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의 서대산: 해발 907미터다>
잔인성 – 원초적 본능?
초등학교 때에 "하루살이"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이 있었다. 이 별명은 담임선생님이 지어 주셨는데, 그 학생은 하루 학교에 오면 그 다음 날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즉 하루 걸러서 학교에 오는 것이 습관화 된 학생이었다. 선생님의 설득, 훈화, 심지어는 회초리에도 그 학생은 계속 하루살이 생활을 굳세게 해 나갔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부터인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살던 그가,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아이에게 그 아이를 잡아 오라고 명령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수업하지 않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우리 동네로 왔다.
우선 그의 집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 옆 집에 가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있을 법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으나 그는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 있다가, 우리는 그의 집으로 다시 가서 다락이나 천장 심지어는 부엌의 아궁이 속도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이 잡듯이 찾아 보아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시무룩하게 있던 중, 그가 형석굴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한 아이가 소리쳤다.
우리 동네 뒤 산 중턱에 형석굴이라는 굴이 두 개 있다. 일제 시대에 전쟁 물자로 쓰려고 일본인이 뚫었다는 이 굴에서 많은 형석이 나왔다. 형석은 파란색 빛을 띄는 광물로, 아마도 화약 대신 총이나 대포에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곳에 가면 파란색 형석이 들어 있는 돌멩이가 많았다. 그것을 가루로 내서 화로에 넣으면 탁탁 튀는 것이 대단히 신기했었다. 한 번은 좀 큰 형석을 화롯불에 넣었다가, 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보니, 재가 반은 방바닥에 쏟아져 있고, 마치 화산이 터진 듯 방안이 엉망진창이 된 적도 있었다.
하여튼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기분으로 우리는 수풀을 헤쳐가며 형석굴에 도착했다. 나무를 꺾어서 휘두르며,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칠흑같은 어두움을 뚫고 형석굴로 일렬 종대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물체가 푸드득 거리더니 밖으로 날아갔다. 잠시 뒤에 여러 마리가 또 밖으로 날아갔다. 눈이 어두움에 익숙해져 자세히 보니, 그 굴의 천장에 박쥐가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
박쥐는 실제로 자세히 보면 대단히 흉물스럽다. 마치 드라큐라 백작이 검은 망토를 걸친 것 같기도 하고, 이빨이 모두 빠진 할머니가 검은색 두루마기를 걸친 것 같기도 하여, 공포감을 자아내는 동물이다. 일단 "하루살이" 친구를 찾아 내라는 선생님의 명령은 우리 중 그 누구의 머리 속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그 박쥐들을 어떻게 할까 대책을 논의했다. 저 놈들을 박멸하지 않으면 저 놈들이 한을 품고 밤에 우리 집으로 와서 우리를 해칠 것이라고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다.
두 사람이 소나무 가지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한 사람이 소나무 가지로 천장을 때리면서 가면, 뒤 따라 오는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박쥐를 죽이기로 했다. 두 사람은 굴 밖에 서 있다가, 밖으로 날아가는 박쥐를 소나무 가지로 때려 죽이기로 했다.
드디어 작전이 개시되었다. 박쥐들은 푸드득 거리며 여기저기 형석굴 바닥에 떨어졌고, 여지 없이 우리가 휘두른 소나무 가지에 맞아 죽거나 발에 밟혀 죽었다. 날아가는 놈들은 굴의 입구에 서 있던 두 명의 저격수가 무차별적으로 때려 죽였다. 그런 살벌한 전투 속에서도 몇 마리는 하늘로 살아 도망가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하여튼 우리는 땀을 흘리면서, 박쥐를 닥치는대로 밟아 죽이고, 후려쳐 죽이는 육박전의 전사가 되었다.
총성없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우들을 보니, 코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승리에 도취된 우리는 음성이 한 단계 높아져 있었다. 이 시체들을 어떻게 할까? 마귀같은 이 놈들이 다시 살아서 우리 집으로 쳐 들어올지 모른다고 누가 말했다. 우리는 그 박쥐들을 모아 묘지가 있는 곳까지 왔다. 누구의 묘지인지 모르지만, 묘지에 작은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적절한 구멍이 뚫리자, 그 속에 박쥐를 쑤셔 처 넣었다. 그리고 다시는 인간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그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에 살도록, 흙으로 덮고, 발로 단단하게 밟은 후, 의기양양하게 휘파람을 불면서 마을로 내려왔다.
비단 박쥐뿐만 아니라 풍뎅이에게도 우리의 잔인성은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우선 풍뎅이를 잡아다가 인정사정 없이 다리를 절단한다. 다리가 없는 풍뎅이는 뿌리만 남아있는 다리를 허우적 거린다. 그 다음은 목을 확 비틀어 버린다. 한 바퀴만 비틀어야 한다. 두 바퀴 이상을 돌리면 머리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런 다음 뒤집어 등이 바닥에 닿도록 마루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마루 바닥을 손바닥으로 때리면 풍뎅이는 날개짓을 하며 돌게 되어 있다. 그 소리는 비행기 소리와도 같은데, 여러 마리를 잡아서 이렇게 해 놓으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와도 같다.
이런 우리의 못된 짓은 벌에도 적용되었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땅벌에 쏘였다. 그날 밤 아이들은 현장으로 가서 땅을 파고, 벌집을 꺼내 밟고,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그야말로 씨를 말렸다. 우리는 풍뎅이나 벌뿐만 아니라, 온갖 곤충, 새, 물고기에까지, 그야말로 눈에 띄는 것이면 닥치는 대로 죽였다.
박쥐를 포함한 다른 동물들이 나에게 밥을 달라고 했나, 떡을 달라고 했나? 박쥐는 단지 음흉하게 생겼다는 아이들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비참하게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더구나 죽은 뒤에도 부관참시에 해당할 만큼의 형벌을 받았다. 이 동물들을 왜 이리도 비참하게 죽였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그 당시에는 오로지 죽이는 일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왜 아무 죄책감 없이 이런 짓을 했을까? 분명한 것은, 박쥐를 포함한 그 어떤 동물을 닥치는대로 죽이라고 말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살생을 한 것은 본능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인간이 다른 동물과 생존 경쟁하는 과정에서 생긴 원초적 잔인성이 아이들에게 남이 있는 것 같다. 원시 시대부터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으면 인간이 죽음을 당하거나 생존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 뿌리가 지금도 남아 아이들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시 아이들을 시골에 갖다 놓으면 그런 짓을 할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도시 아이들은 뱀만 보아도 십리는 도망칠 것이다. 도시 아이들은 잔인할 요인이 발현(發現)될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닐 게다. 그러고 보면 환경적인 요인도 있는 것 같다. 결국 환경과 유전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어떻든 아이들은 잔인하다! 풍뎅이처럼 내 머리가 한 바퀴는 돈 것 같다.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이나 내다 보아야겠다.
<내가 태어난 마을: 뒤의 배경으로 보이는 산 중턱에 형석굴이 있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찾기도 힘들 것이다. 앞에 가운데 검은 동산이 하나 보인다. 이 산에 집을 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앞 쪽의 검은 것은 인삼 밭. 겨울에 찍어서인지 텅 빈 논에 눈이 조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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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9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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