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파키스탄, 인도 여행기 4
—"아바크호자 묘(향비묘) 및 사막 투어"—
<카스 시내 지도>
<향비묘>
아바크호자 묘는 향비묘라고도 하는데, 위의 지도에 나와 있듯, 시내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닮았는데, 4개의 뾰족탑이 건물 모퉁이에서 하늘로 치솟아 위용을 자랑한다. 타일은 떨어져 나가고 색은 바랬으나, 옛날의 찬란함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안에는 여러 사람의 무덤이 있었는데, 무슨 보물을 덮어 놓듯이 묘지를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덮어 놓았는데, 먹다만 밥상을 상보를 덮어 놓은 것 같았다. 왜 그런지 귀신들이 사는 집과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몸이 으시시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게시물을 무시하고, 감시인이 없는 틈을 타서 마음대로 찍고 나니, 10년 묵은 체증이 확 달아나는 듯 했다.
<내부의 모습>
<건물 밖에도 수 많은 무덤이 보였는데, 모양이 특이하고 다양하였다.>
옆에 있는 박물관에 섬찟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라였다. 관리하는 여자는 장사할랴, 관광객 관리하랴, 왔다갔다 하느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리가 사진찍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디가서 미라를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관리가 허술해서, 몇 년 뒤에는 이 미라가 너무 훼손될 것 같았다. 이것 하나만 한국에 갖다 놓아도 구경꾼이 구름떼처럼 모여들텐데....., 그러면 돈버는 것은 시간 문제일 텐데.....
그 옆에는 고대 지도가 있었는데, 조선이 나와있는 것이 신기했다. 황해에 꽃게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부터 우리나라 서해안에는 꽃게가 많이 잡혔던 것으로 보였다. 조선의 동쪽에 있어야할 동해는 대만 위에 있었는데, 중국의 동쪽에 있어서 동해라고 표기했으리라.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공연을 보는 곳이 있었다. 두 명의 무희가 교대로 나와 얼마나 빠른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 대는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가끔가다 "으, 으" 하면서 신음 소리 비슷한 것을 냈는데, 나플거리는 치마와 꺼떡거리는 고개, 그리고 쉼 없이 돌아가는 구두발을 보니, 나도 모르게 인생이 왜 이리 즐겁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구경꾼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콩볶듯 요란스러웠다. 빨간 옷을 입은 댄서의 목이 왜 이리 긴지, 언젠가 TV에서 본 아프리카 어떤 부족이 사용하는 목을 늘리는 목걸이를 착용한 후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따와쿤 유원지 1일 투어 지도>
따와쿤 유원지는 카스에서 동남쪽으로 약 120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5월 19일 아침 8시에 카스를 출발하여 유원지로 향했다. 중간에 아침식사하러 어떤 식당에 들르게 되었다.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벽에도, 탁자에도, 그리고 만두를 구워내는 둥근 나무 그릇에도 강렬한 빛을 뿌렸다. 아침 햇살이 만들어내는 긴 그림자를 보면서, 꽈배기처럼 꼬여진 흰빵과 짬뽕 국물을 마셨다.
식당 앞에는 한 여인이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데리고 와서 장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이가 우리의 카메라에 관심을 갖고 웃음을 띄우자, 여인은 빨리와서 상품 진열하는 것을 도우라고 개잡듯이 아들에게 닥달을 하였다.
그 옆에는 마침 소고기를 트럭에 싣고와 식당으로 배달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큰 트럭 뒤에다 포장지를 깔고 대충 싣고와서 내가 들이미는 카메라에 환하게 미소지어 주었다. 이런 광경을 한참 바라보던 식당 주인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젊은이가 바라보자, 식당 주인은 땅바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참새 등뼈보다도 더 작은 뼛조각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젊은이는 그 뼛조각을 주워 자기 바지에 대고 문질러 흙을 털더니 자동차에 휙 집어던져 실었다. 이를 보고 만면의 미소를 짓는 주인은 뒷짐을 지고 식당으로 갈지자 걸음으로 들어갔다.
호수로 가는 길은 쭉쭉 뻗은 가로수가 끝없이 멀대처럼 서 있었으며 가끔가다 지나가는 자동차와 좀더 자주 보이는 경운기를 개조한 화물차가 사람, 동물, 그리고 물건을 집채처럼 싣고 달렸다. 가로수 사이로 듬성듬성 높은 산이 보였고, 밭에서는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버스 안에서는 무슨 비디오가 끝 없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심지어는 운전수조차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출발한지 4 시간이 되어서야 "아나얼한 웨이우얼주(위 사진)"라고 쓰여진 간판이 보이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근처 식당의 새장이 눈에 띄였는데, 새장 안에 큰 표주박을 옆으로 누여 놓았다. 새들이 그 표주박 속을 들락거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부엌에 있는 국자나 숟가락을 걸어 놓는 둥근 거치대처럼 생긴 시커먼 철제 구조물에, 헌 행주 걸어 놓은 듯이 구워진 고기가 걸려 댕그렁대고 있었다. 그 옆에는 고춧가루와 간장 그리고 마늘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을 적절히 조합해서 먹으라는 것 같았다. 구멍이 깊은 화덕에 이 구조물을 넣었다가 고기가 다 익은 후에 꺼낸 것으로 보였는데, 고기 맛은 그야말로 "음, 이맛이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가 막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주가 없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옆에 있는 중국 관광객은 대낮부터 백주를 마시고 있었다.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서 백주(白晝)에 백주(白酒)를 마시다니 부럽기도 하였는데, 백숙(白熟)만 있었더면 나도 한 자리 끼어 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이런 사막 한 가운데에 어떻게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루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사방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물의 근원지가 어디란 말인가? 몇 명의 중국인들은 호수에 떠 있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둥근 통 속에 들어가, 이리 둥글 저리 둥글, 업치락 뒤치락 하면서 나오는 즐거운 비명 소리가 대낮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한쪽에는 모래 위를 달리는 지프 투어를 하고 있었고, 또 한 쪽에는 낙타를 타고 정해진 코스를 돌아오는 낙타부대가 있었다. 나는 지프를 탔는데, 꾸불텅 거리고, 위 아래로 굴곡이 심한 사막을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서울 대공원 청룡열차 타는 것 보다 더 무서웠다. 그날 지프차가 달릴 때 얼마나 단단히 손잡이를 잡았는지, 단지 10분 타고 나서 알통이 배겨 그 후 3일간 매일 그 알을 끄집어 내어 먹으면서 다녀야 할 정도였다.
<다시 카스로 돌아와 인민 광장 앞의 모택동 상>
한 마디만 덧붙이면, 어느 날 인민 광장에 들렀다. 한 거지가 돈을 받고 자기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하는 듯 했다. 나는 이 거지를 통과했는데, 어디서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그 거지가 우리팀 한 명에게 천둥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중에 이유를 알아본 즉, 돈을 주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우리를 중국 한족인 것으로 오해한 거지가, 결국 한족이 주는 돈을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소리질렀으리라고 결론내렸다. 여기에서 한족에 대한 위그르족의 불만이 얼마나 깊은가를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다.
(2012년 6월 29일 작성)
|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6 "쿤제랍에서 파수까지" (파키스탄 1) (0) | 2012.08.04 |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5 "카스의 마지막 밤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0) | 2012.08.04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3 "구시가지와 일요시장" (0) | 2012.08.04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2합본 (0) | 2012.08.04 |
중국 카스-파키스탄-인도 1 "그저 길이 거기 있었기에" (0) | 2012.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