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사스 여행기 5
조지아 2 "시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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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라비에서 시그나기로 가는 중 버스에서 찍은 사진>
6월 14일 오전 9시에 텔라비를 출발한 버스는 10시 경, 트스노리(Tsnori)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굉음을 내며 고지대로 돌진하는 자동차는 몇 번 구불텅거리는 산을 돌아서야 비로소 시그나기에 도착한다.
호텔 바로 위에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면 시그나기는 전경이 훤히 보이는 작은 마을이다. 깨끗하고 상큼하다고 할까, 예쁜 소녀를 연상시킨다. 로운리 플래닛은 이곳의 인구가 2,150명이고 the prettiest town in Kakheti 라고 기술하고 있다.
<보드베 성당>
우선 첫 번째로 간 곳이 보드베 수도원(Bodebe Convent)이다. 성 니노(Saint Nino) 무덤이 있는 이곳은, 사방에 싸이프러스 나무가 하늘로 치솟아 엄숙함을 더해주고 있다. 입구의 왼쪽에 조그만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이 바로 니노의 무덤 위에 세워진 본당이 된다.
바로 이 무덤 앞에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와 딸로 보이는 아이가 오더니 공손하게 절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정성을 다해 신령님께 기도하는 심청이의 모습과도 흡사하였다. 하기야 심청이를 본 적도 없으면서 어렇게 비유하는 것이 천부당 만부당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어렸을 때 기억에, 동네 사람 모아 놓고, 어머니가 심청전을 읽으면 주위 사람들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 기억만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참고로 수도원 중에서 남자들이 있는 수도원은 monastery라고 하고, 여자들이 모여있는 곳은 convent라고 한다. 강세는 모두 제 1 음절에 있다!
<니노의 무덤이 이 성당 안에 있다. >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거기에 있는 수녀들의 모습이다. 수녀하면, 그들의 실제 생활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청순, 인고, 인내, 복종, 노력, 고통, 봉사, 신성, 대체로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 더운 날 자신의 몸을 칭칭 동여매고 이마에 송글송글 솟는 땀을 닦아가며 들판에서 일을 하는 수녀가 위대하게도, 그리고 조금은 딱하게도 보인다.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평생을 또는 얼마 동안을 저렇게 사는 것이리라.
어떻게 살든, 마치 쏜 화살은 되돌아 올 수 없고, 하늘을 나는 새는 뒤로 비행할 수 없듯이, 한번 간 청춘은 다시 오지 않고, 지난 세월은 불러올 수 없다. 영어 속담에 있듯이 "우리는 과자를 갖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다.(You can't have a cake and eat it.)" 과자를 먹으면 손에 남지 않을 것이요, 손에 남기려면 먹지 말아야 한다. 수녀 생활을 하면 일반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일반인 생활을 하면 수녀가 되어볼 기회가 없다. 어떻든 각자가 택한 삶이, 다른 것을 택한 삶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쪽으로 갔다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남을 것이다.
<나이든 수녀가 이 젊은 수녀의 일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어디로 갔다. 이 혼자 남은 수녀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런 구슬 땀을 흘릴까? 즐거움일까? 자신과의 싸움일까? 아니면 신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할까?>
<고양이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은 내 평생 처음 본다.>
<수도원에서 보면 멀리 코카사스 산에 눈이 보인다.>
<수녀원에서 시그나기로 걸어오는 중 길가에 놓여있는 개와 여인상>
<돼지에 비유한 글>
시그나기 시내에 도착하여 길을 걷는데, "좋은 포도주가 무관심한 사람의 입술을 통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진주가 돼지의 입술을 통과하는 것이 더 낫다"는 글이 어느 포도주 가게 앞에 붙어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우리는 형편없는 사람 또는 의미도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었을 때 "돼지 앞의 진주"라는 말을 한다. 하기야 돼지에게 진주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돼지에게는 감자 한 덩어리가 "진주"의 값어치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말은 포도주에 무관심하지 말고, 들어와서 시음도 해보고 구매도 하라,는 뜻일 것이다.
<시그나기 광장에 저녁 햇빛이 비스듬히 내려 앉는다.>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눈에 띈다. >
<길가에 있는 가게에 빵을 사려고 들어가려는데, 주인은 사람을 내쫓으며 나가 있으라고 했다!>!
<시그나기 중심부: 기억을 되살려 Adobe Illustrator로 작성하였다. >
<한 사람이 길을 가면서 빵을 조금씩 뜯어서 개에게 주고 있다. 개들은 노인이 길을 걷지 못하게 막고 있다.>
<시그나기 박물관 앞>
<돼지 창자처럼 생긴 이 음식은 그 안에 단 것이 들어 있다. 약간 느끼하다.>
시그나기 박물관 앞에 조그만 공원이 있다. 장사꾼도 더러 있고, 관광객도 더러 지나간다. 4륜 오토바이를 타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사라진다. 배고픈 개들은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의 길을 막고 침을 흘리며 꼬리를 흔든다. 빵을 들고 있던 아이가, 달려드는 개를 피해 멀리 달아난다. 뼈만 남은 앙상한 개들이, 사냥개가 토끼 쫓아가듯 그를 쫓는다. 달려드는 개의 등살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 아이는 자기가 먹으려던 빵을 땅에 떨어뜨린다. 아이는 울고, 개들은 횡재를 만난 듯 땅에 떨어진 물컹한 빵을 한 입에 삼켜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 먹어본다는 듯, 또 떨어드려 달라고 꼬리를 흔든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피로스마니(Pirosmani)의 작품>
피로소마니(1862-1910)는 이 지역에서 태어난 조지아의 위대한 화가다. 이 나라 화폐에도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고아가 되었고 후에 기차 차장과 농장의 막노동꾼으로 일하다가 결국은 영양실조와 간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의 작품에는 상인, 가게 종업원, 노동자, 귀족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는 자연과 시골 삶을 많이 묘사했다고 한다.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그의 그림은 당대의 사회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피로스마니의 작품>
시그나기 박물관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한 마디로 "와우!"성을 자아내게 한다. 왼쪽으로 언덕을 따라서 초록을 바탕으로 주황색 지붕이 고래등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 너머로는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성당의 탑이 오뚝하게 올라와 있다. 또 그 너머로 멀리 트스놀리 시내가 그림처럼 배경을 이루며, 아주 멀리에는 코카사스 산이 짙푸르게 깔려있다. 이 작은 도시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빼어난 경관이고, 그 다음이 아마도 높은 해발로 인해 시원한 온도로 여름을 보내기 좋아서 일 것이다.
작은 마을 같지만 사실은 작은 마을이 아니다. 골목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골목을 지나면 성벽이 나타난다. 골목에는 지금은 폐업한 듯한, 그러나 한때는 전성기를 구가한 듯한 가게, 숙박업소 등이 자주 눈에 띈다. 길모퉁이에는 오디인지 버찌인지 모를 작은 과일을 컵에 담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부채질을 하며 앉아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성당 외벽에 꽃씨가 날아와 둥지를 잡고 석양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골목을 가다가 주인이 닭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순간 닭의 발이 이상한 깃털로 덮여있는 것이 보였다. 생긴 모습으로 보아 싸움닭으로 발에 면도날을 부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본래 천성적으로 조악한 깃털이 발에 수북하게 나 있는 듯 했다.>
<골목에는 식당, 여관 등이 많았으나,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도시를 가로질러 성벽이 연결되어 있다. 성벽 위로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아 사방을 훑어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양쪽으로 듬성듬성 들어선 붉은 지붕을 바라보면서 성벽을 걷노라니, 마치 장대 하나를 가지고 줄을 타고 공중을 걷는 곡예사가 된 듯 하다. 성벽 너머에 펼쳐진 마을과 들판, 그 너머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눈 덮인 코카사스 산, 가끔씩 하늘을 나는 이름 모를 새 ---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마치 내가 한 폭의 그림 속을 걷는 듯 하다.
골목길은 걷노라니 운동복을 입은 한 젊은 여인이 집 주위에 나 있는 무성한 풀을 낫으로 베고 갈퀴로 긁어 모으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솟아있는 그녀가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년에 이곳을 다시 한번 올 수 있냐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순간 나는 조금 당황했고, 이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나 해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런 말을 왜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올 가을에 우리 집을 개조해서 민박집을 하려고 하는데, 손님이 필요해서요."가 그녀의 대답이었다. 나는 허무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고, 또 그녀가 당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정주영씨가 영국에 건너가서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오만분지 일 지도와 조선소를 짓겠다는 백사장 사진을 갖고 어떤 회사에 들어가 당신이 배를 사주면, 그 사줬다는 증명을 가지고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영국 정부에서 차관을 얻어서 기계를 사들이고 그래서 여기다 조선소를 지어서---, 다시 말해서 배를 만들어 줄테니 사라."
<위의 두 사진: 4인에 3만원 정도의 음식>
옛 정취를 아직도 흠뻑 품고 있는 시그나기 골목 사이로, 초여름 습기를 품은 검은 구름 밀려오듯 순식간에 땅거미가 찾아왔다. 만족스런 여행에서 오는 잔잔한 기쁨과 시장기가 합쳐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덕 꼭대기에 있는 식당에 다다랐다.
메뉴판을 갖다 주는 식당 아주머니에게서 세련미와 온유미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 가로등이 희미하게 들꽃처럼 빛났다. 우리 일행 네 사람이 3만원어치를 시켰다. 이 나라 수준으로 보아 꽤 비싼 고급 음식이었다. 각종 채소를 정성스레 썰어 넣고 그 위에 양파와 견과류를 송송 뿌린 음식이 먼저 나왔다. 그 뒤 알 수 없는 음식이 몇 차례 더 나왔다. 이런 금액으로 이런 호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어느 곳에 가서 경관이나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실은 그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지인과의 접촉 그리고 거기에서 값싸고 질 좋은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없어도 여행은 여행이나, 여행의 참 맛을 느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된 식사를 마친 후, 멀리 희미한 등불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시야에서 사라진 코카사스 산으로부터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까이 과일 나무에 저녁 등불이 비쳐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K님이 말했다. "시원하고, 한적하고, 음식 좋고, 분위기 좋으니 내년 여름에 다시 한번 시그나기에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아기가 춥다 하니, 불 좀 때주러 내년에 와야할까 봐요." 내가 대답했다.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한 듯,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한바탕 웃고나서 우리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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