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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 여행기 15(최종회)
"부하라"(우즈베키스탄)
<2016년 10월 12일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로 기차 이동하였다.>
부하라---인구 약 27만의 우즈벡의 도시다. 도시의 대부분은 메드레사(학교), 미나렛(첨탑), 성 그리고 역사 유물로 가득 찬 도시다.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며 1993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징기스칸에 의해 거의 흔적도 없이 파괴된 후, 티무르가 지배하게 되고, 그후 16세기 사이반 왕조가 부하라 칸국의 수도로 지정하였다. |
<부하라 역>
2016년 10월 12일 아침 10시 15분 기차로 사마르칸트 기차역을 출발하여, 낮 12시 경에 부하라 역에 도착하였다. 260키로를 2시간만에 주파했으니 시속 130km로 달린 셈이다. 부하라 역은 깨끗한 건물로 마치 장난감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우리가 묵은 루스탐 주크라 호텔>
택시로 루스탐 주크라 호텔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호텔 방을 더 짓는 바람에, 반쯤 지어진 방을 사용해야 했고, 위험한 곳도 많고, 시설도 잘 갖추어지지 않아서, 술 먹고 돌아다니다가는 아래로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마당에는 옛날 그릇이나 장신구가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식당은 좀 어두웠지만, 천장이 높아서 그런대로 견딜 만하였다. 아줌마 몇 사람이 요리를 했는데, 누가 주인인지, 누가 식당 아줌마인지 알 수 없는 이 집의 음식 맛만은 대단하였다. 그리고 이슬람 아주머니 정말 대단한 미인이다! 이래서 우즈베키스탄 미인이라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 |
<이 여행기 시리즈 3의 "에피소드"에서 언급된대로 산신령님이 한턱 쏜 음식>
<호텔 마당>
<부하라 구 시가지: 기억에 의해 작성하였으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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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비하우즈 광장에서 :호자 나스루딘 동상 - 얼굴 표정이 재미있다. >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호자 나스루딘 동상(시인),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옛 학교 건물), 라비즈 하우즈(작은 호수 주위 광장) 등이 몰려있다. 이곳은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가까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에 갔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우수꽝스러운 동상이다. 우스꽝스러운 당나귀에,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타고, 우스꽝스런 몸짓을 한다. 다시 말하면 그 당나귀에 그 주인이다. "현명한 바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시인이, 어느 날 당나귀를 잃어 버렸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아저씨, 당나귀 잃고, 그래, 노래가 나와유?"라고 물었다. 호자 나스루딘 왈, "아니, 내가 당나귀를 타고 있었으면, 당나귀나 나나 모두 잃어 버렸을거 아녀유?. 뭘 알구 얘기 해야지. 모르면 가만히 계슈!" |
라비 하우즈는 조그만 연못 주위, 즉 당나귀 시인 바로 옆에 있는 광장을 말한다. 부하라 칸국 시절에는 50개나 되었던 연못이 전염병의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구소련 연방 시기에 47개 연못이 폐쇄되어 지금은 부하라에 3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주위에는 오래된 뽕나무가 반쯤 죽어 있으며, 황토색의 낙타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주위에 있는 식당의 스피커 소리 쾅쾅 대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세월 가는 줄 모른다. 배쌱 마른 종업원은 호자 나스루딘처럼 재미있는 사람이다. 우리 일행 5명이 한 탁자에 앉아서 주문을 했다. 사람 수대로 주문을 하고 내가 대신 돈을 다 내겠다고 했더니, 종업원은 여기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식사비를 다 내겠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너 빼고 모두 다 책임진다."라고 말하자 그도 웃고 면전에서 사라졌다. |
<호수 주위 식당>
<나디르 디반베기 마드라사: 위에서 언급한 연못 및 당나귀 근처에 있다.
태양(사람의 얼굴) 그리고 새가 보인다.>
이슬람은 우상 숭배를 금하기 때문에, 건물이나 유적에 태양, 달 혹은 동물을 볼 수가 없다. 대부분은 기하학적 무늬와 아랍어 글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 태양을 뜻하는 사람의 얼굴, 그 아래 두 마리의 새(후모)가 있다는 것은 이곳이 옛날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에 부흥하였으나, 지금은 이슬람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17세기에 이슬람에 융합되어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잠깐 안에 들어가 보니, 신학교이었던 이곳이 이제 상점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
<그 옆에는 목욕탕 및 여행자 숙소 터가 남아 있어, 발굴 중이다. >
<여행자 숙소 및 목욕탕 유적지>
<이런 곳을 굼바스라고 하는데, "돔, 둥근 천장, 둥근 지붕"을 말한다.
1588년에 지어진 것으로, 아직도 튼튼한 건물 아래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그 다음부터 아르크 성에 도착할 때까지 수 많은 상점과 모스크, 메드레사가 얽히고 설켜서 뭐가 뭔지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놈이 그놈이고, 저놈이 저놈이어서 뭐가 뭔지도 잘 모른다. 이것은 마치 한국인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얘는 철수, 재는 창호, 또 저 애는 준걸이라고 말해봤자, 그 사람이 구별 못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각각의 건물들은 그 규모가 사마르칸트보다는 작지만, 올망졸망 모여 있어서 사마르칸트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하다.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물질 주의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듯 하다. |
<굼바스: 안쪽은 상점이다. >
<거리에 그릇을 전시하며 팔고 있다.>
<직물을 짜고 있는 아가씨들>
<오른 쪽 칼론 모스크와 왼쪽 미리아랍 메드레사. 가운데 칼론 미나렛. 부하라의 핵심 건물이다. >
<칼론 미나렛>
1127년 아르슬란 칸이 건축한 이 탑은 "great(거대한)"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높이 46미터로 9세기 동안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징기스칸이 이 탑을 보고 너무 위풍당당하여 말문이 막혀서 부시지 말고 살려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슬란 칸은 말싸움 끝에 이맘(이슬람 지도자)을 죽였다. 그날 밤 그의 꿈 속에 죽은 자가 나타나 말했다. "당신은 나를 죽였으니, 내 목을 사람들이 밟을 수 없는 곳에 묻어 달라. " 그래서 그의 무덤 위에 바로 이 칼론 탑이 세워졌다. 또한 이 탑은 자루 속에 사형수를 넣고 바로 이 칼론 탑 위에서 집어 던지는 사형장으로도 활용되어 죽음의 미나렛이라는 이름도 있다. 어떤 사람들이 이 탑에 올라가는 것이 보여 우리도 따라 올라가려 했더니, 금지 구역이어서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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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건물 위에 남은 철조 구조물 사이로 하늘이 아름답다.>
<어떤 상점 입구>
<저녁 식사를 한 식당>
<건설현장: 양동이를 끈에 매어 시멘트를 들어 올린다.>
<어떤 골목>
<녹슨 칼을 전시하고 있다.>
<손으로 세공 작업을 하고 있다.>
<식당에서 악기를 연주한다. 노인이라 힘드는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다.>
<길에서 양탄자 등을 팔고 있다.>
<리야비 하우스 근처의 또 다른 연못에서 아이들이 낚시질을 하고 있다.>
<날이 저물고 새들이 하늘을 장식한다.>
<구 시가의 건물 위로 낮 달이 떠 있다.>
<아르크 성>
드디어 나타나는 거대한 성채. 본래 Ark는 "노아의 방주, 평평한 배, 피난처"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성벽의 높이는 20미터이고 벽돌로 지어졌다. 5세기부터 1920년까지 건재하다가, 1920년 공산군에 의해 폭격되었다. 이 건축물의 3면은 멀쩡하게 보이고, 다른 한 면은 접근이 금지되어 갈 수가 없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파괴되지 않은 좁은 공간이 있는데, 상점이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머지 넓은 부분은 폐허로 남아 있다. |
<아르크 앞에 낙타를 갖다 놓고 태워주며 돈을 받는다.>
<관광객이 낙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성 안의 어떤 동물 상>
<성 안의 일 부분>
<성안에 있는 파괴된 부분. 이것을 언제 어떻게 재건할 지 궁금할 뿐이다.>
<우리를 초대한 본토인>
골목을 지나는데, 어떤 60대로 보이는 사람이 자기 집에 가자고 소매 자락을 잡았다. 조금은 이상했지만, 이런 기회도 인생에 많지 않을테니 한번 가보자고 해서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의 방은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쪽 커튼을 여니 도자기가 가득, 저쪽을 여니 거기도 도자기가 가득했다. 중국의 어떤 도사처럼 생긴 도자기를 들더니 쓰다듬으며, 아주 자랑스럽게 무슨 말을 했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다, 부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의 도자기를 부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부인도 안 보이고, 아이들도 안 보이고, 말은 통하지 않고, 피차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집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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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방의 다른 면. 벽이 도자기로 잘 장식되어 있다.>
<본토인은 이 사진이 젊었을 때의 자기 모습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
<부하라의 또 다른 면, 허물어져 가는 집이 많이 보였다.>
<칼론 모스크 옆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포토 갤러리 입구>
골목을 걷다보면, 포토 갤러리라는 간판이 보인다. 입장료가 없으니 마음 놓고 들어와서 구경하고 필요하면 사진이나 CD를 사주기를 바란다. 주인인 샤브캇 볼태브(Shavkat Boltaev)와 친구가 함께 운영하는 이 갤러리에는 그가 교육받은 수료증이 여러 개 보이고, 그가 찍은 좀 오래된 사진이 엄청나게 많이 전시되어 있다. 한참 구경하다가 그냥 나오기가 좀 뭐해서 정품이라고 하는 CD를 사왔다. 나중에 보니, 겉은 정품인 듯이 보였지만, 노래의 제목도 없는 것으로 보아 복사본을 파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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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갤러리>
<포토 갤러리>
<포토 갤러리>
<유명한 부하라 사진사 Shavkat Boltaev가 찍은 사진 앨범을 판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좀 쉬기도 할 겸 아기 사진도 찍어 줄 겸 해서, 배낭에서 소형 프린터를 꺼냈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가방에서 소형 프린터를 꺼내자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들이, 막상 그곳에서 자신의 사진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좀 점잖아 보이는 5~60대 아저씨가 관심을 보이며 자기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스마트폰을 보고 웃으라고 내가 말을 하니, 그는 웃지 않고 오히려 입을 더 다물었다. 나는 다시 내가 입을 벌려 웃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빨 하나 보이지 않고 더욱 힘 주어 입을 다물었다. 참, 별 노인 다 있네! 웃으라고 그렇게 애원하는 데도 입을 저렇게 다물다니, 무슨 벌레라도 입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몇 번에 걸친 노력에도 노인을 웃길 수 없어, 결국 그냥 그의 얼굴을 찍어서 사진을 빼 그에게 건네주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내 앞에 벌어졌다. 사진을 받아들고 놀라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 입을 마침내 벌린 그의 모습은 이빨이 거의 다 빠져있었고, 한두 개 남은 이빨은 검게 썩어가고 있었다. "아, 저런 약점이 있었기에 목숨을 걸 듯이 웃지 않았구나!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자꾸 입을 벌리라고 했으니, 그가 얼마나 야속하게 생각했을까?"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고 쉽고,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르다. 얼만큼 다른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소설 "위대한 갯스비"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다시한번 마음 속에 새겨야 했다. "
<참고> <소설 The Great Gatsby>
(소설의 첫 문장)내가 지금보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리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하나 해주셨는데, 그 충고를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되새기곤 한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이 점을 먼저 생각하거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그런 유리한 처지에 있지는 못했다는걸 말이야.”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The fist sentence)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The closing sentence)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
<위 이야기에 나오는 부하라 사람: 입을 꼭 다물고 있다. >
아, 차르 미나르! 나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부터 나가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듯 하다가, 곧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이 가슴을 파고 들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빛이 있어서 그런대로 사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사진사들 사이에서 사진이 잘 나온다고 소문이 난 건물이어서, 한국을 출발할 때부터 미리 점찍어 두었던 것이다.
로운리 플래닛 "중앙 아시아편" 표지로 사용된 이 건축물은 부하라의 양식이라기보다 인도 양식으로 건축된 탑이다. 이 건물은 1807년에 세워진 학교 마드레사의 문지기 집이었다. 차르 미나르라는 말은 타지크어로 네 개의 첨탑이라는 뜻인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슬람식 탑인 미나렛이 아니라, 그냥 장식품 탑이다. 나는 책 표지와 같은 각도에서 찍어 보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다. 여기서 찍은 사진이 200장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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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 미나르>
<로운리 플래닛 표지로 사용된 차르 미나르>
<어느 식당에 걸려있는 차르 미나르 그림>
<차르 미나르 바로 옆에 있는 골목>
<차르 미나르 옆 골목에 아이가 군인처럼 걸어간다.>
<차르 미나르 근처 거리에서 새벽에 식품을 판다.>
★부하라 외곽의 관광명소
한나절 차를 대절하여 부하라 근처의 관광명소를 다녀왔다.
(A) 바카우트딘 나쉬밴드 영묘
<가는 길에 목격한 목화밭>
<목화 트럭>
<바카우트딘 나쉬밴드 영묘>
<영묘 내부>
부하라의 동쪽에 위치한 "바카우트딘 낙쉬밴드 영묘"는 바카우트딘 낙쉬밴드(1318-1389)를 모신 영묘다. 그는 수피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마당에는 바카우트딘 묘가 있는데, 세바퀴 돌면 행운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 날도 춥고, 부하라를 이미 보고 왔기에 이쪽 건축물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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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여름 궁전
부하라의 마지막 왕인 알림 칸은 이곳 여름 궁전에 자주 왔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여름 궁전 입구>
여자들이 살던 건물 앞에는 풀장이 있다. 임금은 이곳에 와서 그 옆에 있는 나무로 만든 정자에 자리를 잡는다. 여자들은 왕의 총애를 받고자 풀장에서 온갖 교태를 다 부린다. 그러나 왕이 그렇게 쉽게 자기에게 수청들 여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느긋하게 기다리며, 여자 하나하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군침을 삼키며 살핀다. 드디어 그날 밤 자기를 모실 여인이 결정되면, 왕은 만면의 웃음을 띄우며 그녀에게 사과를 획 던져, 그녀가 선택되었음을 알린다. 여기 풍덩 저기 풍덩 물비린내 마시며 피나는 사랑을 얻으려는 경쟁은 거기서 끝난다. 다른 여인들은 훗날을 기약하며 쓴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좌절을 하며 다음 기회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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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앉아서 풀장을 내려다보고, 사과를 던졌던 정자>
<사과를 던진다는 팔자 좋은 왕>
(C) 초르 바크르(Chor-Bakr)
부하라에서 서쪽으로 6키로 떨어진 이곳은 예언자 모하메드의 친구인 아부 바크르의 무덤 근처에 형성된 공동 묘지다.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몇몇 건축물을 제외하고는 무너져가고 있었고, 주위의 무덤도 세월의 흐름에 황폐화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무엇을 구경해야 할 지를 몰랐다. 마당에 돌아다니는 칠면조와, 하늘을 나는 새만이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감소시켰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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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 바크르>
<초르 바크르 마당의 칠면조>
2016년 10월 14일, 부하라를 떠나는 날, 이 날은 우즈베키스탄을 떠나는 날이기도 하고, 이번 중앙아시아 여행을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마지막 부하라의 하늘을 보기 위해 새벽에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동이 트기 전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칙칙하게 흐렸다. 떠나는 나그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무수한 새들이 동쪽하늘에서 서쪽 하늘로 몰려 날아갔다. 이러한 새떼들의 이동은 끊임없이 이어져 한 동안 그칠 줄을 몰랐다. |
<그 동안 많이도 먹었던 추억의 양꼬치>
<그 동안 큰 도움을 주었던 로운리 플래닛>
<아이들은 언제나 개구쟁이다.>
<졸며 가는 당나귀 그리고 장난기 어린 현지인들>
지난 26일간 여행했던 추억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내 머리 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동안 많이도 먹었던 양꼬치, 읽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로운리 플래닛, 철부지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몸짓, 졸며 뚜벅뚜벅 걸어 가는 흰 당나귀를 타고 가는 개구쟁이와 그의 가족, 옛 복장을 하고 덩실 덩실 춤을 추던 부하라의 여인 --- 이 모든 것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어두운 하늘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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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역으로 가는 우리 차가 호텔을 막 떠날 때,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할머니 손에는 자그만 깡통이 쥐어져 있었다. 그 깡통에서는 불이 피워져 자색의 연기가 바람따라 흐느적거리며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끔 가다 깡통 밑을 호호 불어 사그라져가는 불을 피운 할머니는, 깡통을 팔로 이리저리 흔들어 검붉은 연기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쏘여주어 행운을 빌어주었다. 구름 낀 아침 하늘로 방향없이 흩어지는 연기 속에, 그리움과 아쉬움, 추억과 희망이 휩쓸려 몰려왔다 몰려갔다.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T. S. Eliot). 중앙 아시아의 10월은, 추억에서 소망을 키워내고, 아쉬움과 뿌듯함을 뒤섞으며, 다음 여행에 대한 희망을 푸른 하늘에 자색 연기로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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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3 장의 사진을 합성하였다. "추억에서 소망을 키워내고 아쉬움과 뿌듯함을 뒤섞으며 다음 여행에 대한 또 다른 희망의 자색 연기를 하늘에 불어 날린다."라는 뜻을 나타내려고 시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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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간의 중앙 아시아 여행: 부하라에서 타쉬켄트를 거쳐 한국에 왔다.>
■ 우리 일행 9명은 10월 14일 기차로 부하라를 떠나 타쉬켄트에 도착하였습니다. 같은 날 밤 타쉬켄트를 떠나, 15일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동안 글을 읽어 주신 분, 댓글 달아주신 분, 사진을 제공해 주신 일행 분들 감사합니다. 특히 많은 사진을 제공해 주신 감천(이경우)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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