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어쩌다 (Somehow)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08:43

 

<2009년 2월 10일 양평 두물머리>

 

 

어쩌다

 

 

나이를 먹다보니 오라는 곳이 그저 예식장이요, 장례식장이다. 얼마 전 남산 근처에 있는 앰버서더 호텔에서 거행된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저녁을 먹고 내려오는데, 신발 뒷꿈치에 껌이 묻은 듯한 느낌이 들어 뒤쪽을 보니 뭔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별문제는 없겠다 싶어 그냥 걸어서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다음 날 구두 밑창이나 갈아서 신으려고 구두 밑을 보았다. 그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구두를 지금까지 내가 신고 다닌 것이 믿을 수 없었다. 구두 앞 쪽은 가뭄에 벼 논 갈라지듯 쫙쫙 갈라져 있었고, 뒷굽은 입을 떡 벌린 채 한 쪽이 떨어져 나갔다.

그 순간 나는, 살다보니 별꼴 다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지 신발도 이런 거지 신발이 없으리라.  바닥이 이렇게 갈라져 있는 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이것을 신고 다녔으니, 참으로 내가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고 했던가? 나는 사진을 찍어 기념해 두기로 하고, 신발에게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러준 후, 쓰레기 통에 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구두를 만들어 팔아먹은 사람에게 화가 났다. 학교에 장사꾼이 와서 산 신발인데, 사기도 이런 사기가 있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 신발이 아마도 중국제품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중국 사람들에게도 무지막지한 욕을 해댔다.

자기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인간은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우선 뒤집어 씌우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에 관한 반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쪽에서는 "수사가 집중되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죽었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을 매장시켰다. 대통령 주위 사람을 다 파헤쳐 까발렸다. 이는 정치적 타살이다."라고 말한다.

 

 

하기야 정치라는 것은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게임일 것이다. 상생이라는 말은 적어도 정치에서는 말로만 존재한다. 상생하여 대통령이 두 명 나올 수는 없다. 정치는 어느 한 쪽이 패하든지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을 치닫는 치킨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치킨 게임이란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자동차로 돌진하는 게임이다. 한 쪽이 마음이 약해 최후의 순간에 핸들을 틀면, 그는 지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핸들을 틀지 않으면 둘 다 죽는 게임이다.   

 

 

다시 생각이 바뀌어 이 번에는 나는 왜 신발이 이 지경에 될 때까지 왜 몰랐느냐고 자신을 꾸짖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설마 이런 일이 있으랴"하는 것이 첫 번째로 떠 올랐다. 대부분 암으로 사망한 환자들이 너무 늦게 암을 발견하여 고칠 수 없는 때에 병원에 오는 경우도 "설마"라는 안일한 생각의 소산이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면 사망할 확률이 상당히 줄어들 터인데, 설마하는 심정으로 병원에 가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한 일이 그렇게 잘못된 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미친 놈이 그래 매일 자기의 구두 밑창을 바라보고, "혹시 거북등처럼 갈라지지 않았나?"라고 확인을 하겠는가? "음, 아직 갈라지지 않았는데, 천만다행이야. 혹시 모르니 내일 다시 봐야지. 나는 구두 밑창 바라보는 것이 너무 즐거워." 이런 사람은 아마 염라대왕이 바로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여튼 "설마"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잘못의 시발점인 것 같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 것도 "설마" 때문이고, 성수 다리가 무너진 것도 "설마가 사람 잡았기" 때문이다. 남대문이 불에 타서 없어진 것도 이 "설마"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대학교에  ROTC 제도가 있다. 2년 동안 대학교를 다니면서 훈련을 받으면 소위로 임관되는 제도다. 그런데 4학년 말에 최종시험이 있어서 이 시험에 합격되면 소위가 되지만 불합격되면, 하사 계급장을 달고 군대에 간다고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선생님은 4학년 말에 ROTC 임관 시험보기 전날 카드놀이를 하고 술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설마, 그 시험에 떨어질까?"라고 생각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카드 놀이를 했다. 그러나 다음날 머리가 띵하고 눈꺼풀이 내려와서 제대로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불합격했다. 그 결과 다른 동료들은 장교로 군대 생활을 했지만 이 사람은 육군하사로 군복무를 마쳤다고 했다. 그것도 자랑이라면 자랑일지 모르지만, 나 같으면 그런 자랑 안 하고 다니겠다.  

 

 

<2009년 2월 10일 양평 두물머리>
 

 

설마하는 마음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뇌물수수일 것이다. "뇌물 받아 먹으면 설마 뭐 걸릴까?"하는 생각이다. 우리 나라는 뇌물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 중 뇌물에 깨끗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은 우리가 하루 이틀 들어 온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하고 이것 적발되겠나 하는 심정으로 뇌물을 받았을 것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장, 국회의원, 도지사, 시의원 등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이 뽑혀 나오는 것이 뇌물수수 사건이다. 심지어는 이를 척결해야할 검찰도 그리고 경찰도 여기에 연루되어 있으니 말하면 무엇하겠는가? 누가 누구를 나무라나? 이전투구(泥田鬪狗)도 이런 이전투구가 없다.

 

 

코리아 타임즈에 Jon Huer라는 컬럼리스트가 있다. 이 사람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이 뇌물을 먹지 않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말 속에, 그리고 "동문"이나 "동향"이라는 말 속에, 이미 뇌물의 뿌리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국 말이 너무 배우기 어려워, 외국인은 한국말을 배울 수 없어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니까,  한국 말을 잘 한다는 자체가 이미 "우리"라는 의식을 형성하고, "우리 끼리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흔히 술먹을 때 "브라보" 대신 쓰는 말인데, 이 말 속에 "우리 끼리 부정 좀 해 볼까?"라는 뉴앙스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Jon은 계속해서 말한다. 직장이건, 학교건, 사회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잘 좀 봐주세요."인데, 이 말에 "뇌물"의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Jon은 이런 말도 한다. This expression of "bo-wa-juseyo," so common among Koreans, could be said by a CEO seeking special government favors, a parent bribing a teacher for higher grade for his child, a speeding motorist trying to bribe the cop, and any number of situations in which one Korean uses his secret code with another Korean.(한국 사람들에는 흔한 표현인 "잘 봐주세요"라는 말은 정부에 부탁을 하는 CEO가 사용하고, 아이에게 높은 점수를 달라는 부모가 선생님에게 사용하고, 경찰관에게 뇌물을 주려는 과속 운전자가 사용하고, 한국인이라는 동일 비밀 코드를 사용하는, 즉 한국인끼리만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용한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듯한 말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노래에 "어쩌다"라는 노래가 있다. 물론 사랑에 관한 노래지만, 대강 이 글의 주제와 맞아 떨어진다. 나는 본래 이 글에서, 신발이야기를 통해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어쩌다 신발이야기에서 "설마"이야기로 흘렀고, 이어서 뇌물 이야기로 흘렀다. 그러다가 "어쩌다"로 빠져 버렸다. 하지만 살다보면,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있고, 용을 그리려다가 뱀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아니 현실은 본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다반사인지도 모른다. 오래 살다보니 별꼴 다 본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뇌물의 말로)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널 사랑하게 됐는지
(뇌물을 사랑하게 됐는지) 
내가 왜 이 꼴이 됐는지
(내가 왜 이 꼴이 됐는지)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내 맘 다 타 버렸는지(
내 인생 끝나버렸는지) 
내가
이런 바보였는지(내가 이런 바보였는지)

이거 참 이럴 줄은 몰랐어 (이거 참 이럴 줄은 몰랐어.)
오늘도 난 지쳐 너만 기다리다
(오늘도 난 울며 신세 한탄한다)
너 때문에 눈물 쏙 뺀 여자들
(너 때문에 눈물 쏙 뺀 인간들)
그 중에 하나가 되기는 싫었어
(그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어)

너를 바라보다 아차 싶었어 (뇌물 집어먹고 아차 싶었어.)
다잡았던 내 맘 놓치고 말았어
(다 잡았던 내 맘 놓치고 말았어.)
그런 나를 부르면
(그런 나를 부르면)
Oh My Honey
(Oh My Shoes)
일분 일초만에 니 앞에 있는 나
(일분 일 초만에 또 후회하는 나)
 ................................................

너무 멋진 멋진 그대
널 바라보면 어질어질해
너무 나쁜 나쁜 그대 
다 모르는 척 웃고만 있네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널 사랑하게 됐는지
내가 왜 이 꼴이 됐는지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내 맘 다 타버렸는지
내가 이런 바보였는지

 

"어이구, 나도 어지간히 할 일도 없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라 어쩌고---"

 

(2009년 6월 15일 작성)