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선창(A Wharf)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07:58


 

<2007년 겨울의 정동진> 

 

  
  선    창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은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 날 밤도
지금은 어디로 갔나
찬 비만 내린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울어본다고 다시 오랴
사나이의 첫 순정
그대와 둘이서 희망에 울던 항구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돌이켜 보면, 기쁜 날 보다는 슬픈 날이 더 많았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른 동물은 배만 부르면 행복하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배만 부르면 행복한가? 비가 와도 슬퍼지고, 바람만 불어도 슬퍼질 때가 있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미래는 희망에 차 있다고 그 말을 믿고, 또 믿어도, 다시 또 제자리로 돌아와 슬퍼하는 것이 인간이다. 슬픔과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기쁨만 있는 세상, 그것은 정말로 무미건조할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옛날부터 희극보다는 비극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명작으로 비극이 더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슬플 때 바다를 찾은 적이 있다. 아마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을 것이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허름한 바바리 코트를 걸쳤을 것이다. 코트의 깃을 세우고, 바람을 등에 맞으며 걸었을 것이다. 그때 생각난 노래가 이 노래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그 뒤로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 노래가 생각이 났고, 그 때마다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야말로 불세출의 명곡이 "선창"이라는 노래다. 많은 사람을 울렸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이 노래로부터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조명암이라는 사람이 작사를 했고, 김해송이라는 사람이 작곡을 했다고 한다. 조명암은 월북하였고, 김해송은 한국전쟁 중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고운봉이라는 가수는 이 노래로 톱 가수로 변신했다. 그 뒤에 나훈아, 조용필, 한영애, 배호, 조미미 등 웬만한 가수가 이 노래를 불러 음반을 냈다. 그 만큼 사람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리라. 나도 노래방에서 여러 번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의 핵심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이다. 나머지는 사족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통탄스러웠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우리는 너무 기뻐도 울고, 너무 슬퍼도 운다. 또한 너무 기뻐도 웃지만, 너무 어이 없이 슬퍼도 웃는다. 따라서 우리말의 "울다, 웃다"는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의 스펙트럼을 관통한다.

 

 

어떤 남자가 옛 시절을 못 잊어 부두에 찾아왔을 것이다. 와보니 사람은 없고 옛 추억만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울려고 왔나 웃으려고 왔나, 땅을 쳤을 것이다. 바람만 휑하니 부는 언덕을 되돌아 오면서, 자신도 울고 물새도 울었을 것이다. 애끓는 사랑 이야기다.  

 

 

그 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 이 노래를 자주 부르는 젊은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전에는 사랑 노래가 많지 않았다. 고향, 부모, 친구가 주제인 노래가 많았었다. 언젠가 나훈아라는 가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향과 어머니가 주제인 노래를 많이 들었고, 또 많이 불렀다. 그러나 우리 세대를 끝으로 어머니 노래와 고향 노래는 끝이다. 정말 안타깝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부모, 고향, 친구에 대한 노래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사랑의 노래도, 옛날 사랑의 노래와 지금의 사랑 노래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사랑의 노래는 "물어 물어 내 님이 계신 곳을 찾아 가거나", "나를 울려주는 봄비" 정도였었다. 지금 젊은이들의 사랑의 노래는 "니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어,"이거나 "Tell me, 사랑한다고"다. 아마 지금 젊은이들이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수많은 밤을 혼자 울었다"라는 이미자의 노래를 들으면 한심하거나 바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 만큼 세월이 흘렀고, 또 세월이 무섭다.   
 

 

<2002년: 흑산도 탁주와
  홍어회>

작년에 명퇴를 하면서, "최백호의 노래처럼 '어느 항구에서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서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도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나의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 해가 가기 전에 어느 선창가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내 나이와 내 취미와 내 마음에 어울리는 동무와 술 한 잔 하고 싶다. 그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지만, 여자면 더욱 좋을 것이다. 탁주와 홍어회를 즐기는 여인이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 여인도 "선창을 부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밤을 새워도 좋을 것이다. 세월 따라, 나의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나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또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김춘수의 "꽃">

 


(2008년 08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