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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섬: 2006년 촬영)
앵두나무 우물가
I. 시골 우리 동네에는 샘이 몇 개 있었는데,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곰말"이라는 곳에 있는 샘이 물의 양도 풍부하고,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바닥을 시멘트로 말끔하게 정리하고, 또한 샘물이 있는 곳은 시멘트로 된 둥근 통으로 바닥과 경계를 지어, 바깥에 있는 더러운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멘트 통에서 약 30센티 높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물이 넘치면 그 구멍을 통해 자연적으로 밖으로 흘러 나가게 되어 있었다. 여자들이 바가지로 물을 떠서 물동이에 담아 이고 집으로 거거나, 그 샘가에서 각종 채소를 씻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샘가에서 먹을 것을 씻을 뿐만 아니라, 빨래를 하는 것도 본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를 제외한 다른 동네는 보통 샘이 아니라 우물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우물 깊은 곳에 물이 고여 있어서, 도르래에 양철통을 매어 퍼내던지, 아니면 대나무 장대나 긴 끈에 바가지를 매달아 물을 길어 올렸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라는 노래가 있었다. 별 뜻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흥얼거리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면 따라 불렀던 노래다. 이상한지 당연한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우물가에는 정말로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앵두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열매는 많이 열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 풍성한 앵두나무 숲 속에서 여인네들이 속닥거리며 자기들만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다.
여자들이 만나기만 하면 시시덕 댄다고 여자들끼리 모이는 것을, 그 당시 어른들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물을 긷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물을 길르러 가는 것은, 여자들에게는 집안에서 잠궈 둔 족새를 풀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하게 하는 해방구(解放口)의 역할도 톡톡히 했었다. 여자들이 물동이를 옆에 두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어떤 때는 소근소근, 또 어떤 때는 깔깔 거리며 웃는 소리는 그야말로 시골을 시골답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처녀들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 또한 대단한 구경거리이자 흥미거리였다. 그 당시 처녀들은 머리를 길게 땋고, 그 끝에 붉은 댕기를 달아, 검은 머리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댕기머리를 뒤로 하고, 살랑살랑 거리며 걸어가는 처녀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멋있기도 할 뿐더러, 젊은 남자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촉매제도 되었다. 출렁거리는 엉덩이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댕기 머리는 오늘날 누드 댄서가 나체로 춤을 추면서 중요 부분을 이리 감추고 저리 감추면서 보는 이의 안달감을 자극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또한 짧은 팔로 물동이를 이고 가려면, 팔을 쭉 뻗어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짦은 저고리가 위로 따라 올라가, 속옷이 많이 보이는 것도 젊은이가 참기 힘든 유혹거리였다. 누가 더 짧은 저고리를 입었나, 누가 더 좋은 속옷을 입었나 이런 것들이 말없는 가운데, 젊은 청년들의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물 긷는 처녀의 앞 쪽에서 보면, 물동이에서 흘러 넘치는 물이 머리와 이마와 눈과 코, 그리고 입술을 거쳐 턱까지 내려와 몇 방울 떨어져 저고리와 치마자락까지 젖게 된다. 가끔 가다가는 입술에 떨어진 물을 "푸" 하면서 내뱉는 모습은 눈에 고인 눈물과 더불어 여인네의 슬픔과 애달픔과 육감적인 맛을 더해, 비련의 여인과 같은 이미지로 사춘기 소년과 피끓는 청년의 가슴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그 우물가 옆에는 빈 공터가 있어서, 할 일 없는 노인들이나 젊은이들이 나와 팔짱을 끼고 노닥거리며 하루를 소일한다. 그러면서 샘가에서 들려오는 여인네들의 이야기에 관심없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가끔 가다가는 일부러 공을 샘가로 차서 공을 가질러 가는 척하면서, 여인들의 모습을 힐끗힐끗 보기도 하고, 여인네들로부터 괜히 욕을 얻어 먹고 오기도 한다.
우물가에 앵두나무가 있듯이, 우물가에는 대부분 미나리 논이 딸려있었다. 그런데 미나리 논은 보통 미나리꽝이라고 불렀다. 꽝이라는 말은 오늘 날, 거짓말을 말하거나, 복권 같은 것에 당첨되지 않았을 때 "에이, 꽝이네."라고 말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 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배추꽝"이라든지, "보리꽝", 아니면 "토란꽝"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 말은 "미나리꽝"이라고 말할 때만 쓰이는 것 같다.
미나리는 그 맛도 맛이려니와 그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는 향긋한 냄새가 사람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그래서 각종 매운탕에 단골 손님으로 들어간다. 또한 미나리를 살짝 데쳐서 기름을 조금 치고, 깨소금을 좀 떨어뜨려서 손으로 조물락 거려, 밥과 함께 먹으면 가히 그 맛을 과연 어떤 음식이 당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 미나리는 잘게 쫑쫑 썰어서 고추장을 듬뿍 넣고 참기름 한 숟가락 넣어서 싹싹 비벼 먹어도, 사근 거리는 그 소리와 함께, 쉽게 이빨이 들어가는 녹녹함, 그리고 혀끝에 스치는 부드러운 질감이 어우러져, 과연 천하의 별미 중에서도 별미 음식이 된다.
그런데 미나리꽝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초록의 미나리를 조금 헤집고 들어가 보면, 시커먼 그 물은 썩은 물 중에서도 가장 썩은 물이요, 더럽다, 더럽다 해도 그렇게 더러운 물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하기야 우물가에서 씻은 각종 찌꺼기와 흙탕물이 섞여서 들어가 거기에서 썩게 되니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거머리다. 5분만 미나리를 베어가지고 밖으로 나오면 발에 새카맣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 거머리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야 질겁을 하겠지만, 시골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하나하나 떼어 내면서 "에이, 거머리도 많다"라고 말 한 마디면 족하다. 나중에 근질그질한 느낌이 들어, 발가락 사이를 보면, 미쳐 떼어내지 못했던 거머리가 피를 있는대로 빨아먹어 팅팅 부어가지고 저절로 떨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근질근질한 느낌은 후에 일기예보로도 사용되었는데, 비가 오려고 하면, 노인들 뼈마디가 쑤시듯, 거머리에 물린 곳이 근질근질 했었다. 거머리에 물린 자국을 슬슬 긁으면서 "아마 비가 오려나 보다."라고 말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II.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앵두나무 처녀"라는 노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어렸을 때 따라 부른 이 노래는 보통은 일절만 했기에, "앵두 나무 우물가에서 남녀가 눈이 맞아서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쳐 보따리를 싸가지고 도망갔다."는 뜻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노래방에 가서 이절과 삼절을 부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일 절에서 바람이 난 것은 남녀가 눈이 맞아 난 것이 아니고, 너무나 가난해서, 누군가가 서울에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보따리 싸 들고 서울로 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바람은 "남녀의 바람"이 아니라 "허파의 바람"이라고 볼 수 있으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난한 현실에 대한 몸부림치는 탈피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말을 했건 이심전심이건, 복돌이와 삼돌이는 금순이를 사랑했을 것이다. 물레방아 도는 방앗간이건, 뒷동산 묘지건 간에 아니면 앵두나무 우물가에서건 그들 나름의 사랑을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돈이 좋다고, 아니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가난은 참을 수 없다고 금순이가 집을 뛰쳐 나갔으니 떠꺼머리 총각에게 하늘은 노랗고 땅은 꺼졌을 것이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법, 청년도 단봇짐을 싸들고 서울로 간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는 말이 있듯이, 금순이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러나 그놈의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이드냐? 묻고 물어서 결국 옛 애인을 찾기는 찾았나 보다. 그러나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금순인지 이쁜인지는 에레나가 되어 있었다. 본래 에레나는 영어의 Elena라는 이름으로 보통 여자의 이름이다. 그러나 미군이 이 땅에 들어오고 나서 양공주라는 이름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말이 되었다. 술집에서 술을 팔고 몸을 파는, 그것도 키가 크고, 눈이 퍼렇고, 코가 툭 튀어나온 양놈에게 그런 짓을 하니, 삼돌이의 마음이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삼돌이의 순정어린 간청을 듣고, 이쁜이도 금순이도 울었을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이미 찢겨질대로 찢겨진 몸과 마음 때문이리라.
이와 비슷한 노래 중에 안다성이 부른 "에레나가 된 순희"라는 노래가 있다.
1. 그 날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카바레에서
여기서도 에레나는 양공주를 뜻한다. 이 노래에서도 시골에서 등잔불 밑에서 실패나 감던 순희가 서울로 가서 엘레나가 된다. 엘레나는 역전 카바레에서 춤을 춘다. 그러다가 순희도 과거와 현실이 교차되면서 자신의 현실과 미래가 신작로의 가로수처럼 왜 눈에 선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선창"이라는 노래처럼 순희도 항구를 찾아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화려한 드레스에 귀걸이에 뾰족구두를 신고 왔지만, 화려함 뒤에 찾아오는 절망감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팔자 타령과 신세 타령을 하며 눈물을 퍼부었을 것이다.
이러고 보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그저 즐겁게 따라 부른 노래가 사실은 애간장을 태우는 사연이 있는 노래였다. 앵두나무 우물가와 그리고 에레나의 노래는 이제는 먼 추억이 되어 버렸다. 낭만과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눈물과 한숨이 서려있는 법인가 보다. 아니, 우리는 이면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리듬에 따라 목청을 돋구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올 추석 보름달을 보면, 시골 생각이 날 것이다. 금순이도, 삼돌이도, 이쁜이도, 에레나도 달빛에 어우려져 달빛 속에 춤을 출 것이다. 하늘을 날아라. 훨훨 날아라. 가난의 헌 옷을 벗고, 그대들이 원했던 모든 것을 향해 마음껏 자유를 누려라. 이것이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들에게 할 수 있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 달빛 속에서 춤을 추며 후세로부터 그런 위로의 말을 들으리라.
(2008년 9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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