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미찌코(Mitiko, a Japanese friend)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07:42

 

    

 

                          <의정부에 있는 대장금 촬영장에서 미찌꼬>

 

미 찌 꼬

 

지난 7월 17일 미찌꼬라는 한 일본인이 우리 집에 왔다가 7월 28일 일본에 돌아갔다. 전에 한 번 그녀가 우리 집에 몇 시간 다녀간 적이 있고, 나와 아내가 일본에 가서 한 음식점에서 그녀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나이트클럽에 같이 가본 적은 있으나, 함께 생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찌꼬와 나, 그리고 나의 아내 세 사람이 제주도, 속초, 금산, 대천에 다녀왔고, 한국에 머문 12일 중, 5일을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나는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여기에 하나하나 나열하고 싶지 않다. 단지 12일 동안 그녀와 함께 생활하고 그녀를 관찰하면서 내가 느낀 일본인의 단면을 기술하고자 한다. 나는 일본어가 서툴러서 미찌꼬와 의사 소통을 잘 할 수는 없었다. 답답한 때도 많았고, 마음 속에 있는 깊은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냥 일상 생활을 해 나가는데는 조금 배운 일본어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모든 일본인이 미찌꼬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찌꼬의 이번 한국 방문은, 나에게는 일본인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찌꼬는 한국에 오기 전에 우리가 어떤 선물을 받기 원하는지를 이메일로 물었다. 우리는 "아무런 선물도 필요 없으니 그냥 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었다. 그녀는 아내에게 비즈(beads) 반지와 비즈 목걸이 그리고 향수를 가져왔다. 나에게는 월계관이라는 상표의 청주 한 병을 가져왔다.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으나, 한 두 번 만난 것을 참고해서 가져온 듯한데, 싫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초생달 모양의 과자 몇 봉지와 삿뽀로 라면 몇 개를 가져왔다. 우리 같으면 이런 과자나 라면은 선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과자를 흔히 선물하는 모양이고, 삿뽀로 라면은 작년 우리가 삿뽀로에 갔을 때, 우리가 잘 먹는 것을 보고 사온 듯 하다. 

 

 

우리 집에 도착하여 방과 화장실을 지정해 주고 사용하도록 일러 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녀는 우리 집에 있는 12일 동안, 오직 자기 방과 자기 화장실 그리고 거실만을 오고 갔다. 부엌은 어떻게 생겼으며 음식은 어떻게 장만하고 설거지는 누가 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안방의 구조는 어떠하며, 침대는 있는지, 바닥에서 자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방, 자기 화장실, 거실 그리고 식탁만 왕래했다. 자기의 영역이 아닌 곳은 마치 비자를 받아야 가는 외국처럼 전혀 건너갈 생각을 안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대단히 싫어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이야기가 떠 오른다. 한국여자와 결혼한 일본 남자가 있었는데, 그 일본인의 어머니가 자식을 보러 한국에 왔었다. 그 일본인 어머니는 자기 자식에게 피해가 된다고 자식 집에 가지 않고, 호텔에서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고 갔다는 이야기다. 이것을 보면 일본인이 얼마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남의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좋고 나쁜 관점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우리와 서로 다르다는 관점의 이야기다.

 

 

우리 집의 화장실에는 커튼이 없어서, 우리가 샤워를 하고 나면 아무리 조심스럽게 해도, 사방에 물이 떨어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샤워를 하는지 몰라도, 그녀가 샤워를 한 후 가 보면 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욕조 위나 중간까지 물 한 방울 떨어져 있지 않았다. 욕조 바닥에나 약간의 물이 보일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샤워를 하는지, 아니면 샤워를 하고 물기를 하나하나 다 닦아내는지 알 수 없지만, 샤워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나나 나의 아내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잘 방에는, 요를 깔고 그 위에 시트를 깔았었다. 그녀가 나간 후 방을 보면, 처음에 우리가 제공해 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물 속에서 거닐며 고기를 사냥하는 황새가 그 큰 주둥이로 물고기 한 마리만 확 채가듯,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몸만 조용히 들어갔다가 조용히 나온 것 같다. 베개에도 수건을 깔아 베개를 더럽게 하지 않고 수건을 교체하여 나름으로 깨끗하게 원형을 유지하는 노력을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 저기 많이 다녔는데, 그 때마다 하루 전에, 내일의 일정을 이야기 해주고 몇 시에 준비하고 나오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미리 일어나서 단 1분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오하요 고자이마스"하면서 거실로 나왔다. 일정상 새벽 6시에, 어떤 때는 심지어 5시에 출발할  때도 있었는데, 항상 정확한 시각에 나왔다. 분명히 알람 시계가 없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어떤 이유로 잠을 자려고 한다고 우리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오야스미나사이"라고 말하고는 자기 방에 돌아갔다. 대체로 10시경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한국의 드라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또는 호텔에 있는 동안 계속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 분명히 한국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대단히 재미있다고 했다. 현대 한국 드라마는 물론 고전 드라마에도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미찌꼬는 드라마 자체를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겨울 연가에 나온 배용준과 최지우에 대한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권상우나 이영애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한국의 TV 드라마를 보면서, "저 사람도 일본에서 보았다, 이 사람도 일본에서 보았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시간만 나면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했다. 나는 일본인이 왜 겨울연가에 열광하는지 물었다. 일본 드라마는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것들이 많은데, 또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는 드라마가 드문데, 겨울 연가는 여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준다고 그녀는 말했다.  

 

 

가평에 있는 남이섬에 가 보았는데, 겨울 연가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수 없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면서 일본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특히 배용준 상 옆에서 포즈를 취하며 멋있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의정부 근처에 있는 대장금 촬영 장소에도 갔었다. 거기서  옛날 궁궐에서 입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가장 추억에 남는 일이라고 했다. 키가 크고 약간 서양사람처럼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보아도, 마치 서양 여인이 한복을 입은 듯했다. 일본에 간 뒤 보내온 그녀의 이메일에 따르면, 대장금 촬영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자기 친구들이 대단히 부러워했다고 한다.

미찌꼬는, 이름은 잊었지만 일본의 어떤 가수의 팬클럽 회원이기도 했다. 그녀가 입고 온 티셔츠는 그 가수의 이름이 새겨진 노란색 옷이었다. 약 200 명의 팬 클럽 회원이 그 가수를 따라 작년에 하와이에 갔다고 했다. 그 가수와 자전거를 같이 타고 여행도 하고, 같이 음식도 먹으면서 재미있는 4박 5일을 보냈다고 했다. 아마도 일본인 아줌마들은 우리 나라의 10대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를 따라다니듯, 또는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듯,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자신의 우상을 찾아 다니는 불나비처럼 보였다.

 

 

대천에서 노래방에 갔었는데, 미찌꼬는 한국 노래 중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대전 블루스"를 불렀다. 물론 일본 가사로 불렀다. 일본에도 노래방에 가면 한국 노래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미찌꼬도 노래방에 간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노래 후 돈을 내는 문제다. 한국에서는 100점이 나오면 보통 만원을 낸다. 내기 싫어도 사람들이 빼앗아, 모니터 앞에 붙여 놓는다. 나중에 그 돈으로 노래방 비를 내기도 하고, 2차 가서 한 잔 더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제일 점수가 낮은 사람이 돈을 낸다고 한다. 그래서 꼴찌를 하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으로 노래를 한다고 한다. 결국 한국인은 100점 만점에 기분 좋아서 돈을 내고, 일본인은 꼴찌라서 기분도 나쁜데다가 벌금까지 물리는 형벌을 내리는 셈이다.

 

 

제주도에서 말타기 공연, 코끼리 공연, 돌고래 공연 등을 보았는데, 거기에 출연한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흥미로워했다. 도깨비 도로에서 착시현상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는데, 일본에도 이런 곳이 있는지 물어보니, 자기는 일본에 그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날이 더워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그녀는 여러 가지 쇼를 본 것만으로도 제주도에 대한 좋은 인상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밥상을 차려놓고 보니, 거의 모든 음식이 빨간 색이고 매웠다. 될 수 있으면 심심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해 놓고 보면 여전히 한국 음식은 매웠다. 처음에는 매운 음식에 손을 대지 않더니, 하루 이틀 지남에 따라 급속도로 한국 음식에 적응했다. 그녀가 일본에 돌아갈 무렵에는 자기가 한국 사람이 다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김치를 비롯한 매운 음식에 익숙해져서 일본에 돌아 갔다.

 

 

금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금산에 칠백의총이라는 유적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칠백 명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큰 무덤과 박물관 그리고 여타 건축물로 되어 있다. 내가 그녀에게 이런 곳을 데려가서 일본인의 침략성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단지 금산에 간 김에 금산의 유적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그곳을 간 것이다. 그녀는 적지 않게 당황한 듯이 보였다. 일본인이 한국을 침략하여 한국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에서 잠깐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들은 과거에 일본인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사실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녀는 일본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분명히 칠백의총에 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찍은 사진을 내가 CD로 만들어 주었고, 그 사진을 보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한국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미찌꼬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친구나 가족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역시 금산에 갔을 때, 금산에서 유명한 어죽을 먹었다. 민물고기를 끓인 물에 쌀과 수제비를 넣어서 맵게 끓인 음식인데, 나는 금산에 갈 때마다 즐겨 먹는다. 좀 맵지 않게 끓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매운 그 어죽을, 그녀는 소주 한 잔과 더불어 땀을 흘려가며 맛있게 먹었다. 뜨거운 죽에 소주를 먹어서 일까 그녀는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찌꼬가 전에 어떤 남자(마사오)와 두 번이나 한국에 왔기에 나는 당연히 마사오가 미찌꼬의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사오는, 사실은 남편이 아니었다. 미찌꼬는 남편과 이혼한 여인이었고, 우리가 남편이라고 생각한 마사오는 자기 부인과 이혼한 남자였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이혼한 상태로 몇 년간 동거를 했다고 했다. 이런 일은 60이 넘어서 이루어진 일이다. 지금은 각자가 자기의 집에 살며, 연애하는 기분으로 일 주일에 몇 번씩 만난다고 했다. 자기의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정말로 소설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나이에 그런 로맨스를 갖는다는 것도, 또 그런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수풀 속에 있는 꿩은 개가 내몰고,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는 술이 내몬다"라는 서양 속담이 맞다라는 생각도 했다.  

 

 

미찌꼬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친구들과 가족을 모아 놓고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자기 딸과 사위도 서울에 한 번 꼭 보내겠다고 했다. 언젠가 미찌꼬에게 한 번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 나라를 가 보았는데, 가장 좋았던 나라는 어디냐"라는 질문이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한국이라고 말했다. 내가 듣기 좋게 한국이라고 말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에 대한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였다. 한국의 어떤 점이 좋을까? 아마 그녀는 한국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하철 탔을 때, 자리를 양보해준 젊은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디를 가나 호의적인 한국인에게 정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이제 70의 나이를 바라보는 미찌꼬, 좀 더 젊은 나이에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런 인간 관계를 맺고 서로가 서로를   고맙게 여기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인간의 돈독한 정 앞에는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년에 미찌꼬와 마사오를 만나면, 그 동안 그들이 얼마나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도 우리가 늙어가는 모습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우정과 교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끝)

 

 

 

<2003년 12월 수도 여고를 방문했을 때의 마사오와 미찌꼬. 오른 쪽에 서 있는 학생이 통역을 한 박사미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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