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고창 청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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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에 의하면, 물가와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금융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 원인을 짚어보고, 향후 방향을 예견하는 전문가들의 해설이 이어졌다. 장관과 기타 고급 공무원들이 9월의 위기설은 허황된 것이라고 악써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무조건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고 한다.
어제 아침 새로운 감사원장 청문회 중계가 있었다. 그가 대법관이면서도 재산이 11억짜리 아파트 하나가 전부이니 청렴하게 생활했다는 칭찬의 말도 있었고, 딸의 시집을 보내는데 친척으로부터 몇 억원을 빌렸으니 언제 갚으려고 하는지 따지는 의원도 있었다. 감사원장으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보다는 돈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했다.
어디를 가나 돈 문제는 항상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돈은, 어떤 장소나, 어떤 행사나, 어떤 모임에도 컴컴한 밑바닥으로 슬금슬금 돌아 다닌다. 그것도 가방 안의 지갑이라는 깊고 깊은 궁궐 속에 꼭꼭 숨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누구도, 어떤 권세도, 어떤 집단도 돈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굽신거리는 듯이 보인다. 그것이 돈의 속성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그 돈이 과연 그 사람의 것일까? 물론 서류상으로는 그 사람의 것이다. 그러면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100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100억이 실제로 그의 돈일까? 그 돈을 그가 쓸까? 물론 그가 쓸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쓸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아끼고 아껴서 남기면 남길수록, 결국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돈을 쓸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의 재산 100억 중 1억을 쓰고 죽는다면, 나머지 99억은 그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가든지, 아니면 자선 단체에 갈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강도에 빼앗기든지, 화재가 나서 잿더미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100억 중, 99억은 그의 돈이 아닌 셈이다. 서류 상태로 그의 재산 목록에 올라왔다가, 그냥 다른 사람의 목록으로 넘어갔을 뿐이다. 그는 단지 99억의 관리자였을 뿐이다.
B라는 사람은 10억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치자. 그가 5억을 생전에 쓰고 5억이 남았다고 하자. 반드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어디에 쓰느냐에 달려있지만, 아마도 그는 앞에서 말한 1억을 쓴 사람보다는 더 보람된, 더 다양한 삶을 살았으리라고 대체적인 짐작을 할 수 있다. 결국 A라는 사람은 100억중 1억이 본인의 재산이었고, B라는 사람은 10억중 실제 자기 재산은 5억이었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누가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인가? 그렇다.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 결국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자기 이름 하에 아무리 많은 토지나 주택 또는 은행에 현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돈이 아니다. 자기가 쓴 만큼만 자기 돈이다. 우리 주위에는 돈은 쓰지 않으면서 재산이 많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그는 자기 돈도 아니면서, 말로만 떠드는 떠버리에 지나지 않는다.
주위를 살펴봐라. 가난하건 부자건 간에 항상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평생 좋은 옷을 입고 다닌다. 반대로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항상 허름한 옷을 입고 평생 그렇게 산다.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항상 좋은 음식을 먹고,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항상 그런 음식을 먹는다. 해외 여행이 비싸건 싸건 간에, 여행을 가는 사람은 가고, 돈이 아까워 못가는 사람은 평생 못 간다. 이런 차이는 빈부의 차이와 조금은 관계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에 따라 그렇게 된다. 자신에 대한 성찰, 미래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인간 수명의 유한함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10평을 늘리려면, 이것 저것 쓰고 남은 봉급으로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른다. 한숨 쉬고, 허리띠 졸라 매면서 몇 십년을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 10평이나 더 큰 아파트를 구입했을 때는, 허리가 구부러지고 머리가 희고 시력이 저하되어 인생의 종말이 가까이 와 있을 수도 있다.
한편, 몇 년에 한 번씩, 좀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그 돈으로 여행하고, 취미 생활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 과천에 사는 어떤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실제로 자신이 쓰는 만큼만 자기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여기서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바람직스러운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면 될 뿐이다. 사람의 생각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어떤 방식이 좋다고 이야기해도, 그가 나의 의견에 동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주식이 폭락하여 울부짖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주택 가격의 붕괴가 시작될 것이라는 일본 신문의 지적이 있었다. 금융시장이 불안하다고 이구동성으로 합창한다. 하지만, 어떻든 간에 그 돈을 빼서 내가 음식을 사고, 옷을 사고, 취미 생활을 하지 않는 한, 주식 값이 폭락했다고 울고불고 할 필요가 없다. 그 돈을 쓰지 않는 한, 그 돈은 나와는 상관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 돈은, 공중에 떠 있는 주인 없는 돈이다. 단지 내가 먼저 쓸 권리가 있는 돈이다. 내가 권리를 포기하면 그 돈은 다른 사람이 차지 한다. 내가 그 돈을 썼을 때야 비로소 그 돈이 내 돈이 된다. 내 돈이 내 돈이 아니다.
내가 내 돈을 쓰기 전에는
(2008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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