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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간 중앙 아시아 여행기 5
"차린 계곡"(카자흐스탄)
<차린 계곡의 위치>
차린 계곡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약 200km의 위치에 있다. 작은 그랜드 캐년이라고 알려진 이 계곡은 오랜 기간 동안 차린 강물이 흘러 대지를 깎아 내린 결과로 계곡이 형성되어, 기이하고,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치는 곳이다. 거대한 계곡 중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 "성(城)의 계곡(Valley of Castles=Dolina Zamkov)"에 관한 이야기다. 이 계곡에 있는 절벽은 높이가 최고 100m로, 길이는 약 3km에 걸쳐 있다. 계곡 양쪽으로 펼쳐진 붉은 흙벽과 기묘한 돌은 여행자의 심장을 멎게 한다. |
2016년 9월 27일 오전 8시 알마티에서 차린 계곡을 향해 출발한다. 세계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알마티 시내에서는 출퇴근 시간과 겹쳐 길이 막힌다. 차린 계곡으로 가는 길은 특색이 없는 밋밋한 길의 연속이었다. 도시를 벗어나서 한 숨을 좀 돌릴 쯤 해서 몇 개의 과일 노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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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사서 차에 싣는다>
<가는 길은 대부분이 평원이고 멀리 양이나 소가 가끔 보이기도 했다.>
거의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자동차는 허허 벌판으로 접어 들었고, 비포장인데다 바닥이 평평하지 못해서 마치 빨래판 위에 비누를 문지르는 것처럼 자동차가 덜덜 거렸다. 먼 곳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을 제외한다면, 들판은 마치 망망대해처럼 보였고 듬성듬성 낮은 풀로 뒤덮여 있었다. 들쥐 굴이 여기저기 보였고, 자동차가 가까이 가자 밖에서 있던 쥐가 엉금엉금 쥐굴 속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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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표를 사고 다시 버스를 타자 버스는 먼지를 말아 세우며 달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런 곳에 계곡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냥 평지일 뿐이니까! 3-4분 달렸을까? 자동차 운전수는 내리라는 신호와 함께 손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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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계곡은 평지에 비가 내려 빗물이 흙을 씻어 내려가 생긴 계곡이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침식작용을 해야 이런 계곡이 생길까? 인간의 한 평생과 비교한다면, 영겁의 세월이리라. 파란색 철제 계단을 따라 내려 간다. 나는 앞과 좌우, 그리고 뒤를 보면서 일행의 맨 뒤를 따라 갔다. 나무도 없고 오로지 듬성듬성 나있는 풀만이 자라고 있는 계곡이 처음에는 마치 화성에 착륙한 듯, 삭막함으로 다가왔다. 점점 계곡을 따라 내려갈수록 양쪽으로 기묘한 모습의 흙 담장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여행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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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점점 깊어가고 양쪽으로 우뚝 솟은 적벽은 점점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비와 바람에 씻겨 흙은 떠 내려갔고, 남아 있는 불규칙한 거대한 벽은 굽고 찢겨 헤적거렸다. 여기가 인디아나 존스 영화 촬영장인가? 여기저기 남아 있는 기기묘묘한 모양의 돌은 인형같기도 하고, 곰같기도 하고, 생각하는 사람같기도 했다. 사람이 포승줄에 묶여있는 듯, 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듯, 물고기가 하늘로 솟는 듯,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이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장쾌한 무용극을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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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곳이 돌과 흙만 있는 사막은 아니다. 가끔 가다 나타나는 싸리 나무 비슷하면서도 붉은 꽃이 피어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가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자주빛 꽃으로 마지막 남은 정열을 불태우려는 듯, 고혹적으로 자신의 갸냘픈 몸매를 자랑하는 이름 모를 키 작은 식물도 있다. 또한 여기저기 그늘을 만들려는 듯, 인공으로 심은 나무가 있었는데, 제때에 물을 주지 않아서 인지, 맥없이 잎을 축 늘어뜨리고 혀를 빼고 헐떡이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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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 둘씩 또는 셋씩, 걷거나 자동차로 계곡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흐린 날씨임에도 땀이 솟는지 위통을 벗고 가는 사람도 보였다. 봉고차가 심심하면 한 번씩 지나가면서 "택시"라고 소리질렀다. 저런 봉고차도 택시이고, 이런 곳에서도 택시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마도 현지인들이 봉고차를 몰고 다니면서 힘든 여행자를 태워 돈을 버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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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계곡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쥐굴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다. 이 계곡뿐만 아니라, 계곡 위에 있는 거대한 들판에 있는 쥐를 합치면 모르면 몰라도 수백만 마리는 될 듯했다. 공원으로 들어올 때 차창 밖에 잠시 보였던 들쥐를 가까이서 보니,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쥐는 쥐인데, 꼬리는 다람쥐 꼬리와 비슷하고 머리는 쥐와 다람쥐를 섞어 놓은 듯 했다. 이 쥐들은 들에서 자라는 풀을 뜯어서 입에 물고, 사방을 돌아보며 경계를 하면서, 가다가 멈추고 또 가고, 이런 동작을 반복하면서 "쥐구멍 드나들 듯이" 눈앞에서 알짱거렸다. 아마 풀을 뜯어 모아서 굴 안에 저장해 두고 겨울에 먹이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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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서는 흙과 돌로 된 대문을 통과해야 하고, 어떤 곳에서는 흙이 길을 막아 우회해서 가야한다.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양쪽 벽은 점점 높아져서 벽의 높이가 100m는 되고, 이 계곡을 통과하는 나는,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마치 개미처럼 계곡을 지나게 된다. 멀리서 감격에 겨워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사람도 있고, 발을 떼어 놓을 때마다 아래로 죽죽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도 계곡의 상층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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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입구에서 길을 따라 아래로 약 3km 내려오면, 제법 크고 물살이 빠른 강이 나타난다. 도대체 이런 사막 지역에 저런 강물이 흐른다는 것이 믿기 어렵다. 강을 중심으로 여행자가 묵을 수 있는 숙박소로 보이는 집이 몇 채 보인다. 근처에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어서 점심을 시켜 먹었다. 우리 옆에 외국인 남녀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폴란드에서, 또 한 사람은 호주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가 거기 간 것도 흔히 있는 일이 아니지만, 폴란드에서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그것도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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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걸어서 아래로 내려간 3km을 다시 올라와야 했다. 일행 중 몇 사람은 험악해 보이는 정면 절벽으로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서 뒤를 바라보더니, 올라오는 길이 위험하니 그냥 계곡 아랫길로 가라는 신호를 우리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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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은 맑은 하늘에서 오는 석양빛으로 인해 계곡이 깨끗하고 말끔하여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빛의 명암이 또렷했으며, 갖가지 모양을 한 돌의 질감과 색감이 더욱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계곡을 내려올 때가 안개 속을 걷는 것이었다면, 돌아서 올라갈 때는 찬란한 태양 아래 걷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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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에 나오는 길>
우리는 아무래도 계곡 위로 올라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꼭 후회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쯤에 좀 만만해 보이는 곳을 골라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있는 듯 하였으나, 막상 중간 정도 오르니 길이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바닥이 모래와 마른 황토가 섞여 있어서 밟는 족족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2/3 올라간 지점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돌벽에 직면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약 2m의 돌벽을 올라가려 했으나 이러다가 누군가는 발목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은 더욱 난감하여, 하여튼 반은 앉아서 썰매를 타야했고, 반은 비틀거리면서 갈지자로 내려와야 했다. 한숨을 쉰 사람들은, "고생은 했지만, 가 본 것이 안 가본 것보다는 그래도 낫네." 라고 한 마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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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오다가 그래도 미련이 또 남았다. 앞에 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나 혼자 다른 좀 만만한 곳을 택하여 다시 올라가보기로 했다. 한발짝 한발짝 산으로 올라가니 경치는 그만큼 좋아졌지만, 공포는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였다. 이곳은 바닥이 아주 딱딱했는데, 그 위에 모래가 깔려있어서, 마치 모래가 도르래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올라간 흔적이 있어서, 길이 있음이 분명한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역시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누군가가 이 길로 갔다는 흔적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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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위에서 아래를 보니, 과연 전혀 다른 세계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련히 저 멀리 보이는 크고 작은 산부터, 내 발 밑에 깊이 파여 S자를 이루며 뻗어 있는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만화 속에 나오는 아련한 길이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쾌감과 공포감을 준다. 이렇게 아찔한 곳에 올라와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새로운 삶에 대한 생각으로 전율을 느끼는 사람부터, 지난 날을 되돌아 보고 회고에 젖는 사람, 심지어는 이곳에서 짧은 삶을 마감하는 자살 충동까지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여기를 조금 더 올라가다가 길이 끊겨 다시 내려가면 이 무슨 낭패일까? 나무아미타불!" 내 코가 석자인데, 어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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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꼭 대기에 도착하니, 해는 서산에 가까이 있었다. 저 멀리 한 봉우리에 한 사진사가 그야말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그럴싸한 자세로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파도처럼 꿈틀거리며 몰려오는 작은 산들이 앞으로 다가오다가 계곡을 건너고 퍼져서 이리 몰리고 저리 흩어져 내 뒤로 빠져나가갔다. 석양은 작은 산을 감아 돌아 구분이 그럴싸한 명암을 만들고, 그 명암 중 검은 그림자를 점점 잡아 늘림으로써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는 실험을 감행하는 듯 하였다. 아, 산천이 출렁거린다! 검은 박쥐가 꿈틀거린다. 하루의 마지막 태양이 백설기를 말려 잘게 부숴 하늘에 허옇게 뿌린다! |
돌아오는 길, 역시 사방에서 들쥐가 올라와 분주히 움직이고, 어떤 놈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 자세를 취한다. 도대체 이렇게 넓은 곳에 얼마나 많은 들쥐가 있다는 말인가? 길 옆에 세워진 매의 석상이 보였다. "이제 쥐 잡아 먹는 것도 신물이 났다. 매일 이렇게 쥐로 포식을 하니, 뱃살 늘어 나서 죽겠구나, 아이구, 배고픈 놈은 팔자가 얼마나 좋은겨!"라고 중얼거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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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로 돌아오는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소몰이를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풀을 뜯던 소떼를 우리로 몰아 넣는 것이리라. 마치 매사냥을 하듯,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일렬로 늘어서서 소떼를 한 곳으로 몰고 가고 있는 그들은 마치 데모대처럼 보였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누구라도 걸리면 죽는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소를 쫓아가기도 했다. 자동차 전조등이 유난히도 빛나는 카자흐스탄의 초저녁이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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