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여행기 제 6부
천상의 마을 - 종루
-종루에서 1박, 그리고 스꾸냥산으로의 접근 실패-
중국에서 "사천성 여행"이라는 책을 구입했다. 이 책에는 종루(中路: 중루)를 东女国(동여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설명이 재미있다. "中路,古称东女国。顾名思义,是以女子为社会中心,对女性进行崇拜的,藏族历史上的文明古国"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종루는 옛 이름이 동녀국인데, 이름이 암시하듯이 여자가 사회 중심이 되고, 여자를 숭배하였으며, 장족 역사상 문명 고대 국이다."라는 뜻일 것이다.
역사가 어떻든 종루는 단바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큰 길에서 역시 가파른 산 길을 갈지자로 한 참 올라가야만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종루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 아저씨는 항상 허허허 웃고 다녔다. 집에 사는 꼬마 두 명이 새로운 손님이 와서 신기하다는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살 뛰어 다니는 것이 첫 인상으로 남았다.
<종루 민박집에 도착한다.>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방 하나에 6 개의 침대가 있는데, 옛날 임금님 침상처럼 화려한 등받이가 있고, 방 가운데에는 물건을 얹어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화려했다. 벽은 티벳 특유의 무늬로 채색되어 있었으며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러 밖으로 나갔다. 아래쪽은 내일 내려가면서 보기로 하고, 위쪽으로 올라가서 마을 전체를 조망해 보기로 했다. 비가 내려서 인지, 밭에서는 정성스럽게 가꾼 옥수수와 채소가 시퍼런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고, 높이 보이는 산에서는 구름이 내려왔다 멈추어서 산을 살며시 가리고 있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민박집에 있는 망루가 높이 솟아 있는 것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이미 동료들이 망루 위에 올라와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위용을 뽐내는 앞산을 배경으로, 망루는 거대한 건물처럼 위압적이었다.
망루를 힐끗 바라보고 낮게 드리워진 나무를 들치고 앞으로 그리고 위로 계속 올라갔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기도 하고 가려서 보이지 않던 마을 전경이 갑자기 시야에 펼쳐진다. 나도 모르게 "아" 소리가 나온다. 그림처럼 펼쳐진 높은 산을 배경으로 주위와 아름답게 어우러져 싱그러운 자태를 보여주는 종루 마을, 여인의 섬세한 감성과 눈으로 마을을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저렇게도 정성스럽게 채소를 기를 수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도 가지런하게 농작물을 심어 놓았을까? 온몸이 짜릿짜릿 전율한다. 한참을 경이의 눈으로 보면서 다시 한 번 심호흡하고 분위기에 내 몸을 맡긴다. 이때 먼 곳에서 몇 마리의 산새가 하늘을 비상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먼 곳으로 사라졌을 때, 정신을 차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민박집에서 마련해준 몇 가지 반찬이 있었지만, 모든 이의 관심을 크게 끈 것은 바로 골뱅이 무침이었다. KC가 아까 시장에서 무엇인가를 사더니 바로 고춧가루와 마늘, 양파, 오이 골뱅이 통조림이었나 보다. 상상해 보라. 중국 땅에서 골뱅이 무침에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어디 실감이나 나겠는가? 사실 골뱅이 무침은 맥주보다는 소주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이 판국에 무슨 얼어 죽을 맥주 소주 타령하겠는가? 하여튼 그날 밤도 일부 대원들은 술 좀 먹었다. 좀 일찍 들어와 눈을 감고 있던 내 귀에 사람 소리가 끊긴 것이 몇 시인지 모른다.
<손님에게 제공될 이부자리를 꼬마가 즐거운 듯이 운반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아궁이는 상당히 흥미롭게 만들어져 있다. 맨 아래 쪽에 장작을 넣어두게 되어 있다. 이 장작을 바로 위에 있는 아궁이에 올려 놓고 불을 붙이면 훨훨 타게 되어 있고, 불 위에는 솥이 걸려 있어서 우리처럼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즉, 장작과 아궁이가 위 아래 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 건물의 2층 3층으로 올라가면 여러 종류의 방이 보인다. 곡식을 넣어 둔 방과, 농작물을 말리는 방, 그리고 무슨 고기인지 고기를 말리는 방, 그리고 어둠 컴컴한 방에서부터 밝은 방까지, 또한 아죽 작은 방에서부터 대궐처럼 넓은 방까지, 온갖 종류의 방이 미로처럼 들어서 있다.
주인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넓은 방에 TV 한 대가 놓여져 있고, 식구들이 담소 하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주인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어가며 한국 손님에게 호의를 표한다.
<아침 식사로 제공된 죽과 빵>
건물 밖은 기본적으로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이들 특유의 검은 색과 붉은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옥수수가 사방에 걸려있었으며, 마당에는 태양열을 이용해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는 태양열 반사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그 위에는 물을 끓이는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다음 날도 역시 비가 내렸다. 거의 매일 비가 오는가 보다. 종루 마을에서 큰 길까지 몇 시간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낭떠러지 같은 길을 따라 갈지자로 내려가면, 저 아래 강이 흐르고 맞은 편 쪽에는 또 큰 산이 떡 버티고 서 있다.
내려 가면서 앞쪽으로 높은 산에 구름이 몰려왔다 몰려가는 것이 목격된다.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 쪽으로 강이 뻗어 있으며, 강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역시 그 끝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앞산에 자리한 S 모양의 길이 안개를 뚫고 뱀처럼 굽이굽이 올라간다. 이곳 종루는 집과 마을만 멋있는 것이 아니라 길 또한 환상적이다. 길을 더 내려가다 보면 노란 꽃과 붉은 꽃으로 뒤덮인 정자나무 비슷한 나무를 볼 수 있는데, 나무가 어찌나 큰지 카메라에 다 잡히지도 않는다. 하여튼 구름과 산과 강과, 그리고 그 속에 삶의 양식인 옥수수와 각종 채소를 보면서, 냄새 맡으면서, 물소리 들으면서, 몽롱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때 어디서 "안녕하세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일본에서 왔다는 이들은 아래쪽 민박집에서 민박을 하다가 우리가 한국 사람인줄 알고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도 겪게 되지만 사천성을 여행하다 보면 종종 일본인을 만날 수가 있고 그들은 기본적인 한국 인사말은 곧잘 한다. 하여튼 9시에 하산을 시작하여 11시까지 내려왔으니까 2 시간을 걸어 내려온 셈이다.
<일본인 관광객>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스꾸냥산(四姑娘山)을 향해 떠난 것은 아침 11시 경이었다. 비가 와서 인지 자동차가 여기저기 비포장 길에 빠져 있어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좋은 길을 찾아 샛길로 가면 길이 끊겨져 있고, 계속 진흙 속을 가자니 헛바퀴만 도는 것이 다반사였다.
포장도로와 비포장 도로 그리고 진흙 속을 우리의 운전 기사는 능숙한 솜씨로 달렸다. 아무리 새 차라 하더라도 일년이면 완전 고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중고차를 싸게 들여와 노상 고쳐 가면서 타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왜 중국 사람들은 조그만 차에 짐을 그리도 많이 싣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삐걱 거리는 자동차나 리어카가 불쌍할 정도로 짐을 싣고 다닌다.
얼마를 갔을까? 아니나 다를까, 산위의 돌이 굴러 떨어져 길을 막았다. 불도저가 와서 육중한 돌을 밀어 치우는 것을 아이들 싸움 구경하듯 구경한다. 정말 불도저의 구조는 어떻게 된 것인가? 어디에서 힘이 나서 집채만한 돌을 밀어 치우는지 입이 떡 벌어진다.
<외국인에게 통행금지 시킨 파출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파출소 앞에서 발생했다. 스꾸냥산을 가려면 소금(小金)이라는 도시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 파출소에서는 외국인은 그 도시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소금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스꾸냥산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보다 훨씬 더 한, 허무 개그가 아닌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채 우리는 차를 되돌려야만 했다.
돌아오다가 햇볕이 내려 쪼이는 들판에서 라면을 끓였다. 그 동안 스꾸냥산의 유스호스텔에서는 자기들 나름으로 경찰을 설득해보겠으니 기다리라는 핸드폰 전화가 연달아 온다. 얼마 후 스꾸냥산 유스호스텔에서 연락을 받고 자동차를 타고 두 사람이 왔다. 결국은 그들도 사방에 여기저기 연락해보더니 방법이 없다고 말하면서 돌아가 버렸다.
그때 한 무리의 염소를 몰고 나타난 할아버지가 계셨으니 생긴 모습이 영락없는 산신령님이라. 도포자락 걸치고 양반치고 산속에 앉아 있으면 도사가 따로 있겠는가? 그는 물이 불어 휘몰아치는 물가로 염소를 내 몰았다. 염소는 앞에 가는 염소를 따라 나뭇잎을 뜯어 먹으며 나아간다. 어렸을 때 경험으로 보아, 염소는 솥뚜껑처럼 오뚝한 바위에 올라가기를 좋아하고, 절벽에 걸어가기를 좋아한다. 나무에 매어 놓으면 나무를 뱅뱅 돌아 결국 자기 목을 매어 침을 질질 흘리며 숨을 헐덕거리며 맴맴 거리고 있는 것이 염소다.
염소 한 마리가 조금만 균형을 잃으면 바로 황천길로 들어설 바로 그런 바위 꼭 대기 위에서 부딪쳐 부서지는 흙탕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무리 겁없는 짐승이라지만 아무래도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아, 좀 무자비한 일이지만, 그 놈이 빠져 죽기를 기다리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10분을 관찰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운명을 잘 아는지 아니면 나를 약올리려고 그랬는지 죽음의 바위에서 가뿐하게 빠져 나왔다.
다시 진흙으로 뒤덮인 길을 지나 단바 유스호스텔로 왔다. 안내자 KC는 스꾸냥산 대신 갈 곳을 찾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호텔 종업원과 대체지를 거의 확정했을 무렵, KC에게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스꾸냥산의 유스호스텔 주인에게서 온 전화다. 자기들이 경찰서에 찾아가 "누구 사람죽일일 있냐? 왜 남의 밥줄을 끊어놓느냐?"라고 강하게 항의해서 내일 그 파출소를 통과하게 해 놓았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의 물정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는 KC는 반신반의 했다. 이런 일을 어디 한 두 번 겪는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일 새벽에 그 파출소까지 호텔 주인이 직접 나와서 주인과 함께 스꾸냥산에 가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그나마 불행 중 희망을 본 것 같아서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잠겨 있는데 앞에서 몇 사람이 얽히고 설키는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자 하나가 땅바닥에 나가 떨어져 있고, 또 여자 세 명이 한 남자의 목을 짓누르고 잡아 죽일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저러다가 사람 하나 죽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주 애띠디 애띤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오토바이를 넘어 탈주에 성공했다. 잠시 뒤에 이 남자도 웃고, 여자들도 웃고,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웃음 바다에 빠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들이 남자를 골려 주려고 집단으로 달려들어 엉겨 붙었던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 호텔 카운터 근처에서 차를 한잔 시켜 마셨다. 잠시 뒤 서양 사람 두 명이 오더니 옆에서 술을 마셨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들어가고 남은 사람과 내가 합석하게 되었다. 하여튼 그날 밤 12시까지 맥주 엄청나게 마셨다.
그는 독일인으로 혼자 오토바이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34만원 주고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잘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검문소에서 여러 번 걸렸지만, 무시하고 전 속력으로 달려 검문소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검문소에서 총은 가지고 있지만 총을 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그가 불법으로 통과한 후 경찰차가 뒤 쫓아 오면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논둑으로 달려 다른 샛길로 빠져 다닌다고 했다. 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24살로 정치학을 전공한다는 프리드리히는 두 달 반 동안 중국을 돌아 다녔으며 6개월 일정으로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보고 독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돌아다녔는데, 베트남이 싫다고 했다. 서양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항상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중국은 내국인나 외국인이나 똑 같이 대우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마음이 든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보았는지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로 남한과 북한에 관련된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의 한국에 대한 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해박했다. 하여튼 나중에는 그나 나나 혀가 꼬부라져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몰랐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둘이 맥주 12병인가 마셨는데, 나온 금액은 채 만원이 되지 않았다. 하여튼 그날 밤 일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12병에 만원이라는 금액이었다.
(2011년 8월 6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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