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사스 여행기 9
조지아 6 "메스티아-우쉬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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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1일 9시, 바스투미를 떠나 메스티아로 향한다. 조지아는 본래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나라다. 코카사스 3개국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알려진 조지아는 남쪽은 해발이 낮고 북쪽은 높아서, 북쪽은 한 여름을 제외하면 언제나 추운 곳이다. 메스티아가 속한 지방을 스바네티(Svaneti)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해발 4,000미터 이상의 산이 즐비하다. 최근에야 길이 좀 뚫렸지, 몇 년전만 해도 웬만한 사람은 접근을 못할 정도로 "멀고도 먼" 지방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왕도 이곳을 지배하는 것이 힘들었다. 중요한 물건은 이곳에 보관하는 것이 안전했다. 지금도 이곳에 박물관이 많으며, 개인이 가지고 있는 박물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다고 한다. 기후적인 요인으로 이곳 여행의 최적기는 6월부터 10월 중순까지이며, 이 기간을 제외하면 추워서 접근하기 힘들다.
<메스티아로 가면서 버스에서 본 장면: 사람이나 동물의 발처럼 보인다. >
<도로 가에 많은 벌통을 볼 수 있는데, 산이 많으니 당연히 꿀이 많다. 조지아 꿀은 세계에서 알아주는데, 한국에서는 현지보다 5-10배 정도 비싼 값으로 팔린다고 한다.>
<가끔 가다 보이는 길 위의 소>
<메스티아 시내 여행도>
아침 9시에 버스로 바투미를 출발하여 메스티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이었다. 점심 시간을 제외하면 6시간 반정도 걸린 셈이다.
스바네티 호텔에 짐을 갖다 놓고 바로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역사나 문화에 많은 지식이나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곳 박물관의 물건에 대해 큰 감명을 받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세계 여행을 하다보면 여기에 있는 물건들이 이곳이외에도 다른 곳에도 많기 때문이다. 조지아어와 영어로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한 나절 정도 머물 만큼의 보물이 바로 이 박물관에 있다.
<오래된 경전이다. >
<디오클레티언을 창으로 찌르는 Saint George>
로운리 플래닛에서 꼭 볼 것을 강조하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위의 조각이다. 일반적으로 St. George는 용의 입에 창을 찔러 죽이는 데, 여기서는 그가 사람에게 창을 들이대고 있다. 여기 창에 찔리는 사람은 디오클레티언(Deocletian) 황제이다. 이 황제는 284-305년 까지 로마 황제 자리에 있으면서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George는 스페인어로 '호르헤'는 라틴어 '게오르기우스', 영어 '조지'로 발음된다. 본래 George라는 사람은 초기 기독교 순교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행적에서 용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 온다.
그러면 용을 찔러야할 George는 왜 디오클레티언을 찔러 죽이는가? 디오클레티언은 로마 황제인데 기독교를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틴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도록 강요하고, 불복종한 자들은 체포, 고문, 처형하였다.
다음 사진은 George가 용을 찔러 죽이는 장면으로 본 코카사스 여행기의 7편 "트빌리시 편" 중간쯤에 있는 사진이다.
<용을 찔러 죽이는 Saint George>
<박물관 옥상>
<메스티아 마을>
<옥상에서 한번 뛰어봤다. 에너지가 다리에 가지 않고 주둥이에 가 있다.>
메스티아 박물관은 그 안의 내용물보다 오히려 옥상이 훨씬 더 멋있다. 메스티아 전경을 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으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휴식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마을을 보면, 마을 곳곳에 하늘로 치솟아 있는 코쉬키(Koshki / koshkebi / Svaneti tower)라는 굴뚝같은 탑이 여기저기 하늘로 쭉쭉 뻗어 있다. 이 탑은 조지아 산악 지대에 있는 9세기-13세기에 건설된 방어 탑이다. 탑 뒤에는 구름에 꼭대기가 가린 설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제자리 높이 뛰는 장면을 사진 촬영하였다. 악을 쓰며 뛰어올라봐도, 입으로 악 소리만 낼 뿐 지상에서 몇 센티 뛰어오르기 쉽지 않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몇 번 힘을 내보지만, 공연한 깔딱거림으로 에너지만 낭비했을 뿐이다.
참고로, 여기에 있는 탑은 중국의 단빠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중국의 단빠의 탑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박물관 옥상>
<멀리 보이는 설산을 클로즈업 했다. >
<박물관에서 근처에 있는 조각 바위>
<메스티아 중심가 광장>
<식사하는 우리 옆으로 개가 조금씩 다가와 애처롭게 음식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아무래도 개 이야기를 많이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 개들은 단체로, 또는 홀로 사람에게 접근하여 끊임없이 먹이를 요구한다. 쫓아 봐도 소용없고, 달래봐도 소용없다. 어디를 가나 졸졸 따라다닌다. 먹이를 던져주면 힘센 놈이 다 차지한다. 그러나 힘은 없지만, 귀여운 놈은 귀엽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또 먹이를 얻어 먹는다. 문제는 힘도 없고, 그렇다고 귀엽지도 않는 놈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저 왔다리 갔다리 먹이 따라다니다가 에너지만 낭비하고 견생(犬生) 끝낸다.
<험악하게 생겨 사람들로부터 혐오감을 받는 개가 탁자 밑에서 다른 개의 접근을 막는다.>
<숙소까지 따라와 먹이를 요구한다.>
<다음 날 새벽 산책 나가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
<이런 작은 마을에 은행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마을의 바닥은 돌이 깔려 있고, 벽도 모두 돌담이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 보며"를 연상시키는 돌담길이다. >
<마을 옆에 펼쳐진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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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티야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
메스티아는 해발 1,400미터, 우쉬굴리는 해발 2050미터에 위치해 있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에서 약 47km 떨어져 있으며, 자동차로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우쉬굴리는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5193미터의 샤카라 산(Shakhara) 바로 아래에 있다. 20개 이상의 방어 탑이 있어, 1996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우쉬굴리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항시 거주 지역"이라고 한다. 이 말은 유럽의 다른 곳 중, 더 높은 곳에 사람이 살기도 하지만, 이런 곳은 여름에만 사람이 살고 겨울에는 따뜻한 아래쪽으로 내려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 우쉬굴리 사람들은 일년 내내, 평생 이곳에 살다가 죽어 뼈를 이곳에 묻는다.
<우쉬굴리로 가면서 어떤 언덕에서 아래를 보고 찍은 사진이다. 메스티아에서 약 2키로 떨어진 곳이다.>
<중간에 방어 탑(Svan tower, koshki tower, koshkebi tower)이 있어 들어가 보니 3층으로 되어 있는데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가 보니 쇠갈고리 하나만 덜렁 있었다.>
우쉬굴리로 가는 진흙 길은 좁고, 질퍽거리며, 구부러진 곳이 많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앞에서 차가 온다면 교행하기기 너무 어려워 감히 운전대를 잡을 용기가 나지 않을 길이다. 지난번 카즈베기 길이 내가 가본 길 중 가장 울퉁불퉁한 길이었다면, 여기에 있는 바로 이 우쉬굴리 길이 내가 지금까지 가본 길 중 가장 질퍽거리는 길이다. 나는 길을 가면서 생각을 했다. "왜 사람들은 이런 힘든 길을 기어코 가려는 것일까? 가지 않아도 밥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거늘, 왜 굳이 이런 험악한 길을 택할까?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성인들이 왜 이리 난리법석을 떨까? 사람이란 본래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동물인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내려 찍은 장면이다. 극히 일부분만 구름을 뚫고 햇빛이 들어와 산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좁은 면적만 태양이 비치는 것은 처음 본다.>
<우쉬굴리 마을 도보 여행>
9시 30분에 메스티아를 출발하여 중간에 스키장 건설 현장에 잠시 머물었다. 최종 목적지 우쉬굴리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였다. 우쉬굴리는 4개의 작은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꼭대기에 있는 마을이 지비아니(Zhibiani)라는 마을이다. 관광객은 지비아니 마을에 내려 아래로 펼쳐진 작은 다른 마을을 내려다 보고, 또 빙하가 있는 위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비아니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관광을 끝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리자마자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여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를 피하려는 사람과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넘쳐 나고 일하는 아주머니는 몇 명 안되는데, 동작은 굼뜨고, 시간은 마냥 갔다. 오늘 중으로 다시 메스티야로 돌아가야 해서, 빨리 나가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 주문 후 한참만에 밀가루에 고기를 넣은 음식이 나왔는데, 맛은 그저 그렇고 양이 많아서, 한 두점 먹고 밖으로 나왔다.
<꼭대기 마을에서 아래 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아래 쪽으로도 멀리 설산이 보인다.>
<진흙이 묻은 개가 자꾸 달려들어 우산으로 개를 쫓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길처럼 좁고 반쯤 유실된 길로 자동차가 다닌다.>
<맨끝 마을 입구에 있는 타마리 여왕 탑 앞에서 바라본 마을과 설산. 날이 흐려서 설산의 정상은 볼 수가 없었다.>
<타마리 여왕 탑: 이곳이 아랫 마을과 윗 마을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점이다. >
<위쪽을 클로즈 업하여 찍어본 사진이다. 뒤에 5193미터의 쉬크하라 산이 어슴프레하게 보인다.>
한라산 정상보다도 더 높은 곳에 평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 이곳에 농토가 많은 것도 아니고, 기후가 알맞은 것도 아니다. 2000미터 이상에서 평생을 살아온 저 사람들은 문명이 싫어서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도 아닐 것이다. 저 수많은 경비탑(Svan tower)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들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삶의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메스티아도 적이 접근하기 힘든 곳인데, 이곳에 어떻게 감히 적이 넘보기라도 할 것인가? 지금이니까 그나마 자동차로 일상용품을 운반해서 살아가지, 전에는 거의 모든 물품을 자급자족했을 것이다.
감자바위라 하여 강원도라면 고개를 내젓던 때가 있었으나, 푸른 산과 맑은 물을 자랑하는 강원도가 한국에서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관광 자원이 되어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우쉬굴리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쉬굴리 사람들은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무서운 그림자가 그들을 덮치지 않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귀신처럼 돈 냄새를 맡는 누군가가 앞날을 내다보고 이곳을 선점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넘보는 한국이 생각나서 한 말이다.
<고삐도 없는 말이, 나하고 눈씨름을 하자는 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들판에 놓아 먹이는 돼지들. 정면에서 사진을 찍어 보려고 하였으나 스치듯이 빨리 움직이면서 먹이를 찾아 먹는 바람에 뒷면만 찍었다. 돼지를 저렇게 놓아 먹이는데, 다른 동물이야 말하면 무엇하나. 모든 동물이 모두 들에서 스스로 자랄 뿐이다. 왜, 뛰어봤자, 벼룩이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도망갈 생각을 할까?
<소 두 마리를 함께 멍에를 씌워 놓은 듯 하다.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위쪽으로 올라가는 두 길 중, 우측 방향. 로운리 플래닛에는 이 산을 돌아 빙하까지 다녀오는 8키로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에 이곳을 방문할 사람들은 미리 그런 계획을 세워, 여기에서 1박하는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흰 개가 있었는데, 문제가 있다면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항상 졸졸 나를 따라 다녔다. 그런데 그 개가 얼마나 비를 맞고 풀밭을 누볐는지, 등과 머리를 제외하고는 온몸이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좋아 따라다니지만, 나는 혹시라도 내 몸에 흙이 묻을까 그가 접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20분 이상을 따라다니다가, 별로 소득이 없다고 여겼는지, 지금 이 개는 따라 다닐 다른 사람을 물색하는 중이다.
<언덕에 있는 교회의 종. 바람에 흔들려 종소리가 나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놓았다.>
<우쉬굴리는 위에서 보면 제법 넓은 농토도 보인다.>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돼지 떼들. 약간 검은 놈은 멧돼지와 집돼지의 잡종처럼 보였다. 아마도, 추위에 강한 동물일 것이다. "굳세어라, 금순이"만큼은 강하지 못할 수도!>
<동굴처럼 생긴 집. 박물관이라고 적혀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비가 와서 진흙으로 되어 있는 골목길이 미끄럽다. 몇 번 넘어질 뻔 하였다.>
<개도 곁눈질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기가 울타리에 올라갔는지, 주인이 올려 보냈는지 알 수 없다. 진흙이 싫어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
<돌아오는 길>
<우쉬굴리에서 발원한 눈 녹은 물이 강을 이루어 흐른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박남준 시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기약하며 떠나갔다
꽃잎을 뿌리며 떨구며 떠나갔다
봄이 오기는 할 것인가
노루귀 꽃이 돌아올 봄을 기다리네
꽃잎이 진 자리마다 깨알같은 씨앗을 키우고 있네
한꽃이 지면 한꽃이 피어난다
<박남준: "제비꽃 편지를" 중에서>
이 일을 어떻게 한다지? 트럭 한 대가 미끄러져 길을 막고 서 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미 앞쪽에 수 많은 차들이 꼼짝 못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내려서 담배를 피워대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트럭은 조금이라도 후진하는 날에는 강바닥으로 추락할 판이어서 운전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흙 길에 파인 자동차 바퀴자국으로 보아 운전수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진흙 길을 통과하여 과연 견인차가 올지도 불투명하고, 설령 견인차가 온다 해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몇 사람과 더불어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하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호"라고 소리지르기도 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그리고 이런 때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동요를 불렀다. 어렸을 때 방학 때면 내가 살던 동네의 "셍기, 아랫점, 마디"라고 불리는 호젓한 곳으로 노상 소를 몰고 다녔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고개 넘어 또 고개 아득한 고향
저녁마다 놀 지는 저기가 거긴가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불면서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윤석중의 "고향 땅">
<걸어오는 길은 고즈넉하고 한가한 고향길 같다. .>
<진흙길을 피해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와야 할 우리 차는 오지 않았다. 그나 저나 아래에서 견인차가 올라가야 일이 해결될 터인데, 주정뱅이에게 기생이 그리운 것보다도, 견인차가 더 기다려졌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났는 데 소식도 없고, 다리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다."
마침 근처에 조그만 가게가 보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가 아니 반 구멍 가게였다. 들어가 보니 음료수 몇 개와 비스켓 몇 조각이 가게 물건의 전부였다. 하기야 이런 곳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지나간들 이런 곳에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처럼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나야 손님이 찾아올까 말까한 일이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자동차가 자주 고장이 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는 미스 조지아라도 나가보았을 법 한 할머니는, 이 물건 저 물건 내주면서 되는대로 돈을 받았다.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모나리자보다도 더 멋진 잔잔한 미소가 얼굴에 흐르고 있었다. 가끔 하늘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동자에서 젊었을 때를 회상하는 듯한 우수의 그림자가 서려있었다. 아,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추한 것만은 아니구나, 사람이 저렇게 고고하게 늙어갈 수 있구나, 라는 것을 할머니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반면 할아버지의 갈색 빵 모자와 시퍼런 얼룩무늬 군복은, 그가 한때는 용감무쌍한 군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돼지털처럼 거칠게 뻗은 흰 눈섭 아래, 매처럼 날카로운 눈에는 예리한 빛이 감돌아,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 충만된 듯 하였다. 우뚝 솟은 주먹코와 꽉 다문 다부진 입술은 온갖 시련과 풍상을 다 겪은 후의 자신만만함을 만천하에 고하는 듯 하였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견인차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우리 차가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트럭이 구조되는 현장을 목격한 P님의 말이다.
"사람들이 모두 걱정만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트럭 뒤로 갔어요. 그는 한번 밀어보자는 듯 사람들에게 오라는 신호를 보냈어요. 남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트럭 뒤에 수 많은 사람이 붙고, 옆에서 붙고, 앞에서 끌 수 있는 사람은 앞에서 당겼어요. 와, 진흙에 빠진, 그 무거운 트럭이 '쓰으~윽' 움직이기 시작하데요.
저는 사람의 힘이 그렇게 위대한 줄 몰랐어요. 우리는 어떤 일을 못한다고 지레 겁먹을 것이 아니라, 일단 해봐야 합니다. 신이 도와 주는지, 젖 먹던 힘이 나는지 모르지만, 인간은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와, 정말 오늘, 어떤 영화보다도 더 감동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다시 자동차는 떠났다. 흔들거리는 자동차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꿈 속에 방금 본 할머니의 미소와 할아버지의 다부진 눈빛, 그리고 진흙에 빠진 차를 합심해서 미는 사람들이 합성 사진이 뭉게구름되어 먼 하늘로 사라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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