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오후 6시경 멕시코의 칸쿤에 도착했다. 교대로 근처 식당에서 급하게 식사를 하고 멕시코 시티 행 버스에 탔다. 멕시코 행 시외버스가 출발한 시각은 오후 8시, 땅거미가 짙게 드리운 후텁지근한 밤이었다.
멕시코 시티까지는 어떤 경로로 가는지 궁금했다. Maps with me pro 라는 핸드폰 프로그램으로 추적해보니, 칸쿤의 남쪽, 즉 거의 벨리즈까지 쭉 내려왔다가 서쪽으로 향하는 길을 이용하여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그 뒤 이 버스는 몇몇 도시에 들러 사람을 내려주고 또 태우며 점점 멕시코 시티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낮에도 비몽사몽이요, 밤에도 비몽사몽으로 잠을 자다가 밖을 보다가 두 가지 이외에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버스 밖 경치는 평범한 풀밭이 전부였고, 가끔 가다 이상한 물건을 실은 화물차가 텅 빈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 있는 TV에서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드라마가 상영되고 있었으나,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중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도시에 내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식사를 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잠을 청했다.
멕시코 시티에 도착한 것은 12월 16일 오후 11시경, 27시간 버스를 타고서야 비로소 목적지인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다. 모두들 지치고 넋이 나가 마치 해골이나 좀비가 허우적대며 암흑의 동굴 속을 더듬어 가며 걷는 듯 했다. 시외버스 터미널을 비추고 있는 희미한 가로등이 짙붉은 황토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밤늦게 터미널에 도착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목적지에 서둘러 가야하는 하차한 승객들은 바람에 쫓기는 늦가을 가랑잎처럼 부스럭 소리를 내며 서둘러 종적을 감추고 있었다.
<유스 호스텔은 아침 식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아침마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식사를 했다.>
택시를 잡아 타고 멕시코의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 소콜로 광장 근처에 내렸다. 사방에 사람을 보내 유스 호스텔을 수색했고 마침내 각자의 의견을 모아 1인당 1박에 14,000원짜리 유스 호스텔을 잡아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려 방을 배정받고 들어와 샤워를 끝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멕시코의 칸쿤에서 멕시코 시티까지 버스 여행은 결국 날짜로는 3일(12월 15, 16, 17일)이 걸렸고, 시간상으로는 무려 29시간이 걸렸다. 종전에 내가 파키스탄에서 세웠던 22시간의 기록을 깨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호텔 벽에 걸린 벽화: 멕시코 원주민인 듯 하다.>
<호스텔 다인실의 일부>
<멕시코 시티의 소칼로 광장 주변>
우리는 한국을 떠나온지 이미 40일이 넘었기에, 오늘부터 파장 분위기가 여기저기 감지되었다.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귀국날짜가 가까이 왔을 때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한국에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괜히 심술이 나기도 하고, 가끔 한숨이 나오기도 하며, 뭘 하든 일손이 잡히지 않는 그 독특한 기분 말이다. 박물관에 가서 신기한 작품을 보면서도,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리고 목청을 돋구어 소리를 내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허전한 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구글 지도에 나타난 소칼로 광장: 멕시코의 중심지다>
멕시코 시티는 해발은 2240미터에 있는 인구 2100만명의 대 도시다. 멕시코 시티는 4000미터 이상의 고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해 있다. 위도 17도에 위치해 있어서 대단히 더워야겠지만, 고산 지대여서 덥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100m 높이 올라갈수록 0.8도 정도 온도가 내려간다고 중학교 때 뼈에 사무치게 외웠던 공식에 대입해 보면, 여기 온도가 해수면보다 17도(2240m×0.008=17.92도)가 낮은 셈이 된다. 만약 해수면이 35도라면, 여기 멕시코의 온도는 20도가 채 되지 않는 셈이다.
본래 이곳은 아스텍인들이 살던 곳이다.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예전에 호숫가이었고, 후에 물이 빠져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선인장 위에 앉아서 뱀을 잡아먹는 독수리가 있는 곳에 도시와 신전을 건설하라는 신탁(神託: 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답하는 일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해 건설된 도시가 바로 여기 멕시코다. 이것은 현재 멕시코의 국기에 잘 나타나 있다.
<가이드가 갖고 있는 지도>
<멕시코 국기: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 뱀을 물고 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약 150미터 떨어진 곳에 대 성당(Metropolitan Cathedral)이 있다. 본래 멕시코 시티가 호숫가에 건설되어서 지반이 약해 평균 매년 10cm씩 침몰된다고 한다. 이 교회 건물도 이 영향을 받아 기울어져 있다고 하는데, 외관상으로는 판별하기 힘들었다.
<대성당: 지반의 침하로 기울어졌다고 한다.>
<성당의 내부>
<성당의 내부>
<성당의 내부>
<성당의 내부>
<성당의 내부>
<성당의 내부>
<성당 옆에 있는 Templo Mayor: 발굴이 진행 중이다.>
이 성당을 시작으로 하여 왼쪽에 수 많은 박물관과 유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말하면 나는 오른쪽으로 소콜로 광장을 바라보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구경을 했다. 지도 상으로 보거나, 실제 시각적으로 보아도 알 수 없는 수 많은 볼거리가 왼쪽에 가득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미 멕시코의 유명한 유적을 많이 보아왔기에 멕시코 시티는 나에게 큰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오른 쪽에 있는 소칼로 광장에서는 인공 스케이트장이 있었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거나, 근처의 관망대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대지방에서 스케이트를 타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일까? 일년 내내 이런 기회가 있는지, 아니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넘쳐나는 사람들로 스케이트 장은 붐비고 있었다.
대통령궁은 여행객이 들어갈 수 있다고 안내 책에는 나와 있으나 실제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주변에는 경찰이 삼엄하게 서 있고, 입구에서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대신 근처에 있는 박물관 두 곳에 들어가 보았다. 중국 유물을 전시한 곳도 있고, 이집트 유물을 전시한 곳도 있었다. 당연한 것인지 아니면 재수가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가본 박물관은 모두 무료였고, 안내 책자와 작은 선물을 주는 등, 관광객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친절이 지나칠 정도였다.
주위에는 수 많은 상점이 늘어서 있고, 마치 한국의 남대문 시장 같이, 입고 사용하고 먹는 물건이 골목골목 쟁여져 있다. 상인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이상한 몸동작으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값싼 녹음기나 USB 저장기기를 파는 것은 우리 나라 용산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서 그런지 소콜로 광장 근처에 있는 리버풀 백화점에서는 쇼핑객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내 눈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만져보고 구경하고 웃고 떠드는 사람이 대부분으로 보였다.
<리버풀 백화점 앞 풍경 동영상 1분>
근처의 다른 백화점의 식당 겸 커피 숍에서 좀 쉬면서 무엇인가를 먹고 싶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여자 종업원이 마치 로마의 병사처럼 바닥을 쿵쿵거리며 보무당당하게 내게로 와 메뉴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영어로 질문을 하니 그녀는 스페인어로 대답을 했다. 한국의 식당에 외국인이 찾아와 영어로 주문했다면, 아마도 종업원은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식당 종업원은 영어를 전혀 못한다고 해서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나는 큰소리로 영어로 하고, 그녀는 더 큰 소리로 당당하게 스페인어로 말했다. 어떻든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던 그녀가 나중에 가져온 음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 같은 음식이었다. 의사 전달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표정 제스처로 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하루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지금까지 여행을 다닌 것 중, 가장 속터지고 답답한 곳이 바로 여기 중미였다. 의사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밥맛이 떨어지기도 하고, 세상살이가 재미없기도 했다. 다음에는 꼭 스페인어를 배워 와야겠다는 생각과 내가 이런 데를 왜 또 오냐, 라는 생각이 번갈아 드는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소콜로 광장 주변에서는 영화 촬영이 있었다. "Shooting Board"라는 흰 괘도를 걸어 놓고 장면 장면마다 확인하며 몇 번의 연습을 거친 후 촬영에 들어갔다. 분장 덕인지 모르지만, 영화 배우는 보통 사람과 많이 달랐다. 정말 잘 생기고, 각자가 개성이 강한 듯이 보였다. 배우라는 것은, 그 모습, 표정, 옷 차림, 몸 동작, 음성 등을 고려해볼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아니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아니라, 배우는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가 더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우리 나라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조사해보면 반 이상이 방송 연예와 관계된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배우가 되려는 사람은 웬만하면 냉수 먹고 속차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젊었을 때, 노주현이라는 탈렌트를 어느 다방에서 본 적이 있다. 그날 그 다방에서 본 30대의 노주현이라는 배우의 위풍당당함, 중저음이 잘 배합된 주위를 압도하는 음성, 깔끔하고 위엄있는 복장,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감정 표현과 제스처를 보고, 나는 그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뿐이었다. 나도 운이 좋아 조금만 노력했으면 배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가정법 문장은 그날 이후로 내 마음에서 비온 뒤 파란 하늘처럼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멕시코 시티 버스>
멕시코 시티는 어디를 가나 CDMX라는 글자가 보인다. 인터넷 용어로 CDMA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CDMX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것은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였다. CDMX는 Ciudad De Mexico의 준말이고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City of Mexico 즉, 멕시코 시티라는 뜻이다.
CDMA 관광버스는 바로 소콜로 광장에서 출발한다. 쿠바의 아바나 시티버스와는 달리 다닥다닥 이어진 멕시코 시티 거리를 달리므로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혼잡한 도심을 대충 훑어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멕시코 시티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멕시코 시티는 길 양쪽으로 높지 않은 건물이 잔잔하게 늘어선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시티 버스에서 보면, 조각상이 많이 보이고, 분수와 어설프게 만든 용과 공룡의 잡종처럼 보이는 인조 동물이 하늘로 아가리를 쳐들고 으르렁댄다. 건물의 코너와 요소요소에 수 많은 조각품이 놓여져 있다.
중심가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공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완전군장으로 거리를 뛰어가는 사람도 있고, 이상한 복장으로 길가는 손님을 유혹하는 종업원도 보인다. 어김없이 모퉁이에서는 악기를 연주하고 그 옆에 돈통을 놓고 적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골목에는 노점이 빼곡히 들어서서 호객행위를 하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서로간에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내가 멕시코 시티의 한 음반점에서 CD를 구입할 때의 일이다. 종업원이 거스름돈을 맞게 주는지 지켜보다가 얼마가 부족하자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거스름돈이 적다고 따지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나는 말 없이 서 있는데, 상점 종업원과 구경꾼이 나 때문에 언성을 높여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행인이 나로서는 고맙기는 하지만, 자기 일도 아니고그래봤자 몇 천원의 금액도 아닌데 나를 대신해서 멕시코 시티의 한 낮에 의리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멕시코 시티는 좀 희한한 기록을 갖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키스를 한 기록이 있고(39,879명),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에 맞추어 가장 많은 사람이 춤을 춘 기록도 있다(13,597명). 동성 결혼이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해 라틴 아메리카의 게이 커플에게 무료 신혼여행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부분 인터넷에서 인용>
그러나 교통 혼잡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가다가 길이 막혀서 중간에 내린 적도 있었고, 멕시코를 떠나올 때는 어떤 사거리에서 서로 조금 먼저 가겠다고 차 머리를 들이미는 바람에 얼마나 시간이 지체되었는지 모른다.
멕시코의 공기 오염은 너무 심각해서 아이들에게 하늘을 그리라면 회색으로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멕시코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공기 오염은 다른 대도시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피곤한 우리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한국 음식이었다. 어느 곳에 여러 한국 음식점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멕시코 시티에 사는 한국인들이 와서 매상고를 올려주고 있었다. 주방장이 나와서 우리 일행에게 그가 제일 잘 하는 요리를 추천해 주고 주문하도록 도왔다. 오랜만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혁띠 풀어 놓고 원 없이 먹었다. 사실 그 상황에서 어떤 음식이라도 한국 음식이라면 목구멍에 살살 넘어가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그 옆에 한국 소주가 있었으니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여행을 시작한 이후 과테말라에서 먹어보고 두 번째 먹어보는 한국 음식이었다.
나는 외국으로 이민 갈 생각이 없지만, 혹시 이민을 가더라도 가끔 한국 음식을 먹어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국 사람이 없으면 카톡으로 한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심심하면 인터넷으로 한국의 상황을 접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소주와 해산물 안주가 없는 곳에서 사는 삶을 어찌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