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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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올림픽 중계 방송이 있어서 즐거웠다. 아침 11시만 되면 텔레비전 앞에 자동으로 앉았다. 밥을 먹을 때도, 국에 밥을 말아서 텔레비전 앞으로 가져와 먹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택배 배달원이 와서 노크하는 소리도 못 들어, 나중에 경비실 연락을 받고서 가져온 적도 있었다. 나는 내가 왜 스포츠에 빠져드는지 알 수 없었다. 폭우가 내려 갑자기 물살이 세어진 시냇물이 보(洑)에서 잠시 머물다가, 구멍 난 틈을 찾아 나갈 때 휘몰아 빠져나가는 것처럼, 나 자신이 그렇게 그 속에 빠져 들었다. 처음 유도의 최민호 선수가 금 메달을 따고, 수영에서 박태환 선수로부터 금 메달이 나왔을 때 절정에 달했다. 다음으로 왕기춘이라는 유도 선수가 금 메달을 딸 차례였다. 그는 한 판 승의 사나이라는 이원희 선수를 물리치고 올라온 소위 말하는 다크 호스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금메달이 확실시되는 사람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되풀이해서 왕기춘 선수의 결승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나도 그 대열에 휩쓸려 그 시간만을 학수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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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뉴스에 왕기춘 선수가 울면서 울분을 토하는 짤막한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눈물을 흘리면서 "연습이 부족해서 졌나보다"라고 말하면서 통곡을 했다. "부모님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그는 울고 또 울었다. 그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에 그친 것을 하늘과 부모님과 한국 사람 전체에게 큰 죄나 지은 듯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철철 흘렸다.
생각해 보면 은메달은 대단한 것이다. 세계에서 제 2 인자란 뜻이다. 한 나라에서 2인자도 하늘의 점지가 없다면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반에서 2등 해본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의 2인자가 된다는 것은, 가물에 콩 나듯이 아니라, 한강 백사장에서 모래 알 하나 찾는 것처럼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지은 사람처럼 울었다.
수많은 관중과 시청자가 일 등을 한 사람에게 흥분하여 소리쳐서 축하와 격려를 보낼 때, 일 등을 제외한 수 많은 사람이 눈물과 한숨에 땅을 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기 쉽다. 일 등만이 살고, 나머지는 죽는 세계가 스포츠와 정치의 세계인지 모르겠다. 이것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더욱 북돋우게 할 지는 모르지만, 단지 한 사람, 또는 한 팀을 제외하고는 언젠가는 슬픔을 맛보아야만 하는 것이 스포츠의 비정한 세계다.
학교에서도, 학급에서도 금 메달을 따는 것은 한 사람 또는 한 팀뿐이다. 은 메달이나 동 메달을 따는 학생도 한 명뿐이다. 학교에 따라, 지역에 따라 실정은 다르겠으나, 메달을 따지 못했다해도 메달에 바금 가는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학생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다. 과목에 따라 다르겠으나, 일 등이나, 이 등, 삼 등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허송 생활하는 학생은 넘쳐 나고 또 넘쳐 난다. 그 어떤 말로도 그들을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현재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공부라는 것은 알지만, 공부를 하지 않건 못하건 간에 그저 잠이나 자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학생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학교 현실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던지, "가난은 임금님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논리로, 학교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리면, 이 문제는 대단히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괴로운 것은, 아니,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처럼 "수많은 밤을 가슴 오려내는 아픔을 견뎌야 하는 것"은 이것을 구경하는 우리가 아니다. 바로 당사지인 학생이다. 싫건 좋건, 그들은 새벽에 부모에 떠밀려 잠자리에서 일어나 학교로 간다. 방과 후에 또 학원에 내 몰려 학교 수업과 별반 다름 없는, 아니 학교 수업에 사탕을 발라 놓아 좀더 달콤한, 하지만 어쩌면 학교 수업만도 못한, 지루한 장마, 악마 같은 야간 학원 수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저런 노력으로 당사자도 여러 번 메달의 대열에 합류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어 결국, 거세게 몰아치는 낙오 대열에 어쩔 수 없이 합류했을 것이다. 자책감이나 죄책감, 그리고 패배감이 얼마나 들었을까? 가슴에 피멍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나 원인이 어떻든 그는 이 패배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이 떠내려가고 있다. 해결될 수도 없고, 해결해 주는 사람도 없는 이 거센 강물을 따라 그는 습관처럼 떠 내려간다. 그러는 사이 물이 흘러가듯 세월 또한 흘러간다. 젊은 청춘도 흘러간다.
그러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회 생활이 그에게 닥친다. 병역이라는 뻔히 아는 복병을 포함하여,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들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세월이 가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선택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로버트처럼 교실에 앉아있다 하더라도 사회에 나가지 않고 그냥 영원히 학생으로 머무는 것이 그들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또 책에도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면 된다"는 말이 급훈인 반도 많다. 하지만 하면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땅을 파면 땅을 판만큼 눈에 보인다. 공부는 한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를 공부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나, 공부를 하지 않고 보나 성적은 비슷하다. 아니 어떤 때는 차라리 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을 보는 것이 성적이 더 잘 나오는 경우도 있다. 확실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불확실한 세계를 그들은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오늘도 내일도 보이지 않는 땅을 파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공부가 가장 쉬웠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이 사실인지 모르지만, 남의 오장육부를 긁어놓다 못해, 그 칼에 오장육부가 찢겨지고 갈겨진 것이 어디 한 두 사람이랴.
세상이 끊임없는 투쟁의 장인지,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상생(相生)의 장인지는 모른다. 인생이 희망에 차 있으며 즐겁고 살 만한 값어치가 있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행복해 보이는 이면에, 수많은 사람이 밤이나 낮이나 한 숨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무런 충고도, 아무런 위로의 말로도,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국가도, 단체도, 종교도 그들의 찢어진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내 주위에 살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그들의 한 숨을 쓸어가 주었으면 좋겠다. 시원한 비가 와서 그들의 이마를 촉촉히 적셔 주었으면 좋겠다. 겨울에 한 줄기 햇빛처럼 무엇인가가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져 주었으면 좋겠다. 길을 걷다가 건널목에서 빨간 불이 켜지자마자 가방에서 유인물을 꺼내어 숙제를 하는 초등학교 학생을 본 적이 있다. 한 문제를 풀다가 파란 불로 신호등이 바뀌니 풀다 만 유인물을 다시 가방에 집어 넣고, 그는 다시 달려 건널목을 건너 갔었다. 그 아이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8년 0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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