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여행기 제 5부
"중국 최고의 아름다운 마을 단빠로 가다"
"-타공-빠메이-단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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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타공, 해발 약 3700미터이다. 지난 밤에 고산증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내가 가지고 간 겨울 옷 다섯 개를 위에 입고, 아래에는 바지를 두 개 입었다. 이불을 이중으로 덮었다. 그러나 밤새도록 추워 죽는 줄 알았다. 아내도 추워 죽겠다는 말을 밤새도록 했다. 다음 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3-4명만이 이런 고통을 겪은 것 같았다. 아마 4300미터
저두어 산을 넘어와서 그런가 보다. 2년 전 샹그릴라에서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산증을 겪었던 것이다.
10시에 타공을 출발하여 타공 초원에서 약 1 시간 정도 개인적으로 말을 탈 사람은 말을 타고 나머지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빠메이(八美: 팔미: 해발 3400미터)라는 곳이다. 여기에서 차를 바꿔 타고 단바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빠메이에 도착했는데, 약속했던 차가 없었다. 언제 올지도 모를, 그러나 금방 온다고 말하는 봉고차를 기다리며 한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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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메이에서 바꿔 탈 차를 기다린다.>
<빠메이에 있는 절>
길 옆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규모도 대단했으나 왜 그런지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 옆에는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강바닥이 시커먼 색깔이었다. 소도 시커멓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도 시커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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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거리다가 근처에 집 한 채가 있어서 그쪽으로 향했다. 이런, 한 남자가 아기를 안고 있는데, 그 어린 아이의 얼굴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커다란 흉터가 보였다. 이 어린 아이가 얼마나 큰 부상을 당했으면 저리 되었을까, 그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싱글벙글 하고 있지만, 그 아이가 장차 자라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더구나 사춘기가 되었을 때 겪을 심적 고통을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국은 성형수술 기술이 발달해 있어서 깔끔하게 고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근근이 살아가는 집에 염장지르는 것 같아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과거의 고통 때문인지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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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자기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는 장작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그 옆에는 부엌 겸 난로가 있었다. 할머니는 솥을 열어 보여주었는데, 닭이 끓고 있었다. 찬장에는 갖가지 그릇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너무 고독해서일까? 할머니는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나보다. 할머니는 엄청나게 말이 많았다. 나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사실은 할머니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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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린 12시 반쯤, 두 대의 자동차가 단바를 향해 출발했다. 소떼가 길을 막기도 하고,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길은 평평하고 완만했다. 산과 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갑자기 왼쪽으로 광활한 대지가 나타나 사진을 찍으려다가 너무 흔들리는 바람에 그냥 지나온 것이 아쉽다.
비가 멎을 무렵, 산 고개에 도착했다. 차가 잠시 쉬는 것이 보이자 산 위에서 한 아줌마가 소를 몰고 급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 편 쪽에서 한 소녀가 나타났다. 그 소녀는 내가 보기에도 복장이 이상했는데, 나에게 생긋이 웃더니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아주머니와 소녀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아이는 사람들과 사진을 같이 찍었다. 그리고는 돈을 달라고 했다. 돈을 주지 않자, 돌을
집어 들어 유리창을 깨려고 했다. 겁에 질려 누군가가 돈을 건네 주었다. 어떤 사람은 그 소녀가 돌았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머리가 돌은 척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여튼 살얼음같은 분위기를 벗어나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차를 타고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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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서부터는 아래로 내려 꽂는 길이다. 3800미터에서 1800미터의 단바로 내려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추운 것이 걱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좀 더울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KC가 일러준다. 그래도 단바는 해발 지리산 정도의 높이는 되니, 더위는 크게 걱정할 것은 못 된다.
자동차는 갈지자로 서서히 움직인다. 드디어 깊디 깊은 계곡으로 내려 꼽힌다. 안개가 몰려왔다 몰려가고, 수직의 위협적인 바위가 길 양쪽에서 도열하고 있다. 가끔 구름 낀 하늘을 나는 까마귀가 하늘로 치솟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비는 뿌렸다 멈추었다를 반복하고, 이에 박자를 맞추려는지 자동차는 휘청거리며 방향을 잡지 못한다. 타공으로 올 때, 저두어산의 정상이 그림처러 멋있는 광경이라면, 오늘 계곡에
푹 빠져서 좁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이다.
우리가 타고 가는 봉고차는 우리가 돈을 주고 전세를 냈지만, 운전수는 길에 서 있는 사람이 손을 들면, 그 사람을 태우고 돈을 받았다. 소위 중국식 전세차의 개념이다. 우리가 좀 불편하면 운전수의 수입이 생기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한국 같으면 운전수에게 항의할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웬만해서는 항의하는 법이 없는 듯 하다. 로마에 가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것은 명언 중의 명언이다.
5시에 단바의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우리가 배정받은 곳은 402호. 문을 열면 물 흘러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도 큰 곳이다. 앞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위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쏜살같이 달려 무지개 모양의 다리 아래로 흘러간다. 그 물은 다시 큰 산에 부딪치고 깨어져서 방향을 틀어 눈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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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계속 비가 내렸다. 시내 중심가로 가보았다. 여름이면 흔히 열린다는 민속 행사가 열리지를 않았다. 좁고 칙칙한 골목길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비를 맞아가며 기웃거리고 있었다. 손님도 없는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싸구려로 보이는 물건이 뎅그러니 놓여져 있고, 알 수 없는 중국 노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이 우렁찼다. 안마소를 기웃거려 보았으나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깜짝 놀라, 모든 것 그만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 날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깼다. 다리 위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행렬은 그 꼬리가 얼마나 긴지, 아마도 단바 사람들이 다 따라 나선 것이 아닌가할 정도였다. 이 대열은 다리를 건너더니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맞은 편 산으로 올라갔다. 행렬은 갈지자를 그리며 그 위에 있는 깃발이 펄럭거리는 지점으로 향했다. 이날 직접 바로 옆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장례
행렬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장례식과는 전혀 다른 장례 절차가 있었다는 데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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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바는 중국판 내셔날 지오그래픽인 <중국국가지리>에서 뽑은 중국 최고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단바에는 여러 개의 마을이 있으며 수십 채에서 100여째까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유명환 곳으로 4 곳을 꼽는다. 수오포(梭坡), 지아쥐장자이(家居藏寨), 종루(中路=东女谷), 메이런구(美人谷=东谷天然盆景)이 있는데, 미인구를 제외한 세 곳을 우리는 가 볼 수 있었다. 이 세 곳 중 지아쥐장자이를 최고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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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곳이 수어포이다. 일단 먼 곳에서 전체 마을을 조망하고, 다리를 건너 걸어 들어가 보는 방법으로 탐방한다. 바로 내 눈 앞에 큰 산이 있고, 그 산 여기저기에 아름다운 단바의 주택이 한 점으로 찍혀 있다. 저 큰 산 너머에도 마을이 있다고 하니, 수어포 마을 전체는 그 규모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셈이다.
첫 눈에 인상적인 것은 집의 모양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집의 규모는 대단히 크고,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이 넓다. 집뿐만 아니라, 전망대도 여기저기 놓여있는 데, 이 전망대는 마을 공용인 것도 있고, 개인인 것도 있다고 한다. 전망대는 적이 침입하는 것을 바라보는 관찰대이기도 하고, 그냥 보기 좋게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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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산길을 따라 가다가 몇 명의 원주민을 만난다. 전통 복장을 한 아주머니들이 우리와 같이 사진 찍는 것을 쑥스러워한다. 중간에 사과 밭이 있었는데, 들어가서 따 먹으라고 한다. 자기들의 밭이 아닐텐데, 아무나 가서 따먹어도 괜찮다는 것을 보면, 중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듯 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에 자신들의
모습이 담겨진 것을 신기해하는 이곳 사람들은, 우리와 헤어진 뒤에도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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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돌고 돈다. 경운기를 먼저 보내고, 되새김질하는 소를 피해서 마을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보면 집은 규모가 너무 커서 웅장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면 좀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큰 집은 사람사는 칸을 제외하고는 창고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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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골목으로 들어가면 닭과 돼지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돼지는 멧돼지처럼 생겼다. 털은 갈색이고 다리가 긴 것이 특징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마을에서 쇠똥구리를 보았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뒷 동산에 올라가 쇠똥구리를 몇 번 본 적이 있으나, 여기 중국에 와서 이런 것을 본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가파른 길 가운데서 쇠똥을 뭉쳐 굴리고 가다가 넘어지고 다시 굴리는 모습이,
옛날 기억과 교차되면서 잠시 세월의 흐름을 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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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똥구리, 돼지, 소>
<관찰대 내부>
1700원(10위엔)을 내고, 반쯤 허물어진 담을 넘어, 통나무를 도끼로 듬성듬성 파내어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관망대를 볼 수 있는 평평한 지붕이 나온다. 그 지붕에서 사방을 관찰하기도 하고, 그 지붕에 연결되어 있는 관망대 내부를 들어가기도 한다. 비 맞고 바람을 맞아서 일까, 아니면 세월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음에서 일까? 관망대 내부는 낡고 컴컴하고 허물어져 있었다. 옛날에는 적의 침입을 관찰하는 장소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폼으로 서 있는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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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성에서 온 사진가>
호남성에서 왔다는 중국 청년이 있었다. 상당히 전문적인 사진사로 보이는 그와 자주 마주쳤다. 늘 이렇게 혼자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라 하는 그는, 무작정 따라 다니는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장난을 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꼬마들은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에서인지, 우리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웃고 따라다니고 농담을 걸어왔다. 사실, 어른들은 사천 지방의 말을 해서 내가 알아듣기 어렵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통화를 배우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어른들의 말보다 훨씬 많이 알아들을 수 있다. 아이들은 더럽혀지고 찢어진 옷을 입고 다니며, 세수도 하지 않는 듯 했지만, 해맑은 웃음과 천진난만한 행동만은 한국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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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들어갔던, 한 없이 긴 마을 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면서, 방학인데도 무슨 이유인지 학교에 갔다오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바로 머리 위에 있는 또 다른 산길로 경운기를 몰고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염소 떼가 길을 지나기도 하고, 저 멀리 일꾼들이 집단으로 도로를 수리하기도 한다.
돈을 받고 우리를 안내했던 청년에게 작별을 고하고, 무수한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다리를 건넌 것은, 낮 12시가 되었을 때였다. 누런 강물은 최근 이곳에 비가 많이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이곳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물이 계곡에 넘쳐 나는 것을 보면 지금이 사천성의 우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중국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천성에 장마가 지면 길이 끊기고
돌이 굴러 대단히 위험하니, 돌아다니지 말고 호텔에 머물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여기저기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돌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시간 지체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오후에는 네 개의 마을 중 가장 아름답고 유명하다는 지아쥐장자이(甲居藏寨: 갑거장채)를 찾아간다. 마치 김태곤이 불렀던 "송학사"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를 태운 봉고차는 산허리를 돌고 돈다. 먼지를 내품고 숨을 헐떡이는 봉고차는, 마침내 죽을 힘을 다해 굉음을 내면서 산 위로 치 솟는다.
갑거장채라!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다. 높은 산을 배경으로 산 비탈에 균형있게 집들이 배치되어 있다. 집 한채, 한채가 화려하고 아름답고 멋들어진다. 무엇보다도 벽의 색이 빨간색과 흰색 그리고 검은 색으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 저기 꽂혀있는 깃발이 펄럭일 때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운동회 때 만국기가 펄럭이는 듯하다. 아니 유치환의 깃발을 연상시키는 듯, 눈물이 날 듯 하다.
산제비 넘나드는 서낭당 새끼줄에 매달려서 펄럭이는 깃발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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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산에 끼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감돈다. 집과 집 사이에 있는 나무와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갑자기 쏟아지는 태양 볕은 옥수수 밭에 집중 포화를 날린다.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밭에서 일을 하던 초등학생이 커다란 감자를 우리에게 던져 주려다가, 뿌리고 있던 비료를 밭에 쏟아 버렸다. 난감해하는 그를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아이를 혼내려는 할머니에게 내가 담배 한 갑을 드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할머니는 그 아이를 혼내지 않고 그저 벙긋벙긋 웃고 있었다.
전에는 내가 중국에 갈 때, 아무 것도 모르고 선물로 사탕이나 과자를 가져갔었다. 그러나 중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선물이 먹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절대로 먹는 것을 선물로 가져가지 않는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담배나 화장품인 것 같다. 하지만 화장품은 비싸기 때문에 줄 수가 없어, 이번에 담배를 사 가서 요리조리 잘 써 먹었다. 사실 인천 공항 면세점에 가면, "중국인이 좋아하는 담배"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코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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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채색이 너무 잘 되어 있고, 빨래줄에 널려있는 빨래 또한 이만큼이나 화려한 집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 집 안으로 내 발이 들어갔다. 아이 엄마는 사방의 문을 다 열어 보여주며 마음 껏 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이집은 민박집이었다. 어쩌면 이 마을 아무 집이나 다 민박을 할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장식되어진 방에는 침대와 이불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벽에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일인당
1박에 약 12000원 정도에 식사를 하고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혹시 다음에라도 이곳에 올 기회가 있는 사람은 하룻 밤 이곳에서 머물면 의미있는 하룻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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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정상에서부터 저 아래까지 마을 속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낭떠러지에서 꼼짝도 못하고 음매하면서 서 있는 송아지가 보인다.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길을 재촉했다. 마침 강아지 한 마리가 어디에서인지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만져 보려고 하니 등을 땅에 대고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꼬리를 흔든다. 분명히 우리를 좋아한다는 표시인 듯 하다. 그 뒤 강아지는 우리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또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우리와 숨바꼭질 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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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흰 꽃이 높은 나무를 휩싸고 있다가, 부는 바람에 흐느적거리며 아리랑 춤을 춘다. 높은 지붕에서 개 한 마리가 위태롭게 짖어댄다. 골목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전혀 다른 마을의 모습이 나타난다. 몇 발자국 걷다가 뒤를 보고, 또 몇 발자국 걷다가 뒤를 본다. 산, 밭, 그리고 하늘과 조화를 이룬 마을의 아름다움이 이제 그리움으로 승화하여 내 가슴으로 밀려왔다 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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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위의 강아지>
몽롱한 생각에 잠겨 걷다가 퍼뜩 환상에서 깨어난 것은 아까부터 거의 한 시간 동안 따라다니던 강아지의 짖음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에 잠겨 발걸음이 그리도 느리냐는 듯이 내 주위를 맴돌며 꼬리치며 나를 본다.
마침 그때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몇 마리 시커먼 황소가 우리를 째려 보며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투우사도 아닌 내가 소와 싸울 수도 없는 일, 이때 또 강아지가 나타나서 소를 보고 짖기 시작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들은 길 옆으로 자리를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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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면서 끝까지 우리를 따라와준 개를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가지고 있던 빵쪼가리를 주니 냄새 한 번 맡더니 무시했다. 사람은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면, 비록 그것이 동물이건 사람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가게로 들어가 햄을 사서 개에게 주었다. 먹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그 개는 강아지가 아니라 늙은 개였다. 이빨이 많이 빠졌다. 딱딱하지도 않은 햄을 허우적 대며 겨우겨우 먹고
있는 개에게 일말의 측은지심을 느꼈다. 그 개는 아마도 관광객에게 충성을 다해 따라 다니는 것이 자기가 잘 먹고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세차게 뿌려대는 비를 뒤로 하고, 오늘 밤 숙박지인 또다른 단바 마을인 종루를 향해 어둠이 깔리는 길을 떠난다. 오늘 밤은 여관이나 호텔이 아닌 티벳 농촌민박 체험을 하는 것이다. 아마 오늘 밤은 옥수수 잎사귀에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갑거장채를 떠나는 아쉬움과 다가 올 종루에 대한 설레임을 간직한 채, 나는 안개 속으로, 안개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2011년 8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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