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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 14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컴퓨터용)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6. 12. 25. 16:25


 

 

■이 여행기는 컴퓨터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중앙 아시아 여행기 14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

 



 

<2016년 10월 10일 타쉬켄트에서 사마르칸트로 기차 이동하였다.>

 


<기차 안 모습>

 



 

2016년 10월 10일 오전 8시 50분 타쉬켄트발 사마르칸트 기차가 서서히 출발한다. 기차는 높지 않은 평원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이미 농작물을 수확한 들판을 지난다. 3시간 반 정도 지난 12시 10분 사마르칸트에 도착한다.  

 


<기차 밖 풍경>

 


<사마르칸트 역>

 

 

사마르칸트 호텔 사파르에 도착하여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지금까지 내가 있어본 호텔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축구를 해도 좋을 듯한 방에 두 사람이 묵는다는 것이 왜 그런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 이곳은 본래 호텔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귀족의 저택을 호텔로 개조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호텔 주인 아저씨는 조용하였고, 여자 주인은 무뚝뚝하고 좀 무서웠다. 실질적인 사장인 아들은, 수줍은 사람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영어로 안내를 해 주었다.

 

 



<호텔 응접실>

 

 



<호텔방 내부>

 


<호텔 방 화장실>

 


<점심 식당>

 


호텔 근처에 대단해 보이는 식당이 있었다. 외국 관광객을 포함하여 손님이 북적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 고급 식당으로 보였다. 메뉴를 보니  종합 생선 세트가 보였다. 이런 곳에 모듬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사막에서 물을 발견한 것처럼 눈이 번쩍 띄었다. 값도 7,000원 정도이어서 웬 떡이냐,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선회가 아니라, 소금에 절인 것을 씻어왔거나, 통조림으로 되어 있는 것을 꺼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그럴 도리밖에 없는 것이, 바다가 없는, 그리고 바다로부터 수천 키로나 떨어져 있는 이런 곳에 생선회가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사방이 아름다운 산이요, 어디서나 조금만 가면 바다가 있고, 생선회가 반기고 있으니 어디 가서 이런 호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소주에 생선회를 먹는다! 이것은 중앙아시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점심 식당의 벽>

 



<식당 근처의 공원에서 웨딩촬영을 한다>

 

 


<웨딩 촬영장: "우는 어머니 상(crying mother)"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스러운 장소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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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명소: 기억에 의해 작성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사마르칸트는 인구 약 60만의 도시로 해발 약 700미터에 위치해 있다. 기원전 5세기 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마르칸트는 "금을 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기원전 329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침략했을 때, 이미 사마르칸트는 세계적인 도시였다. "내가 이곳에 관해 들은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라고 알렉산더는 말했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서 뺏고 빼앗기며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는 역사의 현장인 이곳은, 마침내 1220년 징기스칸에 의해 모든 흔적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1370년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고 새로운 신비의 도시로 만든다. 그의 손자 우루그벡이 1449년까지 이곳을 통치한다. 그후 수도를 부하라로 옮기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지진에 의해 파괴된다. 얼마 후 부하라의 왕은 이곳에 다시 사람들을 이주시켜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티무르 동상: 위 지도의 A에 해당>

 



티무르는 징기스칸을 지도자의 이상형으로 삼았다. 1370년 중앙아시아를 점령하여 사마르칸트에 수도를 정하고 세계 통일의 대업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1405년 당시 중국 명나라를 정벌하려는 길에 올랐으나 중간에 병에 걸려 죽었고, 사마르칸트의 구르아미르 영묘에 안치되었다. 그는 푸른 색을 좋아하여 사마르칸트를 푸른 색의 도시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하여튼 어디를 가나 노상 티부르 이야기, 티무르 동상, 그림, 사진, 이야기가 널려있다.

 

 

 



<구아미르 영묘: 지도의 B 지점>

 

 





 

구르 아미르 영묘(靈墓=mausoleum: 웅장한 무덤)은 큰 건물 안에  티무르를 비롯한 몇 명의 지배자의 관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티무르와 두 아들, 두 손자 그리고 스승들의 무덤이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석관은 그냥 갖다 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 시체는 지하 무덤에 있다고 한다.   소련의 인류학자가 1941년 처음으로 이 지하무덤을 열 때 무덤 위에는, '이를 여는 자는 나보다 더 무서운 적에게 패할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무덤을 연 다음날인 6월22일 소련은 히틀러의 침공을 받았다고 한다. 

 

 

 

 



(가운데 검은 석관 1번이 티무르의 관이다.)

 

 



<여러 무덤 가운데 정 중앙에 자리 잡은 검은색 관이 티무르의 관이다.>

 

 




 

 



<동네 아이들>

 

 



<악사레이 영묘인듯. 불분명>

 

 



<구아미르 영묘에서 레지스탄 가는 길의 분수>

 



티무르의 영묘를 본 후, 레지스탄으로 가는 중, 한국말을 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을 만났다. 아이와 함께 공원에 나온 그는,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가 잠깐 고국에 왔고,  얼마 있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근처의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기가 자기 집이라고 말한 그는, 자기 집에 가서 차를 한잔 하자고 말한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가보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한번 가봤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사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다 온 사람은 한국을 좋아하거나, 한국이라면 넌덜머리가 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한국에서 대우를 잘 받으면 고마워하고, 못된 한국 사장을 만나 돈도 못 받고 고생만 빡 세게 하고 온 사람은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한국 관광객을 증오하게 된다. 그래서 사실은 외국을 돌아다닐 때는 한국에서 살다 온 사람을 살펴가며 만나는 것이 좋다. 잘못 그와 어울렸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현재 일을 하고 있다는 우즈벡인: 딸에게 "한국인에게 인사드려라."라고 말했다.>

 

 




 





 



 



 


<웨딩 촬영을 나와  관광객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빨리 와서 포즈를 취해라, 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울먹이고 있다.>

 

 






 


<이곳은 웨딩촬영의 핵심 코스로 보인다. 몇 쌍의 신혼신부가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레지스탄: 지도의 C 지점: 세 개의 건물로 구성되었다.>

 

 






<레지스탄>

 

 


We travel not for trafficking alone.
By hotter winds our fiery hearts are fanned.
For lust of knowing what should not be known
We make the golden journey to Samarkand.

<The Golden Journey to Samarkand: James Elroy Flecker>

 

 

우리는 단지 돌아다니러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 뜨거운 바람이 우리의 불같은 심장에 불어온다.   
알려져서는 안될 것을 알려는 욕망으로
우리는 사마르칸트로 황금 여행을 떠난다.

 

 

 

 


<레지스탄>

  



사마르칸트의 핵심은 레기스탄(=레지스탄)이다. 레기스탄은 '모래 땅(광장)'이란 뜻인데, 세 개의 거대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마드레사(medressa)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학교다. 현재 이 안에는 여러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체로 수 많은 상점이 있으며 갖가지 물건을 팔고 있다. 이 건물들은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온다고 하여, 세계에서 사진사들이 몰려든다. 우리도 저녁과 아침에 이곳에 가서 해가 질 때, 그리고 뜰 때 촬영하였다.

 

 

 

 


<레지스탄>

 

 


<레지스탄>

 

 



<레지스탄>

 

 



<레지스탄>

 

 



<레지스탄>

 

 


(사자를 만든다는 것이 반 호랑이, 반 사자를 만들어 놓았다.)

 



한쪽 입구에는 사자상이 있는데, 살아있는 동물 묘사를 금하는 이슬람교의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자를 만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이유에서 인지 반은 사자이고 반은 호랑이를 만들었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자를 만든다는 것이 결국 호랑이가 되었다면 그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레지스탄을 떠나면서. 아침 햇살이 사선으로 들어온다.>

 

 


<아마도 돈 있는 사람들의 사립학교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관광객에게 무슨

반응이라도 보였을 텐데, 전혀 관계없이 자기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다. >

 

 




<길가의 아이들>

 


 



 


비비카님 모스크 근처에 검은 양 한 마리가 있었다. 제물로 바쳐질 양이었다. 자기 앞에 닥칠 운명을 아는 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몸부림친들 무슨 소용있나? 인간에게 걸리면 죽음밖에 더 있나? 인간이 기르는 소, 양, 돼지, 닭, 오리 모든 동물은 결국 인간에게 죽음을 당해 자기의 몸을 인간에게 바치도록 키워지고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조류독감으로 수 많은 닭과 오리가 매몰처분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이런 비운을 피한다 해도, 결국 몇 달을 더 살다가 갈 뿐, 그리고 죽을 때 방법만 다를 뿐, 그들은 모두 다 바람 앞의 촛불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동물이 다 인간을 위해 죽음을 당해야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비비카님 모스크: 지도의 D 지점>

 

 



비비카님 모스크는 티무르가 죽기 직전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1897년 지진으로 일부분이 무너졌고, 1970년대에 재 건축되었다. 하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허물어져 가고 있으며, 보수 공사를 하고 있으나 진척이 느려 언제 완공될지 알 수 없다. 아마도 필자가 보기에 보수하는 속도보다 망가져가고 있는 속도가 더 빨라서, 백년이 걸려도 완공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허물어져 가는 지붕에 새가 앉아서 무엇인가를 파먹고 있었으며, 건물 뒤로 가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도 있었다. 차라리 구경보다는 빨리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티무르의 중국 아내 비비카님은 전쟁에 나가 있는 남편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 이 건물을 짓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건축가는 비비카님과 사랑에 빠졌고, 그녀가 건축가에게 키스를 해 주지 않으면 건물을 완성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결국 왕비는 키스를 해 줬고, 후에 이 소식을 들은 티무르는 얼굴에 키스 자국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 처형시켰다. 그리고 여자들은 다른 남자를 유혹하지 못하도록 얼굴을 베일로 가리도록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물론 비비카님은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죽으라는 명령을 받고 비참함 최후를 맞는다.  



  


 

 




 



 



<코란을 돌로 만들어 놓았다.>

 

 


<비비카님 안의 부서진 돌>

 

 


<비비카님 옆의 시장: 지도의 E 지점>

 

 



 

 


시장에는 수 많은 과일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의 양파 써는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10분 이상 이들의 솜씨를 촬영하였다.

 

 

 



 

 


<하즈렛 히즈로 모스크: 지도의 F 지점>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하즈렛  히즈르 모스크(Hazrat-Hizr Mosque)이다. 언덕에 위치한 이곳에 많은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왔다가 갔다.

 

 

 


<하즈렛 히즈르 모스크 안내 판>

 

 


 

2016년 9월 2일, 즉 우리가 사마르칸트에 도착하기 약 1개월 전에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 카리모프가 사망한다. 그는 수도인 타쉬켄트 대신 바로 여기 사마르칸트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의 무덤이 완성되기 전, 그의 시체는 바로 여기 하즈렛 히즈르 영묘 앞 마당에 꽃으로 장식된 채 수 많은 조문객의 참배를 받는다. 어떤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조문장에 도착했다. 시신을 중심으로 우즈벡인들이 3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면에는 의자가 놓여져, 외부인 또는 VIP가 앉아서 추도기도를 할 수 있도록 배열되어 있었다.

 

 

우리 관광객이 참석한 가운데,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슬픈 어조로 식은 계속되었고 모든 사람은 침묵 속에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그곳에 있던 몇몇 할머니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오고, 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약 15분 동안의 추도식이 거행된 후 우리는 행사장을 빠져 나왔고, 다음번 참배자들이 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아마도 전국에서 카리모프를 잊지 못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마치 시골의 장날과 같은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카리모프와 그의 시체가 있는 영묘앞: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인터넷에서 사진 두 장을 다운받아 합쳤다.

영묘앞은 실제 우리가 본 것과 동일하다. >

 

 



카리모프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1990년 3월 24일 소련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이후 1991년 12월 29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95년 3월 26일에 실시된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임기를 2000년까지 연장했으며 2000년 1월 9일에 재임하는 데에 성공한다.

 

 

우즈베키스탄 헌법에는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그는 대통령 임기를 종신직으로 변경하여 자신이 평생 동안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07년 12월 23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 3선 연임에 성공한다. 카리모프는 스스로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고쳐 자신의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2005년 5월 13일 안디잔 시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1만명에 달하는 군중이 운집하자 카리모프는 군 병력을 투입하여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주민들과 국제인권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사상자 수는 수백명에서 2천5백명까지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정부 발표는 겨우 187명에 불과하다. 또한 2003년 제정된 법에 따라 카리모프와 그의 가족들은 그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영구히 면책을 받는다

 

 

 


<추도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식장 밖으로 나온다.>

 


 

이런 독재자 중의 독재자가 죽으면 세상은 축제장이 되어야하고 모두 나와 춤을 추면서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필자 생각에, 사람이란 혹독한 과거를 금방 잊고, 이를 스스로 미화하는 능력이 있는 듯 하다. 남자들은 군대의 억압된 생활과 체벌을 받았으면서도, 제대하면 그것을 자랑이라도 되는 양, 큰 소리로 떠들면서 의기양양해 한다. 전두환의 독재 시절 때는 말 한마디도 못 하고 벌벌 떨었던 사람들이, 갑론을박의 장에서, "이런 때는 전두환이 나와서 확~ 쓸어 버려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그를 그리워한다. 여자들은 말 못할 시집살이를 당했으면 당연히 자기 며느리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여전히 똑같은 복수극을 자기 며느리에게 펼쳐 보인다.  고생과 압박을 받은 정도가 심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것을 그리워하는 듯 하다. 그런 고난을 이겨낸 자기가 너무 자랑스럽기 때문일까? 인간은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미화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뇌속에 수십만년 동안 유전되어 내려온 축적물을 과감히 떨쳐버릴 수가 없는 존재가 인간인가?  

 

 

 



<근처에 거대한 묘지가 있다.>

 

 





 



 





 



 


 

카리모프 장례식 장 바로 옆에 거대한 묘지가 있다. 크고 시커먼 비석에 죽은 자의 사진과 그의 행적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글이 바로 이 비석을 장식하고 있다. 몇몇의 일꾼들이 죽은자의 비석을 걸레로 닦아내며 한숨을 쉬고 땀을 닦는다. 죽은 자 때문에 벌어먹고 사는 이들은, 막상 자기들이 죽으면 이런 으리으리한 곳에 절대 들어올 수 없을 것이고, 한줌의 재로 사라질 사람들일 것이다.  

 

 

거대한 묘지에서 아래 평지 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거대한 영묘 단지가 나온다. 어쩌면 이곳이 사마르칸트의 최대 관광단지인지도 모르겠다. 끝을 모를 정도로 커서, 거기서 며칠 묵든지 그냥 한, 두 개만 보고 나와야 한다. 샤히진다!  '살아 있는 왕의 무덤'이란 뜻으로 유명인들의 무덤 단지다. 여행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아마도, 옛 사람이 만든 건물이나 물건 그리고 그들의 시체가 묻혀있는 곳을 구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동 묘지 및 샤히진다>

 

 





 





 



 

 

내가 죽으면 한줌의 재도 남김 없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의 모든 물건은 태워지든지, 고물상에 팔릴 것이다. 나는 재산도 별로 없지만, 나의 재산은 내가 다 쓰고 죽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재산이 남는다면, 남은 재산은 아들이나 친척, 또는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갈 것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런 글들은 얼마 동안 인터넷에 남아 있다가 관리자가 없다는 통고를 죽은 나에게 보낼 것이고, 결국은 답이 없으므로 법에 의해 나의 블러그는 폐쇄될 것이다. 그러면 나에 관한 모든 것은 바로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고, 무에서 왔다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이 평범한 진리다.  이 평범한 진리 앞에, 나는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이 하루만은 의미있게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하필이면 나인 것이 너무 좋다!

 

*이 여행기는 다음호 즉, 15편에서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