 나라다. 쿠바는 수백년 간의 스페인 통치, 독립 전쟁, 해적의 침입, 미국의 경제 봉쇄 조치 등 연속된 고난 속에서 끝까지 버텨 온 강인한 정신의 국가다. 카스트로가 좀더 미국의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 했더라면, 아마 지금보다 경제는 많이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부자와 강자에게 아부하고 말 잘 들어 잘 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굶어죽어도 끝까지 저항하며 가난하게 살면서 자기의 뜻대로 한 평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쿠바는 지난 역사를 다시 살펴보고 복기(復棋)하여 그것을 거울 삼아 이제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야 할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난 후, 창밖으로 보이는 쿠바 해변은 넘실거리는 파도와 짙게 드리워진 열대의 숲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보다는 지난 7박 8일 간의 짧지만 길었던 쿠바에서의 추억이 내 마음을 쿠바 땅에 내려 놓고 있었다. 쿠바의 허물어진 골목골목을 오가는 쿠바인들의 모습이 비행기 유리창에 선연((鮮然)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 창에는 또한 쿠바 땅을 다시 밟아, 쿠바의 음악, 역사, 유적, 자연 경관에 흠뻑 빠져드는 내 모습이 똑똑히 되비쳐 보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아바나의 골목을 물들이는 쿠바인의 낙천적이고 해맑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이 시키지도 않고 요청하지도 않은 관광 안내를 하고서는 끝에 가서 "사실은 집에 갓난아기가 있는데, 우리가 쓰는 「모네다」라는 돈으로는 우유를 살 수 없어요. 우리 아기가 너무 불쌍합니다. 아기 우유 사는데 보태게 몇 달러만 주세요."라는 뻔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즐거움도, 잊지 못할 추억의 한장으로 남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음 회에는 멕시코 여행기가 시작됩니다. 멕시코 여행기는 2 회면 충분하리라고 생각되므로, 본 여행기는 29회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 비디오>


 


 

(2015년 6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