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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놀다"와 "일하다"(Work and play)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07:32

 

 

<용마산에서 본 케네디 바위: 2008년 12월 11일>

 

"공부하다" 와 "놀다"

 

 

 

우리말 동사 중 꼭 필요한 단어를 세 개만 고르라면, "일하다" "공부하다" 그리고 "놀다"일 것이다. 이 세 동사로 거의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실제는 학생의 경우는 "공부하다"와 "놀다"요, 어른은 "일하다"와 "놀다"이니, 어떤 사람이 꼭 필요한 단어는 두 개라고 볼 수도 있다.

 

 

운동장에서 노는 것만이 노는 것이 아니다. 낚시질이나 등산도 노는 것이요, 쉬고 있는 것도 노는 것이다.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노는 것이요, 노래를 해도 노는 것이요, 먹는 것도 노는 것이다. 만화책을 보는 것도 노는 것이요, 심지어는 소설을 읽는 것도 "쓸데 없는 책이나 읽으면서 노는 것"이다. 어떻든 학교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은 노는 것이다. 또한 기계도 돌아가지 않으면 "기계가 논다"라고 말을 하고, 경작을 하지 않는 땅도 "노는 땅"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놀지 말고 공부해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놀고 무슨 공부를 한다고 하느냐?" 든지, "너는 왜 맨 날 놀고 공부는 안 하느냐?"라는 말을 들은 것이 어디 나 한 사람이랴? "악기를 연주하여 특기를 개발해라"든지, "노래를 잘 불러 훌륭한 가수가 되라"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어떻든 자나깨나 듣는 말은 "놀지 말고 공부하라."였다. 적어도 내가 젊었을 때는 그랬다.

 

 

이러한 생각은 공부는 좋고, 노는 것은 나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지금이야, 머리를 개발하는 놀이도 있고, 잘 놀아야 공부도 잘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자나깨나 공부밖에 없었다. 공부를 못하면 큰 죄를 지은 듯이 그렇게 행동을 했고, 또 어른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았다. 한 번은 동네에서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며칠 동안 아이들 모여있는 곳에 갔다가 주제 파악도 못하고 "놀려고 한다",고 형으로부터 맞아 죽을 뻔한 위협을 당한 적도 있었다.  

 

 

결국 나는 "공부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나쁘다"라고 생각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환경에서, 그런 사고와 지도를 받고 자란 내가 아버지라는 자격으로, 또는 선생이라는 자격으로 현재의 내 아이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고, 또 과거에 그렇게 했다. 그러니 내 방식대로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나대로 속이 상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속이 상했을 것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엉뚱한"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한심한 생각이 나에게 들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과거의 잣대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 지으려 하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양쪽이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겠으나, 그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깊어만 갈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아이들은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그래도 순리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컴퓨터를 필두로 세상이 너무나 빨리, 너무 급격히 바뀌어,  구닥다리 사고 방식으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섭게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컴퓨터로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아버지가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지도 모른다. 컴퓨터에 빠져있는 자식을, 정상적인 아버지가 바로 잡아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바로 잡아 주겠는가? 소경이 눈뜬 사람 인도하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 될 수도 있지만, 과거는 미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용마산에서 본 중랑천: 2008년 12월 11일>

 

 

며칠 전 내 아들이, 새벽 3시에 일어나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귀신에 홀린 것 같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까지 "눈치보며 컴퓨터 게임도 하고, 컴퓨터 도박도 해보았는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해 보게 해달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그 나름으로 논리가 정연하고, 그럴 듯한 상황판단인 듯 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너무 허황되다는 판단이 서기도 했다. 폐인이 되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대로 이 방면에서 이 아이가 두각을 나타낼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튼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까를 생각하니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래라, 그러지 말아라"라는 말 대신,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자고 했다. 아들의 "잘못"을 내 과거의 잣대로 "바로 잡아주어야" 할까? 그래서 나의 사고로 아이의 앞날에 "빗장을 걸어 잠궈야" 할까? 아니면 아이의 판단을 인정하여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가만히 있어야 할까? 나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배꽃: 2008년 4월 19일 의정부에서>

 

 

역사는 젊은이에 의해서 바뀌어왔다는 말이 있다. 나와 아들이 어떤 판단을 내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결국 나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요, 결정은 아들이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따라 밤바람이 유난히 차게 느껴진다.

 


(2008년 12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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