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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 여행기 8
"세묘노브카 계곡 및 카라콜"
<여행기에 나오는 여정 "세묘노브카 계곡 및 카라콜">
<세묘노브카 계곡 트레킹>
2016년 10월 1일, 아침에 일어나 게스트 하우스 2층에 올라가 촐폰 아타의 북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모래 언덕 뒤에, 눈으로 뒤덮인 설산이 보였다. 저 산을 넘으면 거기가 바로 카자흐스탄이다. 설산의 아름다움에 빠져 넋을 잃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술 냄새를 풍기면서 악수를 청해왔다. 손을 잡고 흔들어 보니 힘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무슨 무술을 수십년은 연마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자기가 경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밤새도록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사진을 찍는 몇 초 동안 내 몸까지 흔들렸다. 몇 마디 영어 단어를 제외하고는, 그가 하는 말을 내가 알아 듣지 못했고, 내가 하는 말을 그도 알아듣지 못하는 듯 보였다.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그저 서로 허허 웃고 헤어지는 것이 최상의 행동요령이다.
밖으로 나와 촐폰 아타 거리를 돌아다녔다. 무슨 까마귀가 그렇게 짖어 대는지 모르겠다. 무슨 급박한 일이 일어난 듯, 하늘에도, 나뭇가지에도, 전봇대에도 까마귀가 난리법석을 부렸다. 훗날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계속 까마귀떼가 까악까악 울어대며 하늘을 비상하는 것으로 보아, 중앙 아시아 일대에 까마귀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동네의 어떤 집>
<시끄러운 까마귀>
<촐폰 아타의 도로>
<세묘노브카 계곡으로 가는 길>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세묘노브카 계곡 트레킹에 나섰다. 얼마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본격적으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바로 옆에 높은 설산에서 눈녹은 물이 흐르고, 그 너머에 자잘한 나무 숲이 가을 산을 노란 카페트로 덮는 듯 했다. 전방에 있는 넓은 들판에는 말떼와 소떼가 풀을 뜯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작은 개울이 있어서 그 개울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트레킹 코스가 있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늠름하게 말을 타고 오는 한 노인이 있었다. 말을 타는 자세와 솜씨로 보아서는 20대 청년으로 보였지만, 그의 웃는 얼굴에 나 있는 수 많은 골짜기 주름에서는 삶의 고뇌와 고달픔이 잔뜩 묻어있는 듯 했다. 무슨 말을 하더니, 그는 담배를 한 개피 내 밀었다. 피우지 않는다고 하자,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했는데, 그의 표정으로 보아,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이곳에 온 소감이 어떤지 묻는 듯 했다. 핸드폰으로 그의 사진을 찍고 소형 프린터를 꺼내서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건네 주었다. 몇 년 만에 받아보았을 그의 사진은 그야말로 그의 인생의 역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의 자서전처럼 보였다. 그는 한 동안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 몇 마디를 남기고 아래쪽으로 사라졌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고산 지대에서 흔히 그렇듯이, 숨이 차고 힘이 없고 걷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올 때, 전 같았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도 나이인 만큼 그쯤에서 올라가기를 멈추었다. 멈춘 이런 행위에 대해 부끄럽기 보다는, 내가 판단을 잘 내렸으며, 이런 잘 내린 판단에 대해, 나는 내가 너무 잘나서 그런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찬양하고 치켜세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에 대해, 나는 내가 똑똑하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한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습관이 생긴 뒤로 나는 전보다 훨씬 더 인생을 보람되게 산다,는 증명할 수 없는 아주 주관적인 확신을 하게 되었다.
L님의 말에 따르면, 내가 등산을 멈춘 지점에서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아주 작은 호수가 있는데, 몇 개의 나무 같은 것이 물위로 나와 있고, 그 위에는 식물이 자라서 마치 사람의 머리털처럼 보였다고 한다. 찍어온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나의 큰 특징은 특징이구나, 아마 이런 특징이 있는 호수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죽은 나무토막을 기저로 삼아 잡초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빈 땅만 있으면 잡초가 자라고, 바위 틈만 있으면 식물이 뿌리를 박고 그 속으로 뻗어 들어간다. 그리고 결국은 도끼로도 불가능한 일을 해낸다. 즉 그 단단한 바위를 박살내고 만다. 정말 저 대단한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내려오는 길에 깃발이 펄럭이는 한 산장으로 보이는 집에 들어갔다. 한 노인이 큰 막대기를 들고 들어가더니 어디 갔다가 한참 뒤에 나타났다. 너무 말이 적은 사람인지, 아니면 본래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그는 말 없이 차를 끓이고 그릇을 씻은 후 따라 주면서, 먹어보라는 손짓을 했다. 탁자 위에는 그가 먹던 빵과 과일 몇 개 그리고 맛 없어 보이는 한 두 가지 반찬이 놓여있었다. 그집에 같이 간 네 명이,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시는 동안, 그는 나갔다 들어왔다 어쩔 줄 몰라하며 바쁘게 손에 닿는대로 아무 일이나 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다음에 왔을 때, 이곳에서 1박 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기 위해서 갔지만,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리가 밖으로 나올 때, 그는 한쪽 헛간을 가리켰다. 그 안에는 자기가 잡았다고 말하는 동물인듯, 갖가지 박제 동물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계곡에서 나와 방향을 틀어 다른 계곡으로 갔다. 눈 앞에는 노란 자작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 내 평생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도 보는구나! 자작나무 군락지와 또 다른 군락지 사이에는 소나무과의 식물이 시퍼렇게 구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노란색과 짙푸른 색으로 칠해진 한 폭의 유화가 내 앞에 잔잔히 펼쳐져 있었다.
껍질이 흰 자작나무는 그 잎이 노랗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옛날 대학교 다닐 때, "birch라는 것이 자작나무이며, 껍질이 하얗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나무 껍질이 하얀 식물이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책장을 뒤져, 옛날 대학생이었을 때 읽었던 로버트 프로스트 시를 다시 읽어 보았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볕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버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로버트 프로스트 "자작나무"의 일부>
그날 저녁 무렵 카라콜 만다노르 호텔에 도착하였다. 다음 날 일찍 동네 구경을 나갔다. 멀리 꿈인 듯 현실인 듯 보이는 설산, 그 위에 그어진 전깃줄 오선지, 그 위로 이리 훨 저리 훨 자유를 구가하며 마음대로 음표를 그려 넣는 수 많은 새들의 함성, 나는 한 동안 넋을 놓고 혼이 빠져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 발길 닿는대로 가보기로 했다.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을 향해 있는 창문에, 화분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유리 창 안에 화분이 있고, 그 안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주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행인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물소리가 시끄러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 한 사람이 새벽부터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는, 고기 잡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낚시대를 물에 던지고는 강태공 낚시하듯 세월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낭만일까, 아니면 어제 밤에 마누라와 싸웠나, 별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옮겼다.
<둔간 모스크>
아침 식사를 하고 처음 찾아간 곳이 둔간 모스크(Dungan Mosque)다. 몽고의 불교 사원을 닮은 이 모스크는 3층으로 된 파란색 처마가 특이하고 나무 기둥으로 된 것이 주목된다. 마침 그날 무슨 공사를 해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건물 밖에서 옛날식 복장을 대여해 주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어느 서양 관광객이 대충 옷을 입더니 우리를 위해 합장하는 포즈를 취해 주었다.
<성 삼위 성당>
성삼위 성당(Holy Trinity Cathedral)은 세워졌다, 부서졌다를 반복하다가 현존하는 목조건물로 세워진 것은 1961년이라고 한다. 건물 꼭대기에 녹색 탑이 있고, 그 위에 양파 모양의 금색 돔이 있는 것이 특색인데, 주위에 우거진 나무와 꽃이 품위를 더해주고 있다. 뒤쪽으로 가면 사과나무 밭이 있는데, 아무나 따 먹어도 된다는 듯, 먹다가 버린 사과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에피소드>
1. 전날 밤(2016년 10월 1일밤) 카라콜의 그럴 듯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주당 몇 사람만 남아 2차 술을 하는 중이었다.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이 우리가 한국에서 온 사람인줄 알고 반가워 우리에게 맥주를 몇 병 제공했다. 잠시 후 그는 우리에게 와서 자기가 이곳 키르키스스탄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요약하면, 그는 전주 출신이고 이곳에 온지 꽤 되었고, 이곳 사람들은 아직 때묻지 않아서 순수하다는 것, 싼 값으로 아파트를 빌리고, 통역 겸 자가용 운전사를 두고 그야말로 왕처럼 산다는 것이었다. 술이 취해서 그랬는지, K님이 그 말을 듣고 한 마디 했다. 여행을 하려면 고생도 하고, 이 나라 말도 좀 배우고, 경험을 넓혀야지 그냥 싼 값으로 편하게만 산다는 것은 올바른 여행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열받은 그는 "팽"하니 돌아가 버렸다. 그는 아마 괜히 술 사주고 뺌맞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 10월 2일 아침, 아무리 찾아도 나의 모자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서, 가만히 있을까 하다가, 말이라도 해보자고 말을 꺼냈다. 나의 사정을 듣고 사람들의 양해 하에, 짐을 버스에 싣고, 모든 사람을 다 태우고, 어제 티격태격했던 그 술집으로 갔다. 이른 아침인데 문이 열려있었다. 놀랍게도 어제 그 전주 사람이 또 나와 있었다. 그가 기분이 나빠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그는 안녕하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어제 일은 모두 잊은 듯 했다.
나는 종업원에게 다가가 어제 혹시 여기에 모자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여기저기 찾아보고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없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설령 주웠다 해도 그들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버스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모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갔을까, 주머니가 불룩하여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그 속에 나의 모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술만 먹으면 툭하면 물건을 잃어 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취중 무의식 중에 모자를 벗어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것이다. 같이 여행간 동료들 시간 뺏고, 죄없는 식당 종업원 의심하고 속으로 욕해 댔으니,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역시 잃어버린 놈이 죄인이었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 버스는 황소바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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