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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2006년>
어떤 사랑
사랑이라는 말처럼 그 의미가 다양한 단어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이나 부모의 사랑, 그리고 친구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일을 사랑하거나 심지어는 적을 사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랑 중에 남녀간의 사랑만한 사랑이 또 있을까? 남녀간의 사랑의 종류도 밤새 늘어 놓아도 끝이 없을 것이다. 육욕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 그리고 이 둘을 어떤 비율로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사랑의 종류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과연 아가페(신의 사랑), 에로스(그리스의 남녀 사랑), 에피투미아(육욕적 사랑)적 사랑 중 어느 것인지도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보거나 토론을 해보았을 것이다.
love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lubere에서 유래했는데 그 의미가 please(기쁘게 해주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자의 애(愛)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목메일 기'와 '마음 심', 그리고 '뒤져올 치'자의 합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목이 메어 삼키지도 못하고, 다리에 무거운 것을 달아매든지 해서 빨리 걷지 못하고 뒤쳐져 오는 심정"이 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괴로움 중에서도 정말 참기 힘든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원적인 측면에서는, 서양에서는 사랑을 기쁨으로 보았고, 동양에서는 괴로움으로 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팝송에는 사랑의 기쁨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고, 우리 가요는 사랑의 괴로움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은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어떻든 사랑은 우리에게 기쁨과 괴로움을 동시에 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청산도: 2006년>
젊었을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한 여자의 주소를 전달 받았다. 나는 몇 권의 시집을 옆에 놓고 심금을 울리는 표현만을 골라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 사용했던 "송화가루 휘날리는 이 봄에 그대는 어디서 무엇을 하시나요?"라는 표현과 "잠 못 이루는 긴긴 밤, 버들피리 소리 가슴에 적셔온다."라는 표현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편지에도 불구하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시집을 구하고 더 많은 수필집을 구했다. 내가 감동을 받은 표현을 골라 다시 근사하게 조합하여 편지를 썼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이태백이나 소동파가 보아도 울고 갈 만한, 번지르한 표현으로 도배된 글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사랑을 향한 일편단심은 한 인간을 시인으로 만들 수 있음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두 번째 편지를 보낸 후 일 주일만에 답장이 왔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누구신지는 모르오나 이렇게 훌륭한 글 솜씨는 처음 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다. 온갖 좋은 글은 다 모아다 갖다 놓았으니,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여튼 편지지 두 장에 곱게 써 내려간 그녀의 글도 "나도 너만큼 잘 쓸 수 있다."는 듯, 멋들어진 표현과 기교로 가득 했다. 그녀도 수많은 수필집과 시집을 참고하여 썼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녀의 편지를 수십 번 읽었다. 밥먹다가도 읽고, 자다가도 읽고, 화장실에 가서도 읽었다.
이런 편지는 일 주일이 멀다 하고 왔고, 답장 또한 그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번 만나자고 내가 제안했다. 그녀는 한 동안 답장이 없더니, 어느 날 답장이 왔다. 나를 만나겠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만나는 것이 옳은지 어쩐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전에도 펜팔을 좀 해본 적은 있으나, 실제로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펜팔이 유행했었다.
<청산도: 2006년>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신설동 어떤 다방이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어항의 금붕어가 오늘따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스피커에서는 조용남의 딜라일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쪽 발을 덜덜 떨며, 어쩔줄 몰라하는 나에게 유리창을 통해 한 줄기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두 여인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좀 잘 생긴 여자였고, 한 여자는 키가 좀 작고 좀 못생긴 여자였다. 키가 좀 큰 여자는 서글서글하게 보였고, 작은 여자는 불안하고 초조한 듯이 보였으나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의 펜팔은 유감스럽게도 키가 작은 여자였다.
그 날 이후 나는 틈만 나면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만나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했다.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사랑은 그녀의 모든 단점을 장점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의 작은 키는 아담해 보여 마음에 들었고, 눈 밑에 있는 옅은 검은 반점도 단점이 아닌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보였다.
그녀만 있으면 모든 다른 것이 필요없었다. 그녀는 정말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녀를 만나면 그녀의 손은 항상 내 주머니에 있었다.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가서도 빈방을 달라고 하여, 그녀를 내 가까이 두었다. 어떤 때는 내 무릎에 앉히기도 하였다. 그녀의 자장면 먹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를 올려다 볼 때는 그녀의 슬픔에 찬 눈빛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렇게 꿈같은 세월은 방향을 모른 채 흘러갔다. 행복이란 정말 이런 것이며, 인생이란 정말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 이런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이 원이 되고 한이 되는 듯 했다.
<청산도: 2006년>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헤어지자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고 울부짖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원통함과 분함이 극에 달해있었다. 왜 헤어져야 하는지 이유를 묻는 나의 편지에 그녀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답장이 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나 보자고 했다.
처음 만났던 신설동 다방이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나타났다. 그녀도 나만큼 고민을 했는지, 수척하고 눈가가 부어있었다.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물었으나 그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왜 헤어져야만 하는지 이유를 밝혀달라는 나의 계속되는 질문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걸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나는 신경질도 나고 허기도지고, 피곤도 하여, 그녀의 따귀를 갈기고 "그래 할려면 네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을 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의 모든 것을 주어 버린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한 내가 한 없이 저주스러웠다.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었다. 그녀는 버스를 탔다. 나도 버스를 탔다. 중간에 그녀는 내렸다. 나도 따라 내렸다. 그녀는 걷다가 다시 버스를 탔다. 나도 그렇게 했다.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밤 10시쯤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집안으로 따라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대문에 서 있기로 했다. 얼마 뒤에 그녀가 다시 나타나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계속 대문에서 서성였다.
나는 이 여자를 사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오늘 여기를 오지 말아야 하는데 왜 이곳에 왔는지 여기에 온 것도 후회했다. 나는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 특유의 절박감과 비통함을 맛보고 있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별아, 바람아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두 번째 들어간 그녀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여자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발로 대문을 걷어 찼다. 얼마 뒤에 그녀는 부시시한 얼굴로 나왔다. 그러더니 이제라도 집으로 제발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2시를 넘겼다. 2인 1조로 방범대원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나보고 여기 서 있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를 기다리는데, 어머니가 오면 같이 가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의 집 맞은 편 쪽에 있는 집 대문 옆에 놓여있는 돌 위에 한참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심한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생각해도 참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소설에나 나오는 위대한 사랑을 내가 지금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에 있는 별을 바라보았다. 그때 생각난 것이 "눈물을 감추고"라는 노래다. 위키리인지 위스키인지가 부른 노래다.
눈물을 감추고 눈물을 감추고
<청산도: 2006년>
4시가 가까워 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대문을 한 번 더 차보기로 했다. "쿵쾅"거리는 대문 소리에 동네 개가 사방에서 짖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내가 왜 이리 초라한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사랑을 위해 내가 밤을 지새다니 나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또 부시시한 얼굴로 나타났다. 조금도 잠을 못잤다고 말한 그녀는 또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윽고 닭이 울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나는 골목길을 빠져 나와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대며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찬 바람이 불고 있는 거리를 "눈물을 감추고" 걸었다. "내 야윈 가슴에 눈물이 흘러 넘친다." 시내버스를 타고 영등포에 있는 누나 집으로 왔다.
굶주림과 추위로 내 몸은 꽁꽁 얼어있었다. 아랫배도 얼었는지 설사가 나기 시작했다. 열과 기침을 동반한 감기의 여러 증세가 나타났다. 나는 자리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참 우습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완도: 2006년>
그 뒤 세월이 좀 지났다. 나의 상처도 많이 아물었다. 어느 날, 그녀로부터 한 번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
모든 사랑은 첫 사랑이다. 첫 사랑은 가슴을 뛰게 한다. 인생에서 몇 번 사랑을 하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것은 항상 첫 사랑이다. 사랑의 강도와 깊이는 나이와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를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 "애타는 마음을 갖는 사랑"은 언제나 첫 사랑임에 틀림없다. 이 사랑이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것은 이것이 "첫 사랑"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풋 사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12월 3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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