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여행기 제 3부
"내 생애 최고의 산길을 가다"
-하이루어꺼우(海螺沟:해라구)에서 캉딩(康定:강정)으로-
7월 7일,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최근 며칠 동안 이곳에 비가 많이 내려서 지반이 약해진 듯하다. 객잔 근처에 있는 50미터 계곡에도 흙탕물이 바위에 부딪치고, 둑에 부딪쳐 흰 포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어떤 곳에 도착하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러다가 그곳을 떠날 때는 "내가 언제 다시 이곳을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에 한숨 짓는다. 내가 이 하이루어꺼우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다른 곳은 몰라도 농마오 시장(농산물 시장)은 다시 둘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마오 시장은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각종 채소와 과일이 즐비했는데, 나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정육점이었다. 고기를 쇠갈고리에 꿰어서 죽 늘어 놓는 것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고기뿐만 아니라 허파나 간 등의 내장도 시커먼 갈고리에 걸린 채 대롱대로 매달려 있다.
7월 7일 이후 7월 15일까지 우리는 빠오처(包车:포차=전세 차) 두 대를 빌려 타고 다녔다. 물론 장소를 이동하면 전에 빌렸던 차는 돌려보내고 새로운 차를 빌려 새로운 목적지로 떠났다. 영업용이 아니라, 개인이 갖고 있는 우리나라 봉고차보다 조금 작은 차를 빌려, 한 대에 6명씩 타고 다녔다. 그러므로 항상 기동성이 있어서 어느 곳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즉시 출발할 수 있었다. 이것이 단체 배낭여행의 장점 중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간다면 금전적 부담 때문에 이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여행은 적어도 2명 이상이 좋고, 4명이면 더욱 좋고, 6명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게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추었는데, 앞을 보니 다른 차들도 모두 정차해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려보니 트럭 한 대가 길에 쏟아진 흙더미를 피하려다가 오른 쪽 바퀴가 연약한 지반의 도로 가에 푹 빠지고 말았다. 차에 짐을 얼마나 실었는지, 차체가 이미 뒤틀려 있었다. 그 옆에 HYUNDAI라는 글자를 새긴 노란 포크레인은 흙더미를 치워서 적어도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도록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초조하게 길이 뚫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스님도 슬리퍼를 신고 구경하고 있고, 어린 꼬마도 구경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오토바이도 지나가지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가파른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불케할 정도로 아랫물을 윽박지르며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질주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실족하여 물에 빠지는 날은 바로 그 날이 자기의 제삿날이 될 것임에 분명했다.
불더저 운전수는 애띠디 애띠어 보이는 젊은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중학생 정도나 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얼마나 능숙하게, 야물딱지게 그리고 차분하게 일처리를 하는지 그의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기지 않으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길이 뚫리자 자동차는 산 위로,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사천성이라는 것을 웅변으로 증명하려는 듯, 조그만 자동차가 내는 굉음은 메아리를 만들어 다시 돌아오고, 이를 되받아쳐서 다시 울려, 온 계곡이 자동차 소리로 가득찼다.
잠시 뒤,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은 붉은 돌 밭이었다. 누가 가을날 붉은 고추를 따서 멍석에 널어 놓았나? 온 산에 산딸기를 누가 저리 많이 심어 놓았나? 저기가 홍해이더냐, 아니면 붉은 용암이 흘러내리더냐? 멀리 산 위에서 시작한 붉은 자갈밭의 향연은 안개에 가려 잠시 보이지 않다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고, 이 붉은 기운은 작은 계곡으로 이어지고 흩어져 다시 모였다가 또 흩어졌다. 동네 뒷산에서 시작한 산불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이산 저산 연기와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장관 중의 장관이다! 내 어찌 이런 것을 꿈에라도 볼 수 있으랴?
초록색 대지 위에 뿌려진 붉은 돌을 감아 돌며 자동차는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린다. 갈지자로 치솟는 자동차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예상치 못한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이럴 때마다 눈이 부셔 차마 눈을 뜨지 못하겠더라. 붉은 잉크가 사방에 뿌려져 있더라. 붉은 총알이 가슴에 박히면, 시퍼런 풀잎에 그 자리에 다시 꽂히더라.
자동차는 우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호를 그리며 산비탈을 질주하더라. 아야, 돌과 돌 사이, 초록색 잔디는 잔디가 아니라 꽃밭이더라. 키작은 노란꽃, 자주꽃이 산 전체에 수 놓았더라. 돌이 돌이 아니요, 풀이 풀이 아니더라. 연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릴 필요가 없더라.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고 애걸할 필요도 없더라. 산이 산이 아니요, 물이 물이 아니더라. 눈물에 아롱져 하늘로, 하늘로 솟아 올라 무지개 되어 시야에서 사라지더라.
3800미터 고개는 또 다른 꽃밭의 축제장이더라. 땅에는 난쟁이 꽃이, 울타리에는 티벳의 깃발꽃이, 산 중턱에는 피어오르는 안개꽃이, 하늘에는 구름 꽃이 널부러져 있더라. 내 발은 어데로 가야할지 방향감을 상실했더라. 이리가면 꽃바람이요, 저리가면 바람 꽃이더라.
길은 길에 연하여 있으므로, 내 눈이 길을 따라 가다가 지쳐 버렸더라. 내 마음은 가지 말라하고, 내 몸은 가파른 길로 들어 섰더라. 저 멀리 구름이 날 오라 손짓하고, 들에 핀 노란 꽃이 돌아보라 미소짓더라. 흐르는 계곡 물에 한 줄기 바람 머물다 가고, 흘러가는 하얀 구름에 파란 하늘이 자리를 내 주더라.
경치에 취했다가 일행 중 한 사람이 한, 농담에 정신을 차리니 우리의 목적지인 캉딩이었다. 가파른 계곡을 따라 한 도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집을 지을 자리는 없는데,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 하는 수 없이 강을 따라 도시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물의 양도 많았고, 유속도 빨랐다. 햇볕은 따가왔고, 바람 또한 강했다.
산 중턱 바위에 새겨진 몇몇 그림이 시선을 끈다. 거대한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고자 산에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주 거주지 맞은 편에 파오마샨(跑马山:포마산)이 있었다. 내가 그들이 궁금하듯, 그들도 내가 궁금한지 모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 인사를 나눈다. 스님도, 아가씨도, 그리고 나도 모두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바람이 있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마시지 않아도 행복하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관광객 몇 사람이 모형 야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 앞에는 몇 개의 절과 전망대가 있다. 볼거리를 찾아 온 사람들이 아니라, 시내를 한 번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을 쐬러 올라왔을 것이다. 인공 호수에 비친 티벳 깃발(타르초)이 아름답다. 한 무더기의 여자들이 왁자지껄 와서 사진을 찍고, 자신의 얼굴을 물에 비춰보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렇다고 캉딩에 신형 건물과 종교 냄새만 나는 것은 아니다. 기와 사이로 소복히 올라온 잡초, 기와 위에 검게 올라온 이끼, 그리고 담에 정성스레 올려 놓은 화분이 있는 집도 있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캉딩이다.
저녁이 되니 인민광장에는 춤의 향연이 펼쳐졌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음악이 몇 순배 돌아가자 사람들은 더욱 몰려들기 시작하고, 쭈빛쭈빛 구경만 하던 남정네들이 합세한다. 왼쪽 발과 오른쪽 발을 몇 번 교체했다가 앞으로 나아가고, 이에 맞추어 팔을 적절히 흔들어 주면 근사한 춤이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춤 대열에 합세했다. 춤다운 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랴. 티벳 사람들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호흡을 같이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오랜만에 아니 난생 처음으로 중국의 찻집에 들렀다. 광장 옆에 있는 4층 꼭대기다. 스님 두 분이 차를 드시고 계셨다. 그들은 나와 아내를 유심히 살펴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30분 동안 아무런 말이 없이 염주만 굴리더니 결국 먼저 자리를 떴다.
춤추는 사람들도 이제 모두 흩어지고 인민 광장은 적막만이 감돌고 있다. 내 앞에 놓여진 국화찻잔 속에서 국화 향내가 짙게 배어 나온다.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따스한 국화차의 김이 코 끝을 스치고 눈앞을 지나 하늘로 올라간다. 오늘 오전에 보았던 붉은 돌과 노란 들꽃이 그 속에 춤을 추고 있다. 그 향기는 이리 꿈틀 저리 꿈틀 찻집 공기를 채우고 내 몸을 휘휘 감아 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듯이, 한 줄기 국화향을 위해 아침부터 야생화와 붉은 돌의 교향곡이 그렇게 대지에 울려 퍼졌나 보다.
<찻집 메뉴>
(2011년 7월 30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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