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구리시 코스모스 축제장> |
돼지 오줌보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결혼이나 환갑 등의 잔치가 있으면, 돼지를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부자라고 해서 소를 잡거나, 가난하다고 해서 염소나 닭을 잡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돼지를 잡는 것은 관습처럼 내려온 일인 듯 싶다.
큰 잔치가 있기 하루 또는 이틀 전에 돼지를 잡을 사람이 불려오게 된다. 아무나 잡는 듯 하지만, 사실은 돼지를 잘 잡는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 칼을 잡지, 쥐나 개나 어중이 떠중이가 칼을 들이대는 것은 아니다.
우선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돼지막에 들어가 도망치는 돼지 뒷다리를 잡는다. 물론 돼지는 자기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망치려고 하지만, 얼마 못가서 붙잡히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붙잡힌 돼지는 보통 다리부터 묶는다. 앞다리와 뒷다리를 묶으면 통증과 공포감에 휩싸인 돼지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주둥이도 여지 없이 새끼줄로 묶어서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한다. 사람은 입을 막아도 코로 숨을 쉴 수 있지만, 잘 알다시피 돼지는 콧구멍과 입이 같이 나란히 있어서, 입을 묶으면 코도 막히게 되어 숨도 쉴 수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입이 묶인 채로 거품을 내품고,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꽥꽥 지르는 돼지를 보면, 정말 측은하다 못해, 인간이 저 정도로 잔인한가하고 어린 마음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 옆에는 큰 가마솥에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다. 또 그 옆에는 시퍼런 부엌칼을 쓱쓱 가는 소리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 다음 한 아낙네가 큰 "다라"를 가져온다. 돼지는 그 속에 담겨지고, 앞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더 기를 쓰며 용트림을 한다.
드디어 큰 고무 다라에 담겨진 돼지 앞으로 시퍼런 부엌칼을 쥔 사람이 접근한다. 그는 돼지의 목 부근에 있는 큰 핏줄을 한 번 찔러서 정확하게 피를 뽑을 사람이다. 돼지 목을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보다가 그는 확신이 선 듯, 돼지의 턱 밑에 비수를 꼽게 된다. 돼지 피가 용솟음치며 나오다가 나중에는 거품을 내며 천천히 흐르게 된다. 발발 떨며 소리를 지르던 돼지는, 몸에 있는 피가 다 빠지면서 드디어 한 많은 목숨을 거두게 된다.
그때 끓는 물이 운반되고 몇 사람이 달라 붙는다. 돼지 몸에 끓는 물을 부은 다음, 사람들은 두 손으로 털을 뽑게 된다. 잘 뽑히지 않는 부분은 면도칼이나 부엌칼로 싹싹 밀어 그야말로 발가벗긴 돼지가 된다.
이제는 돼지를 부위별로 잘라 낼 차례다. 우선 머리를 잘라 다른 곳으로 보내고, 배를 둬 번 만에 갈라 버린다. 아직도 돼지 배 속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창자와 간 허파 등이 벌거벗긴 돼지 몸 속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돼지의 목에 칼이 꽂히기 직전 멀리 쫓겨갔던 아이들은 이때 다시 몰려들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돼지의 내부에 관심이 있거나, 생물 학습을 하여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달려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돼지의 간이나 얻어 먹자고 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한 곳에 있다. 돼지 오줌보를 얻기 위해서다. 돼지 오줌보는 해부 순서 상 거의 끝 부분에 나온다. 칼잡이는 오줌보를 떼어 멀리 마당에 내 던지며, "옛기, 여기있다."라고 소리침과 동시에 아이들은 그것을 먼저 주으러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어간다.
흙이 묻은 오줌보를 주은 다음 대충 씻은 후 그 속에 바람을 넣고 주둥이를 실로 묶는다. 그러면 여태까지 보지 못한 훌륭한 축구공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축구공보다는 좀 작지만 물렁물렁하고 잘 굴러가는 것이어서 부러울 것이 없는 장난감이 된다. 조금 놀다보면, 흙이 천지에 묻어서 흙 공인지 돼지 오줌통 공인지 알 수 없는 형태가 된다. 조금 차다 보면 서서히 바람이 빠져 볼품없는 쭈구렁 망태 공이 되지만, 그래도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축구공임에 틀림없었다.
돼지 오줌통 축구공이 없을 때는, 새끼를 돌돌 말아서 축구공으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 공은 너무 단단해서 맨발에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이 그 새끼 공을 차면, 한 두 번 차고는 더 이상 차지 못하게 된다. 너무 많은 통증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못 쓰게 된 알루미늄 양동이나 주전자가 축구공 대신도 했지만, 이것들은 앞으로 고물 장사에게 팔아먹을 것이므로, 괜히 가지고 놀다 어머니에게 들키는 날에는 혼이 나서 저녁을 굶을 팔자가 되기도 하기에 몰래 숨어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그 당시는 옷이 한 벌이면 족한 때였다. 일상복이 교복이고, 체육복이며, 또 잠옷이었다. 자나깨나 언제나 같은 옷을 입었다. 돼지 오줌통 축구공으로 공을 찬 날은 특히 더 온 몸이 먼지 투성이였다. 공에 묻은 진흙이 여지 없이 옷에도 다 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잠만 잘 잤다. 아무리 옷이 엉망이어도 새 옷은 내년 추석이나 설이 되어야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어머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 당시는 겨울 내내 목욕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손 등에 때가 시커멓게 끼어 있었고, 비누 없이 아무리 문질러도 때는 벗겨지지 않았다. 돌로 문지르면 피만 날뿐 손등의 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쇠죽을 끓이고 난 후, 시커멓게 남은 뜨거운 물에 한 참을 담가 두었다가 때를 벗기면, 마치 비맞은 장판지가 구들장에서 벗겨 지듯이 그렇게 때가 벗겨지며 깨끗하게 되었다.
목욕을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당시는 왜 그리 종기가 많이 나는지 몰랐다. 시골에서는 "부숭물"이라고 했는데, 아마 부스럼의 사투리일 것이다. 다리고 등이고 머리고 간에 무차별적으로 부스럼이 났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이명래 고약이라는 것이 있었다. 벌겋게 팅팅 부어 오른던 종기는 이명래 고약을 바르기만 하면 며칠 뒤 근질근질 해진다. 이때 긁어도 안 되고 떼어내도 안 된다. 며칠 더 참았다가 가려움증이 가신 뒤 떼어 내야한다. 그러면 이명래 고약이 녹아서 시뻘건 피고름과 함께 나오면서 상처하나 없이 깨끗하게 낫게 된다.
그 당시는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더 없이 행복한 시절이었다.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하랴. 오늘날 우리는 "경제가 나빠진다, 글로벌 위기다"라고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나 보잘 것 없지만, 먹는 것과 입을 것만 있다면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시의 역사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한다.
경제를 살리려고 이명박 대통령을 뽑아 놓았더니, 더 죽을 판이라고 사람들은 아우성이다. 어디 경제가 이명박 대통령 마음대로 죽고 사는 것인가? 설령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렸다고하자. 그 다음 태평성대가 오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때일수록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작은 것을 큰 기쁨으로 느끼는 마음일 뿐이다. 이런 때일수록 아픈 마음을 보다듬어 주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체를 살찌게 하는 것은 경제일지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살찌게 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개똥 철학인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 여러분, 중요한 것은 경제가 아닙니다. 몸 건강하고 먹고 살 수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라고 말하면 아마 당장 대통령직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복잡한 정치는 잘 모르지만, 설령 자리에서 쫓겨날지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경제"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 말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껴 안아주고, 그들과 같이 눈물을 흘려주었으면 좋겠다. 이 명박 대통령의 진심어린 눈물을 TV를 통해 가끔 보았으면 좋겠다. 이 눈물은 대통령을 잘못해서 흘린 눈물이 아니라, 국민과 애환을 같이한다는 동정의 눈물이다. 맨발로 뛰며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은 장관이나 참모에게 맡겨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변했다. 억만금이 있어도 행복하지 못한 그런 사람이 되었다. 칭찬하는 것을 잃어 버리고, 인터넷에서 무차별적으로 모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얼굴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누가 누구를 나무라랴. 세상만사가 그렇게 오로지 경제 제일 주의로 되어 가는 것을. OECD 국가 중 자살율이 한국이 최고로, 인구 10만명당 24.7명이라고 한다. 헝가리(22.6명), 일본(20.3명), 벨기에(18.4명)가 뒤를 잇는다. 최진실이 자살했다고 난리법석이었지만, 이름 없는 또 다른 최진실이 한국에서만 매일 30명 이상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 세상이 어떻든지 간에, 남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 쑥스러운 사회가 되었다. 도덕 교육은 없고, 윤리학만 존재하는 것이 한국 교육이 아닌지 모르겠다. 돼지 오줌보 하나로 온 동네 아이들이 행복했었던 그때가 그립다.
(2008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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