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간 중앙 아시아 여행기 2
"이닝, 혜원고성, 싸리무호"
이닝은 우루무치에서 약 390키로 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1997년에 분리독립 운동이 일어난 지역이다. 위그르족은 겉보기에 한족과 다르며 우리가 보는 유럽인과도 외모가 좀 다르다. 위그르족은 흙을 사용하여 지붕을 평평하게 하며, 평소 선명하고 우아한 옷차림을 즐긴다고 한다. 이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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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오전에 인민공원에 갔다. 한국은 보통 그 지방의 지명을 붙여서 공원이름을 짓는다. 예를 들어 효창공원, 장충단 공원 등이 그렇다. 그러나 중국에는 어디를 가나 지명과 관계없는 인민공원이 있다. 우리가 이닝 인민공원에 갔을 때, 다른 인민 공원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춤을 추거나 무술을 배우거나 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쌍의 중년 남녀가 춤을 추는데,
동작이 아주 특이해서, 그야말로 춤과 체조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기묘한 동작이었다. 남자의 동작과 표정은 의기차고 다부졌으며, 여자의 몸놀림에는 웃음 띤 얼굴에 애교가 흘러 넘쳤다. 아니 자신감과 행복감이 그녀의 온몸에서 묻어 났다. 나같으면 소주 2병은 마셔야, 이 사람들 반이나 따라갈지 모르겠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한 병이면 될 것 같다. 나도 예전에 지루박을 배운 이력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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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두 사람이 와서 공원의 한쪽에 있는 묘비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련에 항거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묘비라고 했다. 후손들이 선조들의 투쟁정신을 알아보고 배우러 왔는지도 모른다.
1997년에 이곳에서 중국으로부터의 분리주의 폭동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중국의 지배에 반대하여 폭동을 기념하는 묘비를, 이곳에 세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중국인의 입장으로는 "폭동"이고, 위그르족의 입장으로는 "독립 운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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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아이들이 소풍 왔다. 앞 사람의 옷을 잡고 가는 것이 특이하다>
이닝은 이리 카자흐 자치주에 있는 하나의 도시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지명은 "이리"라는 지명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강의 명칭도 "이리강(江)"이라고도 하고 "이리하(河)"라고도 한다. 강과 하는 어떻게 구별하는가? 중국 인터넷 바이두를 찾아보면, ① 地域上的区别(南“江”,北“河”)"长江, 黄河"。 ② 规模上的区别(大“江”,小“河”). 즉 (1)남쪽에
있는 것은 "강", 북쪽에 있는 것은 "하", 예를 들면 "长江, 黄河" (2)큰 것은 "강", 작은 것은 "하"라고 한다. 그러나 습관상, 역사상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여,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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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강의 일부분을 유원지로 바꿔 놓았다. 유원지만을 돌아다니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한바퀴 돌 수 있다. 요금은 1800원. 강물은 흙탕물이고 물살이 아주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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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닝의 한인가(汉人街)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버스를 탔는데, 역시 버스에 "안전" 완장을 찬 사람이 있었다. 버스에 내려서 한인가를 찾아간다고 하다가, 한인가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계속 걸었다.
한참을 가니 군복을 입은 학생들이 떼지어 가고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꺄악" 비명을 지르며 물귀신 달려들 듯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치 우리가 한류 연예인이라도 되는 양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만약 김수현이 왔더라면, 아니, 우리라 하더라도 조금 더 젊었을 때 왔더라면, 아마 몇 명의 아이들은 기절하여
들것에 실려 나가는 희한한 광경을 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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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싸이리무호로 가는 중이었다. 어디선가 소 장사, 닭 장사, 양 장사, 말 장사, 심지어는 낙타 장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시골장터로 들어가는 입구에 버섯을 비롯한 알 수 없는 농작물을 길가에 놓고 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위로 아침 햇살이 사각으로 비추어 산뜻한 맛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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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 말이나 양을 차에 싣고 내리는 것도 보통 기술이나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갑자기 죽을 힘을 다해 뛰는 소를 통제한다는 것은 힘과 기술과 그리고 이런 동물들을 제압할 수 있는 특유의 카리스마까지 필요한 듯 했다. 불현 듯 옛날에 시골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큰 황소를 키울 때, 이 황소가 얼마나 영리한지 여자나, 아이들이 가까이 가면 받으려고 달려들지만,
건장한 청년이 가면 슬슬 눈치를 보고 뒤로 물러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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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동물이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코앞에 닥친 자기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운명을 아니까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해보자는 심사일까? 비상 상황에서도 암컷에 올라타려고 바득대는 황소를 보고 있으면, 측은한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인간도 저들 동물처럼 그냥 그렇게 살면 차라리 더 속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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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고성이라는 곳에 갔다. 한 마디로 별로 인상적인 것이 없는 그런 고성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가지가 오래까지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하나는, 키가 작고 꾸부정한 노인이 있었는데, 구슬픈 목소리로 소리 높여 뭔가를 항의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애처로운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울부짖는 것으로 보아, 뭔가 원통하고 분한 것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듯 했다.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위로하는 말을 하면 더욱 구슬픈 쇠소리로 쏘아대니 참 마음이 너무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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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고성에 있는 임칙서의 동상>
또 하나는 역사에서 배웠던 임칙서라는 사람이 여기로 "귀양살이" 왔다는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839년 당시 청나라 정부는 임칙서에게 아편을 단속하는 권한을 맡겼다. 임칙서는 영국인들에게 아편을 내 놓으라고 위협하였다. 영국인들은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1천 상자를 내 놓았지만, 영국인들은 2만 상자를 숨기고 있었다. 결국 임칙서는 이를 간파하고 모두 회수하여 폐기처분해 버렸다. 이에 격분한 영국인들은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패한 청나라 정부는 영국 정부의 항의를
받고, 임칙서를 바로 이 혜원고성으로 귀양보낸다. 그가 이곳에서 있을 때인 1850년,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정부에서 이 난을 진압하기 위해 그를 다시 관직에 임명했으나, 그는 임지로 가던 중 병사하고 만다.
임칙서의 동상 뒤에 한자로 된 글이 써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원자바오 총리가 인용했다는 다음 말은 알고 있다.
"국가를 위한다면, 살고 죽는 것이 무슨 상관이며, 어찌 화를 피하고 복을 쫓겠는가(苟利國家生死以豈因禍福避趨之)----임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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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계곡입구>
싸이리무호를 가는 중간에 모든 차량은 멈추고, 탑승객은 내려서 검문을 받고 가는 곳이 있다.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위협적으로 서 있는 검문병 옆 벽에 작은 표어가 눈에 들어온다. "使命高于生命, 责任重于泰山"。 그럴싸한 말이다. "사명은 생명보다 높고, 책임은 태산보다 중하다." 그런 사상으로 뭉친 것이 중국 군인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6.25때 "전진하라!"는
말 한 마디만 듣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껴, 인해전술로 연합군을 중국 땅에서 몰아낸 것이 아니겠는가?
위 사진에 果子沟口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중국어에서 果子(과자)는 과자가 아니라 과일이고, 沟口=溝口(구구)는 계곡입구를 말한다. 그러나 "과일이 많은 계곡"을 통과하면서도 단 하나의 과일 나무도 보지 못한 것은, 세월의 무상함에서 인지, 아니면 중국인들의 과장이 심해서 인지, 나로서는 그 원인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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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탁 트인 싸이리무호수에 도착했다. 잉크보다도 더 파란 하늘 아래, 코발트 빛보다도 더 짙푸른 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도 초록의 옷을 입은 호숫가에는 몇 쌍의 웃음 띤 신혼부부들이 나와 천국이라도 온 것같은 기분으로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고,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꼬리를 물고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눈을 들어보면, 저 멀리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산 위에 약간의 흰 눈이 쌓여있고, 그 위로는 흰 구름이 가늘게 펼쳐져 있었다. 호수를 둘러싼 사방의 잿빛 산들이 한 방울의 물이라도 샐까 노심초사하며 호숫물을 공손이 받쳐든 듯 하였다.
싸이리무호수는 이닝에서 120키로 떨어진 곳으로 천산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2071미터에 위치에 있으며 동서 30키로 남북 25키로이다. 평균 수심은 45미터, 최고 깊은 곳은 106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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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이곳에 왔을 때는 교량건설 작업이 한창이었었다. 트럭이 꼬리를 물고 먼지를 사방에 흩뿌리며 연신 들락거렸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전의 구불구불한 길은 이제 직선 길과 터널로 연결되었고, 무질서한 노점상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몽고식 흰 천막만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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