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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 촬영
12월 13일 한 아트 센터(Art Center)에서 인물사진 촬영 강좌가 있었다. 사진이라는 것을 대부분 책을 통해 배웠던 나는, 강의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누가 거기에 오는지, 모델은 어떻게 생겼는지, 대단히 궁금했고 기대도 컸다. 강좌는 크게 이론 강좌와 실제 인물 사진 촬영 등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나는 거기서 느낀 점 두 가지를 이 글에서 적어보고자 한다.
강의의 내용도 쉬운 것에서부터 차근히 설명을 해야 할텐데,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하다 보니, 참석자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그러고 보니 곧 지루하게 되었다. 참석자 열 명 중에, 지겨워서 꾸벅꾸벅 조는 참석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각종 촬영 장비와 강의 보조 자료인 컴퓨터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해 놓고 기다려야 했으나, 그 자리에서 설치하고 작동을 해보려니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연결하여 무엇을 보여준다고 하더니, 인터넷도 연결이 안 되었다. 칠판에 글씨를 쓰려하니 펜이 나오지 않았다.
그 강사에게는 미안한 말이나, 참 한심한 강의였다. 교육학이나 강의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막무가내식 교수활동이었다. 교수법이나 교육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가르치는 것"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황당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교육학이나 교수법을 전혀 배우지 않고도 잘 가르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런 것을 많이 배워도 형편없이 가르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본이 되어 있는 것과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누가 교직을 전문직이 아니라고 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교사는 그저 실력만 있으면 아무나 하는 것이라고 잘 못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참석한 것과 같은 강좌에 참석해 본 사람은 학교의 선생님들이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선생님들은 교육학과 전공 과목이 받쳐주고, 또 한 시간 가르치기 위해 여러 시간 준비를 하니 잘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생님은 힘들다. 어떤 사람은 도대체 선생이 무엇이 힘들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특히 남편이 회사에 다니고, 아내가 학교에 있는 경우에 남편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나 수업이라는 것이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고, 또 여러 학생 앞에서 학생이 원하는 것과 수준을 고려하여, 질 좋은 수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사실은 여러 사람 앞에 서서 말한다는 것 그 자체가 힘들다.
어떤 외국인이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고 하여, 한국 사람 아무나 한국말을 가르칠 수는 없다. 물론 "가르친다"는 말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가 문제가 되겠지만, 적어도 잘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외국인 중 무자격 영어 교사가 한국에 대단히 많다고 한다. 그들이 학원에서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 참 걱정이 된다. 가르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학교에 계신 선생님은 존경 받아야 하고, 선생님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분들이다.
드디어 모델 사진 촬영 시간이 되었다. 사진관에서의 모델 촬영하면 왜 그런지 여자가 나체로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모델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장을 바꾼다든지 분위기를 바꾸는 일은 없었다. 같은 장소에서 청바지에 스웨터를 입고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포즈를 취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몸의 놀라움이다.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각도와 방향 그리고 구부러지고 펴지는 모양 등에 따라 수천 가지의 제스처가 나온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손가락이 다섯 개이고 손이 둘이니 손가락은 모두 열 개가 되고 다른 몸의 동작이나 얼굴 표정과 조합하면, 그 경우의 수는 몇 억이 아니라 무량 수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참가자가 10명이었고, 10명이 약 10분씩 촬영을 했으니, 그 모델은 100분간을 모델 노릇을 한 셈이다. 적어도 내 느낌에는 단 한 번도 같은 표정이나 제스처를 하는 경우가 없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내 몸을 나의 목숨을 지탱해주는 그저 "몸둥아리"로 알고 지내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 몸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내 몸이 표현할 수 있는 수 많은 표현을 너무 무시하거나 당연시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몸은 모든 악기의 집합체인 것 같다. 몸의 주인이 기타를 연주하면 기타 소리를 내고, 주인이 트럼펫 연주를 하면 트럼펫 소리를 내는 만능 악기인 것이다. 설령 댄서나 배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정말로 너무 좋은 악기를 갖고 태어났다. 단지 주인을 잘못 만나서, 그 악기가 사장(死藏)되고, 술통이나 밥통이나 빨래판이 되었을 뿐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몸을 너무 혹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음식을 많이 먹어 뚱뚱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너무 먹지 않아 *저립대처럼 배싹 말라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몸에다 문신을 하는 것이나, 너무 꼭 끼는 옷을 입거나, 추운 겨울에 너무 많이 몸을 노출시키는 것도 몸을 학대하는 것일 것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로 선수도 마찬가지다. 김연아 선수가 훌륭한 선수라고 박수치고 난리지만, 잘 보면 그 어린 선수가 얼마나 몸을 혹사하는지 알 수 있다. 몸을 잘 보전하려면 아마치오로 남을 것이지, 섣불리 프로의 세계에 뛰어 들 일이 아니다. 또한 거의 평생을 양말이나 구두 속에서 고생하는 발을 가끔 마사지를 해줘야 할 것이고, 항상 몸 뒤치닥거리만 하면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사는 엉덩이에게도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정신도 중요하고 육체도 중요하다. 육체가 없는 정신은 없을 것이니 결국 모든 것은 육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의 몸을 잘 보살피고, 자기 몸의 고마움을 느끼고, 또 아름다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오늘 모두 거울에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한 마디 해주면 어떨까? "내가 너의 주인이어서 나는 좋아. 그 동안 너무 미안했어. 앞으로 정말 너에게 잘 할게. 고마워."
*저립대: 삼이라는 풀의 줄기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나면 하얗고 가는 2-5미터 정도의 긴 막대기가 나오는데, 어렸을 때 "저립대" 또는 "저립대기"라고 불렀었다. 이것이 표준말인지 사투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삼 껍질은 돗자리 짤 때 사용했던 것 같고, 저립대기는 진흙과 섞어서 초가집 지붕 아래에 열 차단 목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이 저립대에 거미줄을 돌돌 감아서 침을 묻혀 끝 쪽에 몰아 놓으면 마치 검은 껌처럼 찐득거리게 되는데, 이것으로 잠자리나 매미를 잡는데 사용했었다. 그리고 삼의 잎은 대마초라고 한다는데, 그 당시 그 효능을 알았었다면, 대마초나 실컷 피워볼 것을, 그만 때를 놓쳤다. 그때는 삼 잎을 마당에 수북하게 쌓아 두었다가 결국은 모두 썩혀 거름으로 사용했다.
(2008년 12월 1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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