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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6 "쿤제랍에서 파수까지" (파키스탄 1)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4. 23:03

 

 

 

중국, 파키스탄, 인도 여행기 6

 

파키스탄 1

 

 —"쿤제랍(Kunjerab)에서 파수(Passu)까지"—

 

 

<여행 코스>

 

 

<카라코람 지도>

 

 

<이 글에서 언급된 여행 구간>

 

 

 

 

 

'파키스탄'의 뜻은 '신성한 땅'이라고 한다. 파키스탄의 비자를 받고서 깜짝 놀란 것 중의 하나는, 파키스탄의 정식 국명이 'Islamic Republic of Pakistan'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파키스탄은 '회교국'이다. 어떤 사람은 이슬람과 회교가 어떻게 다르냐고 하는데, 이슬람은 영어 표기이고, 회교는 한국어 표기다. 그게 그거다.

 

 

파키스탄 전 국민의 97%가 회교를 믿고, 나머지 3%가 기독교와 힌두교다. 인구는 약 1억 4천, 면적은 한반도의 약 3.5배, 수도는 이슬람아바드이다.

 

 

파키스탄에 가면  '카리마바드', '알리아바드' 등처럼 '---아바드'라는 지명이 많다. '이슬람=평화' '아바드=도시'의 뜻이므로 이슬람아바드는 '이슬람의 도시' 또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본래 '이슬람 + 아바드'이므로 '이슬람아바드'라고 쓰는 것이 타당할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영어의 Islamabad를 그냥 소리나는 대로 적어 '이슬라마바드'라고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이슬람아바드,이슬라마바드' 아무 것이나 기분 내키는 대로 쓸 것이다. '이슬람아바드'라고 하자니 잘난 척하는 것 같고, '이슬라마바드'라고 하자니 어쩐지 원어의 뜻에 충실하지 못한 것 같다. 사랑을 따르자니 운명이 울고, 운명을 따르자니 사지가 떨린다.

 

 

세상살이 하면서 많은 사람들 하는대로 따라 살면 큰 문제 없이 일생을 보낼 수 있다. 괜히 잘났다고 샛길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고, 수렁에 빠지며, 뱀에 물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길만 따라가서는 무슨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 그렇게 많을 것인가? 다른 사람처럼 사는 것은 헛사는 인생이며, 어제와 같은 오늘은 낭비된 하루일 뿐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잘 조합해서 사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결국은 그 사람의 머리가 그런 조합을 결정할 것이다. 결국 머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어봤자, 다 조상 탓이고 팔자 탓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이런 헛소리하는 것도 다 내 팔자소관이다. 아니 팔자소간(牛肝)인지 모르겠다. 소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 했거늘, 내 팔자에 무슨 소간 실컷 먹어보겠는가?  

 

 

 

 

쿤제랍 고개를 내려오면서 눈에 띄는 것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된 산의 연속이요, 불모지의 연속이다. 이런 곳에 길을 낸다는 발상을 한 사람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간이다. 그러나 길이 나 있고, 그 위로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가고 있다. 푸석거리는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돌 반, 모래 반인 산 밑을, 먼지를 휘날리며 국제버스는 달린다. 이 길을 통과하는 시간만이라도 제발 돌이 떨어져 파키스탄이라는 먼 나라에서 객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파키스탄 노동자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옷이며, 모자, 도로 정비에 사용하는 장비 등이 너무나 낙후되어서, 안타까움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일을 하면서 팔을 흔들어 인사하는 그들에게서 '아, 고달픈 삶이란 저런 것이구나', 라고 직감적으로 느낀다. 파키스탄에 비해, 중국이 이렇게 잘 사는 나라였던가! 중국인들이 여기 파키스탄에 와서 건설현장을 지휘하고 있고 건설 비용을 부담한다고 했다. 그러니 파키스탄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대단한 나라로 비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키스탄 쪽 쿤제랍 패스 입구: '식물과 동물의 천국, 보호에 협력하자'라고 적혀있다. 입장료를 보면, 외국인 8달러(9,000원), 파키스탄인 40루피(500원)라고 쓰여 있다. 패스는 pass, 또는 path가 있는데, '어려운 길, 산길' 등을 말할 때 pass라고 하며, path는 막연한 통로이다. 통행권은 어렵게 얻으니까 pass이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pass이다. 산길을 통과하는 것도 어려우니까 pass라고 한다. 하지만 '진로, 방향, 컴퓨터의 경로' 등은 path라고 한다. 에이, 나도 사실은 잘 모른다. 그냥 해 본 소리다. 오늘은 제가 단단히 미쳤나 봅니다.>

 

 

쿤제랍 국립공원에 다다르면 드디어 초록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내판에 해발 3220미터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는 해발 3200미터 이하가 되어야 생물이 살 수 있는 듯이 보인다.

 

 

 

 

좀 마음이 편안한 길로 접어들어 얼마를 달리면 Sost라는 국경도시가 있다. 국제버스는 여기까지만 운행한다. 여기에서 입국절차가 시작이 된다. 입국심사 직원들의 복장이 남루하고 좀 꾀죄죄해서 사실은 누가 직원이고, 누가 직원이 아닌지 알 수도 없다. 먼지와 때가 묻은 컴퓨터로 확인하고, 손으로 여권에 기록하여 통과하도록 허락한다.

 

 

이민국이 있는 마을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고 보잘 것 없는 마을이 바로 소스트 마을이다. 아마 중국에서 올 때,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초의 마을이기에 입국관리 사무소가 여기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화장실이 어디인지 물었다. 바깥에 있는 담에다 대고 실례를 하라고 한다. 아무데나 '이 강산 낙화유수'가 가능한데 쓸 데 없는 질문을 한다는 표정이다. 역시 내가 너무 문명 생활에 물들었나 보다.

 

 

 

 

 

우리 일행 18명은 여기에서 봉고차 2대로 갈아타고 남쪽으로 자갈길을 달린다. 한 줄기 햇빛이 구름을 뚫고 나타남과 더불어 신비로운 파키스탄의 장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흰 구름이 산봉우리에 맴돌고 있는 것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늘을 향해 구름을 뚫고 치솟는 산봉우리는 바람과 구름에 따라 보였다 말았다를 반복한다. 길위는 너무 한적하다. 버스는 아예 보이지가 않으며, 가끔 가다 나타나는 거대한 트럭만이 느리게 기어가고 있다.

 

 

 

 

 

파수 앰버서더 호텔에 도착한 것은 저녁해가 지기 약 1시간 전이다. 거대한 산 밑에 벽돌로 지어진 저 집이 바로 앰버서더 호텔이다. 서울의 앰버서더 호텔만을 상상했던 나는 적지 않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 파키스탄에서는 모텔이나, 여관이나 뭐 이런 것이 없고, 여행객이 자는 곳이면 모두 다 호텔이다. 나는 너무 신기하여 호텔의 정의를 사전에 찾아 보았다. "a commercial establishment offering lodging to travelers", 다시 말하면 그냥 돈 내고 잠만 자면 호텔이지, 규모나 시설은 언급되어 있지 않는 것이 호텔의 사전식 정의다. 파키스탄 사람들 영어 잘 한다!

 

 

<파수 앰배서더 호텔: 그래도 파수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다.>

 

 

 

<파수 앰배서더 호텔과 보리트 호수, 파수빙하, 그리고 다리 위치>

 

 

<호텔 앞 도로: 두 여인이 지나가고 있다.>

 

 

<강건너 산비탈에 새겨진 문구,  '파수에 온 것을 환영한다', 라고 되어 있다.>

 

 

<산봉우리가 구름에 가렸다가 어느 순간 나타난다.>

 

 

 

 

호텔과 강 사이에 모래와 자갈을 쌓아 놓은 야적장이 있었다. 그 앞에 기름통이 설치미술 작품처럼 난잡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놓여 있었다. 젊은 청년 두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스카르두라는 곳에서 건설사업에 참여하러 온 노동자였다. 자기 고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 동안 자랑을 해댔다.

 

 

잠시 뒤에 예비군복 비슷한  작업복을 입은 중국인이 거들먹거리며 나타났다. 그는 이곳의 도로를 건설하는 감독관이라고 했다. 중국의 우루무치에서 온 그는, 일년에 한 두 번 집에 갈 뿐, 일년내내 그곳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여행다니는 나를 부러워하던 그는, 그의 인생에 나와 같은 앞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라고 말을 하며 한숨을 지었다.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한참 보던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뒤 몇 마디 말을 더 하고는, 그는 담배연기가 하늘로 사라지듯, 자기 막사를 향해 총총히 사라졌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뷔페식 저녁식사가 있었다. 어슴프레한 전등불 아래, 몇 가지 음식이 정갈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뭔가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술이었다. '그렇지, 여기는 회교국가인 파키스탄이지, 괜히 술먹다가 감옥에 가지'.  즐거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식사였다. 더군다나 술까지 없으니, 이놈의 신세를 어찌하리오. 갑자기 신세타령이 나왔다. 앞으로 약 20일을 술이 없이 지낸다? 집에서라면 그럭저럭 견디겠지만, 먼 곳에 여행 온 마당에 술이 없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답답해 왔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야?"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식사가 끝난 후, 벽을 바라보니 빛나는 흰 동공이 박힌 이상한 동물이 벽에서 우리를 째려보고 있었다. 저게 뭐람?  "저게 양이야." "아니, 산양이지." 사람들은 한 마디씩 했다. "아니야, 산양이 아니라 죽은 양이야."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산양이 아니라 알칼리 양이야, 아니야 바다양이야"라는 말이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파수 빙하와 보리트 호수>

 

 

 

파수는 비경(秘景)으로 꽉 차 있다고 말해도 좋은 곳이다. 어디를 가나 수천미터의 산이 즐비하고, 산과 산 사이에 빙하가 질펀하게 자리잡고 있다. 파키스탄 여행을 하면서 늘 생각했던 것이지만, 파키스탄에 있는 것 아무 것이나 하나만 한국에 떼어 갖다 놓아도 구경꾼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중국 사람들이라면 저렇게 놔두지 않고, 당장 케이블카를 놓고 편의 시설을 만들어서 일인당 입장료 3, 4만원씩 받고 몇 년 뒤에 금방 본전을 뽑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파키스탄은 달랐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여행이며, 여행을 간다 한들 몇 만원씩 내고 무슨 케이블카를 타겠는가? 모두다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배부른 이야기지.

 

 

 

 

 

다음 날 우리가 먼저 찾은 곳은 파수에 있는 두 개의 현수교이다.  '로운리 플래니트'에서 꼭 보아야 할 곳으로 언급된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넘으로써 당신의 용기와 균형 감각을 시험해보라'라고 적혀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려 절벽 위를 따라 가면서 강과 강 바닥, 그리고 강 건너 산과 그 위의 구름을 본다. 먼 상류로부터 물이 흘러오면서 물은 움퍽 파이고 뒤틀린 바닥을 지나 이제 잿빛으로 잠잠해진 평평한 모래 사장에 도달한다. 모래 바닥 위에 물길이 갈라져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그 위에 길이가 몇 키로미터인지도 모르는 두 개의 현수교가 놓여있다. 저 아래 가물가물하게 놓여있는 다리를 보니 어안이 벙벙하여 말이 나오지 않는다. 떨어져 나가고 부서져 버린 저 판자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으면,  정말 오금이 저리다 못해, 마비가 올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내 군대 시절 유격 훈련을 받아봤지만, 저런 곳에서 유격 훈련을 받았다면 까무러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사이 구름이 내려와 나를 감싸고 휘돌아, 아랫도리 감아차고 윗도리 휘몰아쳐 멀리 멀리 사라진다.

 

 

 

<카라코람 여행의 하이라이트: 공중에 매달린 다리를 건너볼 것을 추천한다. 출처:로운리 플래니트>

 

 

 

 

 

 

<로운리 플래니트에서 건너가 볼 것을 추천한 다리. 줌 렌즈로 찍었으나 아쉽게도 위험함을 나타내거나 길이가 긴 것을 잘 나타내지 못한 사진이다. 전체사진은 필자가 찍었고,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 다운받아 위쪽에 삽입했다.>

 

 

 

<파수의 훈자강 바닥>

 

 

<훈자강을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는다.>

 

 

 

<파수 빙하 가는 길>

 

 

 

힘이 없는 봉고차는 뱀처럼 꾸불텅거리는 산길을, 다리 하나 잃어 버린 벌레처럼 덜덜거리며 어기적 어기적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가끔 가다 보이는 민가 주위의 돌담 안으로 초록색의 풀이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이 마치 겨울의 제주도와 닮았다.  한참을 힘들게 올라가 숨을 돌려 옆으로 빠지면, 바로 보리트 호수(Borit 또는 Borith)에 도착한다.

 

 

 

 

호수 위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름 아스팔트 위에 소나기 내려 튀기듯 빗방울이 호수 위에 물수제비를 만들며 동심원을 그렸다. 몰려왔다 사라지는 안개가 아쉬웠을까? 바람에 만들어진 고기 비늘같은 물결이 서러웠을까? 사람들은 멍하니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호수 옆에 있는 보리트 호수 호텔. 말이 호텔이지 농촌에 있는 씨래기 창고와 비슷하다.
내부는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내려 빙하를 보러 걸어 올라간다.>

 

 

 

 

구경꾼이 감탄사를 보내고, 소리를 지른다. 장엄하다. 장쾌하다. 빙하가 뻗고  뻗어 구름 속을 헤매다가 하늘까지 뻗어 있다. 그 위압감에 어쩔 줄 몰라할 제, 지나가던 바람이  이상하다는 듯,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수만년 동안 눈 맞고 비바람 견뎌내며 저렇게 지내왔으리라.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저 빙하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서늘하게 바람부는 이 계곡을 묵묵히 혼자 지키며 영원히 그 흐름을 이어 가리라.  

 

 

<파수 빙하>

           

 

 

(2012년 7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